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아(法無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萬有의 實다운 體性이 없음을 말함.
참고
만유(萬有) : 우주간에 있는 삼라만상(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체성(體性) : 物心의 본질을 體性이라 하고 그 본체의 성품이 고쳐지거나 변하지 않는 것을 性이라 한다. 體 즉 性이다.
본질(本質) : 法相宗의 敎義. 心·心所(마음의 작용)가 대상을 인식할 때 그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마음속에 變現시켜, 이것을 직접의 대상으로 하여 인식이 성립되는데 이 직접의 대상(親所緣)을 影像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이 影像의 실정·근거·의거할 바가 되는 事物자체를 본질이라고 한다. 본질도 또 간접적으로는 인식의 대상(疎所緣)이 되기 때문에, 相分을 두 가지로 나누어 本質相分·影像相分으로 한다.
무아(無我) : 非我라 번역하기도 한다. 我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常), 독립적으로 自存하며(一), 핵심적인 所有, 곧 주인공으로서(主), 지배적 능력이 있는 주체(宰)로 생각되는 영혼적 또는 本體的 實體를 의미한다. 모든 物體에는 이런 我가 없고 我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을 諸法無我라고 하며 無我를 觀하는 것을 無我觀이라 한다. 無我는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三法印의 하나인 無我印에 해당된다. 이 諸法無我印에서의 我의 뜻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我의 뜻과는 구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래로 brahman교의 교설에 의해 atman(我) 사상이 젖어 있었기 때문에 釋尊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我의 관념을 부인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석존은 我가 될 수 없는 것, 我가 있지 않은 것, 我라는 집착에서 떨어질 것, 我가 아닌 것을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我라는 관념,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배제하는 사고방식, 我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었다. 팔리어 聖典에서의 無我의 원어는 anattan이다. 그 뜻은 「我가 아니다」라는 의미와 「내가 있지 않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초기 佛敎에선 결코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我에 대한 집착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Upanisad 철학에서는 我를 實體視하는 것에 비해서 佛敎에서는 이런 見解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客體的, 기능적인 我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반대한 것이다. 我의 存在·不存在라고 하는 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석존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참다운 나의 문제는 존재적 존재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므로 존재· 非存在의 관념적·논리적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석존은 일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석존은 다만 곧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원시불교에서는「五蘊의 하나하나가 苦이므로 非我이다」라는 敎說, 또「無常이므로 無我이다」라는 敎說(雜阿含經 卷三)이 있다. 이것은 我가 아닌 것을 我, 곧 我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특히 身體를 나의 것,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라는 觀念」을 排除하고자 했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人無我를 말하며 아를 부정하였으나 諸法을 實有라 하고 法無我는 말하지 않았다. 뒤에 와서 차차 「我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無我說이 확립되었으며, 이런 입장은 說一切有部, 초기 大乘佛敎에도 계승된다. 이렇게 하여 無我에는 人法二無我의 說이 있게 됐다. 有情(살아 있는 것들 : 衆生) 은 五取蘊(凡夫의 생존을 이루는 物心의 다섯가지 요소(五蘊))의 假和合的 존재이므로 이런 五蘊的 假和合體를 實體的인 생명의 주체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人無我라고 칭한다. 또 모든 것은 因緣(結果를 내는 親因은 因, 結果를 내는데 보조되는 것은 緣)에 따라 나타난 것(假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원래 고유한 獨自的 本性(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法無我라고 한다.
① 阿含에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존하며, 이에 따라 변천하고 사라져 가는 無常한 것이며, 마음대로 되지 않는 苦이므로 無我라고 한다.
② 有部에서는 我空法有라 하여 人無我를 說하고 있지만,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는 각각 自性이 있다고 보아 法無我를 설하지 않는다.
③ 成實論에서는 五蘊안에 참된 自我가 없다고 보고 人無我를 觀하는 것을 空觀, 五蘊의 法이 다 無常이어서 참된 自性이 없다고 보아 法無我를 觀하는 것을 無我觀이라고 한다.
④ 대승불교에서는 이 無我說이 空觀과 관련되어 無我란 사물에서 나(영원불멸의 本體, 고정적 실체)가 없다. 곧 無自性의 뜻이 있다고 論하여(中論 卷二二 · 二三) 無我(人無我와 法無我 我法二空)를 설했다.〔二種無我相謂人無我及法無我 楞伽經卷一〕특히 唯識宗에서는 三性說에 따라 三無我를 세우고 또 阿賴耶識과 관련시켜 無我를 고찰하여서 阿賴耶識의 本性은 空이므로, 諸法은 阿賴耶識중의 種子의 顯現에 불과함으로 無我라고 論하고 있다. 實我實法은 情有理無로 참된 我의 相이 없으므로 無相無我, 依他起의 似我似法은 如幻假有로서 집착된 我의 相과는 다르므로 異相無我, 圓成實은 識의 實性으로 無我의 상태에서 나타난 眞如를 自相이라고 하므로 自相無我라고 한다.
성(性) : 不變의 뜻으로, 본래 갖추고 있는 성질. 물건의 實體(自性을 말함), 相狀에있어서 그 自體. 중생의 타고 난 천성, 素性 · 素質(種性을 말함)등, 外界의 영향에 의해서 변하지 않는 本質을 말한다.
