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인연(十二因緣)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십이연기(十二緣起)와 같으며, 無明·行·識·名色·六處(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의 12支를 한 곳으로 모았음.
(1) 무명(無明)
범어 avidya의 번역.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不如實智見을 말함. 곧 진리에 어두워서(迷) 사물에 통달치 못하고 사물과 현상이나 도리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不達不解不了) 정신상태로 愚癡를 그 내용으로 하며, 十二緣起의 第一支가 無明支이다. 또 俱舍宗이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心所(마음의 작용)의 하나로 하는 癡라 한다.
① 十二緣起의 無明支를 해석하는데 阿含經에서는 佛敎의 진리(四諦)에 대한 無智라 하고 渴愛와 表裏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有部에서는 十二緣起를 三世兩重의 因果로 說한 것으로 보고 無明을 과거의 煩惱의 位에 있어서의 五蘊을 가리킨다고 하며, 모든 煩惱중에 이 無明의 작용이 가장 무겁고 돋보임으로 無明이라고 이름하였다. 唯識宗에서는 二世一重의 因果로 해석하고 無明과 行과 識 등의 五果의 種子를 끌어 들이는 能引支로 보고, 그 가운데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癡로서 善惡의 業을 일으키는 것을 無明이라 한다고 했다.
② 有部나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相應無明과 不共無明의 두 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를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같이 일어나는 것, 또 後者는 相應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不共無明은 홀로 일어남으로 獨頭無明이라고 하는데, 唯識宗에서는 不共無明을 다시 恒行不共無明과 獨行不共無明으로 나눈다. 前者는 第七 末那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貪 등의 根本煩惱와 相應하여 일어나나 모든 凡夫의 마음속에 늘 쉬지 않고 나타나는 作用이란 점에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과 다르기 때문에 不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後者는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無明으로 다른 근본번뇌와 상응하지 않고 홀로 일어남으로 獨行不共이라고 일컫는다. 이 獨行不共無明은 隨煩惱와 함께 일어나지 않고 홀로 일어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다시 主獨行無明과 無主獨行無明으로 나눈다.
또 唯識宗에서는 無明을 種子와 現行으로 나누고 늘 衆生을 따라 다니며 第八阿賴耶識 속에 숨어 잠자고 있는 無明의 種子를 隨眠無明이라고 한다. ......
(2) 행(行)
① 身·口·意의 조작을 말함. 또는 內心이 外境에 가는 것이 心行과 같음. 일체의 有爲法을 말한다. 유위법은 緣을 따라서 일어나고, 만들어진다는 뜻. 또는 이것이 항상 변화하여 생멸하는 것이므로 遷流의 뜻으로 해석함.
(1) 五蘊의 하나. 行蘊의 약칭. (2) 十二因緣의 하나. 무명을 근원으로 하고, 감각 등 여러 가지를 발생하는 신·구·의 三業. (3) 諸行無常의 行은 변화하는 現象諸法.
② 동작 또는 행위의 뜻. 몸소 실천해 나아가는 행. (1) 明行足의 행. 부처님이 지혜와 함께 행의 체험자임을 나타내는 것. (2) 願行의 행. 理想과 희망에 이르기 위한 수행. (3) 敎行의 행.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실행. (4) 心行의 행. 정토문에서 安心의 對, 안심에서 일어나는 행. (5) 六度萬行의 행. 번뇌를 對治하는 것. 이 행은 번뇌가 많음을 따라서 그 수도 많으므로 萬行. (6) 이 밖에 四安樂行·五行 ·十行·難行·易行·正行·雜行 등의 행은 모두 행위·수행 등의 행이다.
(3) 식(識)
毘闍那 · 毘若南이라 音譯하며, 外境을 識別 · 了別 · 인식하는 작용. 곧 마음의 작용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며, 外境에 대해 內識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外境을 識別하고 了別하는 것은 識의 外境으로서 顯現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識을 表識 · 記識이라 한다.
