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한국불교(韓國佛敎,2727)-뉴사전

근와(槿瓦) 2022. 2. 25. 05:23

한국불교(韓國佛敎,2727)-뉴사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우리 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372) 6월에 전진 나라의 순도와 아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들어와 초문사, 이불난사 등을 창건하고 설법을 시작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들의 설법과 전도를 공헌한 고구려에서는 그 후 평양 9사와 반용사 영탑 등을 짓는 한편 불교 전파에도 힘써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고, 열반종·삼론종 등의 종파가 이루어졌다. 의연은 불교 역사 연구를 통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고, 혜자·운총·혜편·담징·법정 등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였고, 도림·덕창·혜량·신성 등은 호국 불교를 위한 실력 배양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백제는 384(침류왕 1)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경유하여 입국, 왕의 우대를 받고 궁중에 머물다가 이듬해 남한산에 절을 짓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그후 왕흥사·미륵사·한산불사·경복사·수덕사 등 많은 사찰이 창건되고 교파도 삼론종·계율종·성실종의 세 종파가 성립됨. 그리고 백제 불교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많은 고승들이 일본에 건너가 불교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으니 그 이름을 들어 보면, 일본 성실종의 개조가 된 도장을 위시하여 혜총·도림·혜미·도흠·담혜·도령·상휘·의각·방제·다상 등이 있다. 또 백제 멸망 후 그 재건을 위하여 궐기하였던 승장·도심, 인도에 유학하고 귀국 후 율부 72권을 번역한 겸익 등도 유명하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불교가 가장 늦게 전파된 나라로 527(법흥왕 14) 이차돈의 순교가 있은 후 비로소 공인되었는데 그 후 급속히 발전하여 국가적 종교로 존숭되고 승려와 사원이 국가의 두터운 보호를 받게 되었다. 많은 구법승이 인도와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그들에 의하여 당나라의 13(성실종·삼론종·구사종·지론종·섭론종·천태종·법상종·열반종·염불종·밀종·선종·화엄종·율종)이 도입되어 발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선종은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어 이른바 구산 선문의 분파를 이루었다. 국가 안태와 왕실의 번영을 비는 호국 불교로서의 신라 불교는 사상·정치·문화·외교·국민 생활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건축·공예 방면에도 찬란한 꽃을 피웠다. 열용사·사천왕사·봉성사·감은사·봉덕사·만덕사·법주사·통도사·화엄사·월정사·부석사·불국사·장안사·해인사·보현사·범어사·쌍계사 등의 명찰을 창건하였고, ··불상 등의 공예가 발달하여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 정혜사의 13층탑, 화엄사 쌍탑, 감은사 쌍탑, 무량사 탑, 동화사 쌍탑, 금산사의 석탑 등 6각 다보탑, 화엄사의 사리탑 등을 비롯하여 석굴암 석물, 황룡사의 장육금상, 봉덕사 종, 금산사 부도, 감산사의 2불상, 백률사의 약사상, 사천왕사의 사천왕상, 화엄사 석등 등은 귀중한 문화재로서 전승된다. 한편 수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으니 원광과 같은 대학승은 세속 5계로 국민 도의를 확립하였고, 자장은 국내의 문물 제도를 수립하였으며, 의상은 실천적인 수행과 사찰의 건립을 통하여 화엄의 교리를 널리 펴는 한편 그 문하에 많은 학승을 양성하였고, 원효는 80여 부의 논소를 지어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는 한편 통일 불교 창조에 정력을 쏟았다. 의상과 원효는 그 학통이 중국과 일본에 널리 알려졌다. 한편 원측은 유식설에 통달하여 독특한 견해를 가졌고, 그 때문에 중국의 법상종 정통파로부터는 비난을 받았으나 그의 저술 해심밀경소는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전한다. 혜초는 인도에 건너가 불적을 순례하고 육로로 중앙 아시아를 거쳐 귀국한 다음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여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그밖에 신라 시대의 고승들로는 도증·경흥·지통·표훈·명랑·승전·대현·도의·신행·체증·지증·혜초·현황·개청·낭공·범일·무영·원랑·진경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당나라와 일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특히 신라 시대에 밀교가 전래되어 불교 교리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명랑과 혜통에 의해서 전래된 밀교는 계속적인 밀교승들의 입당 구법(入唐求法)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명랑은 밀교를 전래한 후 신인종(神印宗)을 세우고 밀교 전파에 힘썼는데, 문무왕 때는 유가승(瑜伽僧) 12인과 더불어 문두루법<文豆婁法, 또는 신인작법(神印作法)>을 베풀어 50만 당병의 침략을 물리치고 호국 사찰인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였다. 혜통도 역시 고등 밀교를 전하여 총지종(總持宗)을 열고 밀교를 널리 전하였다. 이보다 앞서 명효(明曉)도 당나라에서 귀국하였는데, 그는 다라니법(陀羅尼法)에 관심을 갖고 불공견삭경(不空羂索經)을 가져와서 다라니법을 널리 유포하는데 힘썼다. 그런데 신인종과 총지종의 성립은 신라 밀교야말로 중국 밀교의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독특하게 발달한 것이며, 또한 신라 사회에 밀교의 신앙이 얼마나 열렬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중국 밀교는 교학적으로는 크게 성하였으나 종파의 성립은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밀교는 불가사의, 의림, 현초, 혜초, 혜일 등의 입당 구법 승려들에 의해서 빛을 더하여 갔다. 불가사의는 선무외의 문하에서 수학한 후 대일경의 제7권인 공양차제법의 소()를 짓고 귀국하여 밀교를 선양하였고, 의림과 현초도 역시 선무외의 문하에서 태장법을 배우고 혜과 화상에게 법을 전할 만큼 뛰어난 밀교 승려였다. 보리심론을 가지고 귀국하여 밀교 전파에 공이 지대한 혜일은 바로 혜과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일본 진언종의 개조인 공해는 현초의 법손이고 혜일의 법제가 된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당시 신라 밀교승들은 높은 학덕과 수행력을 갖추었고 이들이 활동한 신라 사회에 밀교의 관심도가 어떠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혜초는 금강지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인도 구법 여행을 다녀온 후 계속해서 금강지의 제자 불공과 더불어 밀교법을 연구하고 경전도 번역하였다. 그가 남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세계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신라 밀교는 밀교의 두 계통인 태장문과 금강문이 모두 전하여져서 크게 홍전되었다. 그러나 교학적인 발전보다는 수행 정진의 신앙적인 면이 더 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밀교법은 귀족 계층에서 민간 서민 계층까지 퍼져 갔다. 이들은 주로 다라니법(陀羅尼法)을 수행하였다. 다라니법은 이들에게 직접 정신적 안정과 이익을 줄 수 있는 수행법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다라니 신앙은 탑의 조성 때 다라니 경전을 탑속에 안치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당시의 큰 사찰인 불국사의 석가탑 속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된 사실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다라니법을 지도하는 주금사(呪禁師)도 많이 배출되었고, 백제 제 24대 위덕왕은 주금사를 다른 불교인들과 함께 일본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밀교는 귀족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가서 당시인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삶의 기쁨과 안락을 제공하였다.

