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 말씀

오늘은 어디까지 왔나

근와(槿瓦) 2015. 10. 13. 01:39

오늘은 어디까지 왔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것을 알기 위해서 과학이 발달하고 철학이 발달하고 종교가 발달하고 우주과학이 발달하여 달나라까지 갔다오지 않았습니까?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세계와 세계 사이의 경계까지 무너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주시대가 됐습니다. 물질문명의 살림은 그야말로 고도화됐고 우리의 살림살이는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어떱니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고무신 신은 학생만 보면 한 천 명 되는 학생들이 신기해서 따라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때의 살림살이가 구차해서 큰 도시에 자동차 한 대 있기가 어려웠고 작은 도시에는 자전거도 없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보면 바퀴 두 개가 넘어지지 않고 어떻게 가는지 이상하다고 사람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자전거 그것도 탈 줄 아는 사람이 한 고을에 하나 있거나 많으면 둘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또 보릿고개가 되면 사람들은 쑥을 뜯어먹었고 소나무 껍질이나 벗겨 먹었습니다. 그래가지고도 배가 고파서 굶어 죽는 사람이 사방에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시골에 가면 울타리도 없고 문도 없고 들판에 집만 한 채 지어놓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도시나 큰 도시의 집들도 담이 없고 문도 없었습니다.

 

내가 선친(先親=父親)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친구들끼리 돈을 거래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아무도 모르는 밤중에 단 둘이 만나 가지고 돈을 얼마만 꿔 달라고 합니다. 가령 백냥을 거래하자면 옛날엔 엽전이 한 짐입니다. 아무 날까지 구해 주겠다, 이렇게 둘이서 약속하면 그것뿐이지 아무도 본 사람도 없고 들은 사람도 없습니다.

 

차용증서를 쓰고 하는 따위는 없고 이자(利子)도 안 받습니다. 돈을 갚을 때에도 약속 날짜와 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돈을 가지고 옵니다. 이자를 준다고 하면 돈만 아는 인간으로 보느냐고 화를 내면서, 친구 사이에 이자가 무슨 이자냐, 구해달라는 날짜에 못 구해줘서 그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쓸데없는 소리라고 거절합니다.

 

돈을 받는 사람도 세지도 않고 받아갑니다. 그때는 살인사건이 1년에 하나 있을 정도인데,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가 어쩌다 신문에 한번 실리면 아이나 어른이나 참 인간 세상에 괴변이 생겼다고 야단들입니다. 그때라고 도둑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물질문명은 형편없었고 살림살이는 넉넉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순박하고 천진해서 안심하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만 해도 최근에 와서 얼마나 놀랄 정도로 경제가 개발되었습니까? 지금은 거지까지도 고무신 같은 것은 예사로 신고 다닐 정도고 택시 때문에 보행하는 사람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택시 홍수를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춘궁기가 되어도 굶어 죽었다는 신문 보도는 없습니다. 작년 재작년 2년이나 계속 흉년이 들었는데,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남의 집에 다니면서 얻어 먹는 거지들도 우리가 어렸을 때 웬만한 부자집 먹듯합니다.

 

옛날에는 먹는 것도 김치나 된장하고 먹었습니다. 시래기국이나 먹는 게 고작이고 미역국이나 한 번 끓여 먹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여자는 아기나 낳아야 미역국 한 번 얻어 먹는 그런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우리의 의식주생활은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고도의 발전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산골에 살아도 모두 프랑스 파리식으로 현대 의복을 갖추어 입고 처녀 총각이나 아이들까지도 다 이렇게 입는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심리나 정신의 안정상태로 봤을 때는 어떻습니까? 지금이 지옥이고 그때는 극락입니다. 이것은 거꾸로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배부르면 사람이 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공무원은 다 부정부패했고 반장 구장으로부터 장관들까지 부정이고 각 회사의 직원들, 학교 선생들까지가 다 부정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골치를 앓고, 어떻게 해야 이 부정을 근절하겠느냐? 하며 고심합니다. 전에 이승만 박사도 나에게,

 

「한달에 장관을 둘씩 셋씩 갈아도 별수가 없고 그놈이 그놈이니 어떻게 정치를 하겠느냐!」

 

이렇게 부정 없앨 걱정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미국서 장개석씨를 도울려고 안했습니까? 양곡 · 돈 · 무기 다 대주었지만 그 부하들이 썩어서 모택동에게 다 팔아 먹었습니다. 군함에서 내리기 전에 흥정이 돼 가지고 태평양에 마중 나와서 모택동에게 넘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개석이는 대만으로 쫓겨 갔고 본토는 모택동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러니 공무원이 부패했다면 나라가 망하는 징조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잘 해도, 관리가 부정을 하는 한, 나라는 망합니다. 관리가 부정하면 밑의 맥성도 따라 갑니다. 재벌도 노동자를 착취하게 됩니다. 이런 풍조가 있는 한 경제개발도 반갑지 않습니다.

 

내가 정화불사(淨化佛事)한다고 서울에 처음 왔을 때는 장관실에도 난로가 제대로 없었습니다. 석탄 난로도 없고 관리들도 내복을 제대로 못 입었습니다. 도시락도 제대로 못 가지고 오고, 나는 아침 새벽에 절에서 죽 한 그릇 얻어 먹고 하루종일 사람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먹을 사이도 없습니다. 열한 시가 되면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보면 일 보러온 손님들이 장관들이나 국, 과장들 식사대접한다고 나갔다 옵니다. 가락국수나 한 그릇 사주는 모양이죠. 그들이 돌아올 때 과자나 서너개 하고 차 한잔 가지고 와서 내가 굶고 앉아 있는 게 불쌍하다고 나에게 줍니다. 그때 공무원들은 가락국수 한 그릇만 사줘도 일을 잘 봐줬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와서는 월급이 그때 십 배가 올라서 일류 주택에 텔레비전과 식모를 다 갖추고 호화판으로 잘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국가 공무는 아주 정직하게 더 잘 해주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십만 원을 주어도 일을 잘 안봐줍니다. 이것이 큰일날 일 아닙니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렇게 무서운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긍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너도 나도 우리 힘대로 각자 경쟁을 해보자, 이렇게 생존 경쟁의 선전포고를 해놓고 달려드는 판입니다.

 

이것은 내외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친구끼리도 그렇습니다. 생존경쟁을 하자, 경쟁은 힘으로 한다. 힘이 제일이다. 이것은 공산당이 그렇고, 자본주의가 그렇고 세계 36억이 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막아보려고 공자가 지나가고, 예수가 지나가고, 석가가 지나가고, 누구누구가 다 지나갔지만 인류사회는 부패일로로 생멸을 거듭할 뿐입니다.

 

 

출전 : 수상록[1989.03월경 발행]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