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115-423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111 / 3476] 쪽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어서 견문이 없는 범부는 가장 훌륭한 여인과, 음악을 보고 그의 뜻에 맞았으므로 마음에 집착을 내고 집착을 낸 뒤에는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좋아한 뒤에는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내고 물들어 집착하는 마음을 낸 뒤에는 물들어 집착하는 업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와 입에서의 네 가지와 뜻에서의 세 가지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는데 이 업이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를 당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 나타나 보입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은 이런 일을 본 뒤에 마음에 두려움을 내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기 분의 업이 다하면서 다른 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꿈을 깬 뒤에 꿈 속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주가 되고 그 업의 인연 때문에 이 두 가지 연(緣)으로써 태어날 분(分) 가운데서 의식이 처음에 일어나면서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염마라의 세계에 나기도 하고 혹은 아수라의 처소에 나기도 하며, 혹은 천상과 인간 세계에 나기도 하여 이전의 의식이 이미 멸하고 태어날 분의 의식이 생기면서 태어날 분이 상속하는 마음의 종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떤 법도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이어짐은 없으면서도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지었던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지만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을 이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이 소멸할 때를 죽을 운수[死數]라고 하는 것이며 최초의 의식이 생기게 되면 태어날 운수[生數]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이 일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리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연(緣)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업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죽을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처음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
[2112 / 3476] 쪽
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태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의식은 최후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연(緣)은 연의 체성이 공하며 업은 업의 체성이 공하고 죽음은 죽음의 체성이 공하며, 최초의 의식은 최초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받아 남은 받아 남의 체성이 공하며, 세간은 세간의 체성이 공하고 열반은 열반의 체성이 공하며, 일어남은 일어남의 체성이 공하고 무너짐은 무너짐의 체성이 공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지은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지만 업을 짓는 이는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으며, 다만 세속을 따라 있다 할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第一義]는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법은 다 공하고 고요합니다. 모든 법이 공하면 이것이 공의 해탈문이요, 공에 공의 모양이 없으면 모양이 없는 해탈문이라 하며, 만일 모양이 없다면 원하거나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는 해탈문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온갖 법에 모두가 3해탈문을 갖추면 공과 함께 열반의 앞선 길을 행하고 모양을 멀리 여의고 원함과 구함을 멀리 여의니 구경열반의 경계[究竟涅槃界]는 결정코 법계와 같아서 허공의 끝까지 두루한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감관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경계는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니 온갖 비유로 이와 같이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귀로 나쁜 소리를 들으면 나쁜 마음을 냅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사람이 꿈 속에서 혹은 부모나 처자 등의 사랑하는 권속들을 이별하면서 크게 괴로워하고 슬피 울부짖으며 통곡을 하였는데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는 꿈 속에서 친밀하고 사랑한 이와 이별하면서 슬피 울부짖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 속에서 있었던 일들이 진실로 있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2113 / 3476] 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꿈에서 본 것에 집착하면서 진실이라고 여긴다면 그를 지혜롭다 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 속에서 있었던, 친밀하고 사랑한 이와 이별하였던 것조차도 끝내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슬피 우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그저 자신만 고달플 뿐이요, 도무지 진실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어서 견문이 없는 범부는 나쁜 소리를 보고 들으면 집착을 내게 되고 집착을 낸 뒤에는 좋지 않은 마음을 내며, 그 좋지 않은 마음 때문에 성을 내고 성을 내기 때문에 성내는 업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와 입에서의 네 가지와 뜻에서의 세 가지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니, 이 업이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에 달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 나타납니다.