고려의 불교는 신라 불교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송나라의 영향 밑에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었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새로 승과를 제정하여 승려를 우대하였다. 연등회·팔관회 등을 연중 행사로 개최하는 등 태조의 숭불 정책은 고려 전반에 걸쳐 계승되면서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당시에 건립된 사찰로는 개성의 왕륜사·법왕사를 비롯한 16사와 봉은사·진관사·부석사·관음사·순교사·석왕사·영명사 등이 있으며, 공예품으로는 관촉사 석등, 부석사 조사전 벽화, 대흥사 종 등 우수한 예술품이 완성되었다. 특히 고종 연대에는 고려대장경(일명) 8만 대장경을 간행하여 우리나라 불교 문화의 대표작을 남겼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음에도 이름난 고승은 그다지 많이 배출되지 못하였다. 그 중에서 체관은 천태종을 재흥시켰고, 대각 국사 의천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일찍이 11세 때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 유학한 후 교장도감을 설치, 속장경 4740여권을 간행한 것은 특기할 만하며, 또 그에게는 문하생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중기에 이르러 지눌·수기·균여, 말기의 나옹·보우·보조·백운 등은 이름을 떨친 고승들이었다. 고려의 불교 종파는 신라의 종파가 계승되었다가 말기에 다소 분파되어 조계종·천태법사종·천태소자종·화엄종·총남종·자은종·신인종·남산종·도문종·중신종·시흥종의 11종이 설립되었으며 그 중에서 화엄·자은·총남·중신·시흥의 5종을 5, 조계·천태의 2종을 양종이라 하여 5교 양종의 종파를 이루었다. 특히 고려말 밀교는 계속적으로 신앙되어 충숙왕 때는 금서밀교대장(金書密敎大藏)을 간행할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조정의 숭유 억불 정책으로 인하여 불교는 미증유의 수난기를 맞이하였으니 도첩제를 실시하는 한편 함부로 스님이 되는 것을 금하고 사전(寺田)에도 과세를 하였으며 스님의 궁중 출입과 도성내 출입을 금하였다. 또한 연산군 때는 승과를 폐지하고, 삼각산의 여러 절의 스님을 몰아내어 그곳을 놀이터로 삼았으며 원각사의 불상을 옮기고 그곳을 기관으로 삼는가 하면 선종의 본산인 흥덕·홍천 두 절을 없애고 여승은 궁중의 노비로 삼고 승려들도 모두 환속시켰다. 중종은 경주의 동불상을 녹여 병기를 만들고 원각사를 헐어 그 재목은 민가를 짓는데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에도 불구하고 불교 신앙 자체를 말살하지는 못하였으며, 특히 상류층 부인의 신앙을 저지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역대 왕 중에는 호법왕도 있었으니, 태조는 석왕사·태고사·해인사 등에 비판을 하사하였고, 세종·세조 때는 간경도감을 설치, 불경을 간행하였다. 특히 세종은 불교 종파의 정비를 단행하여 조계·천태·총남의 3종을 선종으로, 화엄·자은·시흥·중신의 4종을 교종으로 통합하여 선·교 양종을 성립시켰다. 특히 조선 밀교는 세간적 실지(悉地)를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위정자에 관한 한 주술적·기복적인 영험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진언·다라니경이 간행된 것은 장수·멸죄·구병·안택·도액(度厄)·가지(加持)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수륙재는 본래 외로운 혼들의 구제이나 질병 퇴치·양재·추복적 신앙의 경향이 짙었다. 이러한 신앙 이면에 전통적 밀교 교학이 발전하고 있다. 3밀 수행과 만다라 사상이 널리 유포되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선조 2(1569)에 간행된 <칠대만법>에 의하면 우주법계는 지······식의 7대로 구성되었다는 7대만법, 7대 체대설을 주장하고 있다. 7대는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며, 법체라고 한다. 또한 조선 숙종 7(1681)에 간행된 <제반문(諸般文)>의 점안문(點眼文) 보소청(普召請)5()5()·5()·5()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밀교의 금강만다라 사상을 뜻하고 있다. 한편 숙종 23(1695)에 간행된 <관상의궤(觀想儀軌)>에는 자기 마음에 불묘반야바라밀다 대명문자를 관상하고 8엽의 대흥연화를 관상하면 만다라를 이루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밀교의 태장만다라 사상을 뜻한다. 정조 8(1784)에 간행된 몽은(蒙隱)<비밀교(秘密敎)> 5방관(方觀)에서 중앙 대일 여래를 여래장식으로 하여 5()·5()·5()·5()·5()·5()·5()을 서로 연계시켜 배대하였는데 이는 5(, ····)5(, ····)5·5·5·5(9)에 배대한 밀교의 금강만다라 사상이 발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토와 선()을 융합한 신앙이 전개되어졌다. 즉 정토 진언으로서 무량수여래근본다라니·불설대승성무량수결정광명왕여래다라니·아미타불심주·아미타불심중심주 등이 있으며, 이외에 왕생정토주·안좌진언(安座眞言)·결정왕생정토진언 등 많이 있다. 또한 선조 3(1570)에 간행된 설숭(雪崇)<제진언집>에서 진언이 천경의 골수요, 일심(一心)의 원감(元鑑)이라고 하여 진언이 선()과 일맥상통을 꾀했다. 다른 한편으로 선승인 보우(普雨, ?~1561)의 허응당집(虛應堂集)과 휴정(休靜, 1520~1604)<운수단(雲水壇)><설선의(說禪儀)>에는 진언들을 삽입시켜 선가의 의식 자체가 밀교 신앙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선행되었다. 이후의 선승들도 밀교 의식집을 개간하거나 진언을 수지 독송하기도 하였다. 즉 유정(惟政, 1544~1610)<미타조성점안소>, 편양(鞭羊, 1581~1644)<수륙재소>, <시왕소(十王疏)>, 월저(月渚, 1638~1715)<약사회소>, 설암(雪巖, 1651~1706)<아미타도량소>, <지장도량소>, <행민소재제병관음도량소>, <소재도량소> 등과 성규(聖奎, 1728~1812)는 대비주(大悲呪) 10만편을 독송한 일례가 있다. 또한 선종의 소의경전인 능엄경의 능엄주가 융섭되어 신앙되어졌다. 명종 15(1560) 숙천부 장우사(藏于寺)에서 <성관자재수구육자선정>이 간행되어 밀교에서도 선정 관법을 수용하여 신행되었다. 따라서 조선 밀교는 주술적인 면에서 수륙재, 소재 도량, 기우재, 구병 도량 등 각종 밀교 의식이 시행되고 이와 관계된 의식 문집과 다라니경과 진언집류 등의 간행은 국난 타개와 개인의 구복을 위한 기복적 경향도 있었다. 교학·사상적인 면으로 3밀가지 수행법과 금·태 만다라 밀교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중국의 아자체대설과 일본의 ‘6자체대설을 따르지 않고 독특한 ‘7대만법설을 정립하였다. 더욱이 조선시대에는 밀교가 정토와 선과 융합하여 불교의 명맥과 혜명을 잇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격동의 역사다. 조선 시대 이후 대한 제국의 성립, 일제의 강점, 8.15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5·6·7공화국에 이르는 과정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한국불교의 근·현대사의 시기는 크게 대승불교는 대한 제국의 성립에서 정화 유시(1897~1954)까지, 정화 유시 이후에서 제1법난(10.27, 1954~1980)까지, 1법난(10.27) 이후에서 9.7해인사 전국승려대회(1980~1987), 9.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에서 제2법난(3.29, 1987~1994)과 밀교는 1946년에 진각종, 진언종, 총지종으로 발전하였다. 1) 대승불교 : 근대불교는 조선시대의 숭유 억불정책에 의해 승려의 도성 출입의 탄압을 받은 불교가 고종 23(1895)에 일본 승려에 의해 입성 금지령이 해제되었다. 그리하여 1899년에 원흥사를 세워 전국 사찰의 통합을 논의하여 13도에 각각의 1개의 수사를 두어 사찰 사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19083월에 한국불교의 종명을 원종(圓宗)이라 하였다. 1910년 원종의 대종정인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 조약을 맺어 불교의 일본 식민지화를 꾀하였다. 이에 박한영, 한용운 등이 합종 반대 운동을 전개하여 임제종을 만들었다. 그러나 합방 이듬해 19116·3일 사찰령이 제정, 반포됨으로써 종지 수호 운동이 무산되었다. 사찰령에 의해 30본산 제도가 실시되고 1,200개의 말사로 구분되었으며 한국불교는 총독부의 통제하에 놓였다. 이후 사찰은 일부 승려들에 의해 개인 소유화 현상이 발생되고,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결혼하는 대처승려가 급속히 증가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조선 말에 선풍을 떨친 경허 성우(1849~1912)의 문하에 만공, 혜월, 수월, 혜봉, 침운, 몽성, 한암 등의 쟁쟁한 선사가 배출되어 선풍을 진작시켰다. 그래서 1921년 선학원이 설립되었다. 선학원()은 사찰령에 의한 왜색 불교로부터 한국불교의 본래 모습을 지키고 총독부의 사찰령에 통제받지 않기 위함이다. 또한 19223월말 오성월, 김남전, 백학명 등 199인의 선승에 의해 선우 공제회가 자립 자애를 목적으로 수는 7001명 가운데 1~10명도 안되었다. 또한 전국 1363개 사찰 가운데 선우공제회 교단 내에 비구·대처가 구분되어졌다. 1954523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처승은 사찰에서 물러나라.”는 정화 유시를 내렸다. 1962년 당시 문교부 장관의 주선으로 재통합하기도 하였으나 다시 분열되었다. 이로 인해 비구측과 대처측간에 사찰 점유 쟁탈과 법통시비에 대한 분쟁이 1969년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비구측은 정부로부터 정통을 인정받아 1955년에 대처측의 본부인 태고사를 조계사로 개칭하고 대처측의 사찰을 인수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비구측은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중에는 수행인으로서 자질이 부적합한 이들을 출가시킴으로 인해 승려의 자질을 떨어뜨림은 물론 오늘날의 불교의 크고 작은 사건에 연루되어 조계종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 이들로 인해 불교 재산이 피해를 입게 되자, 불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불교 재산 관리법(불재법)이 정부에 의해 1962. 