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진여(七眞如)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眞如는 본래 차별이 없고 절대평등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법여하에 따라 7종으로 나눈 것.
(1) 流轉眞如. 流轉은 生滅變化하는 현상계, 곧 有爲法流轉의 實性을 일컬음.
(2) 實相眞如. 我執·法執을 끊은 경지에 나타나는 實性을 말함.
(3) 唯識眞如. 染淨法으로서의 唯識의 實性을 가리킴.
(4) 安立眞如. 苦諦의 實性을 일컬음.
(5) 邪行眞如. 集諦의 實性을 가리킴.
(6) 淸淨眞如. 滅諦의 實性을 가리킴.
(7) 正行眞如. 道諦의 實性을 가리킴.
이 가운데 流轉·安立·邪行의 三眞如는 佛에 통하지 않으며, 또 實相·唯識·淸淨의 三眞如는 根本智의 경계며, 나머지 4는 後得智의 경계다.
참고
진여(眞如) : 사물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물의 本體로서 진실로 영원불변한 것이란 의미로 眞如라고 이름한 것이다. 如如 · 如實 · 如 등으로 부르며, 대승에서는 萬有의 本體를 일컫는다.
① 阿含에서는 緣起의 理法이 영원불변의 진리임을 진여라고 한듯하다. 異部宗 輪論에 의하면 化地部에서는 九無爲를 설하는 가운데 善法眞如 · 不善法眞如 · 無記法眞如 · 道支眞如 · 緣起眞如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善 · 惡 · 無記의 三性이나 八聖道나 緣起의 理法이 진실로 영원불변한 일을 진여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성이 人法二無我이며 모든 차별적인 相을 초월해서 절대의 하나인 것을 진여라 이름했으며, 또 이것을 여래의 법신의 自性으로 삼는다. 佛地經論卷七에는 진여란 모든 현상(諸法)의 實性이라고 하고 그 體는 一味이지만 相을 따라서 종종의 구별이 있으며 일체법과 不一不異로서 그 體를 보고자 하면 사고도 언어도 미치지 못하는 경지지만 모든 거짓이나 그릇된 견해를 여의고 있다는 점에서 억지로 진여라 이름했다. 또 모든 善이 의지하는 바가 되므로 法界, 損滅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實有, 增益의 謗을 여의었으므로 空無, 다만 이것만이 진실이므로 實際, 無分別智의 깨달음이므로 勝義라고 거짓 이름했다고 한다.
진여의 異名으로 大般若經卷三百六十에는 眞如 · 法界 · 法性 · 不虛妄性 · 不變異性 · 平等性 · 離生性 · 法定 · 法住 · 實際 · 虛空界 · 不思議界의 十二名이라 함. ......
유전(流轉) : 漂流하여 展轉하는 것. 生死(迷의 생존)가 단절되지 않고, 三界 六道를 계속해서 輪廻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다시 迷한 生을 받음이 없이, 열반(깨달음)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還滅이라고 한다.
유전에 속하는 쪽을 流轉門이라고 하고, 還滅에 속하는 쪽을 還滅門이라고 한다. 四諦중에서는 苦諦와 集諦, 또 十二緣起의 順觀(十二支分 곧 無明 내지 老死의 生과 有를 觀하는 것)은 流轉門이고, 滅諦와 道諦, 十二緣起의 逆觀(十二支分의 滅과 無를 觀하는 것)은 還滅門이다. 唯識宗에서는 이와 같은 流轉을 染汚淸淨流轉이라 부르고, 他에 有爲法의 刹那生滅을 刹那展轉流轉, 有情의 一期生滅을 生展轉流轉이라고도 하고, 또 流轉을 二十四不相應行法의 하나로 한다.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 心不相應行法의 略語. 心과 相應치 않는 行온이란 뜻. 得 · 非得 · 衆同分 · 命根 · 無想果 · 無想定 · 滅盡定 · 生 · 住 · 異 · 滅 · 名 · 句 · 文 등의 二十四種을 말함.
