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三覺)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타를 번역한 覺에 갖춘 세 가지 뜻.
(1) 自覺. 범부들의 자각이 없는 데 대한 것.
(2) 覺他. 성문 · 연각이 자기만 깨닫는 데 노력하고 다른 이를 구하지 않음에 대한 것.
(3) 覺行窮滿. 보살과 구별하여 불타의 覺者인 뜻을 밝힌 것.
참고
불타(佛陀) : 범어 Buddha. 浮圖 · 浮屠 · 部陀 · 浮頭 · 勃䭾 · 母䭾 · 沒䭾라고도 음역. 意譯하면 깨달은 사람(覺者)이라 하고 줄여서 佛이라고 함.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여 왔다. 특히 불교인들의 완전한 용어로는「부처님」이다.
즉 불타께서는 B.C. 6세기경에 인도 카필라국에서 출생하시어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였던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타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불타 즉 부처는 석존 한 분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불타는 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성자가 석존이시기 때문에 불타라고 한다. 이러한 부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있다. 그러나 佛陀觀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초기 석존의 시대에는 불타라 하면 석존을 가리켰고,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불타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불타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德相 즉 신체적 특징인 32相 80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덕성인 十力 · 四無畏 · 三念住 · 十八不共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타는 生身 · 法身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의 肉身을 生身佛이라 하고, 그 부처가 얻은 그리고 그 부처의 본성인 진리(法)를 法身佛이라 하여, 2,500여 년 전에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역사적 불타인 석존은 생신(肉身)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타라고 할 때에는 보통 법신불을 말하는데, 이 법신불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상주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佛身觀에 의하여 三身說(法身 · 報身 · 化身)이 나타났다. 실제에 있어서 불타로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기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지만, 많은 불교성전에는 석존의 이전에 이미 毘婆尸佛 · 燃燈佛 등 과거의 부처와 미륵불 등 미래의 부처와 그리고 阿閦佛 · 阿彌陀佛 등 현재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시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은 모두 역사상의 불타이신 석존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즉 과거의 여러 부처들은 석존이 因位에 있어서 수행을 쌓을 때 받들어 공양하고 또는 授記를 얻는 데에 관련이 되고, 또 장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비롯한 미래의 많은 부처들은 석존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나 그 실제의 몸은 오히려 온 세계에 나타나서 교화를 쉬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출현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큰 법신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각(覺) : 범어 buddha의 번역으로 佛陀라 음역.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일을 훤히 알게 됐다는 의미로부터 涅槃을 깨달음의 뜻으로 사용하며, 菩提(涅槃을 깨달은 지혜), 혹은 佛(覺者, 깨달은 이)의 譯語다. 단, 舊譯에서는 菩提를 道, 佛을 覺이라고 하고, 新譯에서는 菩提를 覺, 佛을 覺者라고 하여 法과 人을 구별한다. 또 일체의 사물을 感知한다는 뜻으로부터 널리 대강 관찰하고 추측하는(推度) 정신작용을 舊譯에서는 覺이라 하며, 新譯에서는 尋(범어 vitarka)이라고 한다.
① 起信論에서는, 萬有의 本體인 阿賴耶識에 覺과 不覺의 두 뜻이 있으며, 覺에는 本覺과 始覺의 二覺이, 不覺에는 根本不覺과 枝末不覺이 있다고 한다. 곧, 만유의 本體는 원래가 淸淨한 覺體(本覺)지만, 그러나, 無始이래로 無明·妄念에 의해 덮여서 가리워져 있는 것(不覺)이 현실이다. 그러나, 수행을 하여 觀智를 얻으면 이 不覺으로부터 깨어나 心源을 사무쳐 깨닫게 되는데, 이것을 始覺이라고 한다. 始覺은 覺의 정도에 따라서 다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究竟覺. 이것 이상은 더없는 覺知란 뜻으로 第十地菩薩의 覺知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佛의 覺知를 究竟覺·無上覺·正覺·大覺이라고 한다.
(2) 第九地까지의 地上菩薩의 覺知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므로 隨分覺이라고도 한다.
(3) 十住·十行·十廻向(三賢)菩薩과 二乘의 覺知는 비슷한 覺知이긴 하지만 완전한 眞覺이 아니므로 相似覺이라 한다.
