ᄇ(비읍)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

근와(槿瓦) 2018. 5. 25. 00:22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四土의 하나. 方便土 또는 有餘土라고도 한다. 聲聞이나 緣覺으로 를 얻은 이나, 10地 以前의 보살들이 가서 태어나는 三界 밖의 淨土이다. 이들은 모두 方便으로 空觀을 닦아서 見惑思惑을 끊었으나, 아직 中道觀을 닦지 못하였으므로 無明의 번뇌를 끝까지 끊지 못했기 때문에 그 國土를 방편유여토라 함.

 

참고

사토(四土) : 천태종에서 말하는 四土.

(1) 凡聖同居土. 三界 안에 있는 범부·聖者가 함께 섞여 사는 國土同居土, 또는 染淨國이라고도 한다. 이 중에 극락세계와 같은 것은 同居淨土, 사바세계와 같은 곳은 同居穢土라고 한다.

(2) 方便有餘土. 方便道空觀假觀을 닦음으로 見惑思惑을 끊은 이가 나는 곳으로 方便土, 또는 有餘土라고도 한다. 이곳은 아직 無明煩惱가 남아 있는 國土이다.

(3) 實報無障礙土. 眞實法中道觀으로 無明을 끊고서 얻는 國土實報土 또는 果報土라고도 한다. 別敎十地이상, 圓敎十住十行·十廻向·十地·等覺 보살의 國土他受用報身敎主로 한다.

(4) 常寂光土. 法身如來와 더불어 自受用報身國土이다.

法性土·自受用土·他受用土·變化土.

法身土·報身土·應身土·化身土.

 

유여토(有餘土) : 四土의 하나. 자세히는 方便有餘土. 아라한과 같이 三界의 번뇌를 끊은 聖者가 나는 세계의 국토란 뜻. 그러므로 有餘土三界 밖에 존재하는 국토라 함. 그러나 小乘의 정의로는 아라한은 無餘涅槃을 얻은 畢竟不生의 성자이므로 어디에고 하는 곳이 없다고 하지만, 大乘의 정의로는 畢竟不生의 경지가 아니며, 따라서 三界이 다하고 나면 바로 界外有餘土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저들의 有餘涅槃이라고 함은 아직 有餘涅槃이라고 대승은 규정한다. 이것이 대승의 차별이다. 有餘土無明이 다하지 않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므로 이렇게 이름한다.

 

성문(聲聞) : 소리를 듣는 사람이란 뜻으로 제자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가리킨다. 원래는 佛在世時의 제자를 말하지만 緣覺 · 菩薩에 대해 二乘 · 三乘의 하나로 열거할 때는 부처님의 敎說에 따라 수행을 하지만 자기 혼자만 해탈하는 것을 목적하는 出家聖者를 뜻한다. 佛敎徒 가운데 성질 · 능력이 얕은 下根機 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쌓아 四妙門果를 깨닫고 마침내는 心身을 다 滅盡하여 灰身滅智無餘涅槃에 들어가는 것을 목적하는 사람들의 뜻이다. 성문을 위한 聲聞乘, 그 교를 설한 經典聲聞藏이라 한다. 聲聞乘緣覺乘과 같이 소승에 속한다. 법화경 卷二에는 성문이 마음을 바꾸어서 대승으로 轉向하는 경우, 이를 聲聞이라 칭하는 것은다른 사람을 제도하고자 가르침을 다른 사람에게 설하여 들려주는 사람이란 뜻이다라고 하며 이것을 大乘聲聞(佛道聲聞)이라 부른다.

世親法華論 卷下에는, 성문을 넷으로 분류했다.

(1) 소승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를 같이하는 決定성문,

(2) 人無我에 집착함으로 성문에 만족하여 慢心을 일으키는 增上慢성문,

(3) 대승에 뜻을 두었으나 바꾸어 성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대승으로 향하는 退菩提心성문,

(4)  ·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거짓으로 성문이 되어 나타난 應化성문이다. 法華玄論 卷四에는 여기에 다시 佛道성문을 넣어서 五種성문이라 한다.

 

연각(緣覺) : 범어 pratyeka-buddha(各自가 깨닫다는 뜻)의 번역. 獨覺이라고도 번역하고, 辟支佛音譯. 불타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를 깨달은 이로, 寂靜한 고독을 좋아할 뿐 說法敎化하지 않는다고 하는 일종의 聖者. 聲聞과 같이 二乘의 하나. 聲聞 보살과 같이 三乘의 하나.

