불타(佛陀,부처님)

보리심과 대비(大悲)와 방편(156)

근와(槿瓦) 2015. 10. 17. 01:10

보리심과 대비(大悲)와 방편(156)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느 날, 세존은 갑자기 한없는 장엄을 갖춘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상을 나타내시어, 보현(普賢)을 우두머리로 하는 많은 보살들, 비밀주(秘密主)를 우두머리로 하는 금강역사(金剛力士)속에 앉으셨다.

 

그때 비밀주는 물음을 올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는 일체지를 얻으시고 뭇 사람을 위하여 갖가지 방편을 써서 그 지혜를 설하시어 펴고, 그 기류(機類)에 따라서 갖가지 법을 설하시고 갖가지 몸을 시현하여 각자 세간의 말을 사용하시고 또 각각의 모습을 시현하시지만, 그러나 그 설하시는 지혜의 길은 일미(一味)의 것입니다. 그것은 허공과 같이 모든 분별을 떠나 대지와 같이 모든 자의 의지처가 되고, 또 불은 모든 것을 태우고도 지칠 줄 모르는 것처럼 우직한 나무를 불태우고, 바람이 티끌을 날려 버리듯 사람들의 번뇌와 티끌을 제거하시옵니다. 원래 이러한 지혜는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며 또 무엇을 궁극으로 하는 것이옵니까?”

 

대일 여래는 비밀주에게 고하시기를,

“선하도다, 비밀주여.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설하여 밝히리라. 비밀주여, 그것은 보리심을 인으로 하고 대비를 뿌리로 하여 방편으로써 궁극으로 한다. 보리란 있는 그대로 스스로의 마음을 아는 일이다. 원래 바른 득도의 길은 허공과 같이 정한 상이 없는 것이므로, 인정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비밀주여, 모든 법에는 모름지기 정한 상은 없다. 모든 것이 허공과 같은 것이다.”

 

비밀주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누가 일체지(一切智)를 구하고 정각을 이루는 것이옵니까?”

 

세존이 밝히시기를,

“스스로의 마음이 구자(求者)인 것이다. 또 그대로 보리인 것이다. 그리고 일체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본성은 청정하며 번뇌에 물들여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대체로 마음은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고, 그 중간에도 없으며, 모든 모양을 떠나고 색을 떠나서 육관(六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모든 분별을 여의고 허공과 같기 때문이다. 보리의 성은 허공과 같은 것이므로 보리는 마음과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마음과 허공과 보리의 이 세 가지는 하나인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대비를 근본으로 하여 부족함이 없이 방편을 갖추고 있다. 그러니 비밀주여, 법을 내가 설한 것은 도를 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마음이 그대로 청정한 보리인 것임을 알리려고 하는 것 밖에는 없다. 만약 누가 보리를 알고 싶다고 원한다면 이와 같이 그 마음을 아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알 것인가? 그것은 모든 경계, 몸과 마음, 그렇지 않으면 아, 아소 등의 그 어느 것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비밀주여, 이와 같이 안다면 보살은 ‘법을 밝게 아는 최초의 길’을 얻게 된다. 이리하여 도를 닦으면 머지 않아 모든 마음의 장애를 제거하고 모든 부처와 동일하게 한없는 말을 깨달으며, 사람들의 망집에 물들여지지 않고 사람들을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바른 견해에 부딪쳐 한없는 공덕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비밀주가 묻기를,

“세존이시여, 어떻게 하여 이 마음에 보리가 생기고 또 어떠한 상에 의하여 보리심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옵니까? 또 여하한 순서에 의하여 마음은 도에 나아가는 것이옵니까?”

 

부처께서 고하시기를,

“비밀주여, 시초도 알 수 없는 옛날부터 망집에 잠겨 있는 범부는 아와 아소에 사로잡혀서 한없는 자신의 상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자성을 관(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때와 곳의 변화로 하나가 된 유가(瑜迦)인 나를 보고, 또는 신과 그 창조의 힘을 펼치고, 혹은 밖에 자연의 실재가 있고 안에 주인과 넋이 있고 지자(知者), 견자(見者) 등이 실재하는 것으로 단정하게 되는 것이다.