5·16 쿠데타 직후에 국가 재건 최고 회의에서 불재법은 불교 재산을 보호라는 명목하에 불교의 재산을 보호하는데 큰 역활을 하였지만, 정부는 이를 불교의 통제, 감독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종단에서도 불교 발전을 위한 도제 양성, 역경, 포교를 종단의 3대 강목을 세워 실천함으로써 불교의 활성화에 괄목한 성과를 이루었다. 19801027일은 한국불교 사상 유례가 없는 대법난을 당하게 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이하여 불교계에서도 조계사, 개운사 양 총무원간의 갈등이 해소되었다. 그리고 불교의 자율성을 위해서 불재법에 대한 폐지를 대처측에서 먼저 제기하여 조계종단도 본격 제기하였다. 이러한 불교계의 10·27법난은 당시 총무원장인 월주스님이 계엄정권에 협조하지 않자, 신군부는 불교의 분규 종식, 비리 조사라는 명분으로 자율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8010·2704시에 당시 비상계엄하 합동수사본부에서 조계종 총무원과 전국 사찰에 계엄군을 진입시켜 당시 송월주 총무원장 등 무고한 승려 56명을 연행 구속하고, 다시 30일에는 군·경 합동으로 전국 3,000여 사찰과 암자를 구두발로 피습하여 수백명의 승려를 연행구금한 불교최대의 탄압사건이다. 이로 인해 불교계는 한국불교 역사상 엄청난 충격과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이 법난에 의해 불교는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 사회 정의에 눈을 뜨게 했다. 이것은 민중불교 운동으로 나타났다. 1981111일에는 불교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국 주요 인물 150여명이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198654일에는 고은, 여익구를 비롯한 진보적 불교인 100여명이 민중 불교 운동 연합을 창설하여 5·3 인천 학생, 구로동 포교원 등을 개설하여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65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가 결성되어 승려들이 사회 정치 문제에 발언하기 시작함으로써 승단이 불교의 사회 현실에 참여라는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불교의 사회운동은 198697일 해인사에서 전국승려대회가 개최되어 불교의 전국적인 현실 참여를 선언하였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생활화·사회화를 위한 발돋움이었다. 1988528<전통사찰보존법>이 발효되면서 불교의 자율성을 찾게 되었다. 또한 19881130일에는 정부로부터 <10·27 법난 경위 설명회>를 듣고 국무총리로부터 공식 사과 담화를 받아냈다. 이는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 바람이 교계에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후 불교인의 완전한 명예 회복으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교는 이후 사회에 괄목한 활동상을 줄기차게 전개하였다. 즉 불교의 대중화 차원에서 공해, 환경, 종교의 형평 원칙, 불교 방송국 개국, 중앙 승가 대학 설립, 불교 사회 복지 사업, 전통 문화 보존 등에 큰 힘을 기울여 어느 시대보다 큰 발전상을 보였다. 1994329일은 제2법난이라 할 수 있다. 3·29법난은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당선을 강행하기 위해 30일 제112회 조계종 임시 중앙 종회 개최를 공고하였다.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3월 초부터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원회(범종추) 스님 500여명과 대불련 소속 학생이 상무대 비리 규명과 서의현 총무원장 3선을 반대하는 각종 법회가 개최되고 28일부터 종단을 개혁하려는 범종추가 조계종 총무원 청사 앞에서 서의현 총무원장 3임 반대와 상무대 의혹 해명을 촉구하는 구종 법회를 주도하였으나, 총무원의 요청에 의해 29일 오후 6시에 전투경찰 1500여명이 조계사 경내로 진입하여 단식 기도 중인 청화, 시현, 도법 스님 등 범종추 대표와 400여명의 승가 재가를 강제로 연행하고 총회가 개최된 후 철수한 사건이다. 이에 의해 서의현 총무원장은 28일 오전 10시에 총회에서 3선에 당선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29일 새벽에 괴청년을 조계사에 동원하여 범종추스님, 재가에게 폭력을 휘둘러 유혈이 난무하게 하고 30일 새벽 1시에 총무원 청사 1층에서 비폭력 무저항으로 정진하는 스님들을 연행하기 위해 전투경찰이 진입하여 아침 8시에 201명 전원을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했다가 불교의 위상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로 인해 원로 스님인 월산, 월하 스님 등은 전학인은 구종 법회에 적극 나서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종단 개혁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29일에는 성태용 교수를 비롯한 36인의 불자 교수들이 범종추의 종단 개혁에 대한 지지 성명서를 발표했다. 31일에 민주당은 총무원장 선출 과정에서 빚어진 폭력 사태에 정부의 편파적 수사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사회에서도 불교의 구태 의연한 종권 분쟁에 불교도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따가운 여론의 화살이 전국을 들끓었다. 한편 총무원장 선출이 있은 후 30일 오후 1시에 종회에 불참한 설조 스님 등 종회 의원 11명이 30일 종회를 위법이라 규정하였다. 조계종 원로 회의(의장 혜암 스님)5일 대각사에서 원로 스님인 비룡, 도천, 응담, 도견, 원담, 지종, 고송 등이 직접 참석하고 월하, 승찬 스님은 위임장을 보내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연임을 결정한 임시총회는 무효화를 선언하고 서원장 즉각 사퇴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410일 전국승려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앞서 고은 시인 등 안병직 교수를 비롯 문인 교수 등 419명은불교의 앞날을 생각하는 지성인 선언을 발표하고 서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나 서의현 총무원장측은 4.16일 서암 종정 스님과 원로회의 뜻을 받들어 절차에 의한 종권 이양이라는 조건부로 사퇴를 미루었다. 또한 재가 불자 연합은 49일에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과 불교 탄압 규탄 대회를 가졌다. 송서암 종정은 9일자 교시를 통해 서의현 총무원장 즉각 퇴진 및 승려 대회 금지를 표명했다. 이리하여 조계종은 원로회의와 종정간의 종권 대립 양상을 비쳐 분열되는 위기에 처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혁을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열어 1955812일 첫 전국승려대회 이후 지금까지 종단의 심각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전국 승려의 공의를 수렴하여 410일 오후 1시에 조계사에서 열어 비상 종단 개혁 추진 위원회를 결성해서 조계종 개혁회의가 출범되었다. 개혁되는 범종추의 불교 개혁을 위한 제도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상황이 개혁의 여론으로 돌아서자 총무원장 집행부가 11일 오전 1시 청사를 빠져나가고 서의현 총무원장이 전격 사퇴하였다. 이로써 불교 개혁은 주도권 싸움에서 법통 싸움으로 장기간 비화될 조짐이 보였으나 조계종 개혁 회의가 불교 개혁 여망을 안은 전불교도의 단합과 전국민이 호응하여 개혁의 승리를 쟁취하였다. 1994410일 전국 승려 대회는 불교가 1986년 해인사 전국 승려 대회 이후 그동안 정권 보호와 정부 정책에 무조건 옹호하는 왜곡된 호국불교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천명에도 불구하고 상무대 비리 의혹의 정불(政佛) 유착과 90년대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서의현 총무원장이 과거 독재 정권의 잔재인 3선을 강행하려하자 범종추가 총무원장 3임을 반대하였다. 이는 종단 내에 전 총무원장측의 보수 세력과 개혁 회의측의 진보 세력간의 불교 발전의 분수령에서 진보 세력이 승리한 것이다. 한편 이 대회에서 서암 종정의 전국 승려 대회 금지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함으로서 불교계 최고 어른에 대한 결례를 범하고 불교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나아가 사회 정의 차원에서 불교가 더 이상 과거 독재 시대의 부정과 독재의 유산물을 묵과할 수 없다는 의지이다. 94329일 법난 과정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총무원 집행부측의 행동은 불교의 위신을 실추시켰으며 또한 집행부측의 공권력 투입 요청으로 전투경찰이 경내에 진입한 것은 정부가 중립성을 잃어버리고 개혁 회의측에 부당한 공권력을 발휘하여 불교 탄압을 강행한 것이다. 그러나 범종추가 주도하는 선우 도량, 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의 개혁 회의측이 경불련, 민불련, 재가 불자와 연합해서 폭력과 불법에 항의하여 단식과 철야 정진의 비폭력으로 불교 개혁을 위한 외침은 이 시대의 국민의 간절한 여망이었다. 또한 전불교도들의 하나된 마음으로 일치 단결하여 사회 불의와 공권력의 부당성에 대한 항거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공권력을 올바르게 잡으려는 불교의 정법 구현의 정신을 발휘했다. 19941121일 불교 개혁 회의는 정식으로 28대 총무원장에 송월주 스님을 선출하여 정불 유착과 종권 다툼으로 얼룩진 상처를 치유하고 민족 종교로 불교 정신을 바로 세워서 조계종의 위상과 민족 의식 개혁의 초석을 다졌다.

