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힘

십여시(十如是)

근와(槿瓦) 2015. 9. 10. 01:18

십여시(十如是)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법화경방편품에「오직 佛과 佛만이 諸法의 實相을 사무쳐 남김 없이 다 아신다. 이른 바 如是相 · 如是性 · 如是體 · 如是力 · 如是作 · 如是因 · 如是緣 · 如是果 · 如是報 · 如是本末究竟 등」이라고 說한데 기초하여 모든 존재(諸法)의 있는 그대로의 실다운 모습(實相)을 이 10종의 如是로서 파악하려 한 것. 특히 이 십여시는 천태종의 一念三千의 敎義에 근거하는 중요한 것으로, 智顗의 스승인 慧思는 이 글을 <如>로 끊어서 十如로 읽으며, 혹은 이것을 十如實相 · 十如境이라고도 부르고 줄여서 十如라고도 한다.

 

또 이 經文은 법화경의 要義인 開會의 사상을 요약해서 나타낸 것이므로 略開三顯一 · 略法華라고 일컫기도 한다. 智顗 이전의 諸師는 이 句文을 혹 단지 지혜의 작용으로만 해석하고 혹은 佛의 十力으로 설명하기도 하며 혹은 또 三乘法의 내용을 밝힌 것으로 푸는 등 구구한 바 있었다. 智顗는 그 모든 해석을 불가하다고 보고 이 십여시는 迷 · 悟도 依報 · 正報 등 모든 것이 含攝되어 事(現象)와 理(本體)가 상호 一體化된 것으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權(假)과 實(眞實)이 融合하여 一如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智顗는 이 십여시의 深旨를 玄義 · 文句 · 止觀 · 別行玄의 四書에 기술했으며, 그 중에도 특히 玄義와 止觀에서 십여시의 相貌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通解와 別解의 2종이 있다.

 

別解에서는 4類로 나누었으니, 4류란 四趣(止觀에서는 四途라 함. 곧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와 人 · 天과 二乘과 보살 · 불을 일컫는다.(지관에서는 보살과 불을 따로 해석하여 5류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文句에서는 佛의 權 · 實 · 二智를 해석하기 때문에 玄義 · 止觀과 그 뜻이 다르게 된다. 십여시는 通解가 근본으로 通解를 잘 이해하면 別解의 4類의 妙義는 따라서 통하게 되므로 여기서는 通解의 입장에서 해석하기로 한다.

 

십여시 가운데,

相은 相狀 곧 外的 형상 · 모습을 가리키며,

性은 不改 · 不變의 뜻이니 내적인 本性을,

體는 相과 性을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주체를,

力은 體에 구족해 있는 잠재적 능력을,

作은 그것이 顯現하여 동작으로 나타난 것,

因은 직접 원인,

緣은 간접 원인,

果는 因과 緣으로부터 생긴 결과,

報는 果報라는 뜻이니,

이상의 因 · 緣 · 果의 갚음으로 후세의 果報를, 本末究竟등은 本은 相, 末은 報 곧 이상의 如是相으로부터 내지 如是報에 이르기까지의 歸趣는 결국 동일한 實相에 지나지 않음을 가리켜 本末究竟等이라 한 것이다. 別解四類와 관련하여 현실에 비유하여 풀면 다음과 같다.

 

(1) 相如是. 相以據外覽而可別이라 하여, 선악 등의 外覽而可別이라고 했듯이 선악 등의 행위가 밖으로

나타난 相. 그렇지만 밖으로 나타난 相 가운데도 人相과 같이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高麗의 유명한

觀相家가 중국의 鴻館에서 光源씨의 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故事와 같은 경우가 그것이다.

觀에는 옛날에 孫劉는 相을 나타내고 曹公은 相을 숨김에 相보는 사람이 큰 소리로 울었다고 했다.

이것을 별해사류로 풀면, 먼저 지옥의 십여시에서 相如是는 악인에게는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相이 그렇게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을 범부는 비록 알아보지 못하지만 불 · 보살은 본다고 한다.