 

비밀주여, 어리석은 범부는 욕심에 젖은 양(羊)과 같은 것이다. 처음에 하나의 재(齋)를 지니고 이 보잘 것 없는 법을 기쁘게 수시로 되풀이한다. 이것은 상서로운 씨앗이 처음으로 움트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음은 육재일(六齋日)에 있어서 연고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는 제2의 싹인 것이다. 다시 친족 아닌 사람들에게 베풀 정도가 되면 제3의 부풀어 오른 씨앗인 것이다. 덕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면 제4의 잎으로 더욱 기뻐하며 기악(技樂)을 사람에게 베풀며 기숙(耆宿)에게 바친다. 이것은 제5의 열린 꽃이다. 또 친애의 마음으로써 베풀면 제6의 열매인 것이다. 다음으로 계를 보전하고 신의 세상에 나는 것은 제7의 수용 종자(受用種子)인 것이다. 또 이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미망을 일으켜, 착한 벗의 말에 따라 성심을 다하여 신들을 공경하고 제사한다면, 이것이 이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는 제8의 영동심(嬰童心)이라고 이름 붙여진다. 다음은 상(常)과 무상과 공의 내력에 따라 해탈을 구하는 지혜를 낳게 하는 법의 뛰어난 행이 있다. 그것은 모든 공(空)을 알지 못하면 열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을 깨닫고 단(斷과 상(常)과의 견해를 떠나서는 안 된다.”

 

비밀주가 또 묻는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그「마음」을 설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존이 밝히시기를,

“마음의 상이라 함은 탐심, 탐하지 않는 마음, 진심(瞋心), 인자한 마음, 어리석은 마음, 지(智)의 마음, 결정의 마음, 의심하는 마음, 어두운 마음, 밝은 마음, 싸우는 마음, 다투는 마음, 신의 마음, 마의 마음, 용(龍)의 마음, 남의 마음, 여심(女心), 상인의 마음, 농부의 마음, 강심(江心), 못의 마음, 우물의 마음, 지키는 마음, 인색한 마음, 개의 마음, 너구리의 마음, 쥐의 마음, 노래하는 마음, 춤추는 마음, 북치는 마음, 사자의 마음, 부엉이의 마음, 까마귀의 마음, 바람의 마음, 수심(水心), 화심(火心), 미심(迷心), 견삭(羂索)의 마음, 구속(械)하는 마음, 운심(雲心), 전심(田心), 소금의 마음, 면도칼의 마음, 수미산과 같은 마음, 바다와 같은 마음, 구멍과 같은 마음, 생을 받는 마음 등인 것이다.

 

