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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불성(正因佛性)

근와(槿瓦) 2018. 6. 7. 00:52

정인불성(正因佛性)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三因佛性의 하나. 涅槃經, 일체의 를 여읜 中道正法의 진리란 뜻. 佛性은 일체중생이 다 가지고 있는 中道眞如의 부처될 本性을 말함.

 

참고

삼인불성(三因佛性) : 佛性3종의 이 있음을 말한 것. (1) 正因佛性(본연의 진여 이치)·(2) 了因佛性(진여의 이치를 비추는 지혜)·(3) 緣因佛性(지혜를 도와 正因을 개발하는 6바라밀의 수행) 天台宗所說.

 

열반경(涅槃經) : 의 원명은 大般涅槃經(범어는 Mahaparinirvana-sutra)으로 소승의 대반열반경과 이름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를 소승열반경이라 이름 부르는 데에 반하여 이 은 대승열반경이라 하는데, 대승불교권에서 흔히 열반경이라고 줄여서 부를 때에는 이 대승열반경을 말한다. 소승열반경에 비해서 이 대승열반경이 가지는 특색은 소승열반경이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한 것에 비해 이 은 그러한 사건의 철학적 · 종교적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이 은 형식을 통해서 첫째, 佛身常住, 둘째, 열반의 常樂我淨, 그리고 셋째, 일체 중생의 悉有佛性이라는 세 가지의 사상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중도(中道) : 二邊. 곧 양극단이 따로 떨어지므로 얻을 수 있다. 치우치지 않는 中正의 뜻. 中路 혹은 단순히 이라고도 함. 中道佛敎의 근본적 입장을 말하고 있어 대승 · 소승에 걸쳐서 중요시되고 있다. 따라서 그 뜻하는 바에도 深淺이 있지만 각 종파에서 이 語句를 가지고 교리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중도의 意義中道義, 중도의 眞理를 중도의 , 중도의 敎說中道敎(三時敎의 하나), 중도를 종지로 하는 종단을 中道宗(법상종에선 唯識中道를 주장하므로 자신이 中道宗이라 한다), 중도를 하는 것을 中道觀(자세히 말하면 中道第一義諦觀이라 하여 三觀의 하나)이라고 한다. 또 중도는 우주만유의 진실상을 나타내므로 중도는 곧 實相이라는 뜻에서 中道實相이라 한다

阿含八聖道의 실천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치우친 생활태도를 버리고 중도에 의해 지혜를 완성하여 열반의 證得으로 가는 도이므로 팔성도를 中道라 한다(中阿含經卷五十六). 十二緣起의 진리를 옳게 이해하는 것은 常見(중생의 생명의 주체인 는 영원히 존속한다는 생각)斷見(死後엔 아주 滅無로 돌아간다는 생각). 有見(자연적입장, 世間의 상식)無見(허무주의)등과 같은 치우친 견해로부터 떠나는 것으로, 십이연기를 옳게 하는 것이 중도의 正見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잡아함경 권십이등). 초전법륜에서 석존이 설한 것인데 前者는 실천상의 중도이며 後者思想上의 중도이다

部派불교의 중도. 大毘婆沙論卷四十九成實論卷十一등에서 아함의 교설을 받아 들여 중도는  · 二見을 떠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대승의 中觀派에서는 般若波羅密을 근본적인 조건이라 하고 모든 집착이나 분별의 경지를 떠난 無所得의 상태에 있는 것을 중도라 한다. 中論 卷一 觀因緣品, 緣起理法  · · · · · · · 의 여덟 가지의 잘못된 견해(八邪 · 八迷 · 八過 · 八計 · 八謬 · 八事 · 八迷戱論)를 타파하여 의 진리를 밝힌 것이다. 萬有는 그 緣起道理에 순응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원래 八邪를 여의었으며 실체가 없어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와 같이 八邪가 떨어져 無得正觀(無所得의 바른 견해)하는 것을 중도라 하고 이것을 八不中道 · 八不正觀 · 無得中道 · 八不中觀이라 한다. 여기에 八不이란 생멸등의 八邪否定하는 不生 · 不滅 · 不斷 · 不常 · 不一 · 不異 · 不去 · 不來를 가리킨다. 이에 의하여 모든 邪執이 파멸되어 諸法이 그대로 實相인 도리가 나타난다. 八不중에서도 不生 · 不滅이 그 근본이다. 특히 팔불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不生이 팔불 속에 들어갈 수 있다 한다.

