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ㅁ(리을~미음)

멸도(滅道)

근와(槿瓦) 2018. 5. 27. 02:30

멸도(滅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滅諦道諦를 말함. 生死因果가 없어진 열반이며, 는 열반을 깨닫는 正道이다. 이며 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無漏因果 또는 還滅因果라고도 한다. 를 먼저하고 을 뒤에 말하는 것은 먼저 를 보여서 기쁜 마음을 갖게 하여 을 닦게 하기 위한 것이다.

 

참고

멸제(滅諦) : 四諦의 하나. 은 범어 尼樓陀의 번역으로 滅無의 뜻. 깨달음의 목표 곧 이상의 열반을 말한다. 생사의 인과를 없애므로 이라 하고, 그 이치가 진실하므로 라 한다. 滅聖諦라고도 함.

 

도제(道諦) : 의 하나. 깨달을 원인인 有漏無漏의 수행을 말한다.

 

() : 열반을 말함. 따라서 終息·寂靜·寂滅이라고도 한다.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滅이라고 한다. 석존은 돌아가시어 無餘涅槃에 들어가셨으므로 석존의 경우 그 돌아가심을 특히 입멸이라고 한다.

消失·歸滅·근원적으로 없애버리는 것. 否定하는 것. 활동을 정지하는 것을 뜻한다.

滅絶하는 것. 곧 일체번뇌의 絶滅, 일체번뇌와 을 여의어 없애는 일. 四諦說에서는 第三滅諦라 하고 수행의 목표로 삼았다. 인연의 화합인 현상적 존재의 모습을 絶滅한 상태를 말한다. 十六行相의 하나. 인도종교 문헌에는 일반적으로 制御하다, 抑止하다의 뜻으로 사용했으며, 原始佛敎聖典 가운데 아주 오랜 語句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인데가 있다

깨달음의 경지를 뜻할 때가 있다.

三有爲相의 하나로 또는 四有爲相(···)의 하나로 滅相을 약하여 이라고도 한다.

毘奈耶 漢譯으로 쓰일 때도 있으며 敎團의 다툼이 없어졌음을 가리켜 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생사(生死) : 輪廻라고도 번역한다. 業因에 의해서 六道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면서 윤회하는 것으로서, 涅槃(깨달음). 生死가 끝이 없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生死海라고 하고, 번뇌의 세계이기 때문에 生死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難度海라고도 한다.

二種生死. (1) 分段生死. 有漏善惡業으로 하고 煩惱障으로 하여 三界내에 果報를 받을 때 그 과보는 壽命長短이나 육체의 大小 등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分段身이라고 하고, 분단신을 받아 윤회하는 것을 分段生死라고 한다. (2) 變易生死. 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벽지불·大力의 보살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無漏有分別으로 하고 所知障으로 하여, 界外 三界 밖의 殊勝細妙果報, 意生身을 받아 이 몸을 가지고 三界내에 와서 보살의 을 닦아서 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悲願의 힘에 의해서 수명도 육체도 자유로히 變化改易할 수가 있으므로 일정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變易身이라고 하고, 변역신을 받는 것을 變易生死라고 한다

四種生死. 분단생사를 三界에 배대하여 3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變易生死를 더하여 4로 한다. 또 변역생사를 方便·因緣·有後·無後四生死로 나눈다. (현세의 卑賤)에서 (死後惡道)으로 들어가고, 에서 (死後善趣)으로 들어가며, (현세의 尊貴)에서 으로 들어가고, 에서 으로 들어가는 44種生死라고 한다

七種生死. 분단생사를 삼계에 배대하여 나누고, 여기에 변역생사의 4종을 더하여 7로 한다. 後世의 해석에서는 이것을 다음의 7종으로 한다. 分段생사·流來생사(眞如의 이치에 하여 생사의 迷界流來하는 처음을 말한다反出생사(發心해서 생사에서 뛰어나는 처음을 말함方便생사(見思을 끊고 삼계의 생사에서 超出하는 入滅二乘에 대해서 말함因緣생사(無漏業으로 하고 無明으로 하여 을 받는 初地이상의 보살에 대해서 말함有後생사(有有생사라고도 한다. 최후의 1의 무명을 남기는 제十地 보살에 대해서 말함無後생사(無有생사라고도 한다. 무명을 끊어버려 後身을 받지 않는 等覺 보살에 대해서 말함).