 

참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2667)-뉴사전 : 고려대장경.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120)-뉴사전 : 고려시대에 불경과 장소(章疏)를 모아 집대성해서 인간(印刊)한 불경. 이 거대한 역사(役事)는 불교를 흥왕(興旺)시키는 목적도 있었지만 문화국으로서의 위력을 이웃 나라에 선양하고,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국난을 타개해서 호국하려는 큰 발원에서 이룩된 것이다. 특히 고려는 문신(文臣)을 존중하고 무신(武臣)을 천대하여 온 까닭으로 여러 차례 외국의 침입을 받게 되니 불력(佛力)으로 나라의 안전을 꾀하려 하였다. 이것이 방대한 대장경의 간행사업으로 나타났다.

(1) 1차 대장경 간행. 제일 처음 조조(雕造)된 것은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또는초판고본대장경(初版古本大藏經)이라고 하며, 현종 2(1011)년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해서 시작되어 선종 4(1087)년까지 77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이 초장경(初藏經)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도감(都監)을 두고 송의 개보판(開寶板)·거란본(契丹本)과 종래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국내본(國內本) 등을 저본(底本)으로 해서대반야경600,화엄경」「금광명경」「묘법연화경6,000여권을 만들었다. 이 초판고본 대장경은 고종 19(1232)년 몽고의 침입을 받아 소실되었고, 현재 약간 남아 있는 것은 일본 교토의 남례사(南禮寺)1,715권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또 속대장경은 초판고본에 계속하여 간행한 것으로 문종의 제4 왕자인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송나라에서 각종 장소(章疏) 3천여 권을 모아 가지고 돌아와 문종 27(1073)년부터 선종 7(1090)년까지 이 교장(敎藏)과 불서(佛書)를 모은 것을 엮어 이를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이라 하고 이 목록에 의하여 차례대로 인간(印刊)한 것을속장경(續藏經)이라고 한다. 이는 모두 1,0104,740여권으로 몽고의 병화로 초판고본 대장경과 함께 부인사가 소실되었다. 현재 약간 남은 것으로, 순천 송광사에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중 제9권과 제10권이 있고, 고려대 도서관에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일본 나라의 동장사(東丈寺)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疏演義鈔)40, 나고야의 진복사(眞福寺)석마하연론통현초(釋摩詞衍論通玄鈔)4권 등 47권만이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2) 2차 대장경 간행. 이는 팔만대장경의 조조(雕造)를 말하는 것인데,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강화도로 옮긴 고려는, 부인사의 호국을 위한 대장경이 소실되자, 이 외침을 물리치기 위하여 다시 대장경을 조조해서 불력의 가호를 빌기로 하였다. 대장경을 새로 조조하기 위해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고, 고종 23(1236)년부터 고종 38(1251)년까지 16년만에 완성한 것이, 곧 고려판 대장경으로서 1,511, 6,802, 81,258판이 되고, 이것이 안팎으로 새겨져서 16만여 면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세칭 8만대장경이라 한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 8. 가로 : 23. 두께 : 12~3. 두 끝을 뒤틀리지 않게 각목을 붙이고 네 귀에 구리로 장식하고 전면에 칠을 발랐다. 판면(板面)은 위아래로 줄을 치고, 133, 114자로 양면에 새겼으며, 판의 한 끝에 경명(經名), 권 수, 장수를 천자문(千字文)으로 함호(函號)를 새겼다. 이 대장경은 처음 강화에 판당(板堂)을 짓고 봉장하였다가 얼마 아니되어 강화의 선원사로 옮겼다. 조선 태조 7(1398)년 서울 지천사(支天寺)에 임시로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에 봉장하였다. 초조대장경을 그대로 다시 조조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거란본과도 대교(對校)해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고쳤고, 빠진 것은 그것을 보수하였다. 그리고송조신역경(宋朝新譯經)과도 대교(對校)·고감(考勘)하였고,개원록(開元錄)」「속정원록(續貞元錄)등의 불서목(佛書目)도 참고하였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대장경보다도 본문이 충실하며 오탈자(誤脫字)가 없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장경의 조조는 고려가 가장 어려웠던 국난의 시기에 초조판부터 헤아려 실로 240년이라는 장구한 시일을 통하여 이룩한 거국적 대사업으로, 대장경의 간행을 둘러싸고 송·거란에 대한 문화국으로서의 위신을 높였을 뿐 아니라, 인쇄술의 발달과 출판 기술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함.

 

고려대장경초조본(高麗大藏經初雕本,76)-구사전 : 고려 대장경의 제1차 간행과 제2차 간행중 제1차 간행 때 조각한 初版古本을 말함. 초판고본은 성종 10(991)년에 韓彦恭이 송나라에서 가져온 480, 5,047권에 달하는 開寶板底本으로 하여 顯宗부터 文宗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대구의 符仁寺都監을 두고 <대반야경> 600<화엄경> <금광명경> <묘법연화경> 6,000여권을 雕造하였으나, 고려 고종 19(1232)년 몽고의 침입 때 兵火로 없어졌고, 약간 남아 있는 것은 일본의 京都 南禮寺1,715권이 전하고 있다.

 

고려대장경판(高麗大藏經板,76)-구사전 : 국보 32. 대장경을 넓 다란 나무조각에 글자로 새겨 종이에 박아내게 한 원판.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1차의 두 차례에 걸친 조판은 몽고병의 침입 때 없어지고, 2차로 고종 때 강화도에서 조판한 것이 지금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이 판의 크기는 세로 8, 가로 23, 두께 12~3, 두 끝에 뒤틀리지 않게 각목을 붙이고, 네 귀는 구리로 장식하고 全面에 칠을 하였다.

 

속장경(續藏經,1410)-뉴사전 : 대장경을 결집할 때 빠진 것을 모아 간행한 경전.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거란·일본 등지에서 경전과 불서를 구하여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두고 숙종 1(1096)년에 완성하여 대구 부인사에 두었으나, 고려말 몽고군의 침입 때 불에 타 없어지고 지금은 그 목록만이 남아 있음.