여기에 部行獨覺麟角喩獨覺(麟喩獨覺)2종의 獨覺이 있다. 앞의 것은, 먼저 聲聞이었을 때에 不還果까지를 얻은 사람이, 4阿羅漢果證得할 때, 불타의 敎導를 받지 않고 홀로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하고 뒤의 것은 獨居하여 百大劫동안 깨달음을 위한 善根功德을 쌓아 홀로 깨닫는 자를 말한다. 여기에 部行이라 함은, 聲聞이었을 때에 많은 部黨을 조직하여 단체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이름하고, 麟角喩라 함은 기린의 한 뿔에 비유해서 처음부터 伴侶가 없는 獨住者임을 가리킨다.

緣覺은 다만 自利만이 있고 利他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大悲心을 가지고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 없고, 따라서 佛果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을 獨覺捨悲障이라고 한다.

緣覺으로서의 階位辟支佛地, 약하여 支佛地라 부르고, 通敎十地(三乘을 통하여 10으로 나눈 佛子階位)의 제8에 자리()하고, 支佛地 자체도 十地에 분류된다.

특히 이것을 緣覺이라 번역하는데 대해서 大乘義章 卷十七에는, 十二因緣을 깨달기 때문에, 또 바람이 나무를 움직인다(飛花落葉)등의 外緣에 의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학자 사이에는 아마도 緣覺의 번역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 : , 原因을 따라서 일어나는 결과를 일컬음. 有部宗이나 唯識宗에선 五果로 분류한다.

(1) 等類果. 善因으로부터 생기는 善果, 惡因으로부터 생기는 惡果처럼 同質를 일컬으며, 六因중의 同類因遍行因에서 생기는 를 가리키고 習果라고도 한다.

(2) 異熟果. , 不善業因 異熟因으로부터 생기는 無記(非善非不善)를 말한다. 과 성질이 다른 成熟란 뜻. 報果라고도 한다. 천태종에서는 習果報果를 합해 二果라고도 한다.

(3) 士用果. 俱有因 · 相應因이며, 이 강한 세력을 男子(士夫)의 동작()에 비유해서 士用이라 한 것이다. 士用的에 의해서 생긴 란 뜻. 곧 동시의 因果를 말한다.

(4) 增上果. 자기 자신(主體)을 제외한 모든 有爲法能作因이라 하고, 이 능작인에 의해 생긴 를 말한다. 에 대해 힘을 강하게 주는 에 의해서 생긴 란 뜻. 이상 四果有爲法이므로 有爲果라 한다.

이에 대해 (5) 離繫果無爲果가 된다. 離繫란 번뇌의 속박을 여읜 것을 뜻하므로 離繫果擇滅 , 열반의 깨달음을 가리킨다. 擇滅無爲法이어서 등을 갖지 않으므로 不生不滅이며, 따라서 離繫果道因에 의해 생기는 는 아니지만 擇滅을 얻기 위한 (離繫得)을 내는 이 되고, 동시에 擇滅에 의해서 證得되므로 擇滅離繫果라고 하여, 이것을 또 果果라고도 한다. 修行이므로 菩提에 의해 열반을 증득하게 되는 이다. 또 이 五果에 다음의 네가지 를 더하여 九果로 하기도 한다.

(6) 安立果. 다른 것에 의지하여 건립된 .

(7) 加行果修行의 실천에 의해 얻어진 .

(8) 和合果는 여러 和合에 의해 나오는 .

(9) 修習果聖道修行을 따라 생기는 를 말한다. 특히 十力 · 四無所畏 · 十八不共法 · 自在神力 등은 修行의 결과이며 佛力이므로 果力이라고도 한다. 대승에 있어 佛果, 소승에 있어 阿羅漢果究極이므로 極果라고도 한다.

 

십지(十地) : 는 범어 bhumi의 번역으로, 住處, 혹은 住持, 生成의 뜻.

그 자리()를 사는 집으로 하고, 또 그 자리에 있어서의 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것에 의해서, 를 낳게 됨을 말한다.

乾慧등의 十地. 大品般若經 6, 17 등에 해 있고 三乘에 공통된 것이기 때문에 三乘共十地, 共地라 하고, 천태종에서는 通敎十地라고 한다. 대품반야경 권에는, 乾慧 내지 十地에 대해, 보살은 方便力에 의해서 六波羅蜜을 행하고, 四念處 내지 十八不共法을 차례로 행해서, 前九地를 지나 佛地에 이른다고 하여, 十地는 보살이 갖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서, 여기서 말하는 佛地라 함은 佛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고, 보살이 과 같이 十八不共法 등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智度論 75에는, 十地를 각기 三乘階位에 배당하고 또 智顗法華玄義 四下, 摩訶止觀 六上에도 이 뜻을 받아서 해석하고 있다.

