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념(有念)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구체적인 모습. 행상이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여 觀을 닦아 마음에 인정하는 것을 有念. 대상의 相을 초월한 眞如의 本性을 觀하여 마음까지도 여의는 것을 無念이라고 한다. 이것을 聖道門의 有念無念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산란한 생각을 따라 마음을 닦는 散善을 有念, 마음을 하나로 가라앉혀 닦는 定善을 無念이라 하는 것은 淨土門의 有念無念이다.
참고
행상(行相) : 心識의 각자 고유한 성능을 行相이라 함. ① 소승에서는 주관의 인식 대상, 곧 객관의 사물이 주관인 마음 위에 비친 影像을 말한다. ② 대승에서는 주관의 認知하는 작용을 말하니 곧 마음에 비친 객관의 影像을 인식하는 주관의 작용. ③ 隨行과 戒相. ④ 수행 방법의 모습을 말함.
관(觀) : 범어 vipasyana의 번역. 毘鉢舍那, 毘婆舍那, 毘波奢那로 음역하며, 觀察이라고도 한다. 또, 智慧로 객관의 對境을 照見한다는 뜻인데, 觀念과 同義로 쓰일 때도 있다.
① 九想觀이나 日想觀처럼 종종의 想을 마음에 떠올려서 觀하는 初步的인 觀을 觀想이라 한다. 天台宗에서 말하는 觀은 一念三千 一心三觀처럼 자기의 心의 本性을 觀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觀心이라고 한다. 觀은 悟境에 통하는 道이므로 法相宗·華嚴宗에서는 이것을 觀道라고 한다. 觀의 對境을 觀境, 觀하는 智慧를 觀智, 觀하는 방법을 觀門·觀法이라 한다. 또 觀은 止(범어 samatha. 奢摩他 心을 하나의 對境에 집중시켜 생각을 쉬게 하는 것)에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中道觀 등의 觀은 止와 觀이 잘 조화된 상태(止觀均行)를 나타내는 捨(범어 upeksa)의 의미와 附合한다. 또 觀에는 禪定(범어 dhyana)의 의미도 있으므로 禪定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出觀·出定이라고 한다.
② 觀의 내용은 동일하지는 않지만, 諸法을 分析하여 空한 것으로 觀하는 小乘 및 成實宗의 觀法을 析空觀(析色入空觀·生滅觀)이라 하며, 이에 대해 大乘의 觀法은 因緣을 따라 일어난 諸法의 當體에 卽一해서 現象界 그대로 空한 것으로 體達하는 觀이므로 이것을 體空觀(體色入空觀)이라고 한다. 요컨대 觀은 心을 하나로 專心하여 智慧로써 佛과 法의 일정한 대상을 觀察하고 念思하여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다. 眞言宗에서는 悉曇五十字母의 첫째 字인 阿字에는 本初의 뜻과 不生의 뜻이 있다고 하며, 이 阿字 위에 우주·인생을 該攝總括시켜 그 本不生의 理를 觀하는 것을 阿字觀이라고 했다. 往生要集에는 佛의 相好光明을 총괄적으로 觀하는 것을 總相觀이라 하고 華座를 비롯해서 白毫 등 佛身의 하나하나의 相好를 별개적으로 觀하는 것을 別相觀이라 했다. 三論宗에서는 八不中道의 觀은 空에도 有에도 집착하지 않는 無所得中道의 正觀이란 뜻으로 無得正觀이라 한다. 眞如의 理를 觀함에 있어 名字의 相, 心念의 相, 곧 名相을 여의어 眞如의 경계에 冥合하는 觀法을 理觀 또는 無相離念이라 하며, 이와 반대로 佛이나 淨土를 觀함에 있어 差別的이고 具體的인 相을 세워서 여기에 마음을 두고 觀想하는 것을 事觀·立相住心이라 한다. 占察經에서는 唯識觀과 實相觀을 二종의 觀法으로 든다. 十二因緣의 理를 觀하는데 淺深의 구별이 있으니, 聲聞의 觀은 가장 低劣한 觀이므로 下智觀, 緣覺의 그것은 中智觀, 菩薩의 그것은 上智觀, 佛의 觀은 가장 殊勝하므로 上上智觀이라 일컬었으며 이것을 四乘의 觀智라고 했다. 懺悔滅罪의 방법으로서 (1) 生死(迷惑의 世界)에 流轉하는 것은 자신의 罪障의 因緣 때문이라고 觀하고 (2) 그 인연에 따라서 生死에 流轉하는 자신의 不淨한 果報를 觀하며, (3) 佛性을 開顯해야 할 자신임을 觀하며, (4) 如來의 몸에 具足하고 있는 利他哀愍의 德을 觀하는 것을 四種觀行이라고 한다.