中論疏卷二에 의하면 不生兒闡提, 不滅邪見闡提, 不斷斷見聲聞, 不常常見聲聞, 不一 · 不異外道, 不來不去獨覺 初發心 보살들의 각각의 邪執을 파괴시킨다고 한다. 삼론종은 八不中道의 설에 입각하여 세 가지 중도를 주장한다. 中論疏 卷一에는 八不中道二諦關係시켜 설명한다

(1) 因緣에 의해 거짓 존재하는 現象面으로 말하면, 모든 사물은 실체가 아니고 이면서 거기다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므로 無生滅生滅이니 이나 不生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을 俗諦中道 · 世諦中道라고 일컫는다.

(2) 사물의 진실한 실재의 측면 곧 본체면으로부터 말하면 모든 사물은 거짓 현상으로 존재하면서 또 그 本體이기 때문에 生滅無生滅로서 不生이라고도 非不生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하여 이것을 眞諦中道라고 한다. 이 두 가지를 二諦各論中道라고 한다

(3) 그렇지만 無生滅生滅, 生滅無生滅이란 실은 生滅도 아니고 無生滅도 아닌 言語思慮를 여읜 究極的이라고 하여 이것을 二諦合明中道 · 非俗非眞中道라 일컫는다. 三論玄義卷下에 중도에 一中 내지 四中의 구별이 있다고 했다. 곧 중도가 유일의 청정한 도인 것을 一中, 중도를 二諦에 대해 논하여 世諦眞諦으로 분류하는 것을 二中, 二諦非眞非俗을 더하여 三中이라 한다. 四中이란 다음 네 가지이다. (1) 對偏中· 偏見에 대해서 설한 . (2) 盡偏中. 그들 偏見滅盡되어 중도의 意義가 나타난 것. (3) 絶對中. 거기 나타난 은 언어와 사려를 초월한 不偏不中인데,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이라 한 것. (4) 成假中. 非有非無絶對中에 의해 현상으로서의 거짓 존재(有無)를 성립시켜 중생을 교화하는 수단(方便)을 말한다.

