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涅槃)이란?

열반의 바른 이해

근와(槿瓦) 2015. 7. 18. 00:45

열반의 바른 이해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열반은 불교 수행의 최고 경지를 표현하는 말이지만, 그 언어적 인상은 적극적이라기보다는 소극적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생의 맹목적 의지라고 할 수 있는 탐 · 진 · 치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교에서는 열렬한 구도를 위해서 재가(在家)보다는 출가(出家)를 권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불교는 염세종교라든가 허무적멸(虛無寂滅)의 도라는 평을 종종 들어 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과연 열반의 참다운 뜻을 이해한 것일까.

 

선과 악은 성질이 상반되므로 한 인간의 행위 위에 동시에 나타날 수는 없다. 악이 행해지고 있을 때는 선은 있을 수 없고, 선이 행해지고 있을 때는 악이 있을 수가 없다. 선과 악의 이러한 상반성은 악을 끊으면 곧 선이 되고, 선을 끊으면 곧 악이 된다는 판단을 끌어낸다.

 

그런데 불교의 열반은 탐 · 진 · 치라는 세 가지 악한 의업이 멸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무탐 · 무진 · 정견(無癡)의 세 가지 선한 의업이 곧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열반의 언어적 표현은 비록 소극적이지만 사실은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열반의 적극적 의미에 관한 이러한 해명에 대해서 다시 다음과 같은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선과 악의 중간상태 즉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상태가 있을 수 있으니, 열반은 바로 그러한 비활동적 중간상태가 아니겠느냐고. 이런 견해도 불교의 십업설에서 말하는 선악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십업설에서는 선악의 중간상태를 시설함이 없이 선악을 완전히 상호대립적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불교에서 십업설을 따로 시설함이 없이 십악업의 반대개념을 갖고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데에서 엿볼 수가 있다. 즉 십선업은 불살생 · 불투도 · 불사음 · 불망어 · 불양설 · 불악구 · 불기어 · 무탐 · 무진 · 정견(무치)의 열 가지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잡아함 권 15>. 따라서 십악업의 멸은 곧 십선업의 발생을 의미한다.

 

열반의 이러한 적극적 의미를 우리는 사제 팔정도에서는 더욱 뚜렷이 할 수가 있다. 팔정도가 완성된 아라한의 경계에서는 탐 · 진 · 치의 일체 번뇌가 영진(永盡)한다고 한다. 이것 또한 무탐 · 무진 · 정견의 발생을 의미함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사제의 집제와 멸제는 십이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에 각각 해당되는데 십이연기의 최초에 위치하고 있는 무명은 명과 정반대의 개념이다. 따라서 무명의 멸진은 곧 명의 발생으로 전환하며, 우주적인 대아의 눈부신 활동이 거기에 전개될 것이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밝게 비치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석존은「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계신다. “내가 사성제의 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을 바르게 사유함에, 눈이 생하고 지(智)가 생하고 명(明)이 생하고 각(覺)이 생하였다.”<잡아함 권 15>. 열반의 적극적 의미가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열반은 또 인간의 사후에야 실현되는 경계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경전에도 석존의 죽음을 반열반(般涅槃, 圓寂)이라고 한다. 반열반은 완전한 열반이란 뜻이다. 사과(四果)를 얻은 사람의 죽음에도 그런 용어가 사용된 예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열반이라는 말이 이차적으로 전용된 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사후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해주고 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십업설에서 선업은 선취에, 악업은 악취에 수생(受生)한다고 설하고 있음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다.

 

그러나 생사에 결박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을 단절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러한 사람에게 재생(再生)이 있다고는 못할 것이다. “내 생은 다했고 범행(梵行)은 섰으며, 할 바는 다 하였고 후유(後有)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자증(自證)의 선언(記別)이 경전에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반열반은 바로 이런 도인의 죽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열반이 죽음을 가리킬 경우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 전용에 의한 것이지 그 본래의 뜻은 아니다. 열반의 참다운 뜻은 현재의 상태에서 생사로부터 해탈을 그대로 체득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라한은 현법(現法)에서 해탈한다고 설해져 있으며, 석존은 또 다음과 같은 교설을 베풀고 계신다. “현재의 법에서 반열반함이란 어떤 것인가. 노병사(老病死)를 염리(厭離)하고 욕심을 버리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면 이것을 이르되 현재의 법에서 반열반을 얻었다고 한다.”<잡아함 권 15>

 

모든 악이 멸하면 일체는 선이 되고 모든 사(邪)가 파(破)하면 일체는 정(正)이 된다.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였던 일체는 곧바로 상(常) · 낙(樂) · 아(我) · 정(淨)의 일체로 전환한다. 열반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의 전개, 생명의 약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전 : 불교학개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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