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큰스님 말씀

생명이란 진흙 속에서

근와(槿瓦) 2015. 3. 31. 00:07

생명이란 진흙 속에서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하루는 황벽 스님이 대중을 모아 놓고 법상에서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셨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과 함께 아래로는 보이지 아니하는 작은 벌레까지라도 평등하게 불성(佛性)자리인 이 마음이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달마조사께서 인도로부터 중국에 오셔서 오직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셨으니, 바로 일체 중생들을 가리켜서 말씀하시되「본래가 다 부처님들이니 따로 더 수행을 할 것이 없다.」하였다. 그러므로 다만 지금이라도 이 마음을 알아 거두어 자기의 본 마음자리를 알아내면 다시는 따로 구할 법이 없다.

 

만약 어떻게 하여야 이 마음을 알 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에 말하는 그것이 곧 그대들의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만약 지금이라도 말을 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그대들이 그대들의 마음에서 작용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마음자리는 저 허공과 같아서, 아무도 모양도 없으며 또한 동서남북도 없으며 그렇다고 또한 전연 없는 것도 아니어서 있기는 하되 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것이오.

 

그러므로 옛날 조사께서 말씀하시되「마음은 이 마음 하나 뿐인데, 머리도 꽁지도 없다. 인연을 만나면 중생들을 교화하고 이끄는 까닭에 방편 삼아 이 마음을 지혜라고도 하는 것이다.」하였소. 가령 인연을 대하지 아니하며 언어 동작을 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이 마음을 있느니 없느니 할 수 없는 것이며 방금 언어 동작을 행할 때일지라도 또한 그 흔적을 볼 수가 없는 것이오. 이 마음이 이미 이러한 줄 깨달았으면 지금부터는 다만 몸과 망상이 없어진 이 자리에서 그대로만 살아 가면 곧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가던 길이다. <금강경>에 이 마음을 아무 데도 두지 말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을 닦으라.」하였소. 일체 중생들이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골몰하며 영겁으로 몰아치며 고생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이 마음을 항상 밖으로만 몰기 때문에 인간에서 천당과 지옥으로 사생육도에 쉴새 없이 윤회하는 것이다.

 

유마거사는「저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 마음이 원숭이와 같아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잠시 그 마음을 쉬게 하는 방편법을 가르쳐 그 마음을 잡은 뒤에야 근본적으로 모든 망상을 쉬게끔 하나니 오직 한 생각이 일어나면 만법이 일시에 따라 생겨나며 한 생각이 없어지면 일체법이 다 없어진다.

 

그러므로 저 천상 · 지옥 · 아수라 등의 여섯 가지 세계가 다 이 마음이 창조한 것이오. 지금부터 다만 무심 공부만 힘써 가되 밖으로 모든 인연을 딱 끊어 버리고 안으로는 일체 망상을 쉬어 버리면 나도 남도 없으며 탐욕심, 살해심, 밉다, 곱다, 이겼다, 졌다 하는 망상들이 도무지 없어지고 말 것이니, 이러한 망상만 끊어 없애 버리면 이 마음 본래 그대로 청정할 것이오. 곧 보리니 법이니 하는 부처님 법을 이렇게 닦는 것이오.

 

이러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비록 그대들이 널리 배우고 많이 알며 애써 수행하여 나무껍데기를 먹으며 풀로 옷 지어 입고 지낸다 하더라도 이 마음을 알지 못하면 그것이 다 요사스런 행동인 것이다. 도리어 천만외도와 수신 · 산신 · 목신의 무리가 되고 마는 것이니 그러한 수행이 생사를 해탈하고자 하는 이 불제자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으랴. 지공(誌公)은「불법 본체가 곧 이 마음인 것인데, 어찌하여 문자 중에서 찾고 있는가?」하였소. 지금이라도 이 마음자리만 알아서 일체 생각을 놓아 버리면 망상 번뇌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유마거사가「나는 방 안에 모든 물건을 다 치우고 다만 침대 하나만 두고 병을 앓고 누워 있으되, 마음에 망상이 일어나지 아니한다.」고 하였소. 이제 병을 앓고 누워서 모든 반연을 다 끊어서 일체 망상이 다 쉬어 없어지면 곧 그것이 보리인 것이오.