① 大乘 · 小乘이 한결같이 六識을 주장한다. 六識이란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6根을 따라서 色 · 聲 · 香 · 味 · 觸 · 法의 6境에 대해 見 · 聞 · 嗅 · 味 · 觸 · 知의 了別작용을 하는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여섯가지 心識을 말한다. 이것을 六窓一猿의 비유로서 六識의 體는 하나이지만 그 작용하는 出入門이 여섯이라고 했다. 생각컨대 六識說은 원시적인 뜻을 전하고 있다고 보며, 六識중에서 제 6의 意識을 제 六識이라고도 하며, 후세에 와서 여기에 六識 · 意識 · 分別事識 · 四住識 · 攀緣識 · 巡舊識 · 波浪識 · 人我識 · 煩惱障識 · 分段死識 등 10가지 이름을 붙여 이것을 六識十名이라고 했다. (宗鏡錄)
② 法相宗에서는 6識에 末那識과 阿梨(賴)耶識을 더하여 8識을 주장한다. 8識중 眼識에서 身識까지의 5識을 일괄하여 前五識, 제 6識까지는 前六識 · 제 7末那識까지를 前7識이라 한다. 前7識은 阿賴耶識을 所依로 하고 각각 境을 緣으로 하여 轉起되었다는 뜻에서 七轉識 또는 轉識이라 한다. 또 前六識은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이 현저한 識이므로 了別境識, 제 7末那識은 思量識, 제 8阿賴耶識은 異熟識이라 한다. 護法의 唯識說에서는, 8식중 제 6意識과 제 7末那識은 대상을 〈我다〉〈法이다〉라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遍計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六 · 七能遍計라고 한다. 前五識과 제 8阿賴耶識은 我 · 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五 · 八無執이라 한다. 인도의 無相唯識派에서는 八식의 體性이 동일하다 하여 八識體一을 주장하지만 有相唯識派와 法相宗에서 體性이 각기 다르다고 하여서 八識體別의 說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二識 내지 八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고 동시에 轉起한다고 한다. 이것을 八識俱轉하여 小乘에서는 2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
(4) 명색(名色)
범어 nama-rupa의 번역. 十二緣起의 제 4支로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語意부터 말하면 名은 心的인 것, 色은 物的인 것을 가리킨다. 곧 五蘊중 受·想·行·識의 四蘊은 다만 이름을 붙임으로서 나타낼 수 있는 정신적인 속성이란 뜻으로 名이라 했으며, 色蘊은 形體가 있고 부서짐이 있는 물체란 뜻으로 色이라 했다.
① 有部 등에서는 十二緣起를 胎生學的으로 이해하고 緣起의 各支는 어느 것이나 五蘊을 體로 한다고 설명하지만 그중 母胎에 入胎하려는 순간의 位態를 識, 그 이후 胎內에 있는 동안에 六根(육처)이 뚜렷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를 名色이라 한다.
② 唯識宗에서는 미래세의 應報를 초래하는 힘을 가진 阿賴耶識의 名言種子 중에 本識과 六根과 觸과 受의 종자를 뺀 것을 名色이라 하고, 혹은 五蘊의 종자를 名色으로 했다.
③ 十二緣起를 논리적 조건 관계로 이해 할 경우에는 名色은 識의 대상으로서 六處의 기능에 의해 識으로 認知되는 一切法이라고 한다.
(5) 육처(六處)
十二因緣의 하나. 六入이라고도 한다. 중생이 母胎內에서 眼·耳·鼻·舌·身·意의 6根을 갖추고 出胎하는 位. 處는 十二處의 處로 6根· 6境을 통칭하는 말이다. 根과 境은 識을 낳는 依處가 되므로 處라고 말한다.
(6) 촉(觸)
① 마음의 작용의 이름. 俱舍宗에서는 十大地法의 하나. 唯識宗에서는 五遍行의 하나로 든다. 根과 境과 識의 3가지가 접촉하는것에 의해 생기는 정신작용으로 주관과 객관의 接觸感覺이다. 이 경우에 根 · 境 · 識은 각각 六種으로 나누어지므로 따라서 觸도 六觸으로 나누어진다. 즉 眼根 色境 眼識 등 세 가지가 만나므로 생긴 觸은 眼觸이고 耳 · 鼻 · 舌 · 身 · 意의 觸도 역시 이와 같다. 이중 前五觸은 所依의 根이 有對(2가지 물건이 서로 장애가 되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것, 즉 對礙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므로 有對觸이라 한다. 제 6의 뜻은 名 곧 增語(增은 增上의 뜻으로 힘이 강하여 훌륭하다는 뜻. 名은 아주 굳세고 훌륭하기 때문에 增語라고 한다)를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므로 增語觸이라 한다. 다음에 기술하는 觸이 身根의 대상으로서의 所觸인데 대해서 이것을 能觸이라 한다. 이 觸으로부터 다음에 受(印象感覺)를 낳지만 이 受에는 三受의 구별이 있기 때문에 따라서 觸에도 3종이 있게 된다. 즉 樂受를 낳는 觸은 順樂受觸이며 苦受 · 不苦不樂受를 낳는 觸은 각각 順苦受觸 · 順不苦不樂受觸이다. 또 12연기의 제 6支는 觸으로 有部에서는 嬰兒期라고도 해석한다.
