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五忍)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보살이 法理를 깨닫고 마음이 편안히 머무는 정도에 따라 세운 階位.
(1) 伏忍. 번뇌를 制伏했지만 아직 斷滅하지 못한 地前의 三賢.
(2) 信忍. 無漏의 信을 얻은 初 · 二 · 三地.
(3) 順忍. 理에 順하여 無生의 깨달음에 향하는 四 · 五 · 六地.
(4) 無生忍. 諸法無生의 理를 인정하고 安住한 七 · 八 · 九地.
(5) 寂滅忍. 모든 惑을 끊고 寂靜의 깨달음에 安住한 第十地 및 佛果(仁王般若經 卷上). 앞의 4를 각각 上中下, 뒤의 1을 上下로 나누어 14忍이라 한다.
참고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의 行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와 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薩 · 菩提薩埵摩訶薩埵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보살에는 開士(보리살타) · 大士(마하살타) · 尊人(제일살타) · 聖士(勝薩埵) · 初士(最勝薩埵) · 上人(上살타) · 無上(無上살타) · 力士(力살타) · 無雙(無等살타) · 無思議(不思議薩埵), 또 용맹 · 無上 · 佛子 · 佛持 · 大師 · 大聖 · 大商主 · 大名稱 · 大功德 · 大自在, 혹은 正士 · 始士 · 高士 · 大道心成衆生 · 法臣 · 法王子 등 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보살에는, 在家와 出家, 鞞跋致(退轉)와 阿鞞跋致(不退), 生身(번뇌를 끊지 않은 자)과 法身(번뇌를 끊어서 六神通을 얻은 자), 生死肉身과 法性生身, 大力과 新發心, 頓悟와 漸悟, 智增과 悲增 등의 두 가지의 보살이 있다고 하고, 또 깨달아 아는 깊고 얕음에 의해서 五十二位 등의 階位를 세운다(보살의 階位). 智增 · 悲增의 說은 法相宗에서 說하는 바로 八地 이전의 보살에 관한 분류이며, 直往의 보살(頓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初地에 있어서 俱生起의 번뇌障의 現行을 억누르기를 다하고 곧바로 變易身을 받는 것을 智增의 보살, 제 七地의 滿心까지 다 억누르지(항복) 못하고 分段身을 받아서 중생을 구할려고 하는 것을 悲增의 보살 혹은 大悲보살이라고 하며, 廻心의 보살(漸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不還과 阿羅漢에서 廻心한 이는 欲界의 번뇌를 끊고 있기 때문에 智增이며, 預流와 一來에서 廻心한 이는 智增 또는 悲增이라고 한다. 이 밖에 智悲평등의 보살이 있다고 한다. 또 十身位의 보살을 새로 발심한 보살, 住前信相의 보살, 假名의 보살 등이라고 한다. 보살의 닦는 행을 보살행, 보살이 해야 할 법칙양식을 보살의 法式, 佛果에 이르게 하는 敎를 보살승, 그 경전을 보살藏이라 하는데, 梵網經 등에는 보살이 지녀야 할 보살계를 說한다. 모든 경전에는 彌勒 · 文殊 · 觀世音 · 大勢至를 비롯 여러 보살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역사상의 인물로서는 龍樹 · 世親 등을 보살로 부르고 있다.
법리(法理) : 敎法의 道理.
교법(敎法) : 부처님이 說한 一生一代의 敎說. 곧 三藏十二部. 大小乘의 大藏經 일체를 일컫는 말.
도리(道理) : 다만 理라고도 한다. 옳은 도리. 사물이 존재하고 변화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표준으로 삼는 법칙. 瑜伽論卷三十에는,
(1) 觀待道理(相對道理라고도 한다. 眞과 俗과 같이 상대적으로 생각되는 道理),
(2) 作用道理(因果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하는 作用에 대한 道理),
(3) 證成道理(成就道理라고도 한다. 확인하는 방법에 대한 道理),
(4) 法爾道理(法然道理라고도 한다. 불이 가진 뜨거움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不變의 本性을 완성하고 있는 道理), 이상 네 가지의 道理로 나누고 있다.