(4) 十信까지의 凡夫位로의 惡業은 苦果를 부른다는 業果의 道理를 覺知하고 있으므로 惡業을 짓지는 않지만, 아직도 번뇌를 끊는 智를 일으키지는 못하는 覺知이므로 不覺이라고 한다.
② 佛을 覺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았을 뿐 아니라(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覺他), 깨달음의 작용이 충만하고 있기 때문이다(覺行窮滿). 따라서 自覺은 凡夫에 대하여, 覺他는 二乘에 대하여, 覺行窮滿은 菩薩에 대하여, 이들과 다름을 나타낸 것으로 이것을 三覺이라고 한다.
③ 獨覺(緣覺)과 大覺(佛)을 二覺 또는 二覺者라고 부른다. 또 보살의 品階 五十二位중 第五十一位의 等覺과 第五十二位의 妙覺(佛果)의 두 가지, 혹은 佛의 智德과 斷德을 二覺이라고 한다.
④ 尋求推度하는 정신작용(心所)으로서의 覺(尋)은 欲界와 初禪에만 있는데, 여기에 그 性이 善인 善覺과 그 性이 惡인 不善覺(惡覺)이 있다. 欲覺(貪覺)·瞋覺(恚覺)·害覺(惱覺)을 三惡覺 또는 三不善覺이라고 한다. 또 여기에 親里覺·國土覺·不死覺·族姓覺(利他覺)·輕他覺(輕侮覺)을 합하여 八覺이라고 하며, 離欲覺(遠離覺·出離覺·出覺)·無瞋覺(無恚覺)·無害覺(無惱覺)을 三善覺이라 하는데, 이는 三惡覺에 대한 對語이다. 無瞋·無害의 二覺을 安穩覺이라고도 하고, 또 菩薩·緣覺·聲聞 같은 大力量이 있는 이가 覺知하고 思念하는 八種의 覺, 곧, 少欲覺·知足覺·遠離覺·精進覺·正念覺·正定覺·正慧覺·不戱論覺을 八大人覺(大人八念)이라고 한다. 이것도 善覺이다.
자각(自覺) : 三覺의 하나.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은 自覺과 남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覺他와 이와 같은 깨달음의 내용과 그 작용의 힘을 究竟的으로 완성한 覺行窮滿의 덕을 갖추고 있다. 이 가운데 自覺은 스스로 깨달아 증득하여 알지 못함이 없는 깨달음을 뜻하며, 또 自覺은 범부에 대하여, 覺他는 二乘에 대하여, 覺行窮滿은 보살의 覺에 대하여 일컫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말한다.
범부(凡夫) : 必栗託仡那라고 음역하고, 異生이라고 直譯한다. 또 婆羅必栗託仡那(小兒凡夫, 嬰兒凡夫, 愚異生)라고도 한다. 聖者(聖人, 聖)에 대해서, 어리석은 凡庸한 士夫(人間)란 뜻. 異生이란 말은 여러 가지 견해나 번뇌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業을 일으켜 여러 가지 果를 받아서 갖가지 세계에 태어난다는 뜻. 수행의 階位上으로 말하면 見道(처음으로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諦를 보는 位)에 이르기 이전이 범부인데, 구사종에서는 四善根位를 內凡, 三賢位를 外凡이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初地이전을 범부라고 하고, 十住 · 十行 · 十廻向(三賢)을 내범, 十信을 외범이라고 하고, 내범 · 외범을 아울러 二凡이라고 한다. 외범이 하는 아주 낮은 범부 곧 지옥의 有情 내지 하늘의 有情을 말한다. 범부로 하여금 범부답게 하는 性을 異生性(凡夫性)이라고 한다. 犢子部에서는 그 體를 欲界의 見惑이라고 하고, 有部에서는 聖道의 非得이라고 주장한다. 經部에서는 따로 體를 세우지 않고 聖法의 相續의 分位差別에 이름을 붙였으며, 유식종에서는 二十四 不相應行法의 하나로 하여 分別起의 煩惱障 · 所知藏의 種子적 작용에 따라 假名을 붙였다고 한다.
각타(覺他) :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 生死의 괴로움을 여의게 하는 것.
생사(生死) : 輪廻라고도 번역한다. 業因에 의해서 六道의 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면서 윤회하는 것으로서, 涅槃(깨달음)의 逆. 生死가 끝이 없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生死海라고 하고, 번뇌의 세계이기 때문에 生死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難度海라고도 한다.