상(相) : 표·특징·특성·또는 상태·樣相·形相등의 뜻. 때로는 뒤의 것의 의미로, 體(本體)·用(작용)의 對語로 쓰이며,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것 자체만이 가지고 있는 相을 自相, 다른 것에도 공통하는 相을 共相이라고 한다. (自相은 또 自性 곧 體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그 밖에 總相(總括的 總體的인 大體의 相)과 別相(차별된 부분적 특수적인 相), 同相과 異相 등의 二相으로 나누어, 因明(論理學)에서는 因의 三相을 설함. 有爲法의 相을 有爲相이라고 하고, 여기에 生·住·異·滅의 四相의 구별이 있어, 화엄종에서는 六相圓融의 說을 세운다.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如 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의 本體를 일컫는다.
① 阿含에서는 緣起의 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 · 道支眞如 · 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善 · 惡 · 無記의 三性이나 八聖道나 緣起의 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相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의 實性이라고 하고 그 體는 一味이지만 相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體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善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減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 · 法界 · 法性 · 不虛妄性 · 不變異性 · 平等性 · 離生性 · 法定 · 法住 · 實際 · 虛空界 · 不思議界의 十二名이라 함.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에는, 眞如 · 空性 · 無相 · 實際 · 勝義 · 法界의 六名,
法華玄義卷八下에서는, 實相 · 妙有 · 眞善妙色 · 實際 · 畢竟空 · 如如 · 涅槃 · 虛空 · 佛性 · 如來藏 · 中實理心 · 非有非無中道 · 第一義諦 · 微妙寂滅의 14종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一如 · 一如法界 · 一法界 · 眞如實相 · 眞如一實 · 眞實際 · 眞勝義諦등으로도 이름하며 그 모습이 절대평등함을 뜻하며 一相이라고도 한다.
解深密經卷三에는 七眞如를 설하고,
(1) 緣起의 理法을 流轉眞如.
(2) 諸法의 實性을 實相眞如.
(3) 萬法唯識의 理法을 了別眞如.
(4)~(7) 고 · 집 · 멸 · 도의 四諦를 차례로 安立眞如 · 邪行眞如 · 淸淨眞如 · 正行眞如라고 하는데 實相眞如이외의 6종을 진여라고 일컫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 각각의 理法이 그 자체 그대로 영원불변 하므로 진여라고 한다는 설과 그 理法자체를 진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實相眞如의 나타난 모습의 種別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③ 法相宗說. 成唯識論卷九에서는 진여란 허망한 분별법을 여읜 人法二無我의 본성으로 三性 가운데 圓性實性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宗에서는 모든 현상은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여는 현상을 초월한 絶對靜的한 것으로 그 자체는 결코 현상이 될 수 없는 것(眞如凝然不作諸法)이라고 한다. 또 成唯識論卷十에는 보살은 初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진여의 진리를 깨닫고 차례로 十地에 이르기까지 그 깨달음의 내용이 깊어지게 되기 때문에 十眞如의 구별을 세운다. 곧,
(1) 遍行眞如. 널리 萬有에 미치는 二空의 이치.
(2) 最勝眞如. 戒를 몸에 완전히 익힘으로 해서 깨달은 진여로 거짓이 없는 德을 구족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최승이라고 한다.
(3) 勝流眞如. 진여로부터 流出한 敎는 그렇지 않은 다른 교보다 수승하다는 뜻이며 그 교의 근본이 되는 진여란 뜻.
(4) 無攝受眞如.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
(5) 類無別眞如. 생사와 열반 등의 구별이 없는 迷悟一如의 뜻.
(6) 無染淨眞如. 진여는 본래 染淨을 초월했다는 뜻.
(7) 法無別眞如. 진여는 생멸의 相을 여의었으므로 諸種의 敎에 갖가지로 說示되어 있지만 그 體는 하나란 뜻.
(8) 不增減眞如. 번뇌의 더럽힘을 끊었지만 줄지 않고 청정한 법을 닦지만 더하지 않는, 집착을 여의었다는 뜻. 대번에 이 진여를 깨달으면 자유자재로 종종의 모습이나 국토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相土自在所依眞如라고도 한다.
(9) 智自在所依眞如. 四無碍智에 의해 자재를 얻는다는 뜻.
(10) 業自在等所依眞如. 모든 神通 · 總持 · 禪定 등에 있어서 身 · 口 · 意의 활동의 자재를 얻는다는 뜻.