비밀주여, 탐심이란 더럽혀진 법에 따르는 일, 불탐심이란 더럽혀지지 않는 법에 따르는 일, 진심(瞋心)이란 노여움으로 법을 잃는 행위, 그리고 인자한 마음이란 인자한 법에 따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란 도를 닦음에 생각이 없는 것, 지심(智心)이란 뛰어난 법을 닦아 나아가는 것, 결정하는 마음이란 존귀한 가르침을 가르침과 같이 행하는 것, 의심하는 마음이란 언제나 정해지지 않는 생각을 품는 일, 어두운 마음이란 주저할 필요 없는 일에 주저하는 것, 밝은 마음이란 주저함이 없이 도를 닦는 일, 다투는 마음이란 서로 시비를 말하는 것, 언쟁하는 마음이란 스스로를 시비하는 일인 것이다. 신(神)의 마음이란 마음에 따라 생각이 이루어지는 것, 마의 마음이란 많은 보물과 자재(資材)를 생각하는 것, 용의 마음이란 남을 이롭게 하려고 생각하는 것, 여심이란 욕심에 따르는 것, 상인의 마음이란 처음에 모으고 뒤에 나누려고 하는 것, 농부의 마음이란 처음에 널리 듣고 뒤에 그 구하는 것에 따르는 것, 하심(河心)이란 이변(二邊)의 편중된 법에 따르는 것, 지심(池心)이란 목말라 지칠 줄 모르는 법에 따르는 것, 우물의 마음이란 깊이 사물을 생각하는 것, 지키는 마음이란 오직 이 마음을 참으로 하고 여타는 모두 불실로 하는 것, 인색한 마음이란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고 남에게 주지 않는 것, 개의 마음이란 소량을 얻고도 기뻐하는 것, 너구리 마음이란 서서히 나아가는 것, 쥐의 마음이란 계박을 끊을려는 것, 노래하는 마음, 춤추는 마음, 북치는 마음이란 법을 닦아 나아가고 갖가지의 신통력(神通力)을 나타내어 법의 북을 치는 것이다. 또 사자의 마음이란 겁이 없는 것, 부엉이 마음이란 어둠을 생각하는 것, 까마귀 마음이란 모든 일에 겁내는 것, 바람의 마음이란 모든 곳에 변모하여 일어나는 것, 수심이란 모든 좋지 않은 일을 씻어내는 것이다. 또 화심이란 불타는 정열, 헷갈리는 마음이란 집착하는 곳과 생각하는 곳이 다른 것, 견삭의 마음이란 모든 일에 자기 자신을 묶는 것, 구속하는 마음이란 두 발이 그대로 멈추고 있는 듯한 것이다. 운심(雲心)이란 언제나 비를 내리게 하려는 것처럼 우울한 생각에 젖는 것, 전심(田心)이란 언제나 자신을 섬기는 것, 소금의 마음이란 생각을 더하는 것, 면도칼의 마음이란 모조리 깎아 없애버리는 것, 수미산과 같은 마음이란 언제나 오만한 것, 바다와 같은 마음이란 스스로 일을 이루어 만족하는 것, 구멍과 같은 마음이란 먼저 정하고 뒤에 바꾸는 것, 생을 받는 마음이란 갖가지 행을 이루어 여기저기에 태어나는 것이다.

 

비밀주여, 세상의 세 가지 망집을 초월해야 세상에 나오는 마음이 생긴다. 그것은 몸과 마음에 주(主)가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받는 고락의 감정을 버리고 도를 닦아 업과 사랑의 목마름과 무명에서 일어나 12인연을 벗어나는 일이다. 비밀주여, 이러한 잠적(湛寂)은 외도로서는 알 바가 못 된다. 비밀주여, 세상을 나오는 마음이 몸 속에 있으면 지혜가 생긴다. 곧 몸과 마음의 집착을 여의고 그러한 것은 수포와 같이, 파초 잎과 같이 또는 아지랑이나 환상과 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곧 일체의 아와 상대와의 집착을 여의고 적연한 경지를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세속을 나와서 여읜 마음이라고들 이름한다. 이와 같이 마음의 상속과 업과 사랑의 목마름의 그물을 여의는 것은 일겁을 넘을만한 긴 행인 것이다.

 

또 다음에 비밀주여, 대중의 행이 있다. 모름지기 법이란 영세에 길이 보존될 자성이 없으며, 그것은 환상과 같고 아지랑이와 같으며, 또는 그림자나 메아리와도 같은 것임을 안다. 이와 같이 내 마음을 버린다면 마음은 자재의 주(主)가 되고 스스로의 마음은 원래부터 나지 않고 죽지 않는 본불생(本不生)의 것임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은 지나버리면 없고 아직 일어나기 전에도 없으며, 현시로는 곧장 통과해 버림으로 사로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의 성을 아는 것은 2겁을 넘는 행인 것이다.