거기에 의하면,

(1) 乾慧地(過滅淨地 · 寂然雜見現入地 · 超淨觀地 · 見淨地 · 淨觀地). 乾慧라 함은 진리를 하려고 하는 지혜는 있더라도 아직 禪定의 물에 윤택하지 못한 것을 의미하며, 이 자리는 聲聞三賢位, 보살의 初發心에서부터 順忍을 얻기 까지의 에 해당한다.

(2) 性地(種性地 · 種地). 聲聞四善根位, 보살의 順忍을 얻은 로서, 諸法實相愛着하지만 邪見을 일으키지 않고, 지혜와 禪定이 수반하는 경지이다.

(3) 八人地(第八地 · 八地). 의 뜻으로 聲聞見道十五心(八忍七智)須陀洹向, 보살의 無生法忍에 해당한다.

(4) 見地(具見地). 聲聞四果중의 初果 須陀洹果. 보살의 阿鞞跋致(不退轉)에 해당함.

(5) 薄地(柔軟地 · 微欲地). 聲聞欲界九種의 번뇌가 1, 끊어진 정도로, 須陀洹果 혹은 斯陀含果, 또 보살이 모든 번뇌를 끊어서 餘氣가 엷어()진 정도로, 阿鞞跋致 이후 아직 成佛 못한 사이의 이다.

(6) 離欲地(離貪地 · 滅婬怒癡地). 聲聞欲界의 번뇌가 없어진 로서 阿那含果, 보살은 욕심을 여의어서 五神通을 얻은 이다.

(7) 已作地(所作辨地 · 已辨地). 聲聞盡智 · 無生智를 얻은 阿羅漢果. 보살은 佛地를 성취한 이다.

(8) 辟支佛地. 因緣하여 成道한 것. 緣覺이라고도 한다.

(9) 菩薩地. 앞에 말한 乾慧地에서 離欲地까지를 가리키고, 혹은 後述하는 歡喜地에서 法雲地까지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며, 初發心에서 金剛三昧까지, 곧 보살로서의 맨 처음에서 成道直前까지의 자리를 말하다고도 풀이한다.

(10) 佛地. 一切種智 등의 諸佛이 완전히 구비한 자리. 智度論 75에는 이 三乘共位의 보살이 無漏智에 의해서 을 다 없애고 깨달음을 여는데 대하여, 燈心初焰에 타거나 後焰에 타거나 정해지지 않은 것과 같이, 十地의 어디서 斷惑하더라도 固定적으로 정하여지지 않고, 十地가 다 서로 도와서 佛果에 이르게 한다고 하고, 이 비유를 燋炷十地라 한다. ........

 

보살(菩薩) : 菩提薩埵 · 菩提索多 · 冒地薩怛縛 · 扶薩이라고도 하며, 道衆生, 覺有情, 道心衆生 등이라고 번역한다. 또한 無上菩提를 구하여, 衆生을 이익케 하고, 모든 波羅蜜을 닦아서 미래에 불타의 깨달음을 열려고 하는 사람. 三乘의 하나. 十界의 하나. 보살에게는,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有情(心識을 가진 자. 衆生)이라고 하는 뜻이나, 혹은 菩提(구하는 목적인 깨달음)薩埵(敎化의 대상으로서의 중생)를 대상으로 하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것, 菩提를 얻을려고 하는 용맹한 큰 마음 등의 뜻이 있어, 聲聞이나 緣覺도 각기 菩提(覺智)를 구하는 점에서는 보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특히 無上菩提를 구하는 大乘의 수행자를 摩訶薩埵(摩訶는 크다는 뜻) · 摩訶薩 또는 菩薩摩訶· 菩提薩埵摩 · 摩訶菩提質帝薩埵 등이라고 하여, 二乘으로부터 구별하여 이것을 보살이라고 한다. ........

 

삼계(三界) : 중생이 생사에 流轉하는 의 세계. 有情의 경계를 셋으로 나눈 것. 生死輪廻하는 迷惑生存界()의 분류이므로 三有生死라고도 하고 단순이 三有라고도 한다. 欲界(欲有) · 色界(色有) · 無色界(無色有)의 셋을 말한다. 그 중에서 색계 · 무색계는 욕계보다 위에 있으므로 上二界 또는 上界라 한다(欲界 중의 六欲天까지도 포함한 天上界 전체를 가리켜서 上界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 경우 인간계를 下界라고도 한다). 三界는 끝이 없어 大海와 같은 · 의 영역이므로, 苦界 · 苦海라고 한다.