 

지금 만약 마음이 분주하여 정해지지 못하고 있다 하면, 그들의 뜻대로 부지런히 배워서 저 삼승사과(三乘四果)와 십지(十地)보살 지위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조사의 방망이 앞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범부와 성인의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오. 일체 행동과 모든 수행은 다 무상(無常)으로 돌아가는 것이면 아무리 큰 세력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한번은 다할 날이 있는 것이니 마치 화살을 공중으로 쏘아 놓으면 쏜 힘이 다 될 때에는 도로 땅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아서 그대는 도리어 생사에 몰아치게 될 것이오.

 

이러한 수행은 부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이 마음의 본래 면목을 모르고 한 짓이기 때문에 공연히 헛 고생만 한 것이오. 어찌 크게 그릇된 일이 아니랴! 지공이 말하기를「드러난 큰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서 잘못되어 대승법약(大乘法藥)을 먹고 중독이 되었다.」고 하시었소.

 

지금부터 밤낮을 가리지 말고, 오나 가나 가만히 있거나 부지런히 일을 하거나 앉았고 누워 있는 동안이라도 다만 모든 일에 무심할 줄만 알아가면 자연히 만사에 잘못을 따지는 분별심이 없어지며, 또한 어디에 의지할 생각도 없어지며 어느 한 곳에서 늘어 붙어 살고자 하는 애착도 없으며 또한 사방으로 돌아다니고자 하는 벌떡거리는 망상도 없어지리라.

 

먹거나 굶거나 죽거나 살거나 하는 것은 다만 인연에 맡겨둘 뿐이오. 그날 그날을 무사 태평으로 뜻없는 세상을 살아가니 마치 넋을 잃은 사람과 같소. 온 세상에서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없으며, 그대를 역시 세상이 알거나 모르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그 마음씨가 저 만길 땅 속에 묻힌 바위와 같아서 도무지 금이 간 데가 없을 것이오.

 

일체 만법이 그 마음을 흔들어 볼 수가 없게 되어 구원의 옛적부터 청정하고 우뚝하며 온전한 이 마음은 이 세상 만사에 뜻이 없소. 이만치나 되고서야 비로소 조그만큼이라도 성불(成佛)할 싹이 있을 것이오. 대중 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일을 충분히 살펴서 똑바로 알아차린 뒤에 또한 훨씬 초월자재(超越自在)하여 앞뒤에 구애된 것이 없으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다 이 마음이 밖으로 새어서 나가지 아니하면 그것을 무루지(無漏智)라고 하는 것이니 인간 천상의 착한 업(業)도 짓지 않으며, 선악간에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으니 세상의 모든 인연이 닥쳐 오지 아니하여 그야말로 한가하고 자유로운 인생인 것이오.

 

그렇다고 해서 한갓 무심하게만 사는 것이 아니오. 또한 천당 · 지옥으로 자유로이 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경(經)에 말하시기를 보살은 마음대로 가서 몸으로 태어난다(自意生身)고 했다. 그러나 만약에 무심할 줄을 모르고 다만 형식에나 규칙에만 얽매어서 수도하는 사람들은 다 마(魔)의 업(業)을 짓는 것이며, 또한 비록 부처님 세상에 태어나고자 하여 불사(佛事)를 닦는다 할지라도 다 그릇된 업을 짓는 일에 불과한 것이니 그것은 성불을 방해하는 짓이므로 불장(佛障)이라고 하는 것이며, 우리의 이 청정한 마음자리를 어지럽혀서 이 마음이 주재하는 인과법칙에 구속되게 하여 전연 자유가 없다.

 

이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하고 비어 물건이 아니므로 말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마는 부처님께서 49년이나 설법을 하신 것은 사정(邪正)을 분간하지 못하는 중생들을 교화한 것에 불과하오. 마치 누른 나무 잎사귀를 금으로 만든 돈이라고 속여서 우는 애기를 달래려는 것과 같은 것이오. <금강경>에 실로 이 마음 밖에 따로 진리가 있어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할 것은 없다고 하였다. 만약 지금이라도 이 마음의 본연한 면목을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구구한 법규에 얽매일 것이 있겠소.

 

그러므로 이 세상 만사는 모든 것을 다만 그 인연에 맡겨 지내 가면서 억겁 다생으로 사생에 윤회하는 것이며, 항상 그 때 그 곳에서 받아 태어난 그 몸뚱이만을 자기라고 고집하여 육신 본위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휩쓸리고 만다. 불과 같이 일어나는 욕심에서 생각나는 불만과 고독에서 오는 불안과 공포와 비애(悲哀)에서 허덕이며 저지른 구원겁의 모든 죄악의 업습(業習)을 쉬어 버리고 다시는 이 진아(眞我)인 마음을 저버리고 허망 무상한 육신만을 본위로 하지 말 것이오.

