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십지(十地) 82

근와(槿瓦) 2014. 9. 8. 00:19

십지(十地) 8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느 날 세존은 많은 대보살들과 함께 거동하셨다. 이때 금강장 보살은 부처의 힘을 입어 대지혜광명(大智慧光明)의 선정에 들어, 장애 없는 변재와 청정한 지혜를 얻고 대중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불자들이여, 도를 구하는 중생의 원은 동하는 일이 없고 무너지는 일이 없으며, 크기로는 법계와 같고 모든 부처의 수호하는 바가 된다. 그것은 그들이 부처의 지혜의 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지혜의 땅에 열 단계가 있으니, 환희지(歡喜地), 이구지(離垢地), 명지(明地), 염지(焰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 원행지(遠行地), 부동지(不動地), 선혜지(善慧地), 법운지(法雲地)라 일컫는다.

 

 

불자들이여, 第一의 환희지(歡喜地)에 들면 기쁨과 신심을 얻어 청정하고 부드럽게 감내하며 다툼을 즐기지 않고 중생을 괴롭히는 일이 없다. 또 부처를 염하고 법을 염하고 승가를 염하므로 환희의 마음을 낳는다. 곧 생활의 두려움, 악명의 두려움, 죽음의 두려움, 지옥에 떨어지는 두려움, 군중을 향할 때의 두려움, 이러한 모든 두려움은 모조리 제거된다. 왜냐하면 이 땅에 있는 것은「나(我)」를 떠나 있으므로 내 물건을 탐하지 않아 생활의 두려움이 없다. 남으로부터 공경 받고 싶다는 소망이 없으므로 악명을 두려워할 것도 없으며,「아」의 견해를 떠나 있으므로 죽음의 두려움이 없고 생명을 다하여 다시 태어나는 곳에 부처를 받들겠다고 생각하므로 지옥에 떨어지는 일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즐거워하는 바에 비길 것이 없다. 이 이상 뛰어난 것이 있을 리가 있느냐고 염하므로 군중 앞에 나가더라도 두려워하고 겁내는 일이 없는 것이다.

 

 

또 이 보살은 대비(大悲)를 비롯하여 모든 중생을 싫어하는 염이 없고 마음을 곧게 하며 저절로 청정하게 나아가 선을 닦는다. 곧 신심을 증장하고 몸과 마음에 참괴를 품어 부드러우며, 능히 참고 가르침을 공경하여 착한 벗을 중히 여기고, 법을 듣되 싫증을 내지 않고 들은 법을 바르게 마음에 새기며, 영예를 구하지 않고 이양(利養)을 탐하지 않으며, 모든 아첨을 버리고 말과 같이 행하고 일체의 지(智)를 낳기 때문에, 마음은 산과 같이 동하지 않고 도를 돕는 법을 모아 싫어할 줄을 모르며 항상 뛰어난 것 중의 뛰어난 도를 구한다. 또 모든 부처를 받들고 남김없이 그 법을 지니려고 원하니 그 대원은 법계(法界)와 같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음이 허공과 같으며, 이리하여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법을 수호하여 싫증 내는 일이 없다.

 

 

또 다음과 같이 원을 일으킨다. '모름지기 도에 나아가는 중생들은 마음을 같이하고, 배움을 같이하고, 다 함께 선을 쌓아 원망하고 질시하는 생각을 버리고 평등심으로 같은 경계에서 화목하고, 각자의 연(緣)에 이르면 부처의 몸을 나타내고 마음에 부처의 경계와 신통력을 깨쳐 여러 국토에 노니며 모든 접회에 몸을 나타내어 보살행을 갖추게 될 것이다.'

또 이와 같이 염한다. '부처의 가르침은 심오하며 넓고 큰 것이지만, 범부는 사견에 떨어져 어리석음 때문에 지혜의 눈이 가리어 교만하고 갈애에 젖어, 아첨, 인색, 질투, 탐욕, 진에의 염을 품고 원한의 불꽃을 부채질하며, 때마침 베풀 곳이 있으면 도리어 도착된 생각을 한 끝에 망집에 망집을 거듭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러한 괴로움 속에 있는 중생들을 구하여 불도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다."

(1) 중생이 만약 법보(法寶)를 들으면 부처님의 두호를 받으며 뒤따라 깨침을 쌓아 마침내 부처의 도를 얻으리.

중생이 만약 듣기를 소원한다면 바다 밑 또는 불 속에서라도 이 거룩한 가르침을 듣게 되리라. 그렇다고는 하나 어리석게 의심하는 중생은 끝내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느니.

