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사(維摩居士,유마경)

89-중-유마경-10

근와(槿瓦) 2015. 9. 30. 01:34

89-중-유마경-10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3 / 121] 쪽

사자의(獅子意)보살은 말하였다.

"유루(有漏)와 무루(無漏)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만약 모든 법이 평등함을 알면, 그 때 번뇌[漏]라든가 번뇌가 없다고 하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생각에 집착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생각이 없는 상태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정해(淨解)보살이 말하였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체 (유위의) 행위[數]를 떠나고 나면 마음은 허공과 같아져 (집착을 떠나) 맑은 지혜는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나라연(那羅延)보살은 말하였다.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세간의 본성 자체가 공(空) (함을 깨닫는 것)이 그대로 출세간인 것이며,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들고 나는 일이 없으며, 넘치고 흩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선의(善意)보살은 말하였다.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생사 그 자체의 본성이 곧 생사는 이미 없으며, (사람을) 얽어매는 것도 없고, 그로부터 벗어날 것도 없으며, 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면 이를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현견(現見)보살은 말하였다.

"다하는 것[盡]과 다함이 없는 것[不盡]

 

                                                                                                                     [84 / 121] 쪽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물[法]이 만약 끝내 다하고[盡], 만약 다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 다한 모양[盡相]은 없습니다. 다한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空)이며, 공하다면 곧 다한다든가 다하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은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보수(普守)보살이 말하였다.

"아(我)와 무아(無我)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를 (찾아보아도 찾아내)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비아(非我)를 어떻게 찾아내 얻을 수 있습니까? 아의 본성[實性]을 보는 사람은 다시는 이 두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전천(電天)보살은 말하였다.

"명(明)과 무명(無明)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은 곧 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 또한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일체의 이치[數]를 떠나 있으니, 그 안에서 평등하여 상대적인 두 가지 차별이 없는 것,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희견(喜見)보살은 말하였다.

"색(色)과 그 색이 공한 것[色空]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색은 그대로가 공(空)한 것으로서 색이 멸함으로써 공한 것은 아니고, 색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도 그대로가 공인 것입니다. 식(識)과 공(空)도 서로 대립한 둘이라 하나, 식 그 자체가 공한 것이지, 식이 멸했기 때문에 공한 것은 아닙니다. 식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통달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명상(明相)보살은 말하였다.

"지 · 수 · 화 · 풍의 다른 것과 허공의 원소[空種]가 다른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4대의 본성 그대로가 허공[空種]의

 

                                                                                                                      [85 / 121] 쪽

본성인 것입니다. 과거[前際]와 미래[後際]가 다 공하기 때문에 중간인 현재[中際]의 본성도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같이 저마다의 원소의 본성을 알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묘의(妙意)보살은 말하였다.

"눈[眼]과 색(色)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만약 눈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색에 탐착하지 않을 것이며, 성을 내거나 어리석을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적멸(寂滅)이라고 이름합니다. 이같이 귀[耳]와 소리[聲],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신체[身]와 감촉[觸], 마음[意]과 마음의 대상[法] 등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둘이라고 하지만, 만약 마음의 본성을 알면 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탐착하는 일도, 성내는 일도, 어리석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이것을 적멸이라고 이름하며,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무진의(無盡意)보살은 말하였다.

"보시(布施)와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것[廻向一切智]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성은 그대로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본성인 것입니다. 이같이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와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지계 내지) 지혜의 본성은 그대로 그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 진실한 도리[一相]를 깨닫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혜(深慧)보살은 말하였다.

