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근와(槿瓦) 2013. 7. 27. 03:16

 「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나」는 무엇보다도 죽기를 싫어하고 끝없이 살기만 하려 합니다. 「나」는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고,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죽을 수 없는 실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초월하여 나는 죽는 것까지 초월한 것입니다. 오직 나 홀로 우뚝 높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나고 죽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거짓 죽고 거짓 사는 생사의 윤회일뿐 아주 죽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온갖 활동은 몸뚱이가 사는 육체적 삶만을 위해서 하는 노동입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하나의 복잡한 물질적 결합체에 불과합니다. 피도 물질이고, 세포도 물질이고, 신경도 물질입니다. 이 물질은 아는 능력이 없고 생명이 없습니다. 에너지는 보여지는 객관일뿐 보는 능력은 없습니다. 수증기가 뭉쳐서 구름이 되지만 수증기가 흩어지면 구름도 없어지는 예입니다. 따라서 물질은 모든 조화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생명의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조화의 주체 생명의 주체는 물질도 허공도 생각도 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인 육체가 죽는 것은 생명의 근본 실재인 「나」와는 근원적으로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죽지도 않고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닌 「참 나」는 사고하여 추리하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중국 사람은 무극(無極)이라고 했고, 무극은 혼돈(混沌)의 상태이니 이름 지을 수 없다고 했으며, 성품(性)이다. 도(道)다. 이치(理)다. 하늘(天)이다, 영(靈)이다 했습니다.

 

또 불교에서는 「불타 · 해탈 · 열반 · 보리」라 했습니다. 이렇게 이름은 여러가지지만 우리말로 하자면 「마음」이라는 한 말로 결론지우게 됩니다. 이와 같이 「나」는 죽을 수 없는 불생불멸의 실재이고, 이름 지을 수 없는 「마음」자리이며 죽을 수 없는 영원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선이든 악이든 자신이 지어 놓은 과보를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불교의 인과설(因果說)이고 윤회설(輪廻說)입니다. 만일 부처님이나 신이 천당도 보내고 지옥에도 보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마다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다 성자로 만들어야 했을 것이며, 죽은 다음에는 다 극락 · 천당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창조주를 내세우는 창조론은 부처님 당시에도 성행했지만,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원인을 지어서 자기가 그 결과를 받는 것이라는 인과론에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과를 지어서 천당으로가고, 지옥에 떨어지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나」는 「참 나」(眞我)를 저버린 「가아」(假我)의 삶입니다. 만일 「참 나」에게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고 선악이 있다면 이것은 상대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나」이고, 생사 세계에 구속된 「나」이고, 모든 것을 초월한 「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참 나」는 육신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죽지 않는 비존재이므로 나는 영원히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출처 : 신심명(청담스님 설법)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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