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에 빠지면 안 된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좌선공부를 하는데 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기 신심과 바깥 경계를 모두 공이라 하고 텅 비어 아무 매일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경계에 다다라 자기 신심이 있는 것도 세계가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고 해서 모든 것이 하나의 공이 된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공(空) 이것이 문득 선이라고 여기면서 이렇게 공해질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부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길을 가도 공이고 앉아도 공이어서 오고 가는 것이 모두 공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언제나 마치 허공 속에서 하는 듯 하게 되니 이것은 생멸심(生滅心)이지 선은 아니다.
집착하지 않으면 완공(頑空,斷滅空)에 빠져 캄캄한 무지에 떨어지게 되고, 집착하면 바로 마(魔)가 되어서 자기 스스로 확철대오하는 방편을 얻었다고 착각한다. 다만 이런 것들은 참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만약 참으로 참선하는 사람은 의정을 일으키고 의정일구 화두가 마치 하늘을 찌르는 긴 칼인 양 생각하여 그 칼날에 부딪치는 사람은 목숨을 잃어버린다고 여겨야 한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설사 공해져서 한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경지를 얻었다 해도 그것은 다만 텅 비어 인식이 없는 상태일 뿐 완전한 공부는 아니다.
譯解)
부처님께서도 초전법륜(初轉法輪)은 중생의 근기(根機)를 따라 유(有)를 설하셨다. 모든 중생이 나도 있고 세계도 있다고 집착(執着)하므로 방편상유(方便上有)를 전제로 하여 설법하셨다. 그러나 있다고 보는 것은 중생견(衆生見)의 전도몽상(顚倒夢想)이다.
대승시교(大乘始敎)인 반야부(般若部)에서는 21년간 공(空)을 설법하셨다. 중생은 유(有)라 하면 유에 집착하고 공(空,無)이라 하면 공에 집착한다.
집착은 중생병(衆生病)이다. 우주실상(宇宙實相)은 유(有)도 무(無)도 아니다. 그러나 중생은 유 아니면 무에 늘 집착한다. 참선자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찾다보면 마음의 실체가 공(空)함을 알고 우리 불성(佛性)자리는 공(空)이다 라고 집착하고 만다. 텅 비어 있는 그 공(空)이 우리 마음의 불성자리 라고 착각하고 만다.
박산무이선사는 그 점을 염려하여 후학을 위하여 간절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법(法)의 실상(實相)은 무유정법(無有定法)이다. 일정하게 고정된 것이 없다. 이것이다 하면 법이 아니다. 저것이다 해도 법이 아니다. 법은 이렇다 하고 단정할 것이 없는 것이 법이다. 법이 그러하니 마음도 그렇다. 마음마음 하지만 마음이라는 정형(定形)이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공(空)이라는 틀속에 넣고 공이라고 단정하면 단정하는 그것이 집착(執着)이고 병통(病痛)이다. 집착은 착각이지 법의 실상은 아니다.
유무(有無)를 초월하고 유무에 즉(卽)한 것이 법의 실상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있다 없다를 떠난 것이 마음이다. 그러나 있다 없다에 즉한 것이 마음이다. 요는 유무에 집착하는 것이 병통이다.
출전 : 화두참선(역해 : 이계묵)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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