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탈(二解脫)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 慧解脫. 智慧로 일체의 煩惱障을 잘 여의어서 涅槃을 깨닫는 것. (2) 心解脫. 心識이 일체의 定障을 잘 여의어서 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얻는 것(成實論卷十).
참고
혜해탈(慧解脫) : 아라한의 하나.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참다운 지혜로써, 번뇌의 장애를 끊고 얻는 경계.
아라한(阿羅漢) : ① 범어 arhan의 音譯. 이것은 男性, 主格, 單數의 形이니, 原形은 arhat. 阿羅訶·阿囉呵·阿盧漢·遏囉曷帝라고도 쓰고, 略하여 羅漢·囉呵라고도 한다. 應供·應·殺賊·不生·無生·應眞·眞人이라고 번역한다. 보통 狹義로 풀이하여, 小乘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이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廣義로는 大乘·小乘을 통하여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應供이라 함은 供養을 받는데 응하는 이, 相應한 이, 공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이라는 의미인데,「供養云云」은 補足한 말로,「應」은 확실히 이 말의 번역이다. 應供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大應供이라 하고, 보통 佛陀의 異名이다. 殺賊이라 함은, 번뇌의 賊을 죽였다는 의미이며, 不生 또는 無生이라 함은, 영구히 열반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다시 미혹의 세계에 태어남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들 두 번역은 原語의 語義에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이를 應供·殺賊·不生의 三義를 阿羅漢의 三義라고 한다.
② 如來十號의 하나. 이 경우는 佛陀의 異名.
③ 四沙門果. 곧 聲聞四果중에서는 최후의 자리. 여기에 다시 向과 果를 나눈다. 그 果를 向해서 수행하고 있는 사이가 阿羅漢向이고, 확실히 그 果에 도달한 때가 阿羅漢果이다. 이 阿羅漢果의 聖者를 已達의 大德이라 한다. 이것은 최후의 理想세계로, 여기에 도달하면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다시 더 배워야 할 一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無學 또는 無學果라 하고, 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의 八聖道와 無學解脫·無學正智의 10종의 無漏法을 완성한다고 한다. 이것을 十無學支라고 한다.
④ 俱舍論권25에 의하면 아라한을 6종으로 분류해서, 6종 아라한을 세운다. 곧,
(1) 退法(또는 退相) 아라한(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으로부터 退失하기 쉬운 사람).
(2) 思法(또는 死相) 아라한(退失이 두려워서 自害하려고 생각하는 사람).
(3) 護法(또는 守相) 아라한(退失하지 않으려고 防護하는 자).
(4) 安住法(또는 住相) 아라한(防護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退失하지 않지만 또한 增進하기도 어려운 자).
(5) 堪達法(또는 可進相) 아라한(增進해서 빨리 다음의 不動法을 통달하는 자).
(6) 不動法(또는 不壞相) 아라한(전혀 退失하지 않는 자). 이들 중에서 앞의 5는 성품이 遲鈍한 자(鈍根)로 時解脫이라고도, 時愛心解脫이라고도 하고, 뒤의 1은 성품의 예리한 자(利根)로 不時解脫이라고도, 不動心解脫이라고도 한다. 또 아울러서 2종 羅漢이라고 한다. 時解脫은 좋은 緣이 있는 때를 기다려서 定에 들어가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時解脫은 때를 기다리지 않고 入定하여 해탈하는 자, 時愛心解脫은 이미 얻은 아라한의 깨달음을 항상 애호해서 번뇌를 해탈하는 자, 不動心解脫은 번뇌 때문에 아라한의 깨달음에서 退失하지 않고 해탈하는 자를 의미한다. 또 不動法아라한 중에서, 본래 利根인(예리한 성격자)을 不退(法)(또는 不退相) 아라한이라 하고, 수행의 힘에 의해서 不動法아라한에 나아간 자를 不動法아라한이라고 하여 둘로 나누고, 이것을 앞의 5에 더해서 7종 아라한이라고 하며, 不動法아라한을 不動아라한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다시 緣覺과 佛을 더하여 9종 아라한 또는 九無學이라고 한다.