복인(伏忍) : 5忍의 하나. 번뇌를 완전히 단절한 것이 아니라 일단은 制伏하여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惑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및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報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의 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惑(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染·漏·結使·結·縛·纒·軛·暴流·取·蓋·繫·使·垢·株杌·燒害·箭·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體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體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①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枝末번뇌의 두 번뇌로 나눈다.
근본번뇌라 함은 번뇌의 體 그것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로, 本惑·根本惑 혹은 다만 번뇌라고도 부르며, 有部에서는 隨眠이라고도 한다. 단 經部에서는 隨眠을 번뇌의 종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번뇌의 現行(현재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을 纒(전)이라 한다. 유식종에서도 隨眠이란 번뇌의 종자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근본번뇌에 貪·瞋·癡·慢·疑·見(惡見)의 六번뇌(六隨眠)가 있는데, 見을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의 五見으로 나누어 貪 등의 다섯과 합해서 十번뇌(十隨眠, 十使)라고 한다. 이 가운데 貪 등의 다섯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에 五鈍使(五惑), 五見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五利使라고 한다. 또 六隨眠 가운데 貪을 欲界의 탐과 上二界(색계·무색계)의 貪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欲貪·有貪이라고 하며 합하여 七隨眠(七使)이라 하고, 혹은 十隨眠 중에 貪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欲貪·色貪·無色貪으로 하고 十二隨眠(十二使)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십종의 근본번뇌 가운데 제七識과 상응하여 항상 일어나는 我癡(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나의 相에 어두운 번뇌로 無明을 말함)·我見(我執을 말하며 有身見의 일부)·我慢(나를 집착하고 나를 믿고 우쭐하는 거만)·我愛(나를 집착하여 나에 탐착하는 것)의 넷을 四煩惱(四根本煩惱, 四惑)라고 한다. 또 탐·진·치는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근본(즉 因)이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三不善根·三毒·三垢·三縛 등이라고 한다.
지말번뇌라 함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隨惑·枝末惑·隨煩惱라고도 한다. 단 수번뇌란 말은「心王에 붙어다니는 번뇌」란 뜻으로 풀어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지말번뇌에는, 구사종에서는 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無慚·無愧·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睡眠·惡作의 十九를 말하며, 유식종에서는 睡眠·惡作을 버리고 失念·散亂·不正知를 더하여 二十으로 하기도 한다.
② 俱舍宗 등에서는 迷理·迷事의 二惑을 나누어, 불교의 보편적인 진리 곧 四諦의 이치에 迷惑하고 있는 思想上의 知的인 번뇌를 迷理의 惑이라 하고, 구체적인 개개의 事象에 미혹한 바의, 곧 인간성에 바탕한 情意的인 번뇌를 迷事의 惑이라고 한다. 또 自相·共相이 二惑을 나누어서, 色·聲 등 각자 개개의 특수한 고유의 相(곧 自相)을 迷해서 각각의 법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번뇌를 自相의 惑이라 한다. 空·無我 등 三世의 모든 것에 공통된 相(곧 共相)을 迷함으로 많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번뇌를 共相의 惑이라 한다. 앞의 것에는 貪·瞋·慢 또는 貪·瞋·慢·嫉·慳이 있고 뒤의 것에는 五見·疑·無明이 있다고 한다. 唯識宗에서는 煩惱障·所知障의 二障을 나누어, 我執에 의해 일어나서 중생을 미혹의 세계(生死)에 流轉시킴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惑을 煩惱障이라고 하며, 法執에 의해 일어나서 알아야 할 대상인 진리를 막음으로 보리를 깨닫는 길을 방해하는 惑을 所知障이라 한다. 번뇌장은 일체의 번뇌를 體로 하고 반드시 所知障을 수반한다. 번뇌장은 所知障을 依支處로 하기 때문이다. 所知障은 함께 번뇌를 體로 하지만, 반드시 번뇌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또 業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惑을 發業의 惑(주로 다음에 말하는 分別起의 혹으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無明이 그것이다)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서 迷界의 중생을 윤택하게 하고 삼계의 중생을 받게 하는 혹을 潤生의 혹(다음에 말하는 俱生起의 번뇌로 특히 제六意識相應의 貪을 主로 한다)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해서 번뇌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서 나누면, 二障 공히 각기 분별기와 구생기가 있다. 邪師·邪敎·邪思惟 등 밖으로부터의 緣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분별기의 혹이라고 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을 구생기의 혹이라고 한다. 十근본번뇌중에서, 의심과 邪見과 見取見과 戒禁取見과의 四는 분별기뿐이며, 다른 六과 二十隨惑은 양쪽에 모두 공통한다.
