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新譯에서는 般若波羅蜜多라고 한다. 六波羅蜜 및 十波羅蜜의 하나. 般若波羅蜜經에서는 六波羅蜜이 있지만 般若를 諸波羅蜜 중에 가장 제일이라고 한다. 특히 般若를 지혜라 번역하고 波羅蜜을 度 혹은 到彼岸이라고 번역하는데 實相을 照了하는 지혜로 生死의 이 언덕을 건너 涅槃의 彼岸에 이르는 배와 같고 뗏목과 같으므로 반야야말로 참다운 의미의 波羅蜜이라 한다(智度論 18).
참고
육바라밀(六波羅蜜) : 범어 sat-paramita. 六波羅蜜多 · 六度 · 六到彼岸이라고도 한다. 피안 즉 열반에 이르기 위하여 보살 · 마하살이 수행하는 대행에 여섯 가지가 있다는 것. 즉,
(1) 檀 또는 檀那바라밀. 檀那는 布施 · 施라고 번역한다. 이 보시바라밀은 財 · 無畏 · 法을 남김 없이 주고 베풀면서도 주었다는 생각마저 버림으로써 자기 자신의 탐심을 끊고 집착을 떠나며 또한 타인의 가난함을 도와주는 윤리적 실천을 말한다.
(2) 尸羅바라밀. 尸羅는 持戒 · 戒라고 번역한다. 이 지계바라밀은 재가 · 출가 모두 대소 일체의 계와 율을 견고히 지켜 惡業을 멸하고 몸과 마음의 청정을 얻는 것.
(3) 羼提바라밀. 羼提는 忍辱 · 忍이라고 번역한다. 이 인욕바라밀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모든 박해나 고통을 잘 참고, 도리어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원한과 노여움을 없애고, 諸法을 밝게 관찰하여 마음이 安住하는 것을 말한다.
(4) 毘梨耶바라밀. 毘梨耶는 精進 · 進이라고 번역. 이 정진바라밀은 심신을 가다듬고 힘써 善行 특히 여러 바라밀을 꾸준히 실천하여, 해태한 마음을 버리고, 善法을 점점 더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5) 禪那바라밀. 禪那는 禪定 · 靜慮라 번역한다. 이 선정바라밀은 마음이 산란하여지는 것을 멈추고 4禪 · 8定 · 108삼매를 행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6) 般若바라밀. 般若는 지혜라 번역한다. 이 지혜바라밀은 어리석음을 고치어 모든 진리를 밝게 아는 예지, 또는 그 如實의 진리를 체득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육바라밀은 戒 · 定 · 慧 3學의 所攝이라고 하며, 하나하나의 내용 · 순서 · 상호관계 등의 해설은 大品을 비롯하여 여러 반야경전 · 지도론, 그 밖의 여러 대승경론에 상세히 논술되어 있다. 또한 반야바라밀을 다시 方便 · 願 · 力 · 智의 4바라밀로 나누어 모두 10바라밀이라고도 한다. 6바라밀은 대승보살의 道이며 有部에서는 大毘婆沙論에 보시 · 지계 · 정진 · 반야의 4바라밀을 말할 뿐이다.
반야(般若) : 범어 prajna의 음역. 波若. 般羅若. 鉢刺若라고도 한다. 慧·智慧·明·黠慧라고 번역한다. 모든 사물의 도리를 분명히 뚫어 보는 깊은 지혜를 말한다. 보살이 깨닫고 彼岸에 도달하기 위해 닦는 六種의 行. 곧 六波羅蜜 가운데 般若波羅蜜(智慧波羅蜜)은 諸佛의 母라 일컬어지고 다른 五波羅蜜을 성립시키는 근거로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① 반야를 2종으로 나눈다.
(1) 共般若(성문·연각·보살을 위해 공통으로 설한 般若)와 不共般若(다만 보살만을 위해 설해진 반야).
(2) 實相般若(반야의 지혜에 의해 관조된 對境으로서 일체법의 진실하고 절대적인 모습. 이것은 반야가 아니지만 반야를 일으키는 근원이므로 반야라 부른다)와 觀照般若[일체법의 진실하고 절대적인 모습(實相)을 관조하여 알아내는 지혜].
(3) 世間般若(세속적 상대적인 반야)와 出世間般若(超世俗的 절대적인 반야).
② 實相般若와 觀照般若의 둘에 方便般若(추리판단을 작용시켜 諸法의 차별을 了解하는 相對智)를 더하여 혹은 文字般若(실상·관조의 반야를 담은 반야의 諸經典)를 더하여 三般若라 하고, 이 실상·관조· 문자의 삼반야에 境界般若(般若지혜의 대상으로서 객관의 一切諸法)와 眷屬般若(諸法의 實相을 아는 觀照智로서의 반야에 수반하여 이것을 도웁는 六波羅蜜 등의 諸種의 수행)의 둘을 더하여 五種般若라고도 한다.
바라밀(波羅蜜) : 범어 paramita의 음역. 波羅蜜多라고도 쓰고, 到彼岸 · 度無極 · 度라 번역함.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 보통 보살이 그것에 의지해 닦는 行을 말함.