"공(空)과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는 것[無相], 바라며 구하는 뜻이 없는 것[無作]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은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공은 그대로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으며,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바라고 구하는 일도 없으므로) 차별의 모습을 떠

 

                                                                                                                    [86 / 121] 쪽

나 있는 것은 그대로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공이며, 차별의 모습을 떠나고,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으면 곧 마음[心]과 뜻[意]과 식별[識]이 없고, 하나의 해탈의 문[一解脫門]이라는 그 자체가 곧 세 가지 해탈의 문[三解脫門]이라는 것을 (체득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적근(寂根)보살은 말하였다.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그 가르침을 행하는 승단[衆]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부처님은 곧 가르침[法]이며, 가르침은 곧 그것을 실천하는 승단인 것입니다. 이 3보 모두가 무위(無爲)의 상(相)으로서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또 일체법도 이와 같아서 이것을 알고 잘 행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심무애(心無碍)보살은 말하였다.

"신체[身]와 몸 멸하는 것[滅身]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신체는 그대로 신체가 멸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신체의 진실한 본성[實相]을 보는 사람은 신체도 신체가 멸하는 것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체와 신체의 멸과는 상대적인 차별이 없으며, 분별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상선(上善)보살은 말하였다.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과 그 행위[善]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 세 가지 행위[三業]에는 어느 것에도 행위[業]로서의 모습이 없습니다[無作相]. 몸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이며,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마음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일체법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87 / 121] 쪽

것입니다. 이같이 능히 행위가 없는 것[無作]을 아는 지혜에 따르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복전(福田)보살은 말하였다.

"(욕계의 선행인) 복행(福行)과 (10악도의 악행인) 죄행(罪行)과 (색계, 무색계의 선행인) 부동행(不動行)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들 세 가지 행의 본성[實性]은 그대로 공한 것입니다. 공이므로 거기에는 선행도 악행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에 아무런 차별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화엄(華嚴)보살은 말하였다.

"아(我)로부터 나와 남의 두 가지 구별을 일으켜 서로 대립한 두 가지라 하지만, 아의 진실한 모습을 (공이라고) 보는 사람[見我實相者]은 (남과 나라고 하는) 두 가지 분별[二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것에 집착[住]하지 않으면 (나와 남이라는) 식별함이 있을[有識] 수 없고, 식별되는 것[所識]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덕장(德藏)보살은 말하였다.

"집착할 대상이 있는 것[有所得相]을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만약 (제법이 공하다고 깨달아) 집착할 대상이 없다면[無所得] 취하거나 버릴 것은 없습니다.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월상(月上)보살은 말하였다.

"어둠[闇]과 밝음[明]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하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컨대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해 버린 적정한 삼매의 경지[滅受相定]

 

                                                                                                                      [88 / 121] 쪽

에 들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과 같이 일체법의 모습도 그와 같기 때문이니, 그 안에서 평등하게 깨달아 들어가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보인수(寶印手)보살은 말하였다.

"열반을 즐기는 것[樂涅槃]과 세간(世間)을 좋아하지 않는 것[不樂世間]을 둘이라고 하지만, 만약 열반을 즐기지도 않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면 곧 이 둘의 대립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번뇌의 속박이 있으면[有縛] 해탈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만약 본래부터 속박된 것이 없다면 그 누가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면 곧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주정왕(珠頂王)보살은 말하였다.

"바른 길[正道]과 삿된 길[非道]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머무는 사람은, 이것은 삿되고 저것은 옳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차별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낙실(樂實)보살은 말하였다.

"진실[實]과 거짓[不實]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보지 않는데, 하물며 거짓을 보겠습니까? 왜냐 하면 (진실은) 육안(肉眼)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慧眼]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이 지혜의 눈은 본다, 보지 않는다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설하고 나자 문수사리(文殊師利)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불이법문[不二法門]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제 생각 같아서는 일체법에 대해서 말이 없고[無言], 설함도 없으며[無說], 가리키는 일도 없고[無示], 식별하는 일도 없으며[無識], 모든 질문과 대답을

 

                                                                                                                      [89 / 121] 쪽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이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말하실 차례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입불이법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때 유마힐은 오직 아무런 말 없이[默然] 침묵하였다.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文字)로도 언어의 설명[語言]까지도 전혀 없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이와 같이 입불이법문품을 설할 때, 이곳에 모인 대중들 가운데 5천의 보살들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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