법(法) : 범어 dharma의 번역. 達磨 · 䭾摩 · 曇摩 · 曇無 · 曇은 그 음역이다. 任持(또는 能持)自性 · 軌生物解의 두 뜻을 갖는다고 한다. 곧 그 자체의 自性(獨自의 本性)을 간직하여 改變하지 않고 軌範이 되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일정한 事物의 이해를 낳게 하는 근거로 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法은 任持自性의 의미로 본다면 自性으로 존재하고 있는 일체의「存在」를 가리키고, 軌生物解의 의미에서 말하면 認識의 표준이 되는 규범 · 法 · 方則 · 道理 · 敎理 · 敎說 · 眞理 · 善(行)을 가리키는 것으로 된다.
① 色法 · 心法 · 一切諸法 · 萬法 등이라고 하는 法은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또 諸法을 有爲 · 無爲, 色 · 心, 染 · 淨 등의 二法으로 나누고, 혹은 三法 · 四法 등으로 나누는 경우의 法語도 존재를 의미한다.
② 佛의 가르침을 佛法 · 敎法 · 正法이라고 하고, 外道의 가르침을 邪法이라 일컫는 것처럼 法語는 행위의 규범, 교설의 의미이다. 무릇 진리라고 하는 것은 불변하는 보편의 道理이므로 法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데, 그 眞理를 說하는 것이 佛의 敎說이기 때문이다. 또 佛法을 들으므로서 얻어지는 기쁨을 法喜 · 法悅, 佛法의 진리의 맛에 접하는 것을 法味, 法味를 좋아하고 사랑하여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法樂(佛神앞에, 大乘의 經論을 읽고 講하고 또 法會 끝에 伎樂을 연주하여 本尊을 공양하는 것을 法樂이라고 한다), 佛法을 총괄해서 모은 것을 法聚 · 法蘊, 佛法의 義理를 法義, 佛法의 계통이 같은 것을(세상의 親類眷屬에 비유해서) 法類 · 法眷이라 한다.
佛法을 說한 經論 등의 문구를 法文, 佛法의 위력, 正法의 힘을 法力이라 한다. 佛法은 涅槃에의 門戶이기 때문에 法門, 번뇌의 魔軍을 調伏시키므로 法劒이라 한다. 佛이 남긴 가르침을 遺法, 佛法을 闇夜(암야)의 燈火에 비유하여 法燈 · 法光 · 法炬,
모든 생물에게 혜택을 주는 慈雨에 비유해서 法雨라고 한다.
기타 法海 · 法聲 · 法道 · 法筵 · 法衣 · 法師 등 여러 종류의 숙어가 있다. 이와 같은 法의 의미에서 변하여, 佛陀의 가르침을 說하여 보인 구체적인 경전까지도 法이라고 하고 또 도덕적 軌範의 의미로서 善行도 法이라고 칭한다.
③ 성질 · 속성의 의미. 因明(論理學)에 있어서는 宗(論證해야 할 주장)의 賓辭를 法이라고 하고 主辭를 有法이라 한다. 賓辭에 의해서 主辭를 표시한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표시되기 때문이다.
법경(法境) : 6境의 하나. 제6意識의 대상. 구사종에서는 46心所·14불상응법·3종의 무위법과 無表色의 64법을 말하고, 유식종에서는 널리 일체만법을 말함.
육경(六境) : 五官 또는 그 기능을 五根이라고 하고, 五根에 意根(마음, 十二處에서는 意處라고 한다)을 더하여 六根이라 하며, 六根의 對境을 六境이라고 한다. 곧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의 각기 色境·聲境·香境·味境·觸境·法境의 6 이다. 六境은 六塵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티끌과 같이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俱舍論 권一에 의하면, 색경(色境)에는, 靑·黃·赤·白·雲·烟·塵·霧·影·光·明·闇의 十二顯色 곧「빛」과, 長·短·方· 圓·高·下·正·不正의 八形色 곧「形」이 있다. 성경(聲境)에는, 生物의 몸에서 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 그 각각에 事物의 理를 표시하는 의미가 있는 言語와 拍手·哭聲·管絃의 音·雷鳴 등의 言語가 아닌 소리가 있다. 이들의 각기에 快한 소리와 불쾌한 소리를 나누어서 8종으로 한다. 향경(香境)에는, 沈香과 같은 好香과 葱·韮와 같은 惡香이 있어, 그 각각에 알맞은 좋은 향기와, 지나치게 강렬한 등의 4종으로 나눈다. 미경(味境)에는, 苦·酢·鹹·辛·甘·淡의 6종이 있고, 촉경(觸境)에는, 堅·濕·煗·動의 四大에 滑·澁·重·輕·冷·饑·渴을 더하여 11종이 된다. 법경(法境)은 널리 이야기하면 일체법을 포함하고, 좁게 말하면 五境을 除한 남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곧 意根·意識은 六境의 전체에 향해 작용하는데, 특히 意根·意識만이 향하여 작용하는 대상을 法境이라 하고, 十二處중에서는 이것을 法處라고 한다. 有部에서는 無表色·心所·不相應行·無爲를 포함한다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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