만약 중생이 선근을 닦아가면서 부처님과 친하고, 청정한 신심으로 자비심을 따를진대 무량불의 지혜를 얻으리.

자비의 마음은 지혜를 주로 하여 방편이 따르고, 마음은 곧고 순후하여 그 힘은 바야흐로 헤아릴 수 없나니.

(2) 불자여, 만약 이 존엄한 마음을 일으킨다면 범부의 지위를 여의고 부처의 경계에 들어 불가에 태어날지니.

그 마음 제일의 환희에 땅에 들어 동하지 않음은 산과 같고, 큰 기쁨이 생겨 마음은 청정하고 대사(大事)를 받들어도 감당할지니.

다툼은 원치 않으며 노여운 마음은 사라져 부끄러워하며 공경할 줄 알고 곧은 마음 안 배우고 어찌하리.

모두 부처의 국토에 부처의 아들들은 가득하여라. 마음은 하나로, 그 하는 일 헛되지 않네.

第二의 이구지(離垢地)에 머물면 스스로 살생을 금하고 검이나 채찍을 버리고 사음을 금하여 자기 처로 족함을 알며, 일념(一念)도 다른 여자를 구하는 일이 없다. 생각하건대 '중생들은 사견(邪見)에 떨어져 남과 나를 분리시켜 다투고 재물을 탐하여 지치는 일이 없으며, 언제나 무명에 뒤덮여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받고 있다.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나는 우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바른 생활을 시키고 번뇌의 불을 끄고 지혜의 눈을 얻게 하리라.'

 

 

그 위 없는 심한 괴로움, 지옥에 떨어져 불타는 몸은 나쁜 마음을 낳게 하는 곳.

나는 이미 이 악을 버리고 참된 길을 간다. 현세와 내세의 즐거움이란 즐거움은 십선(十善)에서 생기는 것.

이구지(離垢地)에 든 불제자들은 때로는 전륜왕이 되어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이 십선에 들도록 하느니.

第三의 명지(明地)에 머물면 법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관한다. 곧 모든 법은 무상하고 괴로움에 차 무아(無我)로서 부정(不淨)이라는 것을 보며, 법의 실상은 스스로 인연을 지어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안다.

이 세간의 모든 것은 병과 같고 종기와 같다. 탐애(貪愛)의 마음에 얽매여 갖가지로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삼독(三毒)의 맹화는 시작이 없는 옛부터 항상 그치지 않네. 부처의 지혜만이 청정하여 괴로움이 없으며 깊고 가(邊)가 없네. '중생들은 가난하여 복이라고는 없고 번뇌의 바다에 빠져, 눈 멀어 법보를 잃고 두려움이 없음에도 두려움을 품는구나. 힘써 그들을 구하지 않을손가' 하고 보살은 생각한다.

괴로움을 구함은 지혜임에랴. 듣고 배움과 같지 못하니, 법을 들음은 불법의 기본인 것을.

 

 

第四의 염지(焰地)에 머물면 모든 부처와 친하여 공손히 공양하고 마음은 청정하며 그리고 삼보에 대한 믿음은 더욱더 분명해지고 선근은 더욱 북돋아진다.

第五의 난승지(難勝地)에 머물면 큰 원력을 얻어 큰 자비로써 맹세하기를 '내가 행하는 선은 단지 중생들의 괴로움을 뽑아내고 증도에 이르게 하여 그 원을 충만하게 하리라.'

第六의 현전지(現前地)에 머물면 깊히 12인연의 이치를 관한다.

(1) 만약 중생이 법의 성을 안다면「유」「무」의 두 가지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으며, 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중생들을 제도하도다. 이것을 부처의 아들이라 이름한다.

마음이 이미 청정하다면 계를 지니며 상하는 마음이 없어져 인욕(忍辱)을 행하고 법성의 이치를 깨닫더라도 면려하며, 먼저 번뇌를 멸했더라도 선정을 닦고, 법공(法空)을 깨닫더라도 제법을 분별하고, 적멸의 지혜가 있더라도 세간에 베풀고 악을 멸한다. 이 사람을 대사(大士)라 이름한다.