 

칠대만법(七大萬法,2594)-뉴사전 : 불교서적을 번역한 책. 일명 칠대만서(七大萬書). 1569년에 간행. ((((((() 등의 7법이 우주 전체를 총괄한다는 뜻이다. 진여세계(眞如世界삼신여래(三神如來성적등지(惺寂等誌) 등의 불교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칠대(七大,2594)-뉴사전 : ()·()·()·()·()·()·()7원리에 대해, 주변법계(周遍法界)의 뜻을 밝힌 것.수능엄경(3)에 설명됨. ()라는 것은 이 7가지가 진리에 들어맞고 원융(圓融)하여 모두 여래장(如來藏)이기 때문에 각종의 사상(事象)에 주변(周遍)하지 않는 것 없고, 함용(含容)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함. 이중 제6인 견대(見大)는 안근(眼根)의 보는 작용 하나를 들어, 다른 이근(耳根) 등의 듣는 작용 등을 예지(例知)시키는 것으로 6(六根)의 성(). 따라서 처음의 지()·()·()·()·()5대는 6, 견대(見大)6, 식대(識大)6식이라는 것이 되니 즉, 18계와 개합(開合)의 부동(不同)뿐임. <首楞嚴經 19119>

 

법난(法難,812)-뉴사전 : 불교의 교단이 다른 곳으로부터 받는 모든 종류의 박해. 중국에서의 유어(類語)로는 훼법(毁法폐석(廢釋멸불(滅佛) 등이 있음. 중국에서 특히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이라 하여, 북위(北魏)의 무제, 북주(北周)의 무제, ()의 무종(武宗),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의 법난을 대표로 함.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의 태종 때와 연산군 때의 법난이 있었다. 폐불을 단행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나, 표면적으로는 유··3, 특히 불교와 도교의 대립항쟁이 표면적 원인이었으며 당시의 위정자들은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폐불을 단행하였으며 한편 불교 자체에도 타락과 비행이 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 자체의 부패와 유생들의 척불(斥佛)로 조선시대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배불정책(排佛政策)을 단행하였다. 태종은 (1) 종파(宗派)를 병합하고, (2) 사원의 수를 줄이며, (3) 승려를 환속시키고, (4) 사찰의 토지를 국유화하며, (5) 사원에 딸린 노비를 군정(軍丁)에 충당하고, (6) 도첩제(度牒制)를 엄하게 하며, (7) 왕사와 국사의 제도를 폐지하고, (8) 능사(陵寺)의 제도를 금하였다. 태종은 또 1402년 서운관(書雲觀)의 상언(上言)을 따라 성밖의 70개 사찰을 제외한 모든 사원의 토지 및 조세를 군자에 영속케 하고 노비를 제사에 나누어 소속시켰다. 그밖에 사찰의 수를 대폭적으로 제한하였다. 그 후 세종·문종·성종대에도 억불정책이 시행되어 불교는 쇠퇴일로를 걷게 되었으며 연산군에 이르러서는 선종(禪宗)의 본사인 흥천사와 교종의 본사인 흥덕사·대원각사 마저 폐사하였다. 삼각산 각 사찰의 승려를 모조리 쫓아내어 빈 절을 만들고 도성 안의 비구니 사찰을 헐고 비구니는 궁방(宮房)의 비()로 삼았으며, 승려는 환속시켜 관노(官奴)로 삼거나 처를 얻게 하는 한편 사찰의 토지는 모두 몰수하였으니 불교는 역사상 가장 큰 법난을 겪은 것이다.

 