삼계는 다시 여러 세계로 각각 세분되며 그 가운데 욕계는 지옥 · 아귀 · 축생의 3惡趣(아수라를 더한 4惡趣) · ()로 분류된다. 欲界의 하늘은 여섯이 있으므로 六欲天이라 한다. 색계는 初禪天에서 제 3禪天까지는 각각 3이 있고 제四禪天九天(無想天을 제하고 八天이라고도 한다)이므로 色界 18이라고 한다. 그 제四禪天 가운데 제5淨居天을 하나로 하고, 거기에 44, 4惡趣(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4, 6欲天6, 梵天1, 無想天1, 四禪天4, 四無色天4를 합하여 二十五有라 한다. 여기에 淨居天5(無煩 · 無熱 · 善現 · 善見 · 色究竟)으로 나누어 二十九有라고도 한다. 또한 欲界를 합하여 1, 色界初禪天에서 제4禪天까지 4, 無色界空無邊處天에서 非想非非想處天까지 4로 하여 이것을 三界 九地라 한다.

 

정토(淨土) : 衆生의 세계는 · · 三毒에 의해 이루어진 穢土인데 대해 佛陀가 머무는 세계는 오직 깨달음에 의한 거룩한 淸淨光明覺의 세계이므로 淨土라 한다. 淨刹 · 淨界 · 淨國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의 적극적인 활동을 인정, 열반을 성취한 無數이 각각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敎導활동을 전개하는데 그 이 머무는 세계를 佛國淨土라고 한다.

維摩經卷上佛國品에는 마음이 淸淨하면 國土 또한 청정하다고 했으며, 깨달음을 열면 이 娑婆世界가 그대로 정토가 된다 라고 했다. 또 화엄경의 靈山淨土, 화엄경의 蓮華藏 세계, 大乘密嚴經密嚴淨土 등을 설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또 무량수경 등에서는 사바세계 이외의 他方에 존재하는 불국정토를 說示했으며, 또 다른 경에서는 미래에 건설될 정토가 있다고도 했고, 이러한 정토는 보살이 本願에 의해 구상하고 무량한 수행을 통해서 성불할 때에 완성되는 국토로서 그 불세계에 나고자 하는 중생들이 왕생한다고 한다. 타방세계에 있는 정토로서 아미타불의 西方極樂세계, 東方妙喜세계, 釋迦佛西方無勝세계, 藥師佛東方淨세계 등이 있으며, 이들 諸佛의 정토는 각각 사바세계로부터 각각 다른 방향에 있으므로 十方정토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특히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를 소중하게 여기고 저 세계에의 왕생을 강조한다.

극락세계는 須摩提의 번역으로 妙樂 · 安樂 · 安養 · 樂邦 등의 뜻을 갖는다. 이 정토는 보살이 닦는 因行로서 이루어진 報土, 그것도 불타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거짓으로 나타낸 應化土인데, 서방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서 실재하는 것인가? 중생의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가? 하는 등에 대한 諸說이 있다. 정토교에서는 報土로서 서방에 실재한다고 하며, 거기에 왕생하여 받는 낙에 대해 往生要集卷上,

(1) 聖衆來迎樂(臨終할 때 아미타불과 관음 · 세지의 2보살 등이 와서 맞이하여 정토에 인도하는 것).

(2) 蓮華初開樂(연꽃에 의탁하여 정토에 왕생(化生)하므로 그 연꽃이 처음 열릴 때 정토의 莊嚴을 보게 되는 것).

(3) 身相神通樂(三十二相의 몸과 天眼 등의 5종의 신통(五通)을 얻는 것).

(4) 五妙境界樂(· · · · 5勝妙한 것).

(5) 快樂無退樂(즐거움을 받는 일이 무궁하여 끝이 없는 것).

(6) 引接結緣樂(전에 을 맺었던 恩人 등을 정토에서 맞이하는 것).

(7) 聖衆俱會樂(많은 보살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8) 見佛聞法樂(불타를 뵙고 그 법문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

(9) 隨心供佛樂(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十方諸佛을 공양하는 것).

(10) 增進佛道樂(수행정진이 잘 되어 마침내 佛果에 오르는 것).十樂을 설하고 있다.