 

재물욕 · 색욕 · 식욕 · 수면욕 · 명예욕과 같은 다섯 가지의 욕락(五欲樂)을 탐착하여 생사의 죄업을 범하지 아니하면 본래부터 청정한 이 마음은 밝고 밝아서 쾌활하며 안락할 것이오. 오래 익혀 온 모든 지식과 사상과 고집들을 남김없이 모조리 버려야 한다고 하는 것이오. 유마거사는「나는 모든 소유(所有)를 다 버렸노라.」하였으며 <법화경>에는「과거 20년 동안의 설법은 우선 집안의 똥이나 치우게 한 것과 같다.」고 하였소. 그것은 이 마음 가운데에 지니고 있던 모든 생각과 소견이나 일체 주의 주장을 몽땅 버리게 하신 말씀인 것이오.

 

또 말씀하시기를,

「유와 무의 상대적 입장에서 본말과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의논은 말을 끝 맺을 수가 없는 농담 희론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똥과 같은 것이니 담아다가 버리게 한 것이라고 하였소. 우리의 여래장(如來藏)인 이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하며, 비고 고요하여서 한 법도 간직한 것이 없으므로, 또한 불성(佛性)도 마음도 아닌 것이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저 모든 부처님의 세계도 그것이 또한 없는 것이라고 하였소. 만약 누가 불도를 배우고 닦아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소견머리는 불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오. 어떤 바보가 있어서 말하되 내가 이러 이러한 기회에 어느 선지식을 만나서 그 스님이 눈썹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문득 도를 알았다고 하며 달마선의 이치를 증오체득(證悟體得)하였다 하여 풍을 치고 도인 행세를 하고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선지식을 만나서는 한마디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도무지 마음이 깜깜하여 칠흙같이 되고 말며, 그러나 어찌하다가 한 마디의 대답이 맞은 듯하면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날뛰며, 만약에 대답을 못하고 남에게 눌리고 꺾였을 때에는 그 마음이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서 당황하나니 그러한 덜된 정신을 가지고 달마선을 배워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경우도 닿지 아니하는 일이오.

 

그대가 비록 조그만큼 소견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들 스스로가 무단히 일으킨 소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달마선과는 아무런 줄이 닿지 아니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달마 조사께서 면벽(面壁)하신 소식은 부처님께서도 아시지 못하는 소식이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들이랴.

 

나를 잊어 버리면 곧 그것이 불도인 것이요, 무엇이든지 생각하거나 따지는 것은 마귀의 권속인 것이오.

이 마음은 비록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헤매는 때라고 할지라도 변하거나 잃어진 것도 아니며, 또한 깨달은 때라고 할지라도 마치 손에 쥔 물건을 찾는 것과 같아서 새삼스러이 딴 곳에서 얻어온 것도 아닌 것이다. 변할 수 없는 천진자성(天眞自性)의 이 마음은 흩어져 때가 묻거나 닦아 고쳐서 성해질 수가 없는 것이오. 내가 공연한 착각으로 보는 저 무한대의 허공계가 온통 그대로 이 마음 하나뿐인 것이오.

 

아무리 그대들이 별별 망상을 다 내고 온갖 망동을 다 저지른다 할지라도 어찌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아닌 이 마음을 떠나서 할 수 있는 일인가. 비어서 아무 것도 아닌 이 마음은 본래부터 클 수도 작을 수도 없으며 어디로 새어서 흘러갈 수도 없으며, 아무 것도 하는 일도 없으며 또한 아득한 일도 없으며 깨달아 아는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도 분명하며 진실하고 확실하여서 털끝 만한 물건도 얻어 볼 수가 없으며 또한 범부도 부처도 아니어서 한 점만큼도 아는 것도 없소. 이 마음은 어디에 의지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디다가 붙여서 꾸며진 것도 아니오. 끝까지 청정한 이 마음은 진리며 진아인 것이오. 그러니 어찌 따져보려고 할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설법을 할 줄 모르는 것이며, 허망하지 아니한 이 마음에는 귀가 없는데 그 무엇이 들릴 것인가? 조심하시오!」

 

 

출전 : 마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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