천태종에서는 · · 三諦의 설을 주장하여 모든 존재를 一面으로만 생각하는 · 를 초월한 절대적인 본체는 언어와 사려의 대상이 아님을 中諦라고 한다. 이 중제는 化法四敎  · 二敎로 설명된다. 그러나 別敎에선 三諦를 각각 독립된 진리라고 생각하고(隔歷三諦), · 二諦는 현상면, 中諦는 본체면으로부터 말한 것이라 하여 但中, 圓敎三諦는 서로가 개별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一諦중에 三諦를 갖추고 있어 셋이 별개가 아니고 융합되어 있다고 보며(圓融三諦), 卽空 · 卽假 · 卽中으로서의 中諦이므로 이것을 不但中이라고 한다. 通敎에선 三諦의 설은 없지만 거기서 주장하고 있는 空理 가운데 중도가 들어 있다고 설명되고 있으므로 통교를 含中敎라고도 한다. 그리고 천태종에서는 중도의 는 우주의 진실한 모습인 만큼 이 진리를 깨달으면 내지 地獄十界敎化시키는 대상자에게 맞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應化本源이 중도에 있다는 뜻에서 中道應本이라고 한다. 藏敎通敎의 보살은 이것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前者本惑을 끊지 못하고 남겨 두어 三界에 남아 있고 後者誓願을 세워 煩惱習氣를 붙들어 三界에 태어나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유식종에선  · · 三時敎敎判을 세워서 解深密經 등의 설처럼 · 二邊(兩極端)을 여의고 非有非空의 중도의 진리를 완전하게 나타낸 中道了義敎라 하고· 에 치우친 不了義敎라고 한다. 그 중도란 소위 唯識中道로서 곧 (1) 범부가 실재한다고 본 바의, 有情의 실체적 생명으로서의 萬有의 구성요소로서의 迷情의 집착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情有理無非有이다. (2) 萬有는 인연의 假有的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으로 아뢰야식의 變現이므로 즉 理有情無非無이다. (3) 또 만유는 고정된 본성(自性)이 없고 이므로 자유자재로 현상될 수 있는 것으로 곧 공은 眞空妙有非無라고 한다. 이와 같이 宇宙眞相非有非無(非有非空)의 중도로 파악되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中道了義敎라고 한다. 三性說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遍計所執性에 해당하고 依他起性, 圓成實性에 해당한다(成唯識論 卷七). 우리 나라의 원효는 그의 梵網經菩薩戒本私記卷上에서, 非有非無는 가()를 여읜 중도의 를 나타낸 말이니, 그러므로 를 말하면 因緣을 따라 생긴 것이지만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해 들어가면 自性을 얻을 수 없으므로 非有, 가 비록 非有라고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토끼 뿔이 없는 것처럼 아주 없는 것은 아니므로 非無라 한 것이다.라고 하여 非有非無의 중도의 원리에 입각해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원효는 이어서 만일 을 말하면 막는다는데 의 뜻이 있는 것이니 그 막아야 할 대상은 곧 . 그러므로 계는 결국 인연을 따라서 생기지만 그러나 그 인연의 본체를 추구하여 들어가 따지고 보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얻어질 실재의 客觀은 없다.고 하고 한 걸음 나아가 계를 중도에 契合시키는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마음자리를 두고 논하면 뿌리의 자성은 본래 청정한 것이므로 죄될 요소가 따라 붙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릇됨을 막는다고 하지만 실은 그 절대적인 객관화된 본질적 표준(罪性)이 있음도 아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罪性은 마음의 근본바탕에는 없다. 그렇지만 또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여기에 가 중도에 들어 맞는 도리가 있는 바이다.원효가 一切法無碍自在一大理論으로 千經萬論을 막힘이 없이 꿰뚫은 것도 다 철두철미하게 一貫 中道에 통달했기 대문이다. 華嚴經序원래 無障無碍法界法門이란 것도 없고 법아닌 것도 없으며 이 아니고 아님도 없도다. 그것은 도 아니요 도 아니며 도 아니며 도 아니다.라고 했고, 金剛三昧經論序할 것도 없고 하지 않을 것도 없으며 세울 것도 없고 세우지 않을 것도 없으니 이른바 아무 이치가 없는 것 같지만 지극한 이치이고 그렇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하다고 했다. 이러한 圓融無碍한 절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 · · · · 의 일체의 相對性會通시킴으로  · · · 에 조금도 걸림이 없는 중도의 사상체계를 세웠다. 고려의 義天대저 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으며 말이나 형상을 여읜 것도 아니니 말이나 형상을 여의면 뒤집힌 迷惑이요, 말과 형상을 집착하면 참으로 한 것이다라고 했고, 敎學者는 안을 버리고 밖으로 구하며 習禪人因緣法을 모르고 안으로만 밝혀서 偏執하므로 二邊을 다 읽는다고 하여 역시 중도가 究竟임을 누누히 밝혀 주고 있어서, 원효의 중도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에 있어서는 執空說을 취하는 南寺傳의 중도설과 體空說을 취하는 北寺傳의 중도설과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먼저 집공설의 입장을 주장하는 남사전에 의하면 三性對望의 중도설을 주장한다. 곧 진여인 원성실성(眞有)에 의해 의타기성(假有)으로서의 현상이 있다. 現象實有라고 집착하는 것이 변계소집성(理無)이므로 변계소집은 非有, 의타기와 원성실은 非無이다. 三性一法上三性이므로 三性을 상대로 하여 볼 때 여기에 非有非無인 하나의 중도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體空說을 취하는 북사전에서는 一法中道說을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변계소집성은 情有이므로 非無, 理無이므로 非有로서 곧 중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三性이 각각 하나하나 다 중도를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아가서 情有도 단순한 가 아니라고 하여 많은 一法中道를 주장한다. 단 일법중도설 가운데서 변계소집성은 범부의 迷情이므로 중도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설도 있다. 三性을 상대로 중도를 설명하는 것은 言說로 설명한 중도이므로 言詮中道라 한다. 一法中道는 모든 존재가 본래적인 진실한 으로는 언어와 사려를 끊어버린 非有非空의 중도라 하여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도이므로 離言中道라고 하여 이들을 합해서 二重中道라고 한다. 이것은 중도에 따로 두 개가 있는 것은 아니라 前者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한 중도, 後者는 자기 스스로의 깨달음의 내용으로서의 중도이다. 또 중도란 말은 能觀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所觀를 가리키는 경우에도 사용된다.