유위법(有爲法) : 인연법에 의해 爲作·造作되는 法. 곧 인연에 의해 離合集散하는 생멸하는 法을 말한다.
실상(實相)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실상을 관찰하는 것을 實相觀이라 하고, 唯識觀은 事觀임에 대하여 이것을 理觀이라고 한다. 또 諸法의 실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大乘佛敎의 印, 곧 標幟로 이를 實相印이라 한다. 大乘에서 一法印을 주장하는 것은 小乘佛敎가 三法印(無常·無我·涅槃)을 주장하는 것에 대조가 된다.
무상(無常) : 범어 anitya의 음역. 物·心의 모든 현상은 한 순간에도 生滅 變化하여 常住하는 모양이 없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2種이 있다. (1) 刹那無常. 찰나 동안에도 生 · 住 · 異 · 滅하는 것. (2) 相續無常. 한 평생 동안에 生 · 住 · 異 · 滅의 四相이 있는 것을 말함.
무아(無我) : 非我라 번역하기도 한다. 我는 영원히 변하지 않고(常), 독립적으로 自存하며(一), 핵심적인 所有, 곧 주인공으로서(主), 지배적 능력이 있는 주체(宰)로 생각되는 영혼적 또는 本體的 實體를 의미한다.
모든 物體에는 이런 我가 없고 我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을 諸法無我라고 하며 無我를 觀하는 것을 無我觀이라 한다. 無我는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三法印의 하나인 無我印에 해당된다. 이 諸法無我印에서의 我의 뜻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我의 뜻과는 구별해야 할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래로 brahman교의 교설에 의해 atman(我) 사상이 젖어 잇었기 때문에 釋尊은 일차적으로는 그런 의미의 我의 관념을 부인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석존은 我가 될 수 없는 것, 我가 있지 않은 것, 我라는 집착에서 떨어질 것, 我가 아닌 것을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我라는 관념,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배제하는 사고방식, 我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었다. 팔리어 聖典에서의 無我의 원어는 anattan이다. 그 뜻은 「我가 아니다」라는 의미와 「내가 있지 않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초기 佛敎에선 결코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我에 대한 집착에서 떨어진다」는 뜻이다. Upanisad 철학에서는 我를 實體視하는 것에 비해서 佛敎에서는 이런 見解를 거부한 것이다. 이것은 我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客體的, 기능적인 我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반대한 것이다. 我의 存在·不存在라고 하는 形而上學的 문제에 대한 대답은 석존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참다운 나의 문제는 존재적 존재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문제이므로 존재·非存在의 관념적·논리적 차원을 초월한 영역이기 때문에 석존은 일단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석존은 다만 곧 「나의 것」이라는 觀念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원시불교에서는「五蘊의 하나하나가 苦이므로 非我이다」라는 敎說, 또「無常이므로 無我이다」라는 敎說(雜阿含經 卷三)이 있다. 이것은 我가 아닌 것을 我, 곧 我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특히 身體를 나의 것, 我라고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라는 觀念」을 排除하고자 했다. 說一切有部에서는 人無我를 말하며 아를 부정하였으나 諸法을 實有라 하고 法無我는 말하지 않았다. 뒤에 와서 차차 「我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無我說이 확립되었으며, 이런 입장은 說一切有部, 초기 大乘佛敎에도 계승된다.
이렇게 하여 無我에는 人法二無我의 說이 있게 됐다. 有情(살아 있는 것들 : 衆生) 은 五取蘊(凡夫의 생존을 이루는 物心의 다섯가지 요소(五蘊))의 假和合的 존재이므로 이런 五蘊的 假和合體를 實體的인 생명의 주체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人無我라고 칭한다. 또 모든 것은 因緣(結果를 내는 親因은 因, 結果를 내는데 보조되는 것은 緣)에 따라 나타난 것(假로 성립되는 것)이므로 그것에는 원래 고유한 獨自的 本性(自性)이 없다고 하는 것을 法無我라고 한다.
열반(涅槃) : 滅 · 寂滅 · 滅度 · 寂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樂·我·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 · 恒 · 安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 · 恒은 항상, 安 · 快樂은 樂으로, 不老 · 不死는 我에, 淸淨 · 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실성(實性) : 眞如의 다른 이름.
