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되어라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우리가 세상 일을 다 저버리고 절집에 와서 중노릇을 하는 것은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인 것입니다.
마음 가운데 가지가지의 반연과 갈등은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것을 벗어 던지지 못할 것 같으면 이 공부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금생에는 ‘반드시 견성하리라.’는 작심을 하여 사람 노릇하는 것을 포기한 채 어느 곳에서나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바보가 되어 버리면 걸음걸음 생각생각이 화두뿐입니다. 마음 가운데 화두 한 생각뿐이면 힘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때는 결제 · 해제에 상관이 없고, 먹고 사는 것도 관여치 않으며 자기 몸뚱이까지도 다 잊어 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시간이 흘러야 대도의 문에 가까이 갈 수 있고, 필경에 대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는 먼저 마음 자세부터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년 중노릇을 하나, 30년을 하나, 백발이 될 때까지 하나, 그 장단이 그 장단입니다.
보살님네, 처사님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절 저절 전국 방방곡곡을 헤맨다고 해서 복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공부가 잘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할 일은 오로지 마음의 광명을 찾는 일뿐이다.’는 절대부동의 마음 자세에서 모든 허세를 다 벗어 던지고, 모든 반연을 다 끊어 버리고, 화두를 참구하는 법을 바로 배워서 일상생활 가운데 꾸준히 익혀 가야 합니다.
어쨌든 가정을 가졌으니 아들딸 뒷바라지는 해야 할 것이고 가정을 거두어야 하나, 그러한 세간 살이 가운데서라도 화두를 놓치는 바 없이 간절하게 참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음 가운데 모든 습기(習氣)와 허점이 소멸되어 갈 것입니다.
‘가고 오고 말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이 몸뚱이를 지배하는 참주인공이 있어서, 일상의 생활 가운데 가고 오고 말하고 부르면 대답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거두어 얻지 못하고 알지 못하니, 참으로 분하고 어리석은 노릇이 아닙니까.
일념으로, 뼈에 사무치고 오장육부를 찌르는, 그러한 의심을 짓고 화두를 챙길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무르익습니다. 모든 잡념은 물러가고 화두 한 생각만 또렷이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가고 오나, 밥을 지으나, 청소를 하나, 직장일을 하나, 잠을 자나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화두 한 생각만 또렷해지게 되면, 다겁다생에 지어온 모든 습기가 다 녹아 없어져 버립니다.
이러한 경계가 오면 스님네도 깨달을 수 있고, 보살님네도 깨달을 수 있고, 처사님네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깨닫지 않을래야 깨닫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출전 : 중생이라는 이름의 부처에게(진제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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