 

인과(因果) : 원인과 결과를 말함. 결과를 낳게 하는 것이 이고 그 에 의해 생기는 것이 이다. 시간적인 因果 관계로 볼 때 은 앞에 있고 는 뒤에 있으므로 因果異時라 한다. 그러나 묶은 갈대를 서로 의지해서 세우는 것은 넓은 의미의 인과관계이니 이와같은 인과관계에서 보면 因果同時이다. 唯識派에선 種子에서 종자가 생기는 관계는 因果異時이고 종자에서 現行이 생기고 現行에 의해 종자를 하는 관계는 因果同時라 한다. 六因 · 五果 중에서 異熟因異熟果와의 관계 및 同類因 · 遍行因等流果와의 관계는 어느 것이나 因果異時俱有因 · 相應因士用果와의 관계는 因果同時이다. 能作因增上果와의 관계는 양쪽에 다 통한다. 同類因等類果와의 관계는 前生의 자기가 이 되어 後世의 자기를 낳게되는 관계임으로 이것을 自類因果라 한다

우리의 行爲(에 대해서 異時因果를 세울 때 業因에는 반드시 果報가 있고 業因에는 반드시 果報가 있다. 이것을 善因善果 · 惡因惡果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善因樂果 · 惡因苦果라고 해야 될 것으로 본다. 으로 이 생겨 善業이 계속할 경우도 있다. 이는 바로 善因善果이다. 善惡業因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相應하는 苦樂果報가 있다. 因果의 이치가 엄연해서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因果應報라고 한다. 因果의 이치를 무시해서 인정치 않고 邪見에 빠지는 것을 因果撥無한다고 한다.

因果關係를 실천수도상에서 본다면 수행의 에 의해서 깨달음의 를 얻게 됨으로 이것을 修因得果 · 修因感果 · 酬因感果라고 한다. 이란 를 불러 들이는 것이다.

모든 外道을 네 가지로 분류해서 外道四執 또는 四執이라 함. 邪因邪果萬物生起의 원인을 大自在天能力으로 돌리는 것. 無因有果는 현재의 現象的 世界로서 인정하고 그 에 대한 은 결국은 얻기 어려움으로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有因無果는 현재의 현상적 세계를 으로 인정하고 그 에 대한 는 얻기 어렵다고 부정하는 것. 無因無果는 그 양쪽을 다 부정하여 因果撥無하는 것. 또 따로 두 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因中有果論婆羅門敎 數論에서 주장하는 로서 나타난 현상적 현상세계는 반드시 가운데 들어 있다. 따라서 는 성질이 같은 것이라고 보는 것. 이에 대해 因中無果論婆羅門敎에 대립하는 소위 일반사상계 및 勝論에서 주장하는 로 독립한 많은 요소()가 결합해서 현상적세계()가 되었다고 봄으로 는 성질이 같지 않고 가운데 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차라리 果中有因論이라고 하여도 된다.

善惡業因에 의해서 樂苦를 가지고 오는 것을 나타내는 異熟因 · 異熟果와 그 중에서 특히 福德(世間的善業)에 의해 · 樂果를 가져오는 福因 · 福果, 智慧修習하여 깨달음의 결과를 가져오는 智因 · 智果의 세 가지 因果關係三因三果라 한다.

 

열반(涅槃) :  · 寂滅 · 滅度 · 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般涅槃(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 ·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8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은 항상· 快樂으로, 不老 · 不死, 淸淨 · 無垢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에 있어서는 眞如寂滅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3열반을 세운다.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佛身 또는 機緣, 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影像涅槃像, 그날(215)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 : 범어 marga의 번역으로 末伽라고 음역하며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通路. 밟아 행해야 할 길(軌路)을 뜻하는 말이다. 俱舍論卷二十五에는, 라 함은 涅槃(깨달음)으로 가는 길이고 열반의 를 얻기 위해 마땅히 의지할 바라고 했다. 이와 같이 는 주로 불교의 궁극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의 법칙을 의미한다. 또 널리 에 이르게 하는 通路의 뜻도 있다.

예컨대 智度論卷八十四에는, 人天 · 聲聞 · 연각 · 보살의 4종의 가 있다. 사람이나 하늘은 十善이나 布施로 하여 세간적인 福樂을 구하고, 二乘三十七道品로 하여 열반을 구하고, 보살은 삼십칠도품이나 六波羅蜜로 하여 佛果를 구한다고 했다.