 

정법(正法) : 三時의 하나. · · 三時가 있는 가운데, 敎法修行 · 證果 셋이 다 있어서 佛法이 가장 바르게 성한 시기. 기간에 대하여는 佛滅 5백년, 1천년의 兩說이 있다. 佛法의 바른 敎法.

 

진리(眞理) : 참된 이치. 참된 도리. 佛法을 말함. 만인에게 보편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인식의 내용.

 

불성(佛性) : 범어 buddha-dhatu. 또는 gotra의 번역으로 如來性, 覺性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本性이란 뜻. 佛陀가 될 가능성 · 因性 · 종자, 혹은 · 에 의하여 변하는 일이 없이 본래 갖추어진 性品. 如來藏의 다른 명칭이라고도 한다.

北本 涅槃經 卷九에는 이마의 구슬(額珠)에 비유(力士가 씨름을 하다가 眉間에 있던 구슬이 피부속에 들어 박힌 것을 잃어버린 줄로 잘못 알고 있다가 나중에 의사가 이 사실을 알려 줌으로 구슬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비유. 또는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 귀중한 보배구슬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는 비유)를 써서 중생들이 본래부터 佛性이 있지만(一切衆生悉有佛性) 범부들은 번뇌에 뒤덮여서 알지 못하고 번뇌를 끊어야 불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阿含이나 小乘에서는, · 보살 이외의 成佛을 말하지 않으므로 佛性은 거의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世親佛性論卷一에 의하면 有部 등에서는 중생에게는 先天的性得佛性은 없지만, 後天的으로 修行을 해서 얻는 修得佛性은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決定無佛性 · 有無不定 · 決定有佛性의 세 종류로 중생을 나누며, 이에 대해서 分別部에서는 佛性으로 하고, 모든 중생은 을 바탕으로 하여 에서 생긴 것이므로 다 그 本性으로서 佛性이 모두 있다고 전한다.

佛性論卷一에는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말씀한 것은 불타가 중생으로 하여금 나 자신은 용렬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는 등의 다섯 가지 과실을 없애고 부지런히 佛道에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는 등 다섯 가지의 功德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同書卷二에는 佛性自性住佛性(凡夫에서는 오직 로서 있는 것) · 引出佛性(初發心으로부터 成佛직전의 金剛心에 이르기까지 점차로 修行해서 나타나는 것) · 至得果佛性(佛果에 이르러서 원만하게 나타나는 것)三位로 나누고 있다.

중국 · 한국 · 일본의 諸宗에서는 각기 여러 가지 이 있어, 서로 論雜했다.

(1) 天台宗에서는 正因佛性(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 있는 三諦 三千) · 了因佛性(이치에 비추어 나타나는 지혜) · 因緣佛性(지혜를 일으키는 이 되는 모든 善行)正了緣三因佛性을 세워 이 중 前一(선천적), 後二(후천적)이긴 하지만, 性修不二이므로 그대로 융합되어서, 三佛性非縱非橫(前後하여 繼起하는 것도 아니고 並列同時的인 것도 아니다)이라고 한다. 또 이 三因佛性果性(菩提智慧) · 果果性(涅槃斷德)을 더하여 五佛性이라고 한다. 因果不離이므로 因位 · 果位가 서로 갖추어 합쳐진다고 한다.

(2) 華嚴宗에서는 중생의 佛性因果性相의 모든 것을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하고 또 有情이 갖추고 있는 成佛의 가능성을 佛性 · 覺性이라고 하고, 非情이 가지고 있는 眞如法性이라고 구별하여 成佛有情에 국한한다고 하기도 한다.

(3) 眞言宗에서는 삼라만상이 그대로 大日如來法身이라고 하여, 그런 의미에서 悉有佛性을 말한다.

(4) 三論宗에서는 佛性에 관한 여러 가지 이 있어서 因果를 따로 하는 것을 迷執이라고 하여 하고, 非因非果無所得 中道佛性이라 했다.