① 二種生死. (1) 分段生死. 有漏의 善惡業을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여 三界내에 麤한 果報를 받을 때 그 과보는 壽命의 長短이나 육체의 大小 등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分段身이라고 하고, 분단신을 받아 윤회하는 것을 分段生死라고 한다. (2) 變易生死. 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벽지불·大力의 보살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無漏의 有分別의 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여, 界外 곧 三界 밖의 殊勝細妙한 果報의 身, 곧 意生身을 받아 이 몸을 가지고 三界내에 와서 보살의 行을 닦아서 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悲願의 힘에 의해서 수명도 육체도 자유로히 變化改易할 수가 있으므로 일정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變易身이라고 하고, 변역신을 받는 것을 變易生死라고 한다.
② 四種生死. 분단생사를 三界에 배대하여 3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變易生死를 더하여 4로 한다. 또 변역생사를 方便·因緣·有後·無後의 四生死로 나눈다. 또 冥(현세의 卑賤)에서 冥(死後의 惡道)으로 들어가고, 冥에서 明(死後의 善趣)으로 들어가며, 明(현세의 尊貴)에서 冥으로 들어가고, 明에서 明으로 들어가는 4를 4種生死라고 한다.
③ 七種生死. 분단생사를 삼계에 배대하여 나누고, 여기에 변역생사의 4종을 더하여 7로 한다. 단 後世의 해석에서는 이것을 다음의 7종으로 한다. 分段생사·流來생사(眞如의 이치에 迷하여 생사의 迷界에 流來하는 처음을 말한다)·反出생사(發心해서 생사에서 뛰어나는 처음을 말함)·方便생사(見思의 惑을 끊고 삼계의 생사에서 超出하는 入滅의 二乘에 대해서 말함)·因緣생사(無漏業을 因으로 하고 無明을 緣으로 하여 生을 받는 初地이상의 보살에 대해서 말함)·有後생사(有有생사라고도 한다. 최후의 1品의 무명을 남기는 제十地 보살에 대해서 말함)·無後생사(無有생사라고도 한다. 무명을 끊어버려 後身을 받지 않는 等覺 보살에 대해서 말함).
성문(聲聞) : 소리를 듣는 사람이란 뜻으로 제자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佛在世時의 제자를 말하지만 緣覺 · 菩薩에 대해 二乘 · 三乘의 하나로 열거할 때는 부처님의 敎說에 따라 수행을 하지만 자기 혼자만 해탈하는 것을 목적하는 出家의 聖者를 뜻한다. 佛敎徒 가운데 성질 · 능력이 얕은 下根機 또 四諦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쌓아 四妙門果를 깨닫고 마침내는 心身을 다 滅盡하여 灰身滅智의 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는 사람들의 뜻이다. 성문을 위한 敎를 聲聞乘, 그 교를 설한 經典을 聲聞藏이라 한다. 聲聞乘은 緣覺乘과 같이 소승에 속한다. 법화경 卷二에는 성문이 마음을 바꾸어서 대승으로 轉向하는 경우, 이를 聲聞이라 칭하는 것은「다른 사람을 제도하고자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 설하여 들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라고 하며 이것을 大乘聲聞(佛道聲聞)이라 부른다.
世親의 法華論 卷下에는, 성문을 넷으로 분류했다.
(1) 소승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를 같이하는 決定성문,
(2) 人無我에 집착함으로 성문에 만족하여 慢心을 일으키는 增上慢성문,
(3) 대승에 뜻을 두었으나 바꾸어 성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대승으로 향하는 退菩提心성문,
(4) 불 ·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거짓으로 성문이 되어 나타난 應化성문이다. 法華玄論 卷四에는 여기에 다시 佛道성문을 넣어서 五種성문이라 한다.
연각(緣覺) : ① 범어 pratyeka-buddha(各自가 깨닫다는 뜻)의 번역. 獨覺이라고도 번역하고, 또 辟支佛로 音譯. 불타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道를 깨달은 이로, 寂靜한 고독을 좋아할 뿐 說法敎化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종의 聖者. 聲聞과 같이 二乘의 하나. 또 聲聞 · 보살과 같이 三乘의 하나.
