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사(無想事)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二十四不相應法의 제7로 無想果와 같은 말이다. 事는 果를 말한다. 無想定에 들기 전에 無想果를 구하여 熏한 種子가 無想果를 불러오고 이에 의하여 麁動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참고
이십사불상응법(二十四不相應法) : 俱舍宗에서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고 心作用도 아니면서 그들과 교섭이 있는 법. 곧 不相應法을 14로 분류하고, 實有한 것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唯識宗에서는 24로 분류하여 물질과 정신과 心作用에 假立하는 假法이라 한다. 得·命根·衆同分·異生性·無想定·滅盡定·無想事·名身·句身·文身·生·老·住·無常·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方·時·數·和合性·不和合性.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 心不相應行法의 약어. 心不相應行蘊·非色非心不相應行(法)·不相應行이라고도 한다. 色·心·心所·無爲의 다섯 가지 중에서 第四位에 열거된다. 心과 相應치 않는 行蘊이란 뜻. 有爲法 중에 色(물질적존재)에도 心(정신)·心所(정신작용)에도 속하지 않는 것. 有部에서는 實體的으로 이해한 일종의 세력 능력 등을 말한다. 俱舍論 卷四에는, 得·非得·衆同分·命根·無想果·無想定·滅盡定·生·住·異·滅(이상의 四)·名·句·文의 十四不相應行法을 열거하고 있다. 瑜伽論 卷三 등에서는 諸法간의 관계나 성질을 포함시켜서 위에 든 十四法 속에 非得·異·滅의 三을 빼고 異生性·老·無常·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時·方·數·和合性·不和合性을 더하여 二十四不相應行法을 주장하고 있다. 전자는 小乘系統에 속하는 說이다. 이외에 十六·十五·十四(非得 대신에 凡夫性을 더한다)法을 주장하는 說도 있다. 후자는 大乘系統에 속하는 說로 二十三을 주장하기도 한다. 經部나 大乘에선 이를 거짓된 施設로 假有의 法이라고 하지만 有部에서는 實有의 法이라고 한다.
무상과(無想果) : 14不相應行法의 하나. 色界四禪天의 제4禪에 8天이 있고, 그 중 제3의 廣果天에 無想天이 있는데, 이 無想天은 無想定을 닦아 얻은 과보로 태어난다고 한다. 이 하늘은 처음 날 적과 죽어서 다른 곳에 태어나려고 할 때만 마음이 있고 그 하늘의 수명인 5백大劫 동안에는 心王 · 心所가 모두 없어져 몸만 있을 뿐이므로, 마치 無情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無心의 位를 말한다. 또는 無想天에 태어난 이가 받는 無意識한 상태. 異敎徒 가운데 이것을 涅槃이라고 생각하는 派가 있다.
과(果) : 因 곧, 原因을 따라서 일어나는 결과를 일컬음. 有部宗이나 唯識宗에선 五果로 분류한다.
(1) 等類果. 善因으로부터 생기는 善果, 惡因으로부터 생기는 惡果처럼 因과 同質의 果를 일컬으며, 六因중의 同類因과 遍行因에서 생기는 果를 가리키고 習果라고도 한다.
(2) 異熟果. 善, 不善의 業因 즉 異熟因으로부터 생기는 無記(非善非不善)의 果를 말한다. 因과 성질이 다른 成熟한 異란 뜻. 또 報果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習果와 報果를 합해 二果라고도 한다.
(3) 士用果. 俱有因 · 相應因의 果이며, 因이 강한 세력을 男子(士夫)의 동작(用)에 비유해서 士用이라 한 것이다. 士用的인 因에 의해서 생긴 果란 뜻. 곧 동시의 因果를 말한다.
(4) 增上果. 자기 자신(主體)을 제외한 모든 有爲法을 能作因이라 하고, 이 능작인에 의해 생긴 果를 말한다. 果에 대해 힘을 강하게 주는 因에 의해서 생긴 果란 뜻. 이상 四果는 有爲法이므로 有爲果라 한다.
이에 대해 (5) 離繫果는 無爲果가 된다. 離繫란 번뇌의 속박을 여읜 것을 뜻하므로 離繫果는 擇滅 곧, 열반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擇滅은 無爲法이어서 因등을 갖지 않으므로 不生不滅이며, 따라서 離繫果는 道因에 의해 생기는 果는 아니지만 道는 擇滅을 얻기 위한 得(離繫得)을 내는 因이 되고, 동시에 擇滅은 道에 의해서 證得되므로 擇滅을 離繫果라고 하여, 이것을 또 果果라고도 한다. 이 果는 修行의 果이므로 菩提에 의해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果이다. 또 이 五果에 다음의 네가지 果를 더하여 九果로 하기도 한다.