유식(唯識) : 識 곧 心의 本體의 轉變을 떠나서, 어떠한 實在도 없다고 하는 說. 곧 우리들이 자기의 心外에 있다고 하는 物心의 모든 現象은, 우리들의 第八識 그 자체가 主觀(見分)과 客觀(相分)으로 變하여 나타나서, 인식의 대상과 같은 모습을 心外의 影像으로써 비쳐 떠올려 實在인 것처럼 인정하는데 불과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건자체(本質)는 阿賴耶識중에 攝持하는 種子로부터 變하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識 이외에는 實在는 없다고 한다. 이것을 唯識無境이라 하고, 또 萬有는 識에서 變했다고 하는 의미로 唯識所變이라고 한다. 이 이론을, 成唯識論 卷二에는
(1) 因能變(因變 · 生變이라고도 하고, 온갖 것은 阿賴耶識중에 거두어 보존돼 있는 종자에서 變生한다)과,
(2) 果能變(果變 · 緣變이라고도 하고, 그 결과 八識위에 主觀客觀의 구별이 있어서 對象에 向하는 작용을 한다)으로 나누며 觀心覺夢鈔 卷下에는 (1) 熏習道理(種子는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識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와, (2) 轉變道理(識이 見相二分으로 變하는 것)로 나누어 說한다.
안립(安立) : 言語로 表象되어 다른 것과의 구별이 세워지는(施設) 것을 安立이라고 하고, 상대적인 모든 차별을 넘고 여의어, 言語가 끊겨 있는 것을 非安立이라고 한다(成唯識論述記 권9末). 또 어느 것을 기초로 하여, 그 위에 성립되는 것(安置建立·成立), 또 說해 있지 않은 것을 說하고, 이미 說해 있는 것을 다시 廣說하는 것(開演), 言語를 絶한 理와 言語로 나타낸 敎가 합치되고 특히 言語로 나타낸 것(可建) 등도 安立이라고 한다. ① 眞如는 그 本質의 절대 超絶性의 입장에서 非安立諦(非安立眞如), 그것이 상대적인 것 중에 現象해서 言語에 表象된 점에서 安立諦(安立眞如)의 둘이다. ② 成唯識論 卷八에서는, 七眞如의 하나로서 安立眞如를 들어, 苦諦의 實性(本質)을 말한다.
사행(邪行) : ① 96종의 외도의 行法을 총칭함. 瑜伽論記六上에 「사행은 96종 외도 등이다」하였음. ② 欲邪行의 약어. 곧 邪婬을 말함. ③ 三邪行의 준말.
삼사행(三邪行) : 3가지 邪行. ① (1) 邪語. 瞋恚心, 곧 성이 나서 일으키는 口業. (2) 邪業. 瞋恚心으로 저지르는 身業. (3) 邪命. 탐욕심으로 저지르는 言語와 行爲. 또는 생존을 위한 생활방법으로 저지르는 나쁜 언어·동작. ② 身邪行·口邪行·意邪行.