③ 번뇌를 끊어야 할 수행단계의 相異에 따라 번뇌를 나누면 見惑과 修惑(思惑)의 二惑이 있다. 전자는 見道에 의해서 없애야 할 번뇌(見道所斷의 惑)이며 후자는 修道에 의해서 끊어야 될 번뇌(修道所斷의 惑)이다. 俱舍宗에서는 迷理의 惑을 見惑, 迷事의 惑을 修惑이라고 하고, 唯識宗에서는 分別起의 惑을 見惑, 俱生起의 惑을 修惑이라 한다. (1) 俱舍宗에서는 三界 四諦의 각각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見惑에 총 八十八이 있다. 欲界의 苦諦에 관해서는 貪 등 十근본번뇌와 集諦와 滅諦에 관해서는 身見·邊見·戒禁取見을 뺀 七근본번뇌, 道諦에 관해서는 戒禁取見을 더하여 八근본번뇌가 있으므로, 합하면 欲界의 三十二, 色界·無色界에는 瞋이 없기 때문에 四諦의 하나하나에 瞋을 뺀 각 二十八, 計 八十八이 된다. 이것을 見惑八十八使라고 한다. 修惑은 欲界에 貪·瞋·癡·慢의 四, 色界·無色界에 각기 貪·癡·慢의 셋이 있어 합하면 열이 되므로 여기에 見惑의 八十八을 더하면 九十八隨眠 또는 九十八使라고 한다. 단 修惑은 성질이 遲鈍애매하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九地의 각 위에 강약의 정도에 따라 九品(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아홉 品階)의 구별을 세워, 九地九品의 思惑, 修惑 八十一品 등이라고 한다. 이 九十八使를 遍行과 非遍行으로 나눈다. 遍行의 惑이라 함은, 三界九地 중에서 自界自地의 五部(見道에 있어서 四諦의 觀行과 이것을 거듭하여 닦는 修道)에 널리 작용하여 五部의 法을 더럽히는 惑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五部 중의 自部에만 작용하는 惑을 非遍行의 惑이라고 한다. 곧 九十八隨眠 중에서 널리 五部의 모든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고, 널리 그것들과 隨順하고 그것들에 의해서 더욱 더 增長하고(곧 隨增하고), 因이 되어서 널리 五部의 染法(번뇌 등의 染汚法)을 낳게 하는 힘이 강한 惑은 遍行의 惑으로 三界의 각각에 있어서 苦諦의 理에 헤매는 五見·疑·無明과 集諦의 理에 헤매는 邪見·見取見·疑·無明과의 十一이 있다. 이것을 十一遍行의 惑이라 한다. 이 중 身·邊의 二見은 다만 自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自界緣의 惑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다른 아홉은 自界는 물론 또 다른 上界까지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他界緣의 惑이라고 하고, 이 아홉은 上界上地까지도 緣이 있다고 하는 의미로 九上緣의 惑이라고도 한다. 또 九十八使를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有漏緣의 惑과 無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無漏緣의 惑으로 나누면 滅道二諦의 理에 迷한 邪見과 疑와 癡(邪見·疑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相應無明과 및 독립으로 일어나는 不共無明)의 六惑은 無漏緣이며, 그밖의 것은 有漏緣이다. (2) 唯識宗에서는, 見惑에는 欲界의 四諦 각각에 十근본번뇌(欲界四十), 색계·무색계에 성냄(瞋)을 뺀 九근본번뇌(色界三十六·無色界三十六) 계 百十二번뇌를 들고, 修惑에는 欲界에 疑·邪見·見取見·戒禁取見을 뺀 六근본번뇌, 색계·무색계에 각기 다시 瞋을 뺀 각 五근본번뇌, 計 十六번뇌를 들므로 見修二惑을 합하여 百二十八번뇌가 된다.