① 六波羅蜜. 六度라 번역한다. 大乘의 보살이 實踐修行하지 않으면 안되는 여섯 가지 行으로 六度의 行이라 한다. 布施波羅蜜(檀波羅蜜. 완전한 자비를 베풀음) · 持戒波羅蜜(戒波羅蜜. 敎團의 규정을 완전히 지키는 것) · 忍辱波羅蜜(羼提波羅蜜. 완전한 인내) · 精進波羅蜜(毘梨耶波羅蜜. 완전한 노력) · 禪定波羅蜜(禪那波羅蜜. 완전한 마음의 통일) · 智慧波羅蜜(般若波羅蜜. 완전한 지혜. 곧 인간적인 理性을 초월한 무분별의 지혜. 이것은 布施를 하여 布施波羅蜜답게 하는 것. 곧 五波羅蜜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그런 까닭에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라 일컫는다).
② 十波羅蜜. 十度라 번역하고 十勝行이라고도 함. 六波羅蜜을 얻기 위한 도움이 되는 다음의 四波羅蜜을 六波羅蜜에 더한 것. 方便波羅蜜(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완전한 수단방법) · 願波羅蜜(깨달음의 지혜[菩提]를 얻어서 중생을 제도하려고 하는 훌륭한 願) · 力波羅蜜(바르게 판단하여 수행하는 완전한 힘) · 智波羅蜜(깨달음의 즐거움을 받고서 또 중생을 깨달음에 인도하는 완전한 지혜).
③ 四波羅蜜이라 함은 常波羅蜜(완전한 영원성) · 樂波羅蜜(완전한 안온성) · 我波羅蜜(완전한 주체성) · 淨波羅蜜(완전한 淸純性)의 넷으로, 涅槃(깨달음)에 갖추어진 네 가지 훌륭한 특질(四德).
④ 密敎에서는 金剛界曼茶羅의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하는 金剛波羅蜜(東方) · 寶波羅蜜(南方)을 중심으로 하는 法波羅蜜(西方) · 業波羅蜜(北方)의 四보살을 四波羅蜜(보살)이라 한다.
도피안(到彼岸) : 범어 paramita. 波羅蜜多의 新譯. 생사의 바다를 초월하여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는 正道를 말함.
실상(實相) :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 실상을 관찰하는 것을 實相觀이라 하고, 唯識觀은 事觀임에 대하여 이것을 理觀이라고 한다. 또 諸法의 실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大乘佛敎의 印, 곧 標幟로 이를 實相印이라 한다. 大乘에서 一法印을 주장하는 것은 小乘佛敎가 三法印(無常·無我·涅槃)을 주장하는 것에 대조가 된다.
조료(照了) : 범어 abhivyakti. 顯觀(現前에서 직접 明了하게 觀하는 것)하는 것.
생사(生死) : 輪廻라고도 번역한다. 業因에 의해서 六道의 迷界에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면서 윤회하는 것으로서, 涅槃(깨달음)의 逆. 生死가 끝이 없는 것을 밑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에 비유해서 生死海라고 하고, 번뇌의 세계이기 때문에 生死苦海라고도 한다. 생사의 고해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難度海라고도 한다.
① 二種生死.
(1) 分段生死. 有漏의 善惡業을 因으로 하고 煩惱障을 緣으로 하여 三界내에 麤한 果報를 받을 때 그 과보는 壽命의 長短이나 육체의 大小 등 일정한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分段身이라고 하고, 분단신을 받아 윤회하는 것을 分段生死라고 한다.
(2) 變易生死. 不思議變易生死라고도 한다. 아라한·벽지불·大力의 보살은 분단생사를 받는 일은 없으나, 그러나 無漏의 有分別의 業을 因으로 하고 所知障을 緣으로 하여, 界外 곧 三界 밖의 殊勝細妙한 果報의 身, 곧 意生身을 받아 이 몸을 가지고 三界내에 와서 보살의 行을 닦아서 佛果에 이른다. 그 몸은 悲願의 힘에 의해서 수명도 육체도 자유로히 變化改易할 수가 있으므로 일정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變易身이라고 하고, 변역신을 받는 것을 變易生死라고 한다.
② 四種生死. 분단생사를 三界에 배대하여 3으로 구별하고, 여기에 變易生死를 더하여 4로 한다. 또 변역생사를 方便·因緣·有後·無後의 四生死로 나눈다. 또 冥(현세의 卑賤)에서 冥(死後의 惡道)으로 들어가고, 冥에서 明(死後의 善趣)으로 들어가며, 明(현세의 尊貴)에서 冥으로 들어가고, 明에서 明으로 들어가는 4를 4種生死라고 한다.
③ 七種生死. 분단생사를 삼계에 배대하여 나누고, 여기에 변역생사의 4종을 더하여 7로 한다. 단 後世의 해석에서는 이것을 다음의 7종으로 한다. 分段생사·流來생사(眞如의 이치에 迷하여 생사의 迷界에 流來하는 처음을 말한다)·反出생사(發心해서 생사에서 뛰어나는 처음을 말함)·方便생사(見思의 惑을 끊고 삼계의 생사에서 超出하는 入滅의 二乘에 대해서 말함)·因緣생사(無漏業을 因으로 하고 無明을 緣으로 하여 生을 받는 初地이상의 보살에 대해서 말함)·有後생사(有有생사라고도 한다. 최후의 1品의 무명을 남기는 제十地 보살에 대해서 말함)·無後생사(無有생사라고도 한다. 무명을 끊어버려 後身을 받지 않는 等覺 보살에 대해서 말함).