(5) 法相宗에서는 理佛性(모든 것의 本體眞如) · 行佛性(사람마다 阿賴耶識 가운데 숨겨져 있는 成佛이 되는 無漏種子)二佛性說하고, 理佛性은 있어도 行佛性이 없으면 成佛할 수 없다고 하여, 菩薩定姓不定姓이라야만 行佛性이 있다고 했다.

(6) 禪宗에서는 중생 본래의 면목을 깨닫는 것으로, 佛性有無 등의 문제에 구애되는 것을 否定하는, 狗子佛性 등의 公案이 있다.

(7) 淨土敎에서는, 理佛性을 인정하는 주장과 否定하는 주장이 있는 등 종종의 이 있는데, 往生彌陀本願力에 의한다고 하여 淨土宗에서는 이런 의미로 如來가 중생에게 준 信心佛性으로 하고 있다.(信心佛性)

諸經典에서는 佛種 · 佛種性 등의 말이 있고, 成佛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 내용은 하는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佛性을 말하는 때도 있고 번뇌 · 보리심 · 보살의 수행 · 稱名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일체(一切) : 범어 sarva의 번역. 모든 것. 온갖 것을 말함. 전부 · · 전체를 포함할 때 全分一切와 대부분을 포함할 때 少分一切가 있다. 一切五蘊 · 十二處 · 十八界를 말하는 것처럼 각각 보는 각도에 따라 體系를 말함.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 · ·  · · 六根(여섯 感官)  · · · · ·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라고 한다.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本體를 일컫는다.

阿含에서는 緣起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 · 道支眞如 · 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 · 無記三性이나 八聖道緣起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實性이라고 하고 그 一味이지만 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減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 · 法界 · 法性 · 不虛妄性 · 不變異性 · 平等性 · 離生性 · 法定 · 法住 · 實際 · 虛空界 · 不思議界十二名이라 함.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에는, 眞如 · 空性 · 無相 · 實際 · 勝義 · 法界六名,

法華玄義卷八下에서는, 實相 · 妙有 · 眞善妙色 · 實際 · 畢竟空 · 如如 · 涅槃 · 虛空 · 佛性 · 如來藏 · 中實理心 · 非有非無中道 · 第一義諦 · 微妙寂滅14종의 이름을 들고 있다. 一如 · 一如法界 · 法界 · 眞如實相 · 眞如一實 · 眞實際 · 眞勝義등으로도 이름하며 그 모습이 절대평등함을 뜻하며 一相이라고도 한다.

解深密經卷三에는 七眞如를 설하고,

(1) 緣起理法流轉眞如.

(2) 諸法實性實相眞如.

(3) 萬法唯識理法了別眞如.

(4)~(7) · · · 도의 를 차례로 安立眞如 · 邪行眞如 · 淸淨眞如 · 正行眞如라고 하는데 實相眞如이외의 6종을 진여라고 일컫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 각각의 理法이 그 자체 그대로 영원불변 하므로 진여라고 한다는 설과 그 理法자체를 진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實相眞如의 나타난 모습의 種別이라고 하는 설이 있다.

法相宗說. 成唯識論卷九에서는 진여란 허망한 분별법을 여읜 人法二無我의 본성으로 三性 가운데 圓性實性에 해당한다고 했다. 에서는 모든 현상은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진여는 현상을 초월한 絶對靜的한 것으로 그 자체는 결코 현상이 될 수 없는 것(眞如凝然不作諸法)이라고 한다. 成唯識論卷十에는 보살은 初地에 이르러서 비로소 진여의 진리를 깨닫고 차례로 十地에 이르기까지 그 깨달음의 내용이 깊어지게 되기 때문에 十眞如의 구별을 세운다. ,

(1) 遍行眞如. 널리 萬有에 미치는 二空의 이치.

(2) 最勝眞如. 를 몸에 완전히 익힘으로 해서 깨달은 진여로 거짓이 없는 을 구족하게 갖추고 있으므로 최승이라고 한다.

(3) 勝流眞如. 진여로부터 流出는 그렇지 않은 다른 교보다 수승하다는 뜻이며 그 교의 근본이 되는 진여란 뜻.

(4) 無攝受眞如.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뜻.

(5) 類無別眞如. 생사와 열반 등의 구별이 없는 迷悟一如의 뜻.