대왕이시여, 이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마음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기 분(分)의 업이 다하면서 다른 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것은 마치 꿈을 깬 뒤에 꿈 속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최후의 의식이 주가 되고 그 업의 인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연(緣)으로써 태어날 분 가운데서 의식이 처음에 일어나면서 혹은 지옥에 나기도 하고 혹은 축생에 나기도 하며, 혹은 염마라의 세계에 나기도 하고 혹은 아수라에 나기도 하며, 혹은 천상과 인간 안에 나기도 하여 앞의 의식이 이미 소멸하고 태어날 분의 의식이 생기면 태어날 분이 상속하는 마음의 종류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러나 하나의 법도 이 세상에서 다음의 세상으로 이어짐은 없으면서도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지었던 업과 과보는 모
[2114 / 3476] 쪽
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지만 업을 짓는 이도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저 최후의 의식이 소멸할 때를 죽을 운수라고 하는 것이며, 최초의 의식이 생기게 되면 태어날 운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 최후의 의식이 일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리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연(緣)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업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죽을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최초의 의식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으며, 그 태어날 때에도 어디서부터 오는 곳이 없고 그것이 소멸할 때에도 어디로 가는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성품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의식은 최후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연(緣)은 연의 체성이 공하며, 업은 업의 체성이 공하고 죽음은 죽음의 체성이 공하며, 최초의 의식은 최초의 의식의 체성이 공하고 받아 남은 받아남의 체성이 공하며, 세간은 세간의 체성이 공하고 열반은 열반의 체성이 공하며, 일어남은 일어남의 체성이 공하고 무너짐은 무너짐의 체성이 공합니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지은 업과 과보는 모두가 잃거나 무너지지 않으며 업을 짓는 이는 없고 과보를 받는 이도 없으며, 다만 세속을 따라 있다 할 뿐이요 첫째가는 이치는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법은 다 공하고 고요합니다. 모든 법이 공하면 이것이 공의 해탈문이요, 공에 공한 모양이 없으면 모양이 없는 해탈문이라 하며, 만일 모양이 없다면 원하거나 구할 것이 없으므로 원이 없는 해탈문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시여, 온갖 법에 모두가 세 가지 해탈문을 갖추면 공과 함께 열반의 앞선 길을 행하고 모양을 멀리 여의고 원함과 구함을 멀리 여의어서 구경열반의 경계는 결정코 법계와 같아서 허공의 끝까지 두루한 것입니다.
[2115 / 3476] 쪽
대왕이시여, 아셔야 합니다. 모든 감관은 마치 허깨비와 같고 경계는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니, 온갖 비유로 이와 같이 아셔야 합니다.
대왕이시여, 귀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소리[捨聲]를 들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모양[捨相]을 내게 됩니다.
대왕이시여, 마치 사람이 꿈 속에서 분명하지 않은 구절의 이치[不了句義]에 대한 소리를 들었는데 이 사람이 꿈을 깨고 나서는 꿈 속에서 들었던 소리를 기억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꿈 속에서 들었던 소리가 진실로 있는 것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에 집착하면서 진실이라고 여긴다면 그를 지혜롭다 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꿈 속에서는 끝내 얻을 만한 음성이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분명한 이치[了義]와 분명하지 않은 이치의 구절이 있겠습니까? 이 사람은 공연히 자신만 고달플 뿐 도무지 진실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어리석어서 견문이 없는 범부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소리를 듣고서는 집착을 내고 집착을 낸 뒤에는 미혹하게 되며 미혹한 뒤에는 어리석은 업을 짓는 것이니, 이른바 몸에서의 세 가지와 입에서의 네 가지와 뜻에서의 세 가지 업입니다.
그리하여 그 업을 짓고 나면 곧 사라져 없어지니 이 업은 사라진 뒤에는 동쪽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고, 또한 남쪽·서쪽·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의지하여 머물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업은 죽을 때를 당하여 최후의 의식이 소멸하면서 먼저 지었던 업들이 마음속에서 나타나 보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일을 본 뒤에 마음에 집착을 내는데 이 사람에게는 자기 분[自分]의 업이 다하면서 다른 업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그것은 마치 꿈을 깬 뒤에 저 꿈 속에서 분명하지 않은 구절의 이치에 대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보적경(大寶積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보적경-2125-425 (0) | 2017.12.10 |
---|---|
대보적경-2120-424 (0) | 2017.12.09 |
대보적경-2110-422 (0) | 2017.12.07 |
대보적경-2105-421 (0) | 2017.12.06 |
대보적경-2100-420 (0) | 2017.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