조계종(曹溪宗,2334)-뉴사전 : 우리나라 선종의 총칭. 1200(고려 신종 3) 불일(佛日) 보조국사가 승주군 송광사 길상사에서 정혜사를 창설. 희종이 즉위하여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수선사라 고친 뒤부터 조계종이란 이름이 생기다. 1212 고려 강종왕이 조계산 수선사파를 조계종이라 하였으나, 어느 한 종만이 독점한 것은 아니고, 선종을 범칭하였던 것. 그 뒤부터 각엄(覺嚴)·태고(太古)·나옹(懶翁)·환암(幻庵)·찬영(燦英)·각운(覺雲)·무학(無學) 등 여러 스님네가 조계종사(宗師)·조계승()이라 하였으나, 항상 계속된 것은 아니다. 1941 북한산 태고사를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으로 옮겨 짓고, 그 때 조선불교 총본산을 만들면서, 선교 양종이란 종명을 고쳐 조계종이라 하다. ...선교양종(禪敎兩宗,1312)-뉴사전 : 선종·교종을 말함. 조선시대에 7종으로 갈라졌던 불교 종파를 합쳐 2종으로 만든 것. 1424(조선 세종 6) 왕명으로 조계종·천태종·총남종(총지종·남산종을 합침)을 합하여 선종,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을 합하여 교종이라 하고, 서울 흥천사로 선종 도회소(禪宗都會所), 흥덕사로 교종도회소를 삼은 것. ...선종(禪宗,1329)-뉴사전 : 좌선·내관(內觀)의 법을 닦고, 인간 마음의 본성을 깨달으려고 하는 종파를 이름. 불심(佛心)을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함. 인도의 보리달마(, Bodhidharma 菩提達磨)에 의해 521(또는 527)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해지고, 오조홍인(五祖弘忍)의 문하(門下), 혜능(慧能)에 의해 남종(南宗), 신수(神秀)에 의해 북종(北宗)이 흥해서 두파로 나누어졌음. 혜능(慧能) 아래부터는 청원(靑原)·남악(南嶽)의 두 계통이 나와 전자는 조동종(曹洞宗)이 되고, 후자는 임제종(臨濟宗)이 되어 강남(江南)땅에 기세와 위엄을 떨쳤음.선종(禪宗)이라고 하는 말은, 육조혜능(六祖慧能)으로부터 반세기 이후, 800년 전후로부터 나타남. 초기의 선풍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 자세히 선종사를 살펴보면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한 종지(宗旨).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종()의 강격(綱格)으로 하고, 좌선으로써 내관자성(內觀自省)하여 자기의 심성(心性)을 철견(徹見)하고, 자증삼매(自證三昧)의 묘한 경지를 체달함을 종요(宗要)로 하는 종. 선종이란 말은 부처님의 설교(說敎)를 소의(所依)로 삼는 종파를 교종(敎宗)이라 함에 대하여 좌선을 닦는 종지라는 뜻. 당나라 말기로부터 선종·교종의 세력이 대립하게 되며, ()밖에 선()이 있다는 치우친 소견을 내고 교외별전의 참 뜻을 잃게 되어, 도리어 선종이란 명칭을 배척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다. 이 종은 석존에게서 정법의 유촉을 받은 가섭으로부터 보리달마까지의 28조가 있고, 28조인 보리달마가 520(양의 보통 1) 중국에 와서 혜가에게 법을 전함으로부터 동토의 제5조 홍인에 이르러 그 문하에서 혜능을 제6조로 하는 남종(南宗), 신수를 제6조로 하는 북종(北宗)으로 갈리었다. 북종은 오래지 않아 후손이 끊어지고, 혜능의 1()만이 번성하여 5() 7()을 내었다. 원나라·명나라에 이르러서는 다른 종파가 다 쇠퇴기에 들어갔으나, 이 종만은 오히려 번성하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784(신라 선덕영왕 5) 당나라 서당지장(西堂智藏)에게서 법을 받아 온 도의(道義)를 초조(初祖)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을 비롯하여, 역시 지장의 법을 받은 홍척(洪陟)을 초조로 하는 실상산문(實相山門), 염관제안(鹽官齊安)에게서 법을 받아 온 범일(梵日)을 초조로 하는 사굴산문(闍崛山門), 지장에게서 법을 받은 혜철(惠哲)을 초조로 하는 동리산문(桐裏山門), 마곡보철(麻谷寶徹)의 법을 받은 무염(無染)을 초조로 하는 성주산문(聖住山門), 남전 보원(南泉普願)의 법을 이은 도윤(道允)을 초조로 하는 사자산문(師子山門), 선종 혜은(禪宗慧隱)의 법을 이은 도헌(道憲)을 초조로 하는 희양산문(曦陽山門), 장경 회휘(章敬懷暉)의 법을 이은 현욱(玄昱)을 초조로 하는 봉림산문(鳳林山門), 신라 말기에 운거 도응(雲居道膺)의 법을 이은 이엄(利嚴)을 초조로 하는 수미산문(須彌山門)9산문(山門)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으나, 고려 때에는 차츰 쇠퇴하여지다. 고려 명종 때 불일 보조(佛日普照)국사가 나서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하여 일으켰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太古普愚)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 왔고, 나옹 혜근(懶翁惠勤)은 강서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 옴으로부터 두 파가 갈리다.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선종(禪宗,1307)-국어사전 : 불교의 한 종파. 참선을 통해 불도를 터득하려는 종파로서, 6세기 초에 달마대사가 중국에 전함. 선가(禪家). 선도(禪道). 선문(禪門). ) ().교종(敎宗). ...참선(參禪,2494)-뉴사전 : 사가(師家)에게 좌선(坐禪)을 수행하는 것. <傳光錄 上 82349> <普勸坐禪儀> <慈運 短篇法語> ()의 수행을 하는 것. <無門關 48292> <息栽錄開筵普說> ()은 사람이 다수 모이는 것. 다수의 사람이 함께 좌선을 수행하는 것. <正法眼藏 坐禪儀 82217> (해석예) ()에 열중하는 것. <圓乘 3429> 덕이 있는 사람밑에 가서 덕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香月 3531> 좌선하는 것. <聞解 18> ...참선(參禪,2262)-국어사전 : 좌선(坐禪)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불심종(佛心宗,981)-뉴사전 : 선종의 다른 이름. 인간 모두가 태어나면서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철견(徹見)하여 곧바로 부처가 될 것을 가르치는 종문(宗門)의 뜻. 또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하는 종지(宗旨)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음. <景德傳燈錄 351220> <正法眼藏 佛道 82187> ...불심(佛心,980)-뉴사전 :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대자비의 마음. 또한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청정한 진여에 들어 맞는 마음(佛性)을 말함. 불성(佛性). <楞伽師資記> <正法眼藏 行持 82127> <沙石集 10(1)> <反故集> 불심종(佛心宗)의 약어. 선종을 가리킴. <立正安國論 215> ...불심(佛心,1098)-국어사전 : 부처의 자비심. 부처와 같은 자비스러운 마음. 보리심. 중생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부처로서의 본성. ...보리심(菩提心,1024)-국어사전 : 불도(佛道)에 들어가 참다운 도를 구하는 마음. 불심(佛心). ...