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四念處,1050)-뉴사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사념처관(四念處觀)의 준말. 네가지 전념(專念)의 확립.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소승의 수행자가 3현위(賢位)에서 5정심관(停心觀) 다음에 닦는 관(觀). 신념처(身念處)·수념처(受念處)·심념처(心念處)·법념처(法念處). (1) 신념처.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것. (2) 수념처. 우리의 마음에 낙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이라고 관하는 것. (3) 심념처.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4) 법념처.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나에게 속한 모든 물건을 나의 소유물이라고 하는데 대해서도, 모두 일정한 소유자(所有者)가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이 사념처관을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순서로 따로따로 관하는 것을 별상념처관(別相念處觀), 총합하여 관하는 것을 총상념처관(總相念處觀)이라 한다. 사념주 참조.
참고
사념처관(四念處觀,1050)-뉴사전 : ① 신체(身)·감수작용(受)·마음·존재를 구성하는 것(法)을 여실히 보는 것. <中阿含經 24권 ㊅ 1권 582中 이하 참조> ② 신(身)을 부정(不淨), 수(受)를 고(苦), 심(心)을 무상(無常), 법(法)을 비아(非我)라고 보는 것. 아비달마에서 설함.→사념처.
전념(專念,2248)-뉴사전 : ① 오직 염불하는 것. 하나를 염불하여 한눈 팔지 않는 것. ② 정토문에 있어서,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 <往生要集 ㊅ 84권 67中> (해석예) 오로지 전수한다. 차념(此念)은 칭념(稱念)의 뜻으로 입에 올리는 칭명염불(稱名念佛). <香月 2700> (1) 의업(義業)의 억념(論註), (2) 칭명염불의 일행을 수행하는 일이다(善導).
사념주(四念住,1050)-뉴사전 : 구역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고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처관(四念處觀)과 같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네종류의 수행방법. 네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종류의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수념주(受念住)·심념주(心念住)·법념주(法念住)의 네가지를 말함. (1) 이 신(身)은 부정하며, (2) 수(受)는 고통이며, (3) 심(心)은 무상(無常)이며, (4) 법(法)은 무아(無我)라고 관하는 것. 즉, 신체는 부정하며, 감수(感受)는 고통이며, 심(心)은 무상(無常)이며, 모든 사물은 무아(無我)라고 하는 네가지를 마음에 떠올리는 수행. 처음엔 그 네가지를 각각 따로 관념하고, 다음으로는 그것의 네가지를 하나로 하여, 신체·감수·마음, 그리고 모든 사물(法)은 부정하며, 또 고이며, 무상하며, 무아(無我)라고 생각한다. 원시불교이래 설해지고 있음.→사념처관.
소승(小乘,1394)-뉴사전 : 대승에 비해 그 수행하는 바의 교(敎)·이(理)·행(行)·과(果) 및 수행하는 사람이 열등한 점에서 그것을 멸칭(蔑稱)하여 소승이라 함. 성문승(聲聞乘)이라고도 함. 열등한 탈 것의 뜻. 대승편에서 붙인 명칭임. 승(乘)은 싣고 운반하는 뜻. 사람을 태워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교법. 소승에는 성문승·연각승 둘이 있다. (1) 성문승. 4제(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4과(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함. (2) 연각승. 12인연을 관하여 벽지불과(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교체(敎體)로 함. 이것은 모두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공적한 열반에 이르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여김.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동토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
삼현(三賢,1243)-뉴사전 : ① 소승 아비달마의 교학(敎學)에서는, 5정심관(停心關)·별상념주(別相念住)·총상념주(總相念住)라는 세가지 위(位)에 있는 성자를 말함. ② 천태(天台)·화엄(華嚴)의 교학(敎學)에서는 보살의 계위(階位)중 10주(住)·10행(行)·10회향(廻向)을 말함. <四敎儀註 下 32> <五敎章 下 2의 21>
오정심관(五停心觀,1824)-뉴사전 : 사심(邪心)을 정지하는 다섯종류의 관법(觀法)의 의미. (1) 외계의 부정한 양상을 관(觀)하여 탐욕의 마음을 고치는 부정관(不淨觀). (2) 일체중생을 관(觀)하여 자비의 마음을 생기게 하고 분노를 가라앉히는 자비관(慈悲觀). (3) 모든 사상(事象)이 인연에 의해 생겨난다는 도리를 관(觀)하여 어리석은 마음을 고치는 인연관(因緣觀). (4) 오온(五蘊 : 인간을 성립시키는 다섯가지 요소.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십팔계(十八界) 등을 관(觀)하여 사물에는 실체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는 계분별관(界分別觀). (5) 호흡의 수를 세어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식관(數息觀). 혹은 계분별관(界分別觀) 대신에 관불(觀佛)을 두고 오종관문(五種觀門)이라고 함. <四敎儀註 4권 ㊅ 32권 733中>
관(觀,162)-뉴사전 : ① 진리를 관(觀)하는 것. 마음이 고요하고 청정(淸淨)한 경지로 세계의 존재 그대로를 바르게 조망하는 것. 관념함. 관찰함. 마음이 고요한 관상(觀想). 명상(冥想). ② 수식관(數息觀)의 제4단계에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것. ③ 고구(考究)하는 것. 지혜로써 사물의 도리를 관지(觀知)하는 것. ④ 신역(新譯)에서 말하는 사(伺)와 동일. 자세한 생각. 미세한 사고(思考). 자세한 분별심. 불정지법(不定地法)의 하나. 각(覺) 또는 심(尋)의 반대. ⑤ 반성. ⑥ 걱정함. (고통을 걱정하지 않고 참음.) ⑦ …에 의해. …에 관해서. ⑧ 나타남. (해석예) 29종의 넓음(廣)을 아는 방법이라. (부처님이)보시다. 부처님의 지혜로써 보시는 것.