⑤ 成實論 권一, 中阿含經 권十三에는, 緣覺·佛 대신 慧解脫·俱解脫을 더한 또 다른 형의 9종 아라한(九無學)을 說하고 있다. 그 중 慧解脫은 지혜의 힘에 의해 번뇌를 해탈한 아라한을 말하고, 俱解脫은 慧解脫人이 다시 滅盡定을 얻은 경우를 말한다. 이것을 俱解脫이라고 일컫는 것은, 滅盡定을 얻은 것이 心解脫을 의미하고 있고 따라서 마음과 慧의 兩(곧 俱인)해탈을 얻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慧解脫과 俱解脫을 2종 羅漢이라 하고, 여기에 無疑解脫을 더하여 3종 羅漢이라고 한다. 無疑解脫이라 함은, 俱解脫 중에서 일체의 文義에 통달하여, 四無礙解를 얻은 자를 말함.
⑥ 天台宗에서는 아라한이 不淨觀을 닦는 경우 그 對境의 차이를 따라 壞法·不壞法의 2종 羅漢으로 나눈다.
지혜(智慧) : 六波羅蜜의 하나. 일체의 諸法을 통달하여 得失과 邪正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智慧山, 智慧海 등에 비유함. 智 · 慧 두글자를 특히 구별하여 쓸 경우에는 智는 解了, 慧는 照見의 뜻.
번뇌장(煩惱障) : 번뇌장은 惑障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곧 聖道를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말함.
① 俱舍論 卷十七, 卷二十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數行의 것으로) 無漏의 慧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를 煩惱障이라고 하고, 煩惱障을 여의어 慧解脫을 얻어도 滅盡定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解脫障(定障)이라고 한다. 前者는 染汚無知를, 後者는 不染汚無知를 體로 한다고 볼 수 있다. 大毘婆沙論 卷百四十一에서는, 煩惱障은 染汚無知, 所知障은 不染汚無知라고 하는 것처럼 각각 四正斷의 前二 · 後二로 끊어진다고 한다.
② 成唯識論 卷九에서는, 중생의 身心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煩惱를 煩惱障, 業을 일으키어 三界(迷의 세계)에 나게 하는 작용이 없지만, 알아야 할 대상을 덮어서 正智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所知障(智障)이라고 한다. 이 二障은 어떤 것이나 薩迦耶見을 비롯해서 百二十八의 근본번뇌 및 二十의 隨煩惱를 體로 한다. 그 가운데서「실체의 사람, 실체의 중생이 있다」고 하며 나를 집착하는 [我執의] 면을 煩惱障이라고 하며,「사물에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法을 집착하는 [法執의]면을 所知障이라 한 것으로서, 동일한 번뇌의 二面이다. 그러므로 煩惱障은 我執을 근본으로 하고, 所知障은 法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그 작용의 특징에서 말하면 煩惱障은 열반을, 所知障은 菩提를 장애한다. 곧 煩惱障은 열반을 장애하는 正障이며 所知障은 이 正障에 힘을 주어 장애시키는 兼障이기 때문에 所知障만으로는 열반을 장애하는 능력이 없다. 또 煩惱障을 肋緣으로 하여 分段生死를 받고, 所知障을 肋緣으로 하여 變易生死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二乘은 煩惱障만을 끊은 자리(位)를 理想의 果位로 하지만 보살은 二障을 다 같이 끊어서 佛果를 얻는 것을 理想으로 한다. 그것은 보살에 있어서는, 所知障은 三界의 果報를 이끄는 일은 없지만 곧잘 無漏業을 도와서 變易生死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③ 大乘義章卷五에서는 五住地의 惑에 대해서 前四를 煩惱障, 최후의 無明住地의 惑을 智障이라 한다 등의 세 주장을 들고 있다.
④ 世親의 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上에는 見思의 惑을 煩惱障이라 하고, 이를 끊고 얻는 無諍三昧에 집착하는 것을 三昧障이라 했다.
열반(涅槃) : 滅 · 寂滅 · 滅度 · 寂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 · 樂 · 我 · 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 · 恒 · 安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 · 恒은 항상, 安 · 快樂은 樂으로, 不老 · 不死는 我에, 淸淨 · 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의 二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緣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의 3열반을 세운다.