④ 知的인 惑 즉 五利使와 見惑 등을 見煩惱라고 하고, 情意的인 惑 곧 五鈍使와 修惑 등을 愛번뇌라 하며, 합하여 見愛(二)번뇌, 見著二法, 愛見이라고 한다. 그 體는 虛假(헛소리)이기 때문에, 또 見假·愛假라고도 한다. 勝鬘經에는 四住地번뇌의 說이 있다. 곧 見번뇌는 見道에 있어서 한때에 끊겨지기 때문에 見一處住地(一切見住地)의 惑이라고 부르고 愛번뇌는 이것을 三界에 나누어 각기 欲愛住地의 惑, 色愛住地의 惑·有愛住地의 惑이라 부른다. 또 이 넷에 다시 모든 惑의 근본이 되는 無明(無明住地의 惑)을 더하여 五住地번뇌, 五住地惑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五住地번뇌 중 앞의 넷은 煩惱障의 종자이며, 뒤의 하나는 所知障의 종자라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전자를 界內見思의 惑, 후자를 界外의 惑이라고 한다. 대개 住地라 함은 다른 모든 惑이 일어나고 의지처가 되며(住) 잘 惑을 일으키는 因이 된다는 뜻이다. 智度論 卷七에는, 자신에 집착하는 번뇌를 內著번뇌, 外境에 집착하는 번뇌를 外著번뇌라 하며, 전자는 五見·疑·慢 등, 후자는 婬·瞋에 속한다고 한다.
⑤ 天台宗에서는 見思·塵沙·無明의 三惑(三障·三垢)을 말함. 곧 우선 見惑과 修惑(思惑)을 見思의 惑이라고 부르며, 다음에 티끌(塵)이나 모래(沙)에도 비유할 만큼의 무수한 사물의 하나하나의 事理에 迷한 劣慧(번뇌의 習氣로 不染汚無知라고도 한다)를 體로 하고, 다른 것을 化導하는 것을 막는 惑을 塵沙의 惑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모든 惑의 근본으로, 中道 第一義諦의 도리를 迷한 가장 적은 번뇌를 無明의 惑이라 부른다. 각각 空觀·假觀·中觀에 의해서 끊긴다고 한다. 이 三惑을 번뇌장·소지장에 配對하면 見思는 번뇌장, 塵沙·無明은 소지장에 해당한다. 또 見思는 三乘에 공통하는 惑이므로 通惑·塵沙·無明은 특히 보살만이 끊는 惑이기 때문에 別惑이라고 부르고(通別二惑), 見思는 三界안에서 일으키는 惑이므로 界內의 惑, 無明은 三界를 넘은 곳에 있는 惑이기 때문에 界外의 惑, 塵沙는 양쪽 모두 통하므로 界內界外의 惑이라고 한다. 또 見思의 惑은 空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사물의 相을 집착하여 취하는 번뇌이기 때문에 따로 取相의 惑이라고 말하는데, 넓은 뜻으로는 뒤의 二惑도 또한 取相의 惑이라고 한다.
⑥ 번뇌에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1) 三縛. 貪縛·瞋縛·癡縛. 이상의 차례로 樂·苦·捨의 三受의 對境을 향해서 일어난다. (2) 三漏. 欲漏(癡를 뺀 欲界繫의 근본번뇌 및 十纏)·有漏(癡를 뺀 上二界繫의 근본번뇌로 이 경우의 有는 有身의 뜻. 身의 존재를 말한다. 無漏에 대한 有漏는 아니다)·無明漏(三界의 癡). (3) 三結. 有身見結·戒禁取結·疑結. 五見 및 疑의 六근본번뇌가 이 중에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면 預流果에 이른다」라고 한 經說에 따라 三結이 다하면 그 때 見惑의 모든 것이 끊어진다고 한다. (4) 四暴流(四流). 欲暴流·有暴流·見暴流·無明暴流. 三漏의 분류법에서 見을 독립시킨 것. (5) 四軛. 四漏. 欲·有·見·無明의 넷으로 惑體는 四暴流와 같다. (6) 四取. 欲取·見取·戒禁取(戒取)·我語取. 俱舍宗에서는 欲界의 五鈍使 및 十纏을 欲取, 五利使 중 앞의 넷을 見取, 戒禁取見을 戒(禁)取, 上二界의 貪·慢·癡·疑를 我語取라고 한다. 이어라 함은 내신(자기의 몸)을 말한다. 내신에 의해서 나를 설하기 때문이다. 상이계의 번뇌는 대개 내신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아어취라고 부른다. (7) 四身繫(四身縛·四縛·四結이라고도 한다). 貪欲身繫(貪欲身縛·欲愛身縛)·瞋恚身繫(瞋恚身縛)·戒禁取身繫(戒禁身縛)·此實執取身繫(我見身縛). (8) 五蓋. 