② 접촉할 수 있다는 뜻. 그러므로 所觸이라 번역한다. 즉 身根(觸覺을 관장하는 感官. 즉 피부 또는 그 기능)에 의하여 감각되는 대상으로서 접촉될 수 있는 對境을 말한다. 五境 · 六境의 하나를 들어서 觸境이라 한다. 여기에 十一觸의 종류가 있다. 地水火風의 四大種(能造觸)과 滑 · 澁 · 重 · 輕 · 冷 · 饑 · 渴(所造觸)이 있다.
(7) 수(受)
① 痛·覺이라고도 번역함. 心所(마음의 작용)의 이름. 五蘊의 하나. 俱舍宗에서는, 모든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心所(十大地法)의 하나로서, 唯識宗에서는 五변行의 하나. 받아들인다(領納)는 뜻으로, 外界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거기에서 感受하는 苦樂, 快不快 등의 印象感覺을 말함. 根(感官)과 境(對象)과 識(認識主觀)이 和合(접촉)한 觸 곧 접촉감각에서 생긴다고 한다. 眼識 내지 身識의 前五識으로 느끼는 受는 육체적 受이기 때문에 이것을 身受라고 하며, 제六意識으로 느끼는 受는 정신적 수이기 때문에 이것을 心受라고 하고, 합하여 二受라고 한다. 또 樂受(可愛의 境에 대한 受)·苦受(不可愛의 境에 대한 受)·捨受(不苦不樂受·非苦樂受라고도 하고, 可愛도 不可愛도 아닌 境에 대한 受) 의 三受로 나누고, 삼수를 열어서 樂受(즐거운 身受)·喜受(즐거운 心受)·苦受(괴로운 身受)·憂受(괴로운 心受)·捨受(身受와 心受를 포함한다)의 五受라고도 한다. 五受는 五受根이라고도 하고, 樂根 내지 捨根이라고 한다. 또 欲界繫受·色界繫受·無色界繫受·不繫受의 四受로도 나누고, 또 六根을 통하여 六識이 六境을 各知하는 경우에, 이 根·境·識의 和合인 六觸에서 眼觸所生의 受 내지 意觸所生의 受의 六受(六受身·六受法. 이 경우의 몸은 複數를 나타내는 말)가 생긴다고 한다. 十二緣起의 제 6번째의 支分을 受라고 하고, 有部에서는 비로소 苦樂 등을 各知하는 幼少年期의 五蘊이라고 하고, 唯識宗에서는 識·名色·六處·觸과 같이, 無明· 行에 의해서 阿賴耶識에 심어진 種子라고 한다.
② 取의 舊譯.
(8) 애(愛)
① 물건을 탐하여 집착하는 것.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여 마지않는 것과 같다. 욕망의 만족을 강력히 구하는 중생의 마음을 渴愛라고도 번역한다. 여기에 欲愛(性欲 · 情欲) · 有愛(生存欲) · 非有愛(無有愛라고도 한다. 生存을 부정하려는 욕망) 의 三愛, 또는 欲愛 · 色愛(물질에 대한 욕망) · 無色愛(물질을 넘어선 욕망) 의 三愛가 있고, 또 六境(色 · 聲 · 香 · 味 · 觸 · 法)에 대한 사랑을 각기 色愛 · 聲愛 등이라고 부르고, 이것들을 합해서 六愛 · 六愛身이라고 한다. 十二緣起의 제 8支의 愛는 이와 같은 사랑이다.
② 大毘婆沙論 권29에 의하면, 더럽혀진 사랑과 더러움 없는 사랑의 2種이 있으며, 앞의 것은 貪이고, 뒤의 것은 信이라고 한다. 또 智度論 권七十二에는 欲愛 · 法愛의 二愛를 설하고 있다. 欲愛라 함은 妻子 등을 愛念하는 貪欲이고, 法愛라 함은 일체중생을 慈愛하는 자비심이다.
(9) 취(取)
十二因緣의 하나. 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 또 愛의 다른 이름. 煩惱의 총칭.