신념처(身念處,1511)-뉴사전 : 몸은 부정하다고 관하는 수행. 4념주(四念住)의 하나.→사념주
수념처(受念處,1423)-뉴사전 : (안 등의 육근(六根)으로부터 생기는) 수(受)는 고(苦)라는 것을 깊이 새겨 언제까지고 잊지 않는 것. 감각은 고(苦)라는 것을 관(觀)하는 수행. 사념처(四念處)·사념주(四念住)의 하나.→사념처→사념주
심념처(心念處,1543)-뉴사전 : 마음은 무상하다고 억념(憶念)하는 일. 마음을 무상하다고 관하는 수행. 4념처(四念處)의 하나.→사념처
법념처(法念處,812)-뉴사전 : 제법(諸法)은 무아(無我)라고 관(觀)하는 수행. 사념처(四念處)중 하나.
자아(自我,2194)-뉴사전 : 자신.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산, atman <法集要頌經 瞋恚品 ㊅ 4권 787上>
실체(實體,1539)-뉴사전 : ① 사물. 그것. 산, dravya ② 토대(土台).기반(基盤). 피난(避難)하고, 보호를 받는 장소. 기댈 곳. ③ 진실의 본체. <俱舍論 29권 9, 15 등>
무아관(無我觀,664)-뉴사전 : 모든 것은 무아(無我)라고 깨닫는 관법(觀法). 5정심관(停心觀)의 하나. 계차별관(界差別觀). 또는 육계관(六界觀)·계방편관(界方便觀)·석계관(析界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지·수·화·풍·공·식 등 6종의 원소가 가(假)로 모인 것이므로 어떠한 모양이나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 <大毘婆沙論 61권 ㊅ 27권 316下> <法苑珠林 72권 ㊅ 53권 837上>
별상념처(別相念處,861)-뉴사전 : 별상념주(別相念住)와 동일. <眞諦譯 俱舍論 16권 ㊅ 29권 271上·中 참조> <天台四敎儀 ㊅ 46권 776下>
별상념주(別相念住,861)-뉴사전 : 삼현(三賢)의 하나. 오정심위(五停心位)로부터 나아가 얻는 위(位). 신(身)은 부정(不淨), 수(受)는 불락(不樂), 심(心)은 비상(非常), 법(法)은 비아(非我)라고 관(觀)하여 사전도(四顚倒)를 타파하는 위(位). <大毘婆沙論 ㊅ 27권 193上> <俱舍論 23권 ㊅ 29권 23이하 참조>
별상관(別相觀,861)-뉴사전 : ① 신(身)·수(受)·심(心)·법(法)의 4가지를 부정(不淨)·불락(不樂)·비상(非常)·비아(非我)라 하여 각기 따로 관(觀)하고, 상(常)·락(樂)·아(我)·정(淨)의 사전도(四顚倒)를 벗어나는 것. 사념처관(四念處觀)중의 별상념처(別相念處). 범부(凡夫)의 위(位)에서 닦는 칠방편(七方便)의 제2. ② 상호(相好)의 하나 하나를 관상(觀想)하는 것. <往生要集 ㊅ 84권 53上>
총상념처(總相念處,2554)-뉴사전 : 소승삼현위(小乘三賢位)의 제3에 있어서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념처(四念處)를 각각 관(觀)한 후, 4개의 것 모두에 관해 비상(非常)·고(苦)·공(空)·비아(非我)라고 관하는 것을 말함. <眞諦譯 俱舍論 16권 ㊅ 29권 271上·中 참조>
사념처법(四念處法,백골로 돌아갈 육신,117페)-불교성전 : 부처님이 쿠루수의 서울 캄마싯담마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건지며 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이 있으니 곧 사념처법(四念處法)이다. 과거 모든 여래도 이 법에 의해 최상의 열반을 얻었고, 현재와 미래의 여래도 이 법으로 열반을 얻을 것이다. 비구는 그 몸(身)과 느낌(受)과 마음(心)과 법(法), 이 네 가지에 대해 똑바로 관찰하고 끊임없이 정진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써 세상의 허욕과 번뇌를 끊어 버려야 한다.