欲貪蓋·瞋恚蓋·惛眠蓋·掉悔蓋·疑蓋. 疑가 섞이지 않는 것을 疑蓋無雜이라고 하는 말도 여기에 연유한다. (9) 五(順)下分結. 有身見·戒禁取見·疑·欲貪·瞋恚. 下分이라 함은 欲界란 뜻. (10) 五(順)上分結. 色貪·無色貪·掉擧·慢·無明. 上分이라 함은 上二界란 뜻. (11) 五結. 貪·瞋·慢·嫉·慳. (12) 六垢(六煩惱垢). 惱·害·恨·諂·誑·憍. 煩惱垢라 함은 근본번뇌에서 흘러나와 그 모습이 더러워지고 거칠다는 뜻. (13) 七流. 見諦所滅流·修道所滅流·遠離所滅流·數事所滅流·捨所滅流·護所滅流·制伏所滅流(華嚴孔目章 卷三 등) (14) 九結. 愛結·恚結·慢結·無明結·見結·取結·疑結·嫉結·慳結. (15) 十纏. 無慚·無愧·嫉·慳·惡作·睡眠·掉擧·惛沈·忿·覆 등의 十. 忿·覆을 빼고 八纏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枝末번뇌 중에 六垢는 가볍고, 十纏은 무겁다. 九十八隨眠에 十纏을 더해서 百八번뇌가 된다고 하고, 또 모든 번뇌를 다 말하면 八萬四千의 번뇌가 있다고도 한다.
⑦ 번뇌를 여의는 것을 離垢, 번뇌가 없는 것을 無垢, 번뇌가 다한 것을 漏盡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漏盡比丘, 또 漏盡하여 마음에 진리를 了解하는 것을 盡漏意解라고 한다.
제복(制伏) : 번뇌를 억제하여 눌러서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
단멸(斷滅) : 모든 法의 因果가 각각 다르므로 常이라 하지 않고, 因果가 相續하므로 斷이라 하지 않는다. 이 因果는 상속하는 이치가 없다고 물리치는 것을 斷滅의 見이라 한다. 즉 斷見은 邪見 가운데 極惡에 속한다.
지전삼현(地前三賢) : 十地이전의 十廻向 · 十行 · 十住를 三賢位라 함. 보살이 初發心으로부터 一大阿僧祗劫동안을 地前이라 하며 이 가운데 地前 三十位의 修行을 하게 된다. 이 三十位는 아직 地上의 聖人位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凡夫位는 超脫한 位이므로 三賢位라 한 것이다.
지전(地前) : 보살의 行位 十地 이전을 일컬음. 곧 十廻向 · 十行 · 十住 · 十信의 位에 있는 보살을 통털어 일컫는 말. 보살이 一大阿僧祗劫의 修行을 마치면 비로소 1分의 惑을 끊고 1分의 진리를 증득하는데, 이것을 歡喜地라고 한다. 이것이 곧 初地로서 이로부터 十地에 올라 佛果에 이르기까지 二大阿僧祗劫의 修行을 채워야 한다고 한다.
신인(信忍) : ① 三忍의 하나. 아미타불을 염하여 구원함을 믿어 의심치 않음. ② 五忍의 하나. 無漏의 眞智가 일어나는 동시에 三寶를 믿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
무루(無漏) : 漏는 누설·누락의 뜻으로 모든 번뇌를 말한다. 즉 眼·耳·鼻·舌·身·意의 六根에서 허물을 항상 만들어 누출한다는 뜻이다. 이런 번뇌에서 이탈하여 그것이 없어지고 증가함이 없음을 無漏라 하며 四諦 중의 道諦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7覺支·8正道 등이 그것이다. 소승에서는 번뇌를 增上하지 않음을 말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와 함께 있지 않음을 말한다. 有部에서는 18界 중 後 삼계는 유루·무루에 통하며, 前 15 단계는 유루에만 한한다고 하는데 잡아함경의 무루법설을 이어받아 대중부에서는 佛身 중에 있는 것은 18계 모두 같이 무루라 하는 등 그 구분과 해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신(信) : ①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마음을 淸淨하게 하는 작용. 俱舍宗에서는 10大善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서는 善의 心所의 하나로 들고 있다. 그 반대를 不信이라 한다. 俱舍宗에서는 10大煩惱地法의 하나라고 한다.