(10) 유(有)
범어 bhava의 번역. 有情으로서의 존재. 生存의 뜻. 三有는 三界를 말하며, 欲有·色有·無色有. 七有는 地獄有(바람직하지 않은 有의 의미로 不可有라고도 한다)·餓鬼有·傍生有(畜生有)·天有·人有· 業有(業은 생존을 이끄는 因이기 때문에 業有라고 한다)·中有, 二十五有는 四惡趣(地獄·餓鬼·畜生· 阿修羅)·四州(東勝身州·南贍浮州·西牛貨州·北俱盧州)·六欲天(四王天·夜摩天·忉利天·兜率天·化樂天·他化自在天)·色界(初禪天·大梵天·第二禪天·第三禪天·第四禪天·無想天·五淨居天)·四無色界(空無邊處天·識無邊處天·無所有處天·非想非非想處天), 二十九有는 二十五有중 五淨居天을 無煩· 無熱·善見·善現·色究竟의 五天으로 나눈 것이다. 혹은 또 初果의 聖者는 人天의 사이를 七返往來하며 生을 받고 그 이상은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경우 그 생을 中有와 生有로 나누어 二十八有라 하기 때문에 二十九有는 絶無를 뜻한다. 이상과 같이 迷惑된 생존의 상태는 가지가지로(특히 이십오유에) 분류되기 때문에 諸有라 하고 그 有는 널리 際限이 없기 때문에 바다에 비유해서 諸有海라 한다. 또 智度論 권十二에는, 물건의 존재의 방식을 3종으로 나누어 三種有로 한다. 大小長短등과 같은 상대적 존재인 相待有와, 多數가 집합한 假의 존재인 假名有와, 因緣으로 생긴 것이기는 하나 「물건」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法有 등이다.
(11) 생(生)
生起의 뜻.
① 十二緣起의 제 11지. 生支. 俱舍宗에서는 未來世에 생존을 받는 刹那를 말하고, 唯識宗에서는 넓은 의미로 中有에서 本有에 이르고 아직 노쇠하지 않은 기간을 말한다.
② 四相의 하나. 生相. 有爲法이 미래에서 바로 현재에 태어나려고 할 때, 이를 生하게끔 힘이 작용하는데, 이 힘을 실체적인 것으로 이해해서 生相이라 한다.
③ 四有의 하나. 生有. 이 세상에 生을 받아 나오는 刹那의 生存. 生을 받는 것을 結生·受生이라고 하고, 胎生일 경우는 託胎·託生이라고도 한다.
④ 八計(八不의 逆)의 하나. 滅에 대한 말.
⑤ 生存·生涯 등의 뜻. 몇번이고 계속해서 生과 死를 거듭하여 수없이 많은 生을 겪는 것을 多生이라 하며, 현재의 생존을 今生, 과거·미래의 생존을 他生이라고 한다.
⑥ 태어남의 서로 다름에 따라 중생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九類生이라 함은 卵·胎·濕·化의 4生에 有色·無色·有相·無相·非有想非無想의 5를 더한 것. 다시 위의 9가운데 非有想非無想을 뺀 8에, 非有色·非無色·非有想·非無想의 4를 더하여 12類生이라고도 한다.
(12) 노사(老死)
늙음과 죽음. 十二因緣의 제12支. 從老因病, 從病因死.
참고
노(老) : 범어 jara의 번역. 唯識宗에서는 二十四不相應行法의 하나로서 色心의 諸法이 相續變異하는 것을 老라고 한다. 生·老·住·無常을 四相이라 한다. 곧 有部의 異相에 해당한다. 十二緣起의 제12支는 老死이며, 또 生苦·老苦·病苦·死苦를 四苦라 한다.
사(死) : 범어 marana. 壽(命)와 煖(體溫)과 識(心)을 잃고(이 셋은 최후에 잃는다), 身體가 壞滅하는 것. 生 · 老 · 病과 함께 四相이라 일컫기도 한다.
① 命盡死(天命이 다하여 죽는 것)와 外緣死(不慮의 死)를 2종의 死라 한다.
② (1) 財(福이라고도 한다)를 가지고 있으면서 수명이 다하여 죽는다. (2) 壽命을 가지고서도 재물이 없어서 죽는다. (3) 재물도 수명도 다하여 죽는다. (4) 財와 수명을 가지고 있으면서 橫死한다. 이상을 4종의 死라 한다.(大毘婆沙論 권二十)
③ (1) 병에 걸려 의약이 없어서 죽는다. (2) 국법에 의해서 사형에 처하게 된다. (3) 非人(惡鬼등) 때문에 정기를 뺏기어 죽는다. (4) 燒死, (5) 水死, (6) 惡獸에 물려서 죽는다. (7)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8) 毒死, (9) 餓死를, 玄奘譯 藥師經에서는 9종의 橫死라 하고, 이것을 9橫 또 橫死 9法, 9橫死라고도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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