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체항유(法體恒有)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우주의 근본 實體는 영원불변임을 말한 것. 本體의 實性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次元以前의 절대영역이므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항상 존재한다는 뜻.
참고
법체(法體) : ① 諸法의 體. 體는 범어 svabhava의 번역. 自性 自體라고도 번역한다. 사물 바로 그것. 사물의 本體. 사물 그 자체란 뜻. ② 정토교에서는 信과 行의 대상인 名號나 念佛을 말함. ③ 法衣를 입고 있는 출가인의 자태.
항유(恒有) :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것.
불변(不變) : 수연(隨緣)→緣에 따라 生滅變化가 있는 것을 隨緣이라 하며, 영원히 변치 않고 存續하는 것을 不變이라 한다. 眞如에는 이 양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眞如 그것 자체가 현상한 迷悟染淨의 존재로 본다. 또 부처님이 緣에 따라 衆生을 敎化하는 것을 隨緣化物이라 한다. 物은 衆生의 뜻.
실성(實性) : 진여의 다른 이름.
삼세(三世) : 三際라고도 한다. 過去世(過去·前世·前生·前際)와 現在世(現在·現世·現生·中際)와 未來世(未來·來世·來生·當來·後際)의 總稱. 去來現이라고도 已今當이라고도 하고, 現在世와 未來世를 합하여 現當二世라고도 한다.
하나의 인간에 대해서 현재의 한 생애를 現世, 그 出生이전의 생애를 前世, 命終이후의 생애를 來世라고도 하는데, 또 현재를 1刹那로 보고, 그 前과 그 後로서 三世를 말하는 수도 있다. 혹은 또 劫을 단위로 하여 賢劫의 사이를 현재로 하여, 이것에 의해서 三世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 단 有部에서는 世無別體依法而立이라고 하여 世의 實在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반으로 불교에서는 때(時)를 假立하여, 勝論外道나 時論師와 같이 時를 實有라고는 하지 않는다. 過去의 業을 因으로 하여 현재의 果를 부른다고 하는 것처럼, 三世를 걸쳐서 因果應報의 이치가 행해지는 것을 三世因果라 하고, 三世에 나타나는 많은 佛을 三世諸佛이라고 한다.
단, 소승에서는 1佛 1佛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타나는 諸佛을 가리키는데, 대승에서는 공간적으로 十方의 모든 부처가, 시간적으로 3世에 걸쳐서 나타난다고 하여, 十方橫化·三世竪化라 한다.
① 有部에서는 色·心등의 有爲法의 法體는 三世에 걸쳐서 實有(곧 恒有이다)라고 한다. 이것을 三世實有 ․ 法體恒有라고 한다. 그러면 또「過去의 法」이라든가 「현재의 法」이라든가 하는 三世의 구별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여기에 여러 가지 說이 있는데 類·相·位·待의 不同에 의한다고 한다. 그 가운데 有部의 正義는 位不同說이니, 곧 法體는 三世에 걸쳐서 實在하기 때문에 法體 그것에는 三世에 의한 차별은 있을 수 없지만 그 작용을 표준하여 볼 때, 또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位의 法이 未來의 法,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位의 法이 현재의 法, 이미 일어나서 지나가버린 位의 法이 과거의 法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 현재는 1刹那이다<俱舍論 卷二十>.
② 經部에서는 현재 1찰나에 일어나고 있는 것만이 存在로서 實有하고 과거 미래의 法은 無(非存在)라고 한다. 곧「本無에 근거하여 지금이 있다. 有가 끝나면 도로 無이다.」(本無今有·有已還無)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과거의 法은 일찍이 있었던 것, (曾有) 미래의 法은 장차 있으려고 하는 것(當有)이라 하여 三世를 說한다. 이것을 現在有體·過未無體라 한다.
③ 唯識派에서는 過未無體의 입장에 서면서 세가지의 3世를 설한다.
(1) 원리상으로 본 3世. 현재의 法 위에 과거는 일찍이 있었던 因相으로서, 未來는 그 장차 있으려고 하는 果相으로서, 과거·미래의 의미가 갖추어 있다는 이유에서 현재의 法에 원리로써 3世를 세우는 것.
(2) 神通의 3世. 과거·미래는 실로 있는 것은 아니나, 宿命智(宿命通)에 의해서, 과거를 觀하고 他心智(他心通)에 의해서 현재를 觀하고, 生死智(天眼通)에 의해서 미래를 觀하는 곳에, 神通力에 의해 顯現한 3世를 현재 찰나의 心識의 相分으로서 세우는 것.
(3) 唯識의 3世. 迷한 마음에 의해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3世가 있다고 하지만 실은 현재의 心識의 變現한 相分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成唯識論述記 卷三末).
④ 화엄종에서는 9世·10世의 說을 세운다. 곧 3世의 각각에 3世를 세워서 과거의 과거 내지 미래의 미래인 9世를 설하고, 특히 또 그것들은 서로 他에 同合하고 서로 他에 化合하여(곧 相卽相入하여), 一念(한 생각)중에 거두어졌기 때문에, 이 全一의 1世와 합해서 10世가 된다고 했다(華嚴五敎章 卷四).
찰나(刹那) : 범어 ksana의 音譯. 叉拏라고도 쓰고 念頃(한 생각을 일으키는 순간)·一念·發意頃 등으로 번역하며 생략하여 단지 念이라고 만도 한다. 곧 시간의 최소단위를 뜻한다.
① 俱舍論卷十二에는 120찰라를 一怛刹那, 六十怛刹那를 一臘縛(범어 lava, 羅預·羅豫라고 音譯), 三十臘縛을 一牟呼栗多(범어 muhurta 牟呼栗多라 音譯하고 須臾라 번역), 30모호율다가 1주야라고 했다(1찰라는 지금의 0.013초에 해당한다).
② 僧祇律卷十七에는 20念을 1瞬, 20瞬을 1彈指(손가락을 튕기는 것), 20彈指를 1羅豫(臘縛), 20羅豫를 1須臾, 30須臾가 1주야라고 했다. (1念은 지금의 0.018초에 해당)
③ 1刹那와 1念은 서로 다르다는 說도 있다. 往生論註卷上에서는 60찰나를 1념으로, 仁王般若經卷上에서는 90찰나를 1念이라 했다.
④ 智度論 卷三十 및 卷八十三에서는 60念을 1彈指로, 俱舍論卷十二에서는 65찰나를 1彈指로 했다.
⑤ 大般若經 卷三百四十七에서 說하는 1日夜·1日·半日·1時·食頃·須臾·俄爾·瞬息頃의 순서에 의하면 一食頃(一前食과 後食 사이 곧 朝食前 또는 朝食하는 사이란 뜻)에 대한 대체적인 시간의 길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⑥ 모든 存在가 찰라찰라 생겼는가 하면 滅하고 滅하면 또 생기고 하는 生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刹那生滅이라고 한다. 事物의 無常한 窮極的인 모습을 一期生滅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⑦ 現在의 1찰라를 現在라 하고 前刹那를 過去, 後刹那를 未來라 하며, 이 셋을 합하여 刹那三世라 한다.
⑧ 仁王般若經卷上에는 1찰라에 9백 生滅이 있다고 하고, 往生論註卷上에는 1찰라에 百一의 生滅이 있다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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