② 信은 道에 들어가는 第一步인 까닭에 菩薩階位 52位중에서 10信位가 최초의 자리이며 5根이나 5力 중에서 信根·信力은 최초의 位가 된다. 舊譯 華嚴經卷六 賢首菩薩品에서는, 「信은 道의 근원이며 功德의 어머니」라 했고, 智度論卷一에는「佛法의 大海에서는 信을 能入이요 智를 能度로 한다」고 했다.
③ 信心. 眞宗에선 부처님을 믿는 것은 부처님의 願心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大信이라 한다.
통교십지(通敎十地) : 三乘共十地와 같음. 大智度論 78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성문·연각·보살을 통하여 만들어진 十地로 천태종에서 通敎를 說하여 수행의 단계로 한다. (1) 乾慧地 곧 外凡. (2) 性地 곧 內凡. (3) 八人地 곧 見道十五心. (4) 見地 곧 初果. (5) 薄地 곧 一來果. (6) 離欲地 곧 不還果. (7) 已辦地 곧 阿羅漢果. (8) 支佛地 곧 緣覺地. (9) 菩薩地. (10) 佛地.
순인(順忍) : ① 五忍의 하나. ② 十地중에서 4·5·6地의 位.
이(理) : 理는 진리·理性의 뜻. 事는 현상적 事象·事法·차별적인데 대해 理는 平等的·本體的인 뜻을 가짐. 또 경험적 인식을 초월한 本性의 境地. 事는 일체 차별의 모양, 곧 現象界를 말함.
무생(無生) : ① 태어남이 없는 것을 말함. 태어나지 않으면 滅하는 것도 없으므로 無生滅 또는 無生無滅이라 한다. 일체의 현상은 그 본질에 있어서 實體가 없고 空했으므로 生하고 滅하는 變化가 없음을 말한다.
② 阿羅漢 또는 涅槃의 의역. 彌陀의 本願에 따라 淨土에 탄생함은 미타의 본원이 無生인 涅槃의 이치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범부가 생각하는 거짓되고 헛된 無常의 生과는 다르다고 했으며, 往生論註에서 曇鸞은 이것을 無生之生이라고 했다. 열반에는 生滅이 없다는 점에서 열반을 깨닫는 것은 無生身을 깨닫는 것이라고 하며, 極樂은 열반에 적합한 세계란 의미가 있다고 하여 無生界라고도 한다.
무생인(無生忍) : ① 無生忍은 人空智. 無生法印은 法空智. ② 無生法忍의 준말.
무생법인(無生法忍) : 無生의 法理 곧 불생불멸의 진여를 깨달아 알고, 거기에 安住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 보살이 初地나 7·8·9地에서 얻는 깨달음. 忍은 忍可·認忍의 뜻으로, 확실히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 진실의 이치를 깨달은 마음의 평온. 無生忍이라고도 하며, 三法忍의 하나.
제법무생(諸法無生) : 제법(諸法)→여러 가지 법. 萬法과 같음. 우주에 있는 有形 無形의 모든 사물. 諸有. 諸行.
안주(安住) : ① 존립하는 것. ② 몸과 마음을 내맡기다. 몸도 마음도 펀안하게 하는 것.
적멸인(寂滅忍) : 모든 惑을 끊어서 寂靜에 安住한 第十地 및 佛果.
혹(惑) : 깨달음을 장애하는 迷妄의 마음. 證悟와 반대되는 것. 곧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는 것이므로, 惑이라 한다. 仁王經合疏 中에「惑이라 하는 것은 미망의 마음이다」하였음.
미망(迷妄) : 事理에 어두운 것을 迷라 하고, 空虛하여 실재하지 않는 것을 妄이라 한다.