③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敎에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의 相)을 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④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薪은 佛身 또는 機緣, 火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또 影像을 涅槃像, 그날(2월 15일)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死를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심해탈(心解脫) : 범어 citta-vimukti의 번역. 解脫이란 마음이 여러 가지 束縛에서 풀리는 것을 말하고, 원시적인 의미에선 解脫하는 것이 心임으로 心解脫, 智慧에 의하여 解脫함으로 慧解脫이라 했다. 뒤에 術語化되어 無明의 滅을 慧解脫, 渴愛의 滅을 心解脫이라고 하게 되었다. 다시 心解脫이 禪定과 結付되어 定에 의해 定障을 해탈하여 無貪과 相應하는 것을 心解脫이라 하고, 여기에서 煩惱障을 해탈하여 無癡와 相應하는 慧解脫보다 上位에 두고 俱解脫이라 한다. 이렇게 해서 俱舍宗에선 阿羅漢에 慧解脫·俱解脫(滅盡定을 얻은 자)의 2종류가 있다 한다. 또 無量心解脫·無所有心解脫 등 여러 가지의 心解脫을 설명하고 있다.
심식(心識) : 小乘의 俱舍에서는 心과 識을 同體異名이라고 보지만, 大乘의 唯識宗에서는 그것을 別體로 보았다. 곧 唯識에서는 제8識을 心, 前5識과 제6意識은 識이라 한다.
정장(定障) : 해탈장(解脫障)→二障의 하나. 또는 定障. 해탈 곧 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종의 不染汚無知를 일컫는다. 멸진정은 心念이 아주 없어져서 여러 가지 장애에서 벗어나므로 해탈이 定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하는 번뇌를 解脫障이라 한다.
멸진정(滅盡定) : 滅受相定이라고도 하고 滅盡三昧라고도 일컬을 때가 있다. 心不相應行法의 하나. 心과 心所(마음의 작용)를 모두 단절한 定으로서 無想定과 더불어 二無心定의 하나로 불리운다. 無所有處의 번뇌를 떠난 聖者가 그 定의 경지를 無餘涅槃의 고요함에 견주어 無心의 寂靜境을 즐기기 위해 들어가는 定이니, 이 定을 닦음으로서 無色界의 第四天인 有頂天에 태어난다고 한다. 有部에서는 이 定을 그 실체가 따로 있다고 주장하나 經部나 唯識宗에서는 假的인 것으로 본다. 또 唯識宗에서는 이 定으로는 阿賴耶識은 끊을 수 없다고 說하며, 分別論者도 想과 受는 滅할 수 있지만 細心은 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실론(成實論) : 16권(혹은 20권). 인도의 訶梨跋摩가 저술하고, 姚秦의 구마라집이 번역함. 성실종의 근본 성전. 1부 5편 202장으로 되었음. 우주의 모든 현상은 假로 존재한 것이므로 결국 空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論定하고, 이 觀으로 말미암아 四諦의 실다운 이치를 체달한다 하며, 八聖道에 의하여 온갖 번뇌를 멸하고 無餘涅槃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함. 양나라의 法雲·智藏·慧敏의 3대법사는 대승론이라 하고, 智義·吉藏은 소승론이라 하고, 道璿·元照는 分通大乘論이라 함.
하리발마(訶梨跋摩) : 범어 Harivarman. 줄여서 跋摩라고도 한다. 三藏의 이름. 번역하여 獅子鎧·獅子鉀이라 함. 成實宗의 개조. 중인도 바라문족 출신으로, 처음 數論派에서 배우고, 뒤에 薩婆多部의 究摩羅陀의 문하에서 發智論을 듣고, 다시 摩訶僧祇部에 들어가 巴連弗邑의 대승을 겸한 學僧에게 가서 여러 해 동안 연구하여 깊은 뜻을 통달하고, 成實論을 저술함. 또 마갈타국왕의 요청으로 승론파의 사람들과 변론하여 그들을 굴복시켰음.
장(障) : 障碍 · 覆蔽의 뜻. 열반의 깨달음을 장애하는 번뇌를 가리키는 말.
① 二障. (1) 俱舍宗에서는 慧를 장애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障으로, 定을 장애하므로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解脫障(定障이라고도 함)이라고 한다. 전자는 染汚無知이며 후자는 不染汚無知다. (2) 煩惱障과 所知障.
② 三障. 三重障.
③ 四障. 闡提障(善根을 근원적으로 단절하여 成佛할 수 없는 惡衆生 곧 一闡提가 佛法을 믿지 않는 것) · 外道障(佛敎 이외의 道를 믿는 外道가 我見을 집착하는 것) · 聲聞障(聲聞이 世間의 苦를 두려워하는 것) · 緣覺障(緣覺이 대자비심을 일으키지 못하여 利他行을 행하지 않는 것)의 넷으로 佛性論 卷二에 있음. 또 惑障(煩惱) · 業障(惡業) · 報障(果報) · 見障(邪見)의 넷을 들기도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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