(6) 安立果. 다른 것에 의지하여 건립된 果.
(7) 加行果는 修行의 실천에 의해 얻어진 果.
(8) 和合果는 여러 因의 和合에 의해 나오는 果.
(9) 修習果는 聖道의 修行을 따라 생기는 果를 말한다. 특히 佛의 十力 · 四無所畏 · 十八不共法 · 自在神力 등은 修行의 결과이며 佛力이므로 果力이라고도 한다. 대승에 있어 佛果, 소승에 있어 阿羅漢果는 究極의 果이므로 極果라고도 한다.
무상정(無想定)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의 하나. 心과 心所(心의 작용)등을 모두 滅絶한 定으로 滅盡定과 함께 二無心定의 하나로 된다. 色界 4禪 無想天의 果報를 참 깨달음의 경지라고 誤信하는 外道와 凡夫가 닦는 것. 이 定을 닦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無想天의 과보를 無想果라고도, 無想事라고도 한다. 이것도 역시 心不相應行法의 하나로 이에 따라 五百大劫 사이에 心과 心所가 滅할 수 있다고 한다. 有部는 無想定·無想果를 따로 實體가 있는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러나 經部나 唯識宗에서는 實體가 없는 假的 존재라고 했다.
훈(熏) : 마치 향이 그 냄새를 옷에 배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身 · 口 · 意로 하는 바 선악의 언어 · 동작 또는 생각하는 것 등이 그냥 없어지지 않고, 어떠한 印象이나 세력을 자기의 心體에 머물러 둠을 말한다.
종자(種子) : ① 穀類의 싹이 종자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物 · 心의 모든 존재 현상을 나게 하는 因種을 가리키는 말. 또 種이라고도 하며 곡류등의 종자를 外種 또는 밖의 種子(外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唯識宗에서는 같은 이치로 우리의 마음의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藏識(감추어져 있음)되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內種 또는 內種子라고 한다. 이 內種子는 生果의 功能(결과를 내는 작용)을 가리키며, 이것은 現行의 諸法(현재 나타나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에 의해서, 흡사 향을 담았던 상자에 향내가 배어서 나는 것처럼 아뢰야식 가운데 熏習되어 있는 일종의 慣習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習氣라고도 한다. 이 種子說은 하나의 비유로 阿含經에 보이며, 部派佛敎 당시에는 化地部에서 窮生死蘊의 識 가운데 物心의 種子가 항상 존재한다는 說을 세운바 있으며, 經量部에서는 色法(물질)과 心法(정신)이 상호 種子로서 다른 것(相體)을 熏附(서로 영향하고 相依함)하여 보존한다고 하여 色心互熏說을 세우기도 했다.
② 唯識宗에서는 種子는 아뢰야식 가운데 藏在해 있다고 하며 그 관계를 成唯識論 卷二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뢰야식은 體, 種子는 用, 혹은 아뢰야식은 果, 種子는 因이라고도 하며 또 그 관계는 不一不異라고 하고, 또 種子는 아뢰야식의 相分[四分→相分(주관적인 心에 인식되는 객관의 형상), 見分(相分을 인식하는 주관의 心작용), 自證分(自體分이라고도 하며 見分과 다음의 證自證分과를 證知하는 인식작용), 證自證分(自證分을 다시 證知하는 인식작용)] 가운데 존재한다고 한다.(단, 이상은 有漏種子에 대한 해석임). 또 同卷二에서, 種子는 다음의 여섯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이것을 種子六義라고 했다. 곧 (1) 刹那滅. 不動不變의 無爲法이 아니라 生滅變化하는 有爲法일 것. (2) 果俱有.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 곧 果를 여의지 않고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하면 果가 발생하는 현상과 반드시 동시에 존재하며 現前에 和合하여 떨어지지 않는 것. (3) 恒隨轉. 항상 간단 없이 轉起하여 一類相續하는 것. (4) 性決定. 種子를 熏附한 現行의 善惡을 따라서 그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의 善惡을 결정하여 索亂하지 않은 것. (5) 待衆緣. 많은 緣이 和合하는 것을 기다려서 비로소 種子가 現行을 내는 것. (6) 引自果. 色 · 心이 각각의 自果를 따로 따로 引生하는 여섯. 