또 극락에는 邊地 · 疑城 · 胎宮 · 懈慢界(극락에 도달하는 도중에 있는 나라라고도, 또는 彌陀정토의 化土라고도 한다) 등이 있어서 佛智를 의심하는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이라고도 한다. 佛土에는 없지만(정토는 불의 세계) 미륵보살의 兜率天이나 관세음보살의 普陀洛山 등도 淨土라고 할 수 있다.

 

방편(方便) : 접근하다. 도달하다의 뜻. 즉 좋은 방법을 써서 중생을 인도하는 것. 훌륭한 敎化방법이라고도 쓴다. 차별의 事象을 알아서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 진실한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마련한 法門을 가리킴. 다른 이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한 수단.

(참고) 이 말은법화경에서는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開權顯實을 내용으로 한 방편품에서는,三乘一乘을 위한 방편法身常住의 사상을 나타내는 壽量品에서는,방편품에 설해진 始成正覺(비로서 깨달음을 열었다)如來의 출세가 방편이라고 밝히고 있다. ......

 

공관(空觀) :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본성이 없고 고정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진리를 觀想하는 수행법. 모든 존재를 (실체가 없음)으로 하는 입장. 모든 사물은 다 하다고 하는 도리를 깨닫기 위하여 수행하는 觀法. 모든 사물은 因緣所生(원인과 조건에 의해 生起)이기 때문에 그 실체는 있을 수 없고, 空寂無相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견혹(見惑) : 은 마음의 迷惑, 곧 번뇌의 별명이며, 또한 見惑이란 것은 見道에 의해 消滅되는 이란 뜻이고, 修惑(思惑이라고도 한다)修道에 의해 消滅해 없어지는 이다. 俱舍宗에서는 四諦의 진리(, 佛敎의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眞理를 모르는 見惑, 現象的인 사물에 집착하고 迷事修惑이라 했으며, 唯識宗에서는 邪道의 이단자가 邪敎 등의 誘導에 의해, 또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分別起)見惑,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생기는 선천적인 번뇌(俱生起)修惑이라 한다고 했다. 또한 天台宗에서는 · 二惑空觀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이므로 塵沙惑 · 無明惑과 구별했으며 합해서 三惑이라 했다. 그 가운데 · 은 모두 三界안의 사물에 의해 상대적으로 일어나고, 三界生死(, 迷的 生存)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界內이라 했고, 三乘이 공통으로 끊지 않으면 안되는 이므로 通惑이라 한다.

俱舍宗에서는 見惑八十八이 있다고 하여 見惑 八十八使(使 : 번뇌의 다른 이름)라 한다. , 見道함으로 없어지는 근본번뇌는, 五利使(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五鈍使(· · · · )이지만, 이것을 각각 四諦에 맞춰, 三界에 해당시킬 때 欲界三十二, 色界 · 無色界各 二十八이 되므로 합하여 八十八이 된다. 또한 修惑八十一이 있다고 하여, 修惑 八十一品이라 했으니, 修道에 의해 없어질 근본번뇌로, 欲界에서는 · · · , 色界 · 無色界에서는 각각 · · 十種이지만 이것들을 각각 일괄하여, 九地配對하고, 다시 각각 번뇌의 강약에 따라 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九種으로 나누어 八十一品으로 한 것이다. 見惑八十八使修惑十種을 합하여 九十八隨眠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見惑百十二, 修惑十六으로 나누고 합하여 百二十八의 근본번뇌를 세운다.

 

사혹(思惑) : 修惑이라고도 하며, 事物의 차별적인 眞相을 알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번뇌.

 

중도관(中道觀) : 天台三觀의 하나. 中道諦함으로써 無明惑을 끊는 것. 唯識宗에서는 唯識, 三論宗八不, 天台實相, 華嚴法界中道라 하는데 이 中道體證하기 위해 닦는 觀行中道觀이라 한다.