(6) 無染淨眞如. 진여는 본래 染淨을 초월했다는 뜻.

(7) 法無別眞如. 진여는 생멸의 을 여의었으므로 諸種에 갖가지로 說示되어 있지만 그 는 하나란 뜻.

(8) 不增減眞如. 번뇌의 더럽힘을 끊었지만 줄지 않고 청정한 법을 닦지만 더하지 않는, 집착을 여의었다는 뜻. 대번에 이 진여를 깨달으면 자유자재로 종종의 모습이나 국토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相土自在所依眞如라고도 한다.

(9) 智自在所依眞如. 四無碍智에 의해 자재를 얻는다는 뜻

(10) 業自在等所依眞如모든 神通 · 總持 · 禪定 등에 있어서 · · 의 활동의 자재를 얻는다는 뜻.

이상의 10은 차례로 初地로부터 十地까지 十波羅蜜을 행하여 十重障을 끊고 깨닫는다고 한다. 人無我의 진리를 人空眞如, 法無我의 진리를 法空眞如, 이 둘을 합해서 二空眞如라고 하며 二乘人空眞如만을 깨닫지만 보살은 二空眞如를 깨닫는다고 한다.

地論宗에서는 제八阿賴耶識, 攝論宗에서는 제九阿摩羅識은 그 자체가 청정한 自性淸淨心 곧 진여라고 하고, 이 무명의 熏習을 받아서 染淨諸現象을 나타낸다고 한다.

기신론에서는 진여를 중생심의 본체라고 하고 그것은 언어나 사유를 초월해서 여의었으므로 離言眞如, 그것을 억지로 언어로 표현한 것을 依言眞如, 둘을 합하여 二眞如라고 하며, 依言眞如에 있어서 그 본체가 迷惑된 마음을 여의고 한 점을 如實空(空眞如)이라고 한다. 또 중생심 곧 진여에는 절대부동의 心眞如門과 그것이 무명의 에 의해서 染淨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心生滅門이 있어서 不動인 진여를 不變眞如, 그것이 을 따라 나타나는 染淨의 현상을 隨緣眞如라 하며 합해서 二眞如라라 한다. 일반으로 萬有生起하는 방법을 진여의 不變 · 隨緣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을 眞如緣起(如來藏緣起)라고 한다. 또 이 二眞如라고 하는 같은 의미의 말에 淸淨眞如 · 染淨眞如, 혹은 非安立眞如 · 安立眞如(安立이란 만유를 내고 그 각각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가 있다.

화엄종에서는 본체 즉 현상을 性起說에 입각해서 진여 그대로가 萬法, 萬法 그대로가 진여라고 했다. 또 진여를 一乘眞如三乘眞如로 나누고 前者別敎眞如 · 同敎眞如, 後者頓敎眞如 · 漸敎眞如가 있다고 하며, 이것은 진여의 이해의 방법이 諸敎說에 따라서 같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천태종에서는 性具說을 세워서 진여에도 본래부터 染淨善惡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諸佛自性인 진여를 無垢眞如 혹은 出纏眞如라고 하고 중생의 體性인 진여는 번뇌에 더럽혀 있으므로 有垢眞如 혹은 在纏眞如라 하며 둘을 합하여 兩垢眞如라 한다.

釋摩訶衍論卷三에는 始覺 · 本覺二智를 깨달음의 로 하여 性眞如虛空에 입각하여 淸淨虛空라는 뜻으로 無障碍義 · · 平等義 · 廣大義 · 無相義 · 淸淨義 · 不動義 · 有空義 · 空空義  · 無得義十義가 있다고 하고 이것을 性虛空十義라고 한다.