보리심(菩提心,873)-뉴사전 : 무상도심(無上道心)·무상도의(無上道意)·도심(道心)이라고 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의 약어. 깨달음을 구해 불도를 행하려고 하는 마음. 성덕(聖德)태자는 직심(直心)이라는 역어(譯語)를 사용함.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 깨우침을 얻고 싶다고 원하는 마음. 수행의 최초로 출발점. <大乘本生心地觀經 63320> <方廣大莊嚴經 13544> <華嚴經 49417> <往生要集 8446, 67, 70> 대승불교에서는 이외에 또한 이타적 견해를 포함시켜, 강조해 말함. 깨달음을 구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 자신이 구제되기 보다도, 우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원하는 마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생각하는 마음. 부처가 되려는 마음. 깨달음을 향하려고 하는 원(). 대승(大乘)의 도심(道心)을 말함. 모든 미덕을 성립하는 근본으로서의 마음.대일경(大日經)에서는 보리심위인(菩提心爲因)이라 함. 깨달음을 위한 용맹심과 보리의 자성(自性)의 마음. 깨달음을 체득하기 위해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進趣心), 불도를 수행하고, 모든 생류(生類)를 고통에서 구제하려고 서원(誓願)하는 마음. , bodhi-citta=초발심(初發心). 발심(發心)하는 것. 부처가 되려는 마음. (해석예) 정토에 머물기를 바람(마음). 성불을 이루려고 생각하는 마음. 일체의 중생을 전부 구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마음. 무상(無上)의 신심(信心). ...보리(菩提,871)-뉴사전 : , , bodhi의 음역. ()·()·()이라 한역함. 부처님의 정각(正覺)의 지(). 깨달음. 정지(正智)의 작용. 깨달음의 지혜. 미혹으로부터 눈뜬 것. 지혜의 작용에 의해 무명(無明)이 없어진 상태. <臨濟錄 47497> 법성을 깨닫는 지(). <유가론 230284> 숭고한 개오(開悟). 지혜의 드러남. <寶性論 31821> 보리도량(菩提道場)의 약어. 깨달음을 연 장소. 번뇌를 끊고 얻은 열반을 말함. 깨달음의 경지. 인간의 완성. (해석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보리(菩提). 여실히 자심(自心)을 아는 것임. <大日經 住心品 181> 대각(大覺)이라 번역함. 열반에 이르는 인()으로서의 도()를 말함. 흔히 불도의 뜻으로 쓰임. 흔히, 명복(冥福)의 뜻으로 사용함. (해석예) 불도(佛道). (표현예) 눈뜸. ...보리(菩提.Bodhi,1024)-국어사전 : [불교 용어로서, ((() 등으로 번역되는 말로] 세속적인 번뇌를 끊고 얻는 깨달음의 경지. 깨달음을 얻고 극락왕생하는 일. 불도(佛道). ...조계종(曹溪宗,2103)-국어사전 : 고려 시대에, 신라의 구산 선문(九山禪門)을 합친 종파. [천태종(天台宗)에 대하여 이르는 말.] 태고(太古) 국사를 종조(宗祖)로 하는 우리나라 불교 최대의 종파. ...구산(九山,221)-뉴사전 : 불교선파의 아홉 산문(山門).구산문(九山門). ...구산문(九山門,221)-뉴사전 :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부터 불교가 한창 성할 때에, 고승들이 중국에 가서 달마 선법(達磨禪法)을 받아 가지고 와서 종풍(宗風)을 크게 드날린 것이 구산문이다. (1) 실상산문(實相山門). 홍척(洪陟) 국사가 남원 실상사(實相寺)에서 개산. 제자는 편운(片雲수철(秀澈) . (2) 가지산문(迦智山門). 체징 국사가 장흥 보림사(寶林寺)에서 도의(道儀) 국사를 종조로 삼고 개산. (3) 사굴산문(闍崛山門). 범일(梵日) 국사가 강릉 굴산사(崛山寺)에서 개산. 9산문 중에서 가장 번창. 제자는 낭원(朗圓낭공(朗空) . (4) 동리산문(桐裡山門). 혜철(慧哲) 국사가 곡성 태안사(泰安寺)에서 개산. 제자는 도선(道詵여대사(如大師) . (5) 성주산문(聖住山門). 무염(無染) 국사가 보령 성주사(聖住寺)에서 개산. 문도(門徒)는 순차(詢叉원장(圓藏) . (6) 사자산문(師子山門). 도윤(道允) 국사가 능주 쌍봉사(雙峰寺)에서 종풍을 드날리고, 제자 징효(澄曉)가 영월 흥녕사(興寧寺)에서 개산. 문도는 종홍(宗弘정지(靖智) . (7) 희양산문(曦陽山門). 도헌(道憲) 국사가 문경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산. 문도는 성견(性蠲민휴(敏休) . (8) 봉림산문(鳳林山門). 현욱(玄昱) 국사가 창원 봉림사(鳳林寺)에서 개산. 문도는 융체(融諦경체(景諦) . (9) 수미산문(須彌山門). 이엄(利嚴) 존자가 경순왕 5(932) 고려 태조의 청으로 해주 광조사(廣照寺)에서 개산. 문도는 처광(處光도인(道忍) 등이 있다. ...구산문(九山門,277)-국어사전 : 불교에서, 달마(達磨)의 선법(禪法)을 이어 그 종풍(宗風)을 크게 떨친 아홉 교파를 오교(五敎)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구산. 구산선문. ...오교(五敎,1696)-국어사전 : 오륜(五倫)의 가르침. 신라 시대에, 불교의 다섯 종파인 열반종(涅槃宗남산종(南山宗법성종(法性宗화엄종(華嚴宗법상종(法相宗)을 아울러 이르는 말. ...태고(太古,2635)-뉴사전 : 고려 승려. 우리나라 임제종의 초조. 보우(普愚)의 법호.보우 ...보우(普愚,888)-뉴사전 : (1301~1382) 고려 후기의 승려로, 중국 구법승. 우리나라 임제종(臨濟宗 ; 조계종)의 시조임. 일명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 성은 홍(). 본관은 홍주(洪州 ; 충남 홍성). 1313(충선왕 5) 13세에 회암사(檜巖寺) 광지(廣智)에게 득도하고, 가지산에서 수도함. 1329(충숙왕 16)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했으며, 1337(충숙왕 복위 6) 전단원에 있으면서 무()자를 참구하고, 이듬해 크게 깨달음. 1341(충혜왕 복위 2) 삼각산 동봉(東峰)에 태고암(太古庵)을 짓고 살며, 영가(永嘉)증도가체를 본받아태고암가1편을 지음. 1346(충목왕 2) 원나라로 가서 호주(湖州)의 하무산(霞霧山) 천호암(天湖庵)에 가 임제 제18대손 석옥 청공(石屋 淸珙)을 만나고태고암가를 바치니 인가하여 법을 전해 받음. 이로써 우리나라에 임제종의 시조가 됨. 원제(元帝)의 청으로 영녕사(永寧寺 ; 또는 永明寺)에서 개당하고 교화 활동을 펴다가 1348(충목왕 4) 귀국함. 왕의 간절한 청으로 1356(공민왕 5) 봉은사에서 설법하여 왕을 비롯한 왕실과 선과 교의 고승들이 운집한 가운데 종지를 크게 폄. 그 해 왕사가 되어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면서 원융부(圓融府)를 세워 구산선문의 통일을 꾀함. 그는 또 인심을 일변시켜 정교(政敎)의 혁신을 꾀하기 위해 왕도를 한양으로 옮길 것을 건의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함. 한편 당시 정치에 관여하면서 횡포가 심했던 신돈(辛旽)의 비행을 왕에게 맹렬히 간했음. 그 때문에 1368(공민왕 17) 속리사(俗離寺)에 감금되었다가 이듬해 신돈이 복주(伏誅)된 뒤 풀려남. 1371(공민왕 20) 국사가 되어 영원사(瑩原寺)에 머무름. 뒤에 양산사(陽山寺)로 옮겼으며 우왕은 그를 국사로 다시 책봉함. 1382(우왕 8) 소설산으로 가서 1224일 나이 82, 법랍 69년으로 입적함. 시호를 원증(圓證), 탑호를 보월 승공(寶月 昇空)이라 했음. 저술로는태고화상어록2권이 현존하며, 시문집인태고유음이 있었음. <조선금석총람, 조선불교통사, 동사열전, 해동금석원, 태고화상어록, 태고보우 연구<한기두, 원광대학교 논문집 7, 1973>, 태고보우국사의 인물과 사상 <이영무, 건대사학 5, 건국대학교 사학회, 1976>