적정(寂靜) : 번뇌를 여읜 것을 寂이라 하고, 苦患이 끊어진 것을 靜이라 한다. 곧 열반의 고요하고 편안한 모습. 또는 그 이치.
불과(佛果) : 修行한 因으로 하여 極果에 이르는 부처님의 지위.
극과(極果) : 지극한 證果란 뜻. 부처님의 正覺을 말함. 대승의 佛果, 소승의 無學果와 같이 至極究竟의 果를 가리킴. 곧 因位 수행의 결과를 말함. 무상 열반의 극과라고도 한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 : 인왕경(仁王經)→이 경의 정확한 經名은 仁王般若波羅蜜經 또는 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인데 줄여서 仁王般若經 또는 仁王經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경명으로 보거나 또는 경의 내용으로 보거나 틀림없는 반야부 계통의 경전이지만 다른 반야경들과는 달리 대반야경 600권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이 경은 옛부터 대반야경의 結經이라고 하여 諸種 반야경전을 종결짓는 경이라 전하여 온다. 그러나 이 경은 이와 같은 점에서보다도 호국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경으로서 너무도 유명하다. 천태종에서는 법화경·금광명경과 함께 이 경을 호국의 삼부경이라고 하거니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 때에 시작하여 고려 때에 빈번히 열렸던 仁王百高座會(백고좌회 또는 仁王會라고도 함)의 근거가 되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한 경이라고 하겠다.
① 구성과 내용. 이 경은 2권 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품의 품명은 다음과 같다. (1) 서품, (2) 觀空品, (3) 菩薩敎化品, (4) 二諦品, (5) 護國品, (6) 散華品, (7) 受持品, (8) 囑累品.
여기에서 (1)의 서품이 序分, (2)의 관공품에서 (7)의 수지품까지가 正宗分, 그리고 (8)의 촉루품이 流通分에 해당한다. 서분에서는 석존 당시 인도의 16대국왕이 자리를 함께 하고 특히 파사익왕이 중심이 되어 석존과 문답을 시작하는 광경이 서술되고 있다. 다음 正宗分에서는 반야가 능히 지켜져야 하는 이유 즉 內護를 밝히고, 반야에 의해 지켜지는 국토 즉 外護를 밝힌 다음, 그 인과 관계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유통분에서는 불멸후에 正法이 쇠퇴함을 예언하고 7란이 없어지고 7복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16대국왕에게 반야의 법문을 간직할 것을 당부하자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어 正法을 護持할 것을 맹서하고 환희했다고 하는 것이 설하여져 있다.
요컨대 이 경의 내용은 국가를 정당하게 수호하여 영구히 번영케 하는 근본 의의를 천명하고자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토를 안온하게 하고 국가를 융창하게 하는 방책을 불교의 本義로부터 논증하고자 하여 내외의 수호와 인과의 상호 의지의 관계에 의할 것을 명시하고 그의 본질을 반야바라밀다 즉 佛智의 證悟에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나라와 가정이 어려움이 있어서 이것을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반야를 이해하게 하고 이것을 實修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인과설로써 국가를 보는 종교적 · 철학적인 태도를 확정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② 경전의 번역과 註疏. 이 경의 한역본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현존한다.
(1) 仁王般若波羅蜜經 2권 구마라집 번역.
(2) 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 2권 不空 번역. 이 가운데 구마라집 번역을 구역이라 하고 不空 번역을 신역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 번역 사이에는 대체로 큰 차이가 없으나 불공 번역은 역자가 밀교의 전파자이었음을 실감케 할 정도로 밀교적인 요소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다. 이 경에 대한 註·疏 등은,
(1) 智顗(538~597)의 仁王經疏 3권.
(2) 吉藏(549~623)의 仁王經疏 6권.
(3) 良賁(717~777)의 新譯仁王經疏 6권 등의 중국 승려의 註·疏와,
(1) 圓測(613~696)의 仁王般若經疏 6권.
(2) 大賢(신라 경덕왕대, 742~764)의 仁王經古迹記 1권.
(3) 玄範(연대 미상)의 仁王般若經疏 2권.
(4) 禮元(연대 미상)의 仁王經註 4권 및 科 1권 등 신라 승려들의 註·疏가 있는데 이 중에서 吉藏의 疏와 圓測의 疏를 이 경에 대한 양대 疏로 꼽는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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