이상의 10은 차례로 初地로부터 十地까지 十波羅蜜을 행하여 十重障을 끊고 깨닫는다고 한다. 또 人無我의 진리를 人空眞如, 法無我의 진리를 法空眞如, 이 둘을 합해서 二空眞如라고 하며 二乘은 人空眞如만을 깨닫지만 보살은 二空眞如를 깨닫는다고 한다.
④ 地論宗에서는 제八阿賴耶識, 攝論宗에서는 제九阿摩羅識은 그 자체가 청정한 自性淸淨心 곧 진여라고 하고, 그 識이 무명의 熏習을 받아서 染淨의 諸現象을 나타낸다고 한다.
⑤ 기신론에서는 진여를 중생심의 본체라고 하고 그것은 언어나 사유를 초월해서 여의었으므로 離言眞如, 그것을 억지로 언어로 표현한 것을 依言眞如, 둘을 합하여 二眞如라고 하며, 依言眞如에 있어서 그 본체가 迷惑된 마음을 여의고 空한 점을 如實空(空眞如)이라고 한다. 또 중생심 곧 진여에는 절대부동의 心眞如門과 그것이 무명의 緣에 의해서 染淨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心生滅門이 있어서 不動인 진여를 不變眞如, 그것이 緣을 따라 나타나는 染淨의 현상을 隨緣眞如라 하며 합해서 二眞如라라 한다. 일반으로 萬有가 生起하는 방법을 진여의 不變 · 隨緣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을 眞如緣起(如來藏緣起)라고 한다. 또 이 二眞如라고 하는 같은 의미의 말에 淸淨眞如 · 染淨眞如, 혹은 非安立眞如 · 安立眞如(安立이란 만유를 내고 그 각각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가 있다.
⑥ 화엄종에서는 본체 즉 현상을 性起說에 입각해서 진여 그대로가 萬法, 萬法 그대로가 진여라고 했다. 또 진여를 一乘眞如와 三乘眞如로 나누고 前者에 別敎眞如 · 同敎眞如, 後者에 頓敎眞如 · 漸敎眞如가 있다고 하며, 이것은 진여의 이해의 방법이 諸敎說에 따라서 같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⑦ 천태종에서는 性具說을 세워서 진여에도 본래부터 染淨善惡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⑧ 諸佛의 自性인 진여를 無垢眞如 혹은 出纏眞如라고 하고 중생의 體性인 진여는 번뇌에 더럽혀 있으므로 有垢眞如 혹은 在纏眞如라 하며 둘을 합하여 兩垢眞如라 한다.
⑨ 釋摩訶衍論卷三에는 始覺 · 本覺의 二智를 깨달음의 理로 하여 性眞如와 虛空의 理에 입각하여 淸淨虛空의 理라는 뜻으로 無障碍義 · 周徧義 · 平等義 · 廣大義 · 無相義 · 淸淨義 · 不動義 · 有空義 · 空空義 · 無得義의 十義가 있다고 하고 이것을 性虛空十義라고 한다.
본성(本性) : ①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타고난 그대로의 것. 본래 고유의 성질. 본래의 모습. ② 만유의 본성을 말함.
성도문(聖道門) : 불교를 크게 둘로 나누어 이 세상에서 성자가 되어 깨달음을 얻는 길(此土入聖)과 阿彌陀佛의 힘으로 그 淨土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는 길(彼土入證)로 구별한다. 此土入聖을 聖道門, 彼土入證을 淨土門이라 한다. 이 구별은 원래 唐의 道綽이 安樂集卷上에 서술했다. 淨土敎에서는 이 說에 따라 佛敎를 聖道 · 淨土의 2門으로 나눈다.
산란(散亂) : 대상에 대해서 마음을 산란케 하는 정신작용. 唯識宗에서는 心所(마음의 작용)라 하고, 隨煩惱의 하나로 파악한다. 梁譯 攝大乘論釋 卷九에는 다음의 5종 산란을 說함.
(1) 自性산란(前五識을 대상으로 산란하게 달리는 성질).
(2) 外산란(의식이 대상을 가지가지로 分別하는 작용).
(3) 內산란(마음으로 高下를 揀擇取捨하고 생각마다 변화하여 사고의 내용이 일정하지 않은 마음).
(4) 麤重산란(我 · 我所에 집착하는 마음).
(5) 思惟산란(大乘을 버리고 小乘을 思念하는 마음).
雜集論 卷一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산란을 들고 있다.
(1) 自性산란.
(2) 外산란.
(3) 內산란.
(4) 相산란(僞善을 해서 內心이 편안치 않은 것).
(5) 麤重산란.