 

무명(無明) : 범어 avidya의 번역.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不如實智見을 말함. 곧 진리에 어두워서 () 사물에 통달치 못하고 사물과 현상이나 도리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不達不解不了) 정신상태로 愚癡를 그 내용으로 하며, 十二緣起第一支無明支이다. 俱舍宗이나 唯識宗에서는 無明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로 하는 라 한다

十二緣起無明支를 해석하는데 阿含經에서는 佛敎의 진리(四諦)에 대한 無智라 하고 渴愛表裏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有部에서는 十二緣起三世兩重 因果한 것으로 보고 無明을 과거의 煩惱에 있어서의 五蘊을 가리킨다고 하며, 모든 煩惱중에 이 無明의 작용이 가장 무겁고 돋보임으로 無明이라고 이름하였다. 唯識宗에서는 二世一重因果로 해석하고 無明 등의 五果種子를 끌어 들이는 能引支로 보고, 그 가운데 第六意識相應하는 로서 善惡을 일으키는 것을 無明이라 한다고 했다

有部唯識宗에서는 無明相應無明不共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前者 등의 根本煩惱相應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 後者相應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不共無明은 홀로 일어남으로 獨頭無明이라고 하는데, 唯識宗에서는 不共無明을 다시 恒行不共無明獨行不共無明으로 나눈다. 前者第七 末那識相應하는 無明으로 등의 根本煩惱相應하여 일어나나 모든 凡夫의 마음속에 늘 쉬지 않고 나타나는 作用이란 점에서 第六意識相應하는 無明과 다르기 때문에 不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後者第六意識相應하는 無明으로 다른 근본번뇌와 상응하지 않고 홀로 일어남으로 獨行不共이라고 일컫는다. 獨行不共無明隨煩惱와 함께 일어나지 않고 홀로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시 主獨行無明無主獨行無明으로 나눈다. 唯識宗에서는 無明種子現行으로 나누고 늘 衆生을 따라 다니며 第八阿賴耶識 속에 숨어 잠자고 있는 無明種子隨眠無明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표면에 나타나 現在意識으로 작용하고 있는 無明現行衆生에 붙어서 衆生을 얽어 生死(世界)에 묶어 놓는다는 의미에서 纒無明(전무명)이라 한다. 纒無明에는 相應하는 것과 不共이 있어서 隨眠··相應·不共四種이 있게 되므로 이것을 四種無明(四無明)이라 부른다. 根本枝末不共相應不相應, 迷理迷事, 獨頭俱行, 覆業發業種子子時行業果15無明으로 나눌 때도 있다.

勝鬘經에서는 見惑 三界修惑 등과 相應하는 相應無明四住地(見一處住地·欲愛住地· 色愛住地·有愛住地의 넷으로 처음의 見惑, 뒤의  三界修惑을 의미한다)이라고 부른다. 獨行不共無明無始無明住地이라 하고(합하여 五住地) 無明住地는 모두 번뇌가 일어나는 根本이며 오직 如來菩提智만이 이것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

起信論에서는, 無明不覺이라고 하고 이 不覺根本無明枝末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根本無明根本不覺·無始無明·元品無明·忽然念起無明이라고도 한다. 元初一念이라고도 한다. 眞如平等眞理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忽然히 차별·대립의 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그 元初라고 하는 것은 모든 煩惱元始이고 迷妄의 시작이므로 다른 煩惱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忽然이라고 한다. 지극히 微細하므로 心王(마음)心所(마음의 作用)를 구별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것은 즉 無始無明住地이 아닐 수 없다고 보인다. 枝末無明枝末不覺이라고도 불리우며 根本無明에 의하여 일어난 末稍的 染汚心으로 三世微麤惑業이다.

天台宗에서는 ··三觀에 의하여 각기 見思·塵沙·無明三惑을 끊는다고 한다. 無明非有非空의 진리에 迷惑되어 中道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無明을 끊음에 있어서는, 別敎에서는 十廻向位에서 항복하여, 初地이상의 12階位에서 12無明(모두 12품의 무명이 있다고 한다)을 다 끊어 마친다고 한다. 이 경우 十廻向最後第十廻向에서 처음의 無明을 끊고 初地에 들어가지만 이 처음의 無明을 또 三品으로 나누어 끊으므로 이것을 三品無明이라고도 한다. 圓敎에서는 初地 이상의 42階位에서 42품의 無明(모두 42無明이 있다 한다) 끊어 마치는데, 이 경우 제51等覺最後心에 의해 妙覺智 또는 佛智가 나타나고 이에 의해 끊어지는 最後無明元品無明·無始無明·最後品無明이라 한다. 다만 이것은 일반적인 로서 실은 圓敎에서는 三觀에는 순서와 차례를 세우지 않고 一心을 가지고 함으로 三惑은 동체로 동시에 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結使·····暴流····使·· 株杌·燒害··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 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국토(國土) : 범어 ksetra의 번역. 토지 · 영역 · 생물이 거주하는 장소를 말함. 음역하여 刹多羅 혹은 단순히 이라고도 하고 나아가서는 漢譯梵漢重複하여 刹土라고도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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