 

(부처님) : 범어 buddha音略. 佛陀 · 佛駄 · 浮陀 · 浮屠 · 浮圖 · 浮頭 · 沒駄 · 勃陀 · 馞陀 · 步他 등으로 音譯하고 覺者 · 知者 · 이라 번역하며, 眞理를 깨달은 이의 뜻으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여(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하다는(覺行窮滿) 뜻이 있다. 自覺覺他覺行窮滿의 관계는 凡夫에 있어서는 자가, 二乘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최후의 하나가 모자라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또 불타의 깨달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모든 경론에 여러 가지로 설해 있고, 佛身 佛土 등에 대해서도 各宗異說이 있는데 대체로 대승에서는 佛果에 이르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한다.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데 갖가지 佛號를 세운다. 곧 여래의 十號를 비롯하여, 一切知者 · 一切見者 · 知道者 · 開道者 · 說道者라든가, 世尊 · 世雄(世間에 있어서 一切의 번뇌를 끊는데 雄猛, 雄健) · 世眼(세간의 눈이 되어 이것을 인도하는 ) · 世英(세상에 훌륭하여 뛰어난 자) · 天尊(五天 가운데 가장 훌륭한 第一義天)이라든가, 大覺世尊(하여 大覺尊) · 覺王(覺皇) · 法王 · 大尊師 · 大聖人 · 大沙門 · 大仙(大僊 仙人 중의 가장 높은 仙人) · 大醫王(병에 따라 신묘하게 약을 주는 명의와 같이 마음의 을 자유자재로 설하는 자) · 佛天(五天 가운데 가장 뛰어난 第一義天) ·  佛日(불타를 태양에 비유한 말) · 兩足尊 · 二足尊 · 兩足仙 · 二足仙(이 네 가지 이름은 두 다리를 가진 生類 중에서 가장 높은 이란 뜻. 二足이라 함은 , 혹은 를 갖추었다는 뜻) · 天中天(諸天중의 最勝者) · 人中牛王(불타를 牛王에 비유한 말) · 人雄獅子(人中雄者여서 마치 獸類中獅子와 같은 것) 등이다. 또 부처를 能化人 곧 가리키는 이, 인도하는 이란 뜻으로 能人이라고 부르고, 그래서 아미타불을 安樂能人(安樂世界能人이란 뜻)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能人이라 함은 能仁으로, 能仁釋迦의 번역이니 釋迦佛의 이름을 빌어서 일반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한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하여 그 몸에는 三十二相 · 八十種好를 구족하고, 十力 · 四無所畏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 불타의 초월성을 항으로 묶어서 七勝事 · 七種最勝 · 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身勝 · 如法住勝 · 智勝 · 具足勝 · 行處勝 · 不可思議勝 · 解脫勝의 일곱 가지 이름이 그것이다. 불타의 는 공히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大定 · 大智 · 大悲라고 하여 斷德 · 智德 · 恩德三德에 배속하고 합해서 大定智悲라고 한다.

過去世에 나타나신 (過去七佛 · 燃燈佛 )過去佛 또는 古佛이라고 하고 미래에 사바세계에 나타나는 불타(彌勒佛 )後佛, 또는 當來佛이라고 한다. 최초의 이라 하면 역사상의 불타는 釋尊뿐이었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過去七佛(釋尊은 그 일곱번 째)의 사상이 생기고 좀 늦게 未來佛로써 彌勒佛을 생각하게 되어, 현재는 釋尊과 미륵불과의 두 부처의 중간에 無佛의 세상이라고도 한다. 小乘에서는 現在世에 있어서 二佛이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大乘에 오면 그 세계관은 확대되어 자못 크고 넓게 되고 동방의 阿閦佛이나 西方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 他方세계에 無數(恒河의 모래의 수만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여, 十方恒沙諸佛이라고 일컫게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면 小乘一佛說이고, 大乘多佛說인데, 小乘중에도 大衆部 같은데서는 다른 三千大千世界에 동시에 다른 一佛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며, 一界一佛 · 多界多佛說을 취하고, 有部 등은 多界一佛說을 취한다. 이 경우라 함은 三千大千世界를 말한다. 三世의 모든 부처에 대해서 과거의 莊嚴劫千佛, 현재의 賢劫千佛, 미래의 星宿劫千佛, 합하여 三劫三千佛이 있다고 하며, 佛名三劫三千佛名經에 나와 있다. 佛名會는 이 에 의한 法會이다.

내세에 成佛하기 위한 信佛 등의 인연을 佛因 · 佛緣, 佛道에 들어가기 위한 인연을 佛緣(예컨대 佛緣을 맺는 것 등), 佛恩에 보답하는 것을 佛恩報謝라고 한다.

 

본성(本性) : 1. 사람이 본래 가지고 태어난 성질. 2. 사물이나 현상의 고유한 특성.(다음,한국어)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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