사제(四諦. 苦·集·滅·道) : 諦는 범어 satya, 파리어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란 뜻. 자세히는 四聖諦·四眞諦라 하며 4가지의 틀림없는 진리를 말한다. 四諦는 대체로 12緣起의 뜻을 교리적으로 조직화한 것으로 원시불교의 교리의 대강이 표시되어 있다. 이것은 ‘最勝法說’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석존 최초의 설법(곧 初轉法輪)에서 설한 것이라고 한다. 4가지 진리의 제1은 「迷惑의 이 세상은 다 苦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2는 「苦의 因은 구하고 탐하여도 그치지 않는 執着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다. 제3은 그 執着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림으로 苦를 멸한 때가 궁극의 理想境이다」라고 한 가르침이며, 제4는 「이와 같이 苦가 없는 열반경에 도달하기 위하여 八正道의 옳은 修行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이 4가지는 순서와 같이 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聖諦라고 불리운다. 이를 약하여 苦諦·集諦·滅諦·道諦라고도 한다. 이 苦·集·滅·道의 四諦 가운데 苦와 集은 迷妄의 세계의 因果를 나타내고, 滅과 道는 證悟의 세계의 인과를 나타낸다. 四諦의 이치가 三段階인데 여기에 각각 4가지의 行相을 붙여서 說할 때 이것을 三轉十二行相이라고 한다. 곧 三轉이란 제1轉 「이것은 苦諦(集·滅·道諦)이다」라고 하는 示轉, 제2轉은 「이 苦諦(集·滅·道)는 徧知(永斷·作證·修習)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勸轉, 제3轉은 「이 苦諦(내지 道諦)는 이미 徧知(내지 修習)되었다」고 하는 證轉이 그것이다. 12行相이란 이 三轉에 각각 眼·智·明·覺(옳은 智慧에 의한 이해를 뜻하는 4개의 同義語)의 四行相을 假設하고 각각의 諦에 12行相이 있다고 한 것. 그러나 다른 견해에 따르면 眼·智·明·覺을 고려하지 않고 一諦에 三轉이 있어 四諦全體로서 모두 12行相이 있다고도 해석한다. .....
근본지(根本智) : 근본지는 如理智 · 根本無分別智 · 正體智 · 眞智 등이라고도 한다. 眞如에 契合하여 분별을 여의고 일체 현상의 본질이 平等하여 차별이 없는 것을 아는 智이다. 이에 대해 後得智는 如量智 · 無分別後智 · 俗智라고도 한다. 이는 根本智로 平等의 도리에 契合하는 현상계의 차별의 모습을 아는 지혜이다.
후득지(後得智) : 如量智 · 權智 · 俗智. 근본지에 의하여 진리를 깨달은 뒤에, 다시 분별하는 얕은 지혜를 일으켜서 依他起性의 俗事를 아는 지혜. 즉 불타가 大悲를 일으켜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은 후득지다.
의타기성(依他起性) : 唯識三性의 하나. 자기의 원인만으로는 생기기 어렵고 반드시 다른 緣, 곧 갖가지 緣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고정된 영원불변의 속성이 아니므로 假有實無的인 것으로 唯識論의 百法 가운데 94법이 여기에 속한다. 또 色法은 인연과 增上緣으로 생기고 心法은 4緣으로 일어난다고 함.
백법(百法) : 唯識宗에서 우주와 인생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종의 唯識論에 입각하여 정신과 물질의 여러 현상을 백가지 요소로 분석한 것임. 心法의 8識과 心所有法의 5遍行 · 5別境 · 11善 · 6번뇌 · 20隨번뇌 · 4不定과, 色法의 5根 · 5境 · 法處所攝色과, 不相應行의 24와 無爲의 6을 말한다.
증상연(增上緣) : 四緣의 하나. 다른 법을 일으키는데 강한 힘이 되는 것을 말한다. 眼根이 眼識을 일으키는데 증상연이 되고 논밭은 米麥이 싹터서 자라는데 힘이 됨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 2종이 있으니 힘을 직접 주는 與力증상연과 방해가 되지 않는 不障증상연이 그 것. 곡식에 온도와 비를 주는 것은 與力증상연, 폭풍 ·얼음이 없는 것은 不障증상연이다.
사연(四緣) : 物心의 온갖 현상이 발생함에 있어 그 緣을 네 가지로 나눈 것임.
(1) 因緣(직접의 自果를 因으로 하고, 因을 緣으로 하므로 인연이라 한다).
(2) 等無間緣(心과 心所간에 세운 緣이니, 앞생각이 없어지면서 뒷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
(3) 所緣緣(마음이 작용하는 對境을 所緣이라 하고, 소연은 마음에 대하여 緣이 되어서 활동을 발생케 하는 것).
(4) 增上緣(이 緣에는 有力증상연과 無力증상연의 두 가지가 있다. 유력증상연은 다른 법이 생기는데 힘을 주는 緣이고, 무력증상연은 다른 법이 생기는 것을 障礙하지 않는 緣이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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