어떤 것이 몸을 바로 관찰하는 법인가. 비구가 숲속이나 나무밑 혹은 고요한 곳에서 몸을 바로하고 앉아 오로지 한 생각으로 호흡을 조절하되, 길게 들이쉬고 내쉴 때에는 그 길다는 것을 알고, 짧게 들이쉬고 내쉴 때에는 그 짧다는 것을 알아라. 온 몸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 마음을 다른 데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이 몸을 관찰하되 몸이 어디 갈 때에는 가는 줄 알고 머물 때에는 머무는 줄 알며, 앉고 누울 때에는 앉고 누웠다는 상태를 바로 보아 생각이 그 몸의 동작 밖에 흩어지지 않게 하여라. 어떤 사물에도 집착하지 말고 다만 이 몸 관찰하는 데에 머물게 하여라. 이와 같이 이 몸의 굴신과 동작의 상태를 사실대로 관찰하여 한 생각도 흩어지지 않게 되면, 몸에 대한 형상이 눈앞에 드러나 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이 세상 어떤 환경에도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이 몸이 애초에 무엇으로써 이루어졌는지 사실대로 관찰해야 한다. 이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 요소가 한데 어울려 된 것임을 밝게 보아야 한다. 솜씨 있는 백정이 소를 잡아 사지를 떼어 펼쳐 놓듯이 비구도 이 몸을 네 요소로 갈라 눈앞에 드러내 놓아야 한다.
숲속에 버려진 시체가 하루 이틀 지나면 부어 터지고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이 몸은 그렇게 되고 말리라고 알아야 한다. 그 형상이 눈앞에 역력하면 모든 허망한 경계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숲속에 버려진 시체의 백골, 한두 해 지나 무더기로 쌓인 백골, 다 삭아 가루가 된 해골을 보는 것과 같이 비구들도 그 몸을 주시하되, 이 몸도 저 꼴을 면치 못하리라고 관찰하면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게 될 것이다. 비구는 몸에 대해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때와 장소를 따라 그 느끼는 작용에 대해 어떻게 관찰할 것인가.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다. 괴로움을 느끼는 작용, 즐거움을 느끼는 작용,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는 작용이다. 즐거움을 누릴 때는 즐거운 줄 알고, 괴로움을 당할 때는 괴로운 줄 알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을 때는 또한 그런 줄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사실대로 관찰하고 타인의 느낌도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그 느낌이 눈앞에 나타난다. 느낌이 시시로 변해 고정된 괴로움이나 즐거움, 고정된 불고(不苦) 불락(不樂)이 없음을 알아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가 느낌에 대해 관찰하는 법이다.
또 어떤 것이 마음을 관찰하는 법인가.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면「이것이 탐심이구나」라고 알고, 탐심을 버리면 버린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뒤바뀐 마음, 넓은 마음, 좁은 마음, 고요한 마음, 산란한 마음, 해탈한 마음,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스스로 낱낱이 안팎으로 살피고,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을 관(觀)하여 눈앞에 대하듯 하면 세상의 어떤 집착이라도 놓아 버리게 된다. 이것이 마음을 바로 관찰하는 법이다.
끝으로 어떤 것이 관찰하는 것인가. 안으로 탐욕이 있으면 있는 줄 알고 없으면 없는 줄 알며, 또 탐욕이 일지 않았더라도 일어난 것으로 관하고, 일어났을 때에는 없어진 것으로 관하며, 이미 없어진 것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내는 마음, 졸음, 산란한 마음, 의혹 등도 안팎으로 관하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하여, 그것이 뚜렷하게 눈앞에 드러날 때에는 세상의 모든 집착을 버리게 될 것이다. 비구들, 누구든지 이 사념처법을 단 한달만이라도 법대로 닦으면 탐욕과 불선법(不善法)을 떠나 성인의 길에 들게 될 것이다. 이 사념처관은 중생의 마음을 깨끗이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건져내며, 고뇌와 슬픔을 없애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비구들은 이와 같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다들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