 

(2) 性如是. 性以據內自分不現이라고 하여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生得의 습관 · 소질 등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 나무에는 불의 성질이 있어서 나무를 비비어 마찰하면 불이 일어나는 등이 그

것. 이 성여시는 玄義와 止觀의 해석에 약간의 다른 데가 있다. 곧 현의에는 薰習成性(습관을 길들이

면 성품이 된다)의 性이라 했고, 지관에는 理性인 佛性의 性이라고 했다. 별해사류로 풀면, 오로지 악

만을 행한 사람은 그 습관이 태어나서부터의 성격으로 되어 좀처럼 고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

다.

 

(3) 體如是. 人身의 總體에 비유된다. 예컨대 지옥에 떨어져서 옥졸에게 질책을 당하여 荒惡한 身心의 體

가 그것.

 

(4) 力如是. 功을 들이면 力이 생김을 말한다. 열반경에「담을 쌓고자 하면 갠흙을 가지고 할 것이요, 초

상을 그리려 하거든 채색을 가지고 할 것이며 풀이나 나무로 할 것이 아니다.」지옥에서 칼산에 오름

으로 몸이 찢어지는 것과 같은 力用을 일컫는다.

 

(5) 作如是. 身 · 口 · 意 三業으로 하는 바를 所作이라 한다. 별해사류의 지옥계의 그것을 말하면, 지옥에

떨어질 악업을 짓는 것이 그것이다.

 

(6) 因如是. 전에 익힌 습관이 지금의 종자가 됨을 말함. 善人은 善을 익혀서 더욱 善하게 되고, 惡人은

惡을 익혀서 더욱 惡하게 됨과 같다. 곧 과거에 惡을 익힌 것.

 

(7) 緣如是. 因과 緣의 차이는 곡식의 종자가 因이 되고 雨 · 露 · 水 · 土는 緣이 됨과 같다. 이것을 新譯에

서는 異熟因이라 한다. 지옥 십여시에서는 악행을 하도록 돕는 助緣을 말한다.

 

(8) 果如是. 일찌기 익힌 因이 果를 불러 오는 것. 新譯에서는 等流果라 하며 지옥의 십여시로는 과거에

익힌 惡事가 지옥의 몸을 받게 되는 것으로, 이 習因 習果는 過現二世 · 現未의 二世를 걸쳐서 해당되

기도 하고 또 현재 일체의 因果에 공통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9) 報如是. 報果爲報라 하여 금생의 선악의 業因의 갚음으로 내생에 苦樂의 果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新

譯家에서는 이것을 異熟果라고 한다. 이 報因에 의해서 報果를 이루는 것은 반드시 一世 이상을 지나

지 않으면 안된다. 지옥의 십여시에 견주어 말하면, 불에 타는 구리 기둥을 안거나 뜨거운 쇠 상에 앉

고 누워야 하는 등의 苦에 해당된다.

 

(10) 本末究竟等.「初相爲本, 後報爲末, 所歸趣處爲究竟等」이라 하며 앞의 九如是는 다 事의 方 곧 成就

過程이고, 이 究竟等은 現임을 밝힌 것이다. 앞의 九事가 마치는 바는 구경적으로 평등한 이치에 바

탕하고 있으므로 等이라 한 것이다. 이것을 지옥의 십여시로 보면, 相如是도 報如是도 다 空이어

서 지옥에 떨어지기 바로 전의 相이나 끓는 구리쇠를 마시는 苦도 결국은 다 空임을 뜻한다. 또 악의

과보가 본래 性相 가운데 거짓 있었고 본래의 性相이 악의 과보 가운데 있으므로 다 같이 假이며,

또 지옥의 理體가 佛果와 다를 것이 없고 불과가 그대로 지옥의 理體여서 모두가 中道法界 아닌 것

이 없으므로 中道가 두루하다는 뜻으로, 동일한 中道라는 뜻으로 等이라 한 것으로 된다. 따라서 십

여시에는 반드시 三의 원리가 함께 하게 된다. 곧 空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眞空이고, 假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妙假이며 中이기 때문에 本末이 다 中道法界이다. 이 究竟等의 三가 곧 實相

이니 그러므로 결국 앞의 九如是는 諸法으로서 本末究竟等은 實相이므로 諸法實相의 넉자를 해석하

기 위해 이 十如是를 說한 것이라 하겠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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