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나인가?

속아(俗我)

근와(槿瓦) 2017. 10. 6. 00:01

속아(俗我)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假我라고도 한다. 五蘊으로 뭉친 肉身的인 我를 일컫는다. 세속의 범부들이 믿는 생각하는 <나>란 뜻.


참고

가아(假我) : 거짓으로 이름한 我. 일반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은 五蘊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眞我라고 할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이를 假我라 한다.


오온(五蘊) : 五陰이라고도 한다. 蘊은 범어 skandha의 번역. 塞建陀라 音譯하며 모인다는 뜻. 가지가지의 종류를 일괄해서 聚說한다는 뜻. 五蘊이라 함은 色蘊(물질) · 受蘊(印象感覺) · 想蘊(知覺 · 表象) · 行蘊(意志 기타의 마음 작용 등) · 識蘊(心)의 총칭. 受 · 想 · 行은 대체로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기 때문에, 五蘊은 물질계와 정신계의 양면에 걸치는 일체의 有爲法(인연에 의해서 생긴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五蘊이 有情의 個體를 형성하는 面을 강조한 말로 보면, 五蘊은 心身環境을 가리킨다. 육신은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事物이 모두 인연(온갖 조건)에 의해서 五蘊이 잠정적으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五蘊假和合이라 하고, 특히 有情의 개체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라고 하여 집착할 實體가 없는 것을 나타낸다.



아(我) : 범어 atman의 번역. 본래는 呼吸의 뜻. 변하여 生命 · 自己 · 身體 · 他者에 대한 自我 · 自我의 本質 · 物일반의 本質自性. 온갖 것의 근원에 내재해서 개체를 지배하고 통일하는 獨立 영원의 主體를 의미한다. 아트만은 인도의 思想界에서는 중요한 과제의 하나이다. 불교에서는, 영원히 存續하고(常), 자주독립하여 존재하며(一), 중심적인 소유주로서(主), 모든 것을 지배하는(宰) 등의 의미를 갖는 我의 존재를 否定하고 無我說을 세웠다.

① 리그 · 베다 이래, 아트만이란 말이 쓰여졌다. 부라흐만을 인간의 생명활동의 주체인 息(氣息)으로 생각했었는데, 다음에 부라나는 개개의 생명현상을 의미하게 되고, 아트만은 일층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샷타바타 · 브라흐만에서는, 言語 · 視力 · 聽力 등의 생명현상은 아트만을 기초로 하여 나타나고, 아트만에 의해서 통괄된다고 하고, 또 造物主와 완전히 同一하다고도 했다.

② 우파니샤드의 시대에는 아트만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하고, 혹은 아트만은 個人我(小我)인 동시에 우주의 중심원리(大我)라고도 하고, 또 brahman梵(宇宙原理)과 아트만이 일체임을 구하거나,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同一하다고 하거나, 또 아트만만이 참된 實在이며 다른 것은 모두 幻이라고 한다. 

③ 불교의 阿含에서는 인간 개체의 전체가 我((1) 五蘊我이다)라고 하거나, 혹은 개체 안의 中心生命이 되는 것을 我((2) 我가 五蘊을 가짐)라고 하거나, 혹은 우주원리를 我((3) 我중에 五蘊이 있다)라고 하거나, 혹은 존재요소가 각각 固有한 성질(自性)을 가지고 있다((4) 五蘊중에 我가 있다)고 하는 有我說을 否定한다(後世에는 이것을 二十句의 有身見이라고 했으니, 위의 (1)(2)(3)(4)가 五蘊의 각각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我見((1)에 해당됨) 과 我所見((2)(3)(4)에 해당)으로 나눈다. 我所라 함은, 我의 所有, 我의 所屬, 我와 떨어져 있지 않는 事物의 뜻). 

④ 部派佛敎에서는 生死流轉하는 윤회의 主體와 無我說의 관계등과 연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했다. 有部에서는, 人我와 法我의 二我를 세워서, 개체의 중심생명으로서의 我(人我)는 否定했는데, 존재의 구성요소의 실체로서 我(法我)는 항상한 참된 것으로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은 人我見과 法我見을 二種我見이라고 한다. 犢子部나 正量部에서는, 非卽非離蘊의 我라고 하는 我가 있다고 하여, 그것은 五蘊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구성된 생명을 갖는 개체 그것(卽蘊)도 아니고, 또 五蘊 밖에 따로 我라고 하는 존재가 있는 것(離蘊)도 아니고, 五蘊과 不卽不離하게 있다고 했다. 또 經量部에서는 勝義補特伽羅의 說이 있다. 성유식론 권일에는 불교이외 부파의 我에 대한 說을, 卽蘊我(世間一般의說) · 離蘊我(數論 · 勝論 · 經量部등) · 非卽非離蘊我( 犢子部 · 正量部등)의 3종의 我로 분류하여 비판하고 있다.

⑤ 大乘에서는, 개체로서의 我(人我)를 否定할 뿐만 아니라, 部派에서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法我(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의 실체)까지도 否定하여, 人法二無我를 說하고, 모든 것이 無自性空이라고 한다. 또 부파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無常이고 苦이고 無我이고 不淨이라고 깨달아서, 번뇌를 滅盡한 경지를 究極的인 열반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大乘에서는 모든 것은 원래 空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은 열반의 경지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로서, 常 · 樂 · 我 · 淨의 德을 갖는다고 한다. 그 我는, 凡夫가 생각하는 小我와 구별되어, 大我 · 眞我 등으로 설명된다.


세속(世俗) : 世는 遷流(천류) 생멸하는 뜻. 俗은 卑俗 · 淺近의 뜻. 세간 풍속의 일반을 말함.


범부(凡夫) : 必栗託仡那라고 음역하고, 異生이라고 直譯한다. 또 婆羅必栗託仡那(小兒凡夫, 兒凡夫, 愚異生)라고도 한다. 聖者(聖人, 聖)에 대해서, 어리석은 凡庸한 士夫(人間)란 뜻. 異生이란 말은 여러 가지 견해나 번뇌에 의해서 가지가지의 業을 일으켜 여러 가지 果를 받아서 갖가지 세계에 태어난다는 뜻. 수행의 階位上으로 말하면 見道(처음으로 無漏의 지혜가 열려서 四를 보는 位)에 이르기 이전이 범부인데, 구사종에서는 四善根位를 內凡, 三賢位를 外凡이라고 하며, 대승에서는 初地이전을 범부라고 하고, 十住 · 十行 · 十廻向(三賢)을 내범, 十信을 외범이라고 하고, 내범 · 외범을 아울러 二凡이라고 한다. 외범이 하는 아주 낮은 범부 곧 지옥의 有情 내지 하늘의 有情을 말한다. 범부로 하여금 범부답게 하는 性을 異生性(凡夫性)이라고 한다. 犢子部에서는 그 體를 欲界의 見惑이라고 하고, 有部에서는 聖道의 非得이라고 주장한다. 經部에서는 따로 體를 세우지 않고 聖法의 相續의 分位差別에 이름을 붙였으며, 유식종에서는 二十四 不相應行法의 하나로 하여 分別起의 煩惱障 · 所知藏의 種子적 작용에 따라 假名을 붙였다고 한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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