 

선법(善法,1318)-뉴사전 : 선한 일. 바른 일. 도리에 따르고 자타(自他)를 이익되게 하는 법(). 세상의 선법. 오계·십선을 말함. 혹은 출세간(出世間)의 선법. 삼학육도(三學六度)를 말함. <俱舍論 162, 1711 >因 善法 向上, dharmena gamanam urdhvam(미덕(美德)에 의해서 천상에 오른다.) <金七十論 44541255> .....오계(五戒,1786)-뉴사전 : 5가지 계율. 재가(在家)의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5가지 훈계. (1) 살생하지 말 것. (2) 도둑질하지 말 것. (3) 남녀 사이를 혼란시키지 말 것. 성에 관해서 문란하지 않는 것. 특히 부인외의 여자, 또는 남편외의 남자와 교제하지 말 것. (4) 거짓말하지 말 것. (5) 술을 마시지 말 것.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음주(飮酒)의 금제(禁制). 불살생계(不殺生戒불투도계(不偸盜戒불사음계(不邪婬戒불망어계(不妄語戒불음주계(不飮酒戒)의 총칭. 우바새계(優婆塞戒)라고도 함. <長阿含經 2114> , Panca-Sila <遊行經 1196> <九橫經 2883> [보통 원어는 산, panca-sila이다.] <四分律 22640> <俱舍論 1414-15, 그 위에 3 참조> <觀霧量壽經 2345> , panca siksapadani <藥師本願經 14407: Bhaisaj. p.19, c.8> <灌頂經 1221534, 535> <反故集> 오계(五戒)를 지키는 재가(在家)의 남자. 우바새(優婆塞). .....십선(十善,1577)-뉴사전 : 10가지의 선한 행위. 십악(十惡)의 반대. 십악(十惡)이란,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망어(妄語 : 거짓말을 하는 것양설(兩舌악구(惡口기어(綺語 : 정말로 재미있게 만드는 말탐욕(貪欲진에(瞋恚 : 화내고 미워하는 것사견(邪見 : 잘못된 견해)를 말함. 이상의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것. 불살생(不殺生)에서 불사견(不邪見)까지를 십선(十善)이라 함. 죽이지 않는다(, prana-atipatat prativiratah), 훔치지 않는다(, adatta-adanat p.), 사음하지 않는다(, kama-mi-thya-carat p.), 망어하지 않는다(, anrta-va-canat p.), 욕하지 않는다(, parusa-vacanat p.), 기어하지 않는다(, sambhinna-pralapat p.), 양설하지 않는다(, pisuna-vacanat p.), 탐욕하지 않는다(, abhidhyatah p.), 화내지 않는다(, vyapadat p.), 사견을 품지 않는다(, mithya-darsanat p.). <寂志果經 1272> <觀無量壽經 12341> <大智度論 4625395참조> 전생에 십선(十善)을 행한 공덕에 의해 금생에 왕위를 받기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천황의 위(: 지위)를 가리켜 말함. (해석예)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성왕(聖王)의 천명을 받아 만민을 무육(撫育)하는 법. <十善戒相 131> 도에 따르는 것을 선이라 함. 차선십종(此善十種)이 있으면, 십선(十善)이라 함. <人登道隨 上 1352> .....출세간(出世間,2573)-뉴사전 : 3계의 번뇌를 떠나 깨달음의 경지에 드는 것. 또는 그 경지. 세속·세간의 대어(對語). 초월성. 세속을 벗어난 깨끗한 세계. , lokuttara <雜阿含經 282203: MN. , p.72> 진실을 구하는 깨달음의 수행. 해탈을 위한 가르침. 사제(四諦)·6(六度) . <維摩經 14554> 불법(佛法)의 영역. <眞言內證> (해석예) 3계의 속박을 벗어나 무루성도(無漏聖道)에 들다. <人登道隨 上 3153>出世間慧, lokauttara prajna .....사제(四諦,1118)-뉴사전 : , Catvari-aryasatyani , Cattari-ariyasaccani. 사성제(四聖諦)라고도 함. ()·()·()·(). 불교의 강격(綱格)을 나타낸 전형(典型)으로서 유력(有力)한 것. ()는 불변여실(不變如實)의 진상(眞相)이란 뜻. (1) 고제(苦諦). 현실의 상()을 나타낸 것이니, 현실의 인생은 고()라고 관하는 것. (2) 집제(集諦). ()의 이유 근거(理由根據) 혹은 원인(原因)이라고도 하니,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애욕과 업()을 말함. 위의 2제는 유전(流轉)하는 인과. (3) 멸제(滅諦). 깨달을 목표. 곧 이상(理想)의 열반. (4) 도제(道諦).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 위의 2제는 오()의 인과. 이 사제설(四諦說) 자신에는 아무런 적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지 않지만, 후대에 이르면서 매우 중요시하게된 데는 여러 가지 체계를 포괄(包括)하여 조직적으로 취급한 것이 있다. 고제는 무상(無常)·()·무아(無我)·5() (), 집제·멸제는 연기설(緣起說), 도제는 8성도(聖道) 설을 표하는 것. 그리고 고제·집제는 12인연의 순관(順觀), 멸제·도제는 역관(逆觀)에 각각 해당한다. 사제(四諦)는 사체로도 읽는다.사성제. .....사성제(四聖諦,1090)-뉴사전 : 사제(四諦)와 같음. 사제는 뛰어나고 신성한 것이므로, (; , arya , ariya)이라는 자를 붙임. (; , satya , sa-cca)란 진리·진실이라고 하는 것. 인생문제와 그 해결법에 대한 네가지의 진리라고 하는 뜻. , 고제(苦諦 ; , duhkha-satya)·집제(集諦 ; , samudaya-s ; 고집체), 멸제(滅諦 ; , niro-dha-s ; 苦滅諦·苦集滅諦)·도제(道諦 ; , marga-s ; 苦滅道諦·苦集滅道諦)를 말함. (1) 고제. 이 세상은 고통이라고 하는 진실. (2) 집제. 고통의 원인이 번뇌·망집이라고 하는 진실. (3) 멸제. 고통의 원인이 멸이라고 하는 진실. 즉 무상의 세상을 초월하여 집착을 끊는 것이 고통을 없앤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는 것. (4) 도제. 깨달음으로 이끄는 실천이라고 하는 진실. 즉 이상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팔정도의 올바른 수행방법에 의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 (俱舍論 221-3> <中阿含經 71464: MN. , p.184> .....십이인연(十二因緣,1589)-뉴사전 : 인간의 고통, 고민이 어떻게 해서 성립하는지를 고찰하고, 그 원인을 추구하여 12가지 항목의 계열을 세운 것. 존재의 기본적 구조의 12구분. 연기(緣起)의 이법(理法)12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설명한 것. 생존의 조건을 나타내는 12가지의 계열. 늦게 성립된 해석에 의하면, 중생이 과거의 업에 의해 현재의 과보를 받고, 또한 현세의 업에 의해 미래의 과보를 받는 인과의 관계를 12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 것. (1) 무명(無明 : 무지), (2) (: 잠재적 형성력), (3) (: 식별작용), (4) 명색(名色 : 마음과 물질), (5) 육처(六處), (6) (: 감관과 대상과의 접촉), (7) (: 감수작용), (8) (: 맹목적 충동, 망집, 갈망에 비유되는 것), (9) (: 집착), (10) (: 생존), (11) (: 태어나는 것), (12) 노사(老死 : 무상한 모습)을 가리킨다. 차례로 앞의 것이 뒤의 것을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어 있음. 따라서 차례로 앞의 것이 없어지면 뒤의 것도 없어진다. .....삼학(三學,1242)-뉴사전 : 불도를 수행하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가지 수행 부류를 말함. 계학(戒學)과 정학(定學)과 혜학(慧學)의 이 세가지를 가리킴. (1) (), ()을 멈추고 선()을 닦는 것. (2) (), 심신을 정결히 하여 정신을 통일하고, 잡념을 몰아내어 생각이 뒤엉키지 않게 하는 것. (3) (), 그 정결해진 마음으로 바르고 진실한 모습을 판별하는 것. 이 부즉불이(不即不離)한 삼학의 겸수(兼修)가 불도수행을 완성시킴. 규율이 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서, 거기에서 바른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 3()(, trini siksani)이란, 증상계학(增上戒學 , adhisilam)·증상심학(增上心學 , adhicit-tam)·증상혜학(增上慧學 , adhiprajna)이라 함. 증상(增上 탁월)하게 하는 3종의 수행법이라는 뜻. <集異門論 526388> <俱舍論 249, 12 참조> (해석예) 계정혜(戒定慧). <聞解 138> .....육도(六度,1971)-뉴사전 :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피안(彼岸)에 이르는 여섯가지 뛰어난 수행. 육바라밀(六波羅蜜)과 동일. (해석예) 보시 지계 인욕 정진(布施 持戒 忍辱 精進). 이 네가지를 복()이라고 하고, 선정 지혜(禪定 智慧) 이 두 가지를 지()라고 한다. .....육바라밀(六波羅蜜,1975)-뉴사전 : 대승불교(大乘佛敎)에 있어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야 할 여섯가지 덕목. 바라밀은 산, , paramita의 음역으로, 피안(彼岸)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고, ()라 한역함. 이상(理想)을 달성하는 것. 완성의 의미임. 육도(六度)라고도 함. 여섯가지 덕목의 완성. (1) 보시(布施 , dana). 주는 것. 그것에는 재시(財施 : 의복 등을 베푸는 것)와 법시(法施 : 진리를 가르치는 것)와 무외시(無畏施 : 공포를 없애고, 안심을 주는 것)3종이 있음. (2) 지계(持戒 , sila). 계율(戒律)을 지키는 것. (3) 인욕(忍辱 , ksanti).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 (4) 정진(精進 , virya). 진실의 도()를 느슨히 하지 않고 실천하는 것. (5) 선정(禪定 , dhyana). 정신을 통일하고 안정시키는 것. (6) 지혜(智慧 , prajna). 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 <摩訶般若波羅蜜 68256>(해석예) 단계인진선혜(檀戒忍進禪慧). <金般講 57>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念佛名義集 76> .....바라밀(波羅蜜,730)-뉴사전 : , , paramita의 음역. 예전에는()라 한역했다. 당대(唐代)에 있어서는 도피안(度彼岸)이라 한역. (), 건넜다,도피안이란 피안에 이르렀다의 뜻. 동시에 완료형임. 절대, 완전한의 뜻. 예를 들면 보시바라밀다(布施波羅蜜多), 절대완전의 보시(布施), 은혜를 베푸는 완성의 뜻. 피안에의 길. 완성. 수행의 완성. 깨달음의 수행. 깨달음의 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수행. 바라밀(波羅蜜)로서는 시()·()·()·()·()·()의 육바라밀(六波羅蜜), 또는 이것에 방편(方便)·()·()·()를 더하여 십바라밀(十波羅蜜)을 세운다. 육바라밀(六波羅蜜)이란, (1) 보시(布施)(, dana). 사람에게 재물을 주고, 진리()을 가르치고, 안심(無畏)를 주는 것. (2) 지계(持戒) (, sirla). 계율을 지키는 것. (3) 인욕(忍辱)(, ksanti). 박해곤고(迫害困苦)를 참는 것. (4) 정진(精進)(, virya). 심신을 힘쓰며, 다른 오바라밀(五波羅蜜)을 수행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 (5) 선정(禪定)(, dhyana), 마음을 집중하고 안정시키는 것. (6) 지혜(智慧) : 般若 , prajna). 미혹을 여의고, 존재의 궁극에 있는 실상(實相)을 깨닫는 것을 말함. 6의 반야에 방편(方便)·()·()·()4가지를 더하여 십바라밀(十波羅蜜)이라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 자기를 완성함과 동시에, 많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 <俱舍論 189> <起信論 32579> (해석예) 도피안(度彼岸). <金般講 4> [표현예] 궁극. 완전한. .....바라밀다(波羅蜜多,731)-뉴사전 : 바라밀(波羅蜜)과 동일.바라밀 산, paramita <Bodhis.p.4 六波羅蜜多 ; 58, 1.16(十波羅蜜多) ; 371 1.7> <MAV. , >

 

분별(分別,945)-뉴사전 : (외적인 사물에 구애된) 단정. 다투다. 수기(授記)와 동일. 논의. 구분교(九分敎)의 하나. 배분하는 것. 나누어 배부하는 것. 조치. 하나하나 분해함. 구별. 구별하는 것. 열어 보임. 사유. 구분하는 것. 구별하여 생각함. 판별하기. (두개 이상의) 경우를 나누어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 개념으로서 표시할 수 없는 것을 표시하는 것. 개념작용. 생각. 망분별(妄分別)을 하는 것. 망상. 주관적 구상. 구상작용. 아라야식이 개전하여 차별상을 나타낼 때의 주관적 측면. 아라야식이 개전하여 차별상을 나타내는 것. 또는 그때의 주관적 측면. 망분별. 잘못된 인식. 망상. 사물(事物)을 분석하고 구별하는 것. 특수. 바이세시카 철학에서 말함. 사유(思惟). 구별. 분별기(分別起)의 약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일어남.분별기 사람들이 이해되도록 나누어 설명함. 생각하는 것. 수심(受心)을 말함. 지식으로 하는 이해. 대상을 사려하는 것.分別名意識(분별이 즉 뜻이라는 것.) [해설] vika-lpa는 마음의 작용이 대상을 사유하고 계산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세 종류가 있다. (1) 자성분별(自性分別)(, svabhava-vikalpa) ()·()·()·()·()의 오식(五識)이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 (2) 계탁분별(計度分別)(, abhinirupana-vikalpa). 대상의 차별을 추량하고 재는 작용. (3) 수염분별(隨念分別)(, anusmarana-vikalpa). 과거의 것을 추념하는 작용. <俱舍論 2298>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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