열반(涅槃) : 滅 · 寂滅 · 滅度 · 寂이라 번역한다. 擇滅 · 離繫 · 解脫 등과 동의어로, 또 般涅槃(般은 범어 pari의 음역으로, 완전의 뜻. 圓寂이라 번역한다), 大般涅槃(大는 뛰어나다는 뜻, 大圓寂)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불어 끈다는 뜻, 불어 끈 상태, 곧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滅盡해서 깨달음의 지혜인 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말한다. 이것은 生死(迷의 세계)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로, 불교의 구극적인 실천목적이며, 그러므로 여기에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旗印(法印)의 하나로서 涅槃寂靜을 세우게 된다. 불교 이외의 外道에서도 열반을 말하지만, 불교의 열반과는 다르다. 불교에서도 대승 · 소승에서 각기 그 해석에 異說이 많다.
① 部派(소승)불교에서 열반이라 함은 번뇌를 멸하여 없앤 상태라 하고, 여기에 有餘열반과 無餘열반의 2종열반을 세운다. 앞의 것은 번뇌를 끊었지만 육체(「殘餘의 依身」가 아직 있다는 의미로「餘依」또는「餘」라고 한다)는 아직 殘存하는 경우, 뒤의 것은 灰身滅智의 상태로, 모든 것이 滅無로 돌아간 경우를 가리킨다. 有部등에서는 열반을 하나의 본연의 자세인 실체적인 경지로 생각하고, 經量部등에서는 열반은 번뇌가 멸한 상태에 대한 假稱的인 명칭으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② 대승에서는, 열반을 적극적인 것이라 생각하여, 常 · 樂 · 我 · 淨의 四德을 갖추지 않은 소승의 열반을 有爲열반이라고 하는 데 대해서, 이 사덕을 갖춘 열반을 無爲열반이라 하여, 이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다. 또 南本열반경 卷三에는, 常 · 恒 · 安 · 淸淨 · 不老 · 不死 · 無垢 · 快樂의 8味가 열반에는 갖추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열반의 八味라고 한다. 常 · 恒은 항상, 安 · 快樂은 樂으로, 不老 · 不死는 我에, 淸淨 · 無垢는 淨에 對應하여 이것을 四德에 배속하는 수도 있다. 唯識宗에서는, 本來自性淸淨열반과 有餘依열반과 無餘依열반과 無住處열반의 4종열반으로 나눈다. 본래자성청정열반은 또 본래청정열반이라고도 性淨열반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이 본래의 相에 있어서는 眞如寂滅의 理體 그것이라고 하여 진여를 가리켜서 이와같이 말한다. 무주처열반이라 함은 지혜에 의해서 煩惱障과 所知障을 여의었기 때문에 생사(迷의 세계)에도 停滯하지 않고, 또 大悲를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迷의 세계중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반의 경지에서도 머무르지 않는 것을 말하고, 대승불교의 열반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地論宗이나 攝論宗에서는 性淨열반 · 方便淨열반(도를 닦음으로 인하여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얻는 열반)의 二열반, 천태종에서는 性淨열반 · 圓淨열반(지론종등의 방편정열반에 상당) · 方便淨열반(불타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가 緣이 다하여 들어가는 열반으로, 應化열반이라고도 한다)의 3열반을 세운다.
③ 소승의 聲聞이나 緣覺이 무여열반에 들어가서 다시 마음을 바꿔서 대승의 敎에 轉向하는 것을 無餘還生이라고 한다. 또 열반은 모든 차별적인 모습(有爲의 相)을 超離하여 있는데, 이것을 離相이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불타의 정토를 涅槃之城 또는 無爲涅槃界라고도 한다.
④ 이 세상에 사람으로서 나타난 불타(특히 釋尊)의 육체의 죽음을 涅槃 · 般涅槃 · 大般涅槃이라고 하고,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入涅槃 · 入滅 · 薪盡火滅(薪은 佛身 또는 機緣, 火는 지혜 또는 佛身에 비유한다)이라고 한다. 대개 본래는 석존의 成道를 열반이라고 해야 할 것이나, 지금은 아마도 無餘依열반의 의미로 이와같이 말하는 것일 것이다. 석존의 入涅槃의 모습을 본뜬 畵像 또 影像을 涅槃像, 그날(2월 15일)에 석존을 追慕하여 진력하는 법회를 涅槃會 · 涅槃忌 · 常樂會등이라고 한다. 또 승려의 死를 圓寂 · 歸寂 · 示寂 · 入寂등이라고 한다.
지도론(智度論) : 大智度論의 약칭. 100권. 용수보살이 저술하고 구마라집이 번역함. 마하반야바라밀경을 자세히 해석한 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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