種子가 어떻게 하여 일어났느냐 하는데 대해서는 本有說(護月의 說) · 新熏說(難陀 · 勝軍의 說) · 新舊合生說(護法의 說)의 三說이 있어서, 이것을 주장하는 學流를 각각 本有家 · 新熏家 · 新舊合生家라고 일컫는데, 法相宗에서는 第三說을 옳다고 한다. 곧 種子에는 無始이래로 아뢰야식 가운데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本有種子(本性住種)와 후천적으로 現行의 諸法에 의해 熏附된 新熏種子(習所成種)가 있어서 이 2種의 種子가 합하여 現行法으로서의 모든 現象을 낸다고 한다. 다만 見道에 이르러 처음으로 無漏智를 내는 것은 本有無漏種子에 의한다고 하고, 또 五姓의 차별을 일으키는 것을 이 本有無漏種子의 種別이나 그 有無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本有說에 있어서는 本有種子만을 세워서 新熏種子를 인정하지 않고 現行의 熏習이 新熏種子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本有種子를 增長할 따름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新熏說에서는 新熏種子만을 인정하고 本有種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반으로 菩提의 因인 無漏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어서, 有漏種子에는 또 名言種子와 業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다. 名言種子는 名言(言語的表象)에 의해서 아뢰야식 가운데 熏附된 種子로서 物 · 心 일체의 현상이 현재에 나타나서 작용하는(現行의) 직접의 因이 되는데, 여기에 또 2種이 있다. 表義名言種子는 의미를 나타내는 言語(곧 表義名言)를 第六意識이 반연하여(곧 인식하여) 그 언어에 따라 諸現象을 變現할 때 熏習되는 種子를 말하며, 顯境名言種子는 心 · 心所法인 前七識의 見分(主觀)등 (곧 顯境名言)이 對境을 반연할(곧 인식)지음에 熏習된 種子를 가리킨다. 心 · 心所法이 名言은 아니지만 名言이 각각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처럼 心 · 心所가 對境을 變現하므로 顯境名言이라 한다. 대저 名言種子는 種子와 같은 종류의 現行(現象)을 생기게 하므로 等流習氣라고도 한다. 다음에 業種子는 능히 異熟(果報)을 내는 직접적인 因인 名言種子를 도와서 善惡業에 따른 異熟을 생기게 하는 작용이 있는 種子로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善惡의 思(意志의 정신작용인 業의 體)에 의해서 熏附된다. 異熟은 無記이므로 異熟을 내는 名言種子는 無記이며 따라서 스스로 現行하는 힘은 없지만 善惡의 業種子의 힘이 강하면 그것이 增上緣이 되어 異熟을 生한다. 그러므로 業種子를 異熟習氣라고도 한다. 또 名言種子 가운데 我執에 의해서 熏習되고 그것에 의해서 自他의 차별을 감지하고 迷惑의 바탕인 我見 · 我所見을 일으키는 種子를 특히 我執習氣라 한다. 我執習氣 · 名言習氣 · 有支習氣(業種子에 해당)를 三種習氣라고 한다. 또 山河大地처럼 많은 有情에 공통한 환경을 내는 名言種子를 共相名言種子(共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육체처럼 그 사람만이 받아 가지고 쓰는 것을 일으키는 種子를 不共相名言種子(不共種子)라고 하며, 이런 名言種子가 現行을 내기 위해서는 共業 · 不共業의 業種子의 도음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③ 種字라고도 쓰는 경우가 있다. 곧 密敎에서는 불 · 보살등의 諸尊을 表象하는 梵字를 가리킨다. 이것을 種子라고 하는 것은 一字에서 多字를 生하고 또 多字는 一字에 歸結됨을 뜻하는 말. 혹은 種字를 관하면 佛智를 깨닫고(了因), 種字로부터 三昧耶形등을 일으키며(生因), 種字는 본래의 性德이고 軌範으로서 모든 事物의 근원인 本有란 뜻이 있으며 여러 諸尊의 眞言의 一字를 사용한다. 예컨대 胎藏界의 大日如來의 種字를 अ(아)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一尊에의 種字 밖에 1類의 諸尊에 통하는 通種字도 있다. 種字만을 쓴 曼茶羅를 種字曼多羅, 種字에 의해서 觀行하는 것을 種字觀이라고 한다.
추동(麁動) : 들떠있는 마음. 곧 마음의 동요를 말함.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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