僧(스님)

의상(義湘)

근와(槿瓦) 2015. 1. 21. 01:27

의상(義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625~702) 신라 승려. 속성은 김씨. 20세에 황복사에서 승려가 되다. 신라 중기의 고승으로 화엄종의 시조이다. 진덕왕 4(650)년 원효와 함께 당나라에 가려고 요동까지 가서, 원효는 무덤 사이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唯心의 도리를 깨달아 먼저 돌아오고, 의상도 가던 도중에 난을 당해 이루지 못하고, 그후 661년(문무왕 1년)에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어타고 건너가 終南山 至相寺에서 智儼(중국 화엄종의 시조)의 문하에 賢首와 같이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현수는 지엄의 뒤를 이어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되고 의상은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洛山寺)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을 강술하여 해동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692(효소왕 1)년에 현수는 勝詮이 귀국할 때, 그의 저술 화엄경 탐험기와 그 비판을 구하는 서신을 의상에게 보냈는데, 그 친필 서신이 오늘 날까지 전하고 있다.

 

의상은 문하에게 이것을 나누어 강술하면서 傳敎에 전심하다 78세로 입적했다. 고려 숙종은 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라 시호하였다. 의상의 문인으로 뛰어난 10大德(悟眞 ․ 知通 ․ 表訓 ․ 眞定 ․ 眞藏 ․ 道融 ․ 良圓 ․ 相源 ․ 能仁 ․ 義寂)이 있었으며, 傳敎의 10大刹(부석사 ․ 화엄사 ․ 해인사 ․ 갑사 ․ 범어사 ․ 美理寺 ․ 普光寺 ․ 普願寺 ․ 玉泉寺 ․ 靑潭寺)이 있었다.

 

의상의 귀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지고 있다. 즉 당나라는 신라의 3국 통일을 원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麗濟 양국을 功取한 것에 노하여 신라 사신 김흠순을 잡아 가두었다. 당 고종이 신라에 대거 출병코자 한 기미를 김흠순 등에게 들은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왕께 고하고 명랑에게 密壇法을 베풀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또한 범어사의 전설에 의하면 흥덕왕 때에 왜병이 내침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정산에 빌어서 미연에 방지하였다고 하나 근거있는 것은 아니다.

 

저서로는 華嚴一乘法界圖 ․ 白花道場發願文 각 1권(現存), 十門看法觀 ․ 入法界品鈔記 ․ 小阿彌陀經義記 각 1권 등이 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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