이상과 같은 의미의 와는 달리 · · 三道라고도 하는데 이때의 , , 을 가져오는 通路로서,  三者는 서로 바퀴와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三惡道 · 五道 · 六道라고 할 때의 善惡에 의해 지옥 등의 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는 , 그것은 應報을 따라 각각 다르고 순환하는 인 것이다. 菩提(깨달음의 지혜)로 번역하는 수가 있기 때문에, 구별하여 菩提果道라 하며 그 이전의 因道라 부르기도 한다.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번뇌를 制伏하거나 혹은 이것을 끊는 가운데에 有漏道無漏道二道가 있다. 유루도는 世間道 · 世俗道라고도 하며, 앞에서의 人天도 이에 해당된다. 三界 · 九地 가운데 有頂地를 제외한 下八地修惑을 끊기 위한 見道加行位(加行道라고도 함)에서 유루지를 가지고 六行觀을 닦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구사종에서는 이와 같이 유루도에 있어서도 번뇌를 끊을 수가 있다고(有漏斷)하여 유루도도 斷道라고도 하나, 유식종에서는 유루도는 번뇌의 現行을 조복하는 번뇌의 種子까지도 끊을 수 없다고 하며, 이것을 伏道(能伏道)라고 한다. 무루도는 出世間道 · 聖道라고도 하며 未至 · 中間 · 四根本 · 下三無色九地所依로 하여, 무루지에 의해서 번뇌를 끊는(無漏斷)로서, 유식종에서는 이것을 斷道에서도 伏道라고 한다. 여기 斷道能斷道의 뜻으로서 對治道 · 能治道라고도 한다. 이 유루 · 무루의  · · 無學三道配對하면, 見道無學道는 반드시 무루도로서, 修道에는 무루도도 유루도도 있다.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과정을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四道(四種道)로 나눈다.

(1) 加行道. 方便道라고도 하며, 번뇌를 끊기 위한 준비적 실천(가행위를 다시 가행도라고도 부르는 것과는 다르다).

(2) 無間道. 라고도 하며, 바로 번뇌를 끊는 로서 앞에 말한바와 같이 斷道란 것이다. 直後(無間)에 번뇌가 끊어졌으므로 無間隔의 의미로 無間이라 한다.

(3) 解脫道. 번뇌를 끊어서 해탈의 진리를 증득하는 .

(4) 勝進道. 勝道라고도 하며, 다시 나아가서 다른 이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이 때는 승진도는 다음의 번뇌를 끊기 위한 가행도가 된다), 혹은 만족해서 이미 끊어진 것을 觀察하는

기타 敎道 · 證道, 難行道 · 易行道라고 하는 熟語가 있으나, 또한 聖道 또는 無上道(悟道)하는 것을 得道(得度)라 하고, 禪宗에서는 하는 뜻으로 참선해서 心眼을 여는 것을 라고 한다.

菩提의 번역이다.

 

정도(正道) : 正眞師道, 三乘所行無漏道란 뜻. 一切法根本體性은 차별을 뛰어 넘어 一味平等絶對無爲의 경지이며 이것을 體達無漏智로 마침내 菩提涅槃證得하고 佛果에 이르게 하므로 이것을 正道라 한다. 八正道分을 가리킴.

 

() : , 原因을 따라서 일어나는 결과를 일컬음. 有部宗이나 唯識宗에선 五果로 분류한다.

(1) 等類果. 善因으로부터 생기는 善果, 惡因으로부터 생기는 惡果처럼 同質를 일컬으며, 六因중의 同類因遍行因에서 생기는 를 가리키고 習果라고도 한다.

(2) 異熟果. , 不善業因 異熟因으로부터 생기는 無記(非善非不善)를 말한다. 과 성질이 다른 成熟란 뜻. 報果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習果報果를 합해 二果라고도 한다.

(3) 士用果. 俱有因 · 相應因이며, 이 강한 세력을 男子(士夫)의 동작()에 비유해서 士用이라 한 것이다. 士用的에 의해서 생긴 란 뜻. 곧 동시의 因果를 말한다.

(4) 增上果. 자기 자신(主體)을 제외한 모든 有爲法能作因이라 하고, 이 능작인에 의해 생긴 를 말한다. 에 대해 힘을 강하게 주는 에 의해서 생긴 란 뜻. 이상 四果有爲法이므로 有爲果라 한다.

이에 대해 (5) 離繫果無爲果가 된다. 離繫란 번뇌의 속박을 여읜 것을 뜻하므로 離繫果擇滅 , 열반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擇滅無爲法이어서 등을 갖지 않으므로 不生不滅이며, 따라서 離繫果道因에 의해 생기는 는 아니지만 擇滅을 얻기 위한 (離繫得)을 내는 이 되고, 동시에 擇滅에 의해서 證得되므로 擇滅離繫果라고 하여, 이것을 또 果果라고도 한다. 修行이므로 菩提에 의해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이다. 또 이 五果에 다음의 네가지 를 더하여 九果로 하기도 한다.

(6) 安立果. 다른 것에 의지하여 건립된 .

(7) 加行果修行의 실천에 의해 얻어진 .

(8) 和合果는 여러 和合에 의해 나오는 .

(9) 修習果聖道修行을 따라 생기는 를 말한다. 특히 十力 · 四無所畏 · 十八不共法 · 自在神力 등은 修行의 결과이며 佛力이므로 果力이라고도 한다. 대승에 있어 佛果, 소승에 있어 阿羅漢果究極이므로 極果라고도 한다.