(6) 作意산란(思惟산란과 같음).
산란(散亂) : ① 흩어져 어지러움. ② 번뇌로 인하여 정신이 어지러움.(국어사전)
산선(散善) : 散亂心으로 짓는 善. 觀無量壽經의 16觀 가운데 앞의 13觀을 定善이라 하고, 뒤의 3觀을 散善이라 함. 諸惡莫作 衆善奉行하는 것을 요지로 함.
정선(定善) :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고 닦는 善根. 정토종의 근본 경전 중의 하나인 <觀無量壽經>에 十六觀을 말하였는데, 前 十三觀으로 淨土의 國土와 聖衆 등의 모양을 觀想하는 것을 定善이라 함.
십육관(十六觀) : 觀無量壽經의 說. 十六觀法·十六觀門이라고도 함. 아미타불의 몸이나 淨土의 모습을 마음에 떠올림에 의해서, 그 淨土에 태어날 수가 있다고 하여, 여기에 16종의 觀法이 있다.
(1) 日想觀. 태양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極樂이 西쪽에 있는 것을 생각한다.
(2) 水想觀. 이 세상의 물이나 얼음의 아름다움에 비기어, 極樂 大地의 상태를 생각하여 떠올린다.
(3) 地想觀. 水想을 관하는 것에 의해서 분명하게 極樂의 大地를 생각한다. (4) 寶樹觀. 極樂에 있는 나무의 不思議한 작용을 생각한다.
(5) 寶池觀. 極樂의 못(池)물을 생각한다.
(6) 寶樓觀. 極樂에 있는 5백억의 건물을 생각한다. 이 생각을 이루어 나갈 때는 (1)~(5)의 觀法이 곧바로 성취되기 때문에 總觀이라고도 한다.
(7) 華座觀. 아미타불이 앉아 계신 연꽃의 臺座를 생각한다.
(8) 像觀. 佛像을 보고 아미타불의 모습을 마음에 떠 올린다.
(9) 眞身觀. 아미타불의 참다운 모습을 생각한다. 이 생각을 성취하면 모든 부처를 뵈올 수가 있다.
(10) 觀音觀. 아미타불을 따르는 보살중에서 觀世音에 대해서 생각한다. (11) 勢至觀. 같이 大勢至에 대해서 생각한다.
(12) 普觀. 널리 淨土의 불·보살·國土를 생각한다.
(13) 雜想觀. 이상과 같은 眞佛·眞菩薩의 觀想을 할 수 없는 자가 1丈 6尺의 아미타불의 像을 보고, 겸하여 大身·小身·眞佛·化佛 등을 두루 관한다.
(14) 上輩觀·(15) 中輩觀·(16) 下輩觀. 중생이 제각기의 능력이나 성질의 잘나고 못남에 따라서 거기에 적당한 修行을 하여 極樂에 태어나는 모양을 생각한다. 일반적으로는, 上·中·下의 三輩觀[(14)~(16)]에 說하는 修行은 일상적인 행위(散善)인데, 이것을 닦아서 往生하는 사람의 상태를 觀하는 것이 三輩觀이기 때문에, 16觀을 觀想하는 그 일은, 마음을 통일하여 행하는 定善이라고 한다.
정토문(淨土門) : 아미타불의 힘에 의해 극락정토에 일단 往生하여 깨달음을 얻는(곧 彼土入證)법을 淨土門이라 하며, 이에 대해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어 聖者가 되고자 하는 此土入證의 宗門을 聖道門이라 한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범어 Amitabha Buddha, Amitayus Buddha. 대승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한분. 阿彌陀婆(無量光, amitabha)·阿彌陀庾斯(amitayus, 無量壽)라 음역한다. 이 중에서 婆(abha)는 光明의 뜻이며, 庾斯(ayus)는 壽의 뜻이다. 또는 無量淸淨佛·無量·阿密㗚多(Amrta, 甘露)·盡十方無碍光如來라고도 한다. 阿彌多·阿弭跢·阿弭嚲라고도 쓰며 서방극락세계의 敎主의 이름이다. 이 부처님과 그곳의 극락정토를 주로하여 無量壽經·觀經·阿彌陀經에 說하며, 화엄·법화·열반 등의 대승경전 이외에도 2백 수 십부의 경전에 설해지고 있다.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世自在王佛의 감화를 받은 法藏이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를 기원. 또 48원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장구한 수행을 지나 성불하였으니 이가 바로 아미타불이다. 오랜 옛적에 성불한 아미타불(本佛)에 대하여, 이 부처님을 10겁 전에 성불한 아미타불(迹佛)이라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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