② 여기에 部行獨覺과 麟角喩獨覺(麟喩獨覺)의 2종의 獨覺이 있다. 앞의 것은, 먼저 聲聞이었을 때에 不還果까지를 얻은 사람이, 제4의 阿羅漢果를 證得할 때, 불타의 敎導를 받지 않고 홀로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하고 뒤의 것은 獨居하여 百大劫동안 깨달음을 위한 善根功德을 쌓아 홀로 깨닫는 자를 말한다. 여기에 部行이라 함은, 聲聞이었을 때에 많은 部黨을 조직하여 단체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이름하고, 麟角喩라 함은 기린의 한 뿔에 비유해서 처음부터 伴侶가 없는 獨住者임을 가리킨다.
③ 緣覺은 다만 自利의 行만이 있고 利他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大悲心을 가지고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 없고, 따라서 佛果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을 獨覺의 捨悲障이라고 한다.
④ 緣覺으로서의 階位를 辟支佛地, 약하여 支佛地라 부르고, 通敎의 十地(三乘을 통하여 10으로 나눈 佛子의 階位)의 제8에 자리(位)하고, 또 支佛地 자체도 十地에 분류된다.
⑤ 특히 이것을 緣覺이라 번역하는데 대해서 大乘義章 卷十七에는, 十二因緣을 깨달기 때문에, 또 바람이 나무를 움직인다(飛花落葉)등의 外緣에 의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학자 사이에는 아마도 緣覺의 번역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각행궁만(覺行窮滿) : 각행(覺行)→自覺 · 覺他하는 行法을 말함. 또는 보리행(菩提行)이라고도 함. 스스로 깨닫고 다른 이를 깨닫게 하는 보살의 불도수행. .....궁(窮)→다하다. 끝나다.(국어사전) .....만(滿)→차다. 가득차다.(국어사전)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의 行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와 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薩 · 菩提薩埵摩訶薩埵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보살에는 開士(보리살타) · 大士(마하살타) · 尊人(제일살타) · 聖士(勝薩埵) · 初士(最勝薩埵) · 上人(上살타) · 無上(無上살타) · 力士(力살타) · 無雙(無等살타) · 無思議(不思議薩埵), 또 용맹 · 無上 · 佛子 · 佛持 · 大師 · 大聖 · 大商主 · 大名稱 · 大功德 · 大自在, 혹은 正士 · 始士 · 高士 · 大道心成衆生 · 法臣 · 法王子 등 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보살에는, 在家와 出家, 鞞跋致(退轉)와 阿鞞跋致(不退), 生身(번뇌를 끊지 않은 자)과 法身(번뇌를 끊어서 六神通을 얻은 자), 生死肉身과 法性生身, 大力과 新發心, 頓悟와 漸悟, 智增과 悲增 등의 두 가지의 보살이 있다고 하고, 또 깨달아 아는 깊고 얕음에 의해서 五十二位 등의 階位를 세운다(보살의 階位). 智增 · 悲增의 說은 法相宗에서 說하는 바로 八地 이전의 보살에 관한 분류이며, 直往의 보살(頓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初地에 있어서 俱生起의 번뇌障의 現行을 억누르기를 다하고 곧바로 變易身을 받는 것을 智增의 보살, 제 七地의 滿心까지 다 억누르지(항복) 못하고 分段身을 받아서 중생을 구할려고 하는 것을 悲增의 보살 혹은 大悲보살이라고 하며, 廻心의 보살(漸悟의 보살)에 대해서 말하면 不還과 阿羅漢에서 廻心한 이는 欲界의 번뇌를 끊고 있기 때문에 智增이며, 預流와 一來에서 廻心한 이는 智增 또는 悲增이라고 한다. 이 밖에 智悲평등의 보살이 있다고 한다. 또 十身位의 보살을 새로 발심한 보살, 住前信相의 보살, 假名의 보살 등이라고 한다. 보살의 닦는 행을 보살행, 보살이 해야 할 법칙양식을 보살의 法式, 佛果에 이르게 하는 敎를 보살승, 그 경전을 보살藏이라 하는데, 梵網經 등에는 보살이 지녀야 할 보살계를 說한다. 모든 경전에는 彌勒 · 文殊 · 觀世音 · 大勢至를 비롯 여러 보살의 이름을 들고 있다. 또 역사상의 인물로서는 龍樹 · 世親 등을 보살로 부르고 있다.
각자(覺者) : 범어 Buddha. 佛陀를 번역한 이름. 覺은 覺察ㆍ覺悟의 두 가지 뜻이 있음. 스스로 깨닫고(自覺) 남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닫기 위한 수행을 완전히 마친 이(覺行窮滿)를 覺者라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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