 

() : 狹義로는 결과()를 가져오는 직접 내적 원인을 (內因)이라 하고, 이것을 외부에서 도우는 간접적 원인을 (外緣)이라 하지만, 廣義로는 두 가지를 합해서 이라고도 하고 이라고도 한다. 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能生因方便因, 正因了因, 正因緣因 등의 2의 분류는 狹義로서의 並稱하는 이름이다. 이 밖에 習因(慣習 · 同類因)報因(善惡, 異熟因), 引因 또는 牽引因(未來世果報를 끌어 당기는 種子)生因 또는 生起因(가까운 未來世果報를 끌어당기는 種子), 通因(흔히 결과에 대한 공통으로 이 되는 것)別因(하나의 결과만 특별히 이 되는 것) 등의 두 가지 의 분류가 있다.

5· · · · 의 다섯가지 으로 能造四大種(···)으로 하고 所造色로 할 때 4大種所造色에 대한 5의 뜻이라고 한다. 生因이란 4에서 所造가 생기는 것. 依因이란 4所造하는 所依가 되는 것. 立因이란 4所造한 것을 保持하는 것. 持因이란 4所造하는 것을 지속시키는 것. 養因이란 4所造할 수 있도록 育成하는 것을 말함. 또 일체의 을 나눠 生因 · 和合因 · 住因 · 增長因 · 遠因5으로 하기도 한다.

有部宗(俱舍宗)에서는 6을 말한다. (1) 能作因. 이외의 일체의 有爲法은 그 법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혹은 적극적인 힘을 주고(有力能作因), 혹은 소극적으로 그 법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것(無力能作因)을 모두 그 법에 대한 (能作因)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廣義이다. (2) 俱有因. 두 개 이상의 법이 동시에 서로 같이 존재할 때, 諸法은 서로가 俱有因이라 한다. 여기에는 同一果(를 같이함)互爲果(서로 가 되는 것)외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3) 同類因. 같은 이 연속해서 생기는 경우. 앞의 법을 뒤 법의 同類因이라 한다. (4) 相應因. 俱有因 중에서 특히 心所와의 관계를 相應因이라 한다. (5) 遍行因. 同類因 중에 특히 힘이 강한 번뇌 곧 遍行惑에 관해 말할 경우를 따로 말하는 것. (6) 異熟因. 不善業有漏善業이 되어 無記를 끌어당기는 경우 이것을 異熟因이라 한다. 또 따로 當有因 · 相續因 · 相因 · 能作因 · 顯了因 · 待因6이라고도 한다.

유식종에서는 10을 말한다.

(1) 隨說因. 말은 사물을 표현함으로 말은 곧 사물의 이다.

(2) 觀待因. 잘 받들리는 것. 예를 들면 손을 들어서 물건을 잡는 동작을 행할 때 손을 잡는 물건의 이다.

(3) 牽引因. 種子가 먼 미래에 스스로 를 끌어 당기는 것.

(4) 攝受因. 種子 이외의 여러 가지 .

(5) 生起因. 種子로부터 가까운 미래에 자신의 가 생긴다.

(6) 引發因. 種子 혹은 現行同類의 훌륭한 를 끌어당기는 것.

(7) 定別因. 일체의 有爲法이 자신의 를 끌어 오지만 亂雜하지 아니함.

(8) 同事因. 和合하는 것.

(9) 相違因. 사물이 생기는데 障碍가 되는 것.

(10) 不相違因. 함께 장애가 되지 않는 것.

십습인이란 가끔 어떤 일에 탐익해서 미래에 지옥에 가는 열 가지 악업.

因明(論理學)의 용어. (命題) · (例證)와 같이 三支(三要素)를 만든다. 다음에 위치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

 

무루(無漏) : 는 누설 · 누락의 뜻으로 모든 번뇌를 말한다. ·····六根에서 허물을 항상 만들어 누출한다는 뜻이다이런 번뇌에서 이탈하여 그것이 없어지고 증가함이 없음을 無漏라 하며 四諦 중의 道諦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7覺支 · 8 正道 등이 그것이다. 소승에서는 번뇌를 增上하지 않음을 말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와 함께 있지 않음을 말한다. 有部에서는 18 삼계는 유루 · 무루에 통하며15 단계는 유루에만 한한다고 하는데 잡아함경의 무루법설을 이어받아 대중부에서는 佛身 중에 있는 것은 18계 모두 같이 무루라 하는 등 그 구분과 해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환멸(還滅) : 覺性의 근원에 돌아가서 寂滅한 이치를 깨달음. 곧 미혹한 생각을 돌이켜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 業因을 지어서 生死果報를 받는 것을 流轉이라 하고, 를 닦아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을 還滅이라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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