 

또 다음으로 진언(眞言)의 문에 보살행을 행하는 것은 무량 공덕과 지혜의 방편을 갖추고, 천계 인간의 귀의하는 바가 된다. 곧 모든 감관(感官)과 그 경계를 넘어 떨어져 있는 허공과도 동일한 일체의 불법은 공의 성에 의하여 잇따라 생기며, 또 모든 법을 여읜「자성 없는 마음」을 낳는 것이다. 비밀주여, 이와 같은 시초(始初)의 마음을 가리켜 성불하는 인(因)이라 설한다. 그리고 그것은 업과 번뇌와 사랑의 목마름에서 해탈하지만, 또한 업과 번뇌의 의지처가 된다.

 

비밀주여, 또 다음은, 초지(初地)에서 십지(十地)에 이른 신(信)과 해(解)와 행의 지위에서는 보리심, 대자심, 방편심의 세 마음을 관한다. 그리고 무한한 득도에 이르는 지혜에 의하여 사섭법(四攝法)을 관한다. 참으로 이 지위는 비길 데 없고 헤아릴 도리가 없다. 나의 설하는 모든 것은 모두 이 지위에 의하여 얻어진다. 그러니 지혜있는 일체지와 이 신과 해와 행의 지위를 생각함이 좋다. 이것은 다시 1겁을 넘어 올라 주(住)할 수 있는 것이며, 최후의 방편인 불과(佛果)에 의하여 건널 수가 있는 것이다.”

 

비밀주가 또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보살은 얼마쯤의「무외(無畏)」를 얻는 것이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밀주여, 저 범부가 선업을 닦고 불선의 업을 없이 한다면 그는 선의 무외를 얻게 될 것이다. 만약 있는 그대로 나를 안다면「몸의 무외」를 얻고 또 스스로의 색상(色像)을 버리고 내 몸을 관한다면「무아의 무외」를 얻고, 몸과 마음을 잊고 법의 반연(攀緣)에 주한다면「법의 무외」를 얻고, 다시 법을 잊고 연이 없이 주한다면「법무아의 무외」를 얻으며, 다시 모든 것에 대해 그 공임을 생각하여 만물의 자성에 성이 없는 것을 안다면「모든 법의 자성의 평등이라는 이치의 무외」를 얻게 될 것이다.

 

비밀주여, 진언의 문에 보살행을 닦는 자는 열 가지 연을 관찰하여 득도에 이를 것이다. 그것은 환상, 아지랑이, 꿈, 그림자, 신기루, 메아리, 수월(水月), 물거품, 허공화(虛空華), 선화륜(旋火輪)인 것이다.

 

환상은 주술이나 약의 힘에 의하여 갖가지로 눈을 현혹하는 모양을 나타내고 그것을 오가게 하지만, 그것은 떠나는 것도 아니고 떠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진언의 환상을 보유 성취하여 만물을 낳는 것도 이와 같다. 다음은 아지랑이의 성(性)은 공이며 그것은 사람의 망상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진언의 상(想)도 이와 동일하며 다만 가명에 불과하다. 다음은 꿈 속에서 일광을 보고 갖가지의 모습이나 갖가지의 고락을 받더라도, 눈을 뜨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이 진언의 행도 그것과 동일하다. 거울에 의해 얼굴의 상을 나타내듯이 그림자의 비유에 의해 진언의 성취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신기루에 의해 진언 성취의 궁(宮)을 깨닫고 소리에 의해 메아리가 생긴다는 비유에 의해 진언의 소리를 깨닫고 또 청정한 물이 달 그림자를 나타내듯이 저「밝음을 지닌 자」는 득도의 경지를 설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늘에서 비를 내려 거품을 낳듯이 진언 성취의 갖가지 변화도 이와 같이 앎이 좋다.

 

공중에서 그 누구도 만드는 자가 없는데도 꽃의 모양을 봄은 마음의 헷갈림이 이룩하는 소치인 것이다. 갖가지 망견을 낳는 것도 이와 같다. 또 불을 가지고 공중에서 돌리면 고리의 모양을 이루듯이 대승(大乘)의 문구도 이에 의해 앎이 좋다. 그렇게 하면 법의 재보를 갖추고 교묘한 큰 지혜를 낳아 두루 전체의 마음의 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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