(2) 탐하는 마음에서 삼계가 생하고 12인연도 하나의 마음 속에 있다. 그러니 생사도 그저 마음에서 일어나서 마음에서 멸하면 생사는 다한다.「무명」에 의해「업」이 생하고 업으로써「고」를 짓느니라. 그러하니 무명에 따르면 세간이 있고 따르지 않으면 세간은 사라진다. 이 인연을 보고 제자는「공」을 깨닫고, 물(物)은 멸하여 계속되지 않으므로「무상(無相)」의 행으로 들어가 두 가지의 거짓을 알고서 마음은 무원(無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리하여 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중생들을 구할 뿐이다.

(3) 무량불을 공양하고 부처를 찬송하며 부처의 법장에 들면 선근은 사뭇 증장하리라.

유컨대, 유리 보석으로 진금(眞金)을 갈면 빛은 더 한층 번쩍여 알맞게 맑아지게 됨과 같도다.

혹은 달이 허공을 지나며 청량함을 만물에 입히고 사방에서 폭풍이 불어도 머무는 일 없음과 같이 보살의 지혜의 빛은 번뇌의 불을 능히 끄고 사마(四魔)도 부수지 못함이 없네.

第七의 원행지(遠行地)에 머물게 되면 한없는 방편으로써 중생들을 인도하고 능히 육도의 행을 닦게 된다. 또 이 보살은 깊이 열반을 사랑하지만 이 세계를 버리지 않고 망집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세간 때문에 더러워지는 일은 없다. 또 마음은 언제나 정적에 잠겨 있지만 방편의 힘에 의하여 맹렬히 불타고 있다. 부처의 지혜에 있으면서도 마의 업을 나타내고 외도의 행을 시현하면서도 불법을 버리는 일이 없다.

지혜로 공(空)을 관할지라도 복을 닦는데 싫어하지 않고 능히 삼계를 장엄하면서도 마음은 이와 멀리할 것을 원한다.

그 마음은 고요하지만 악을 멸하는 행을 일으키고,「공」을 닦지만 자비의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불신은 상호가 없다고 알고 있지만, 32종의 상을 갖추어 소리로는 설할 수 없는 것을 알더라도 부처의 소리를 찬탄하여 일념으로 일체를 기쁘게 한다. 부처는 일념으로 증득할 것을 알지만 때와 곳을 가리켜 중생들을 가르치고 이끌도다.

第八의 부동지(不動地)에 들 때, 깊이 행하는 보살이라 이름한다. 그때 일체의 상념, 일체의 탐욕을 버리고 다시 모든 근면하는 방편과 몸, 입, 뜻의 행을 멸한다. 비유컨대, 꿈 속에 깊은 강을 건너려고 갖가지 방편을 짜내고 아직 건너기 전에 갑자기 꿈을 깨면 그러한 방편은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 이때 부처는 이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깊은 정적을 얻어 불법을 쫓고 있으나, 부처의 모든 덕을 얻고 있지 않다. 게다가 세간의 범부는 그대가 얻고 있는 정적의 법을 떠나 번뇌 때문에 해를 입고 있다. 그대는 이 일체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선남자여, 그대의 본래의 원을 염하고 중생에게 보시하여 불가사의한 지혜를 얻으려고 결심해야 한다. 일체 법의 성(性)과 상(相)은 부처가 재세하든 재세하지 않든 항상 변함이 없다. 일체의 부처는 이것을 깨달았으므로 부처라 이름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부처가 갖는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몸, 헤아릴 수 없는 지혜, 헤아릴 수 없는 국토, 헤아릴 수 없는 방편과 빛과 소리를 생각해야 한다. 그대는 지금「법의 정적함」이라는 하나의 지혜를 얻은 것이지만, 부처는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얻고 있다. 그대는 힘써 이러한 법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불자들이여, 만약 부처가 이 권고를 부여치 않는다면, 이 사람은 열반에 들어 중생에게 보시함을 버리리라. 그런데 이 권고가 주어지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보시와 비교하여 비유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의 지혜를 낳게 된다.

비유컨대,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이 해변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들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이미 배에 타고 바다로 나간다면 하루의 행로는 앞서 육지에 있었을 때와 비교하여 몇 배나 빠른 것과 같이 되는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와 같이 제팔지에 이르면 커다란 방편의 지혜에서 저절로 활동하는 마음을 낳아 보살도에 있으면서도 부처의 지혜의 힘을 생각하고 세계의 생멸의 인연을 소상히 알게 된다. 또 해나 달이 모든 물에 그 형상을 나타내듯이 사람들의 몸에 따라서 한없는 몸을 나타내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일에 자재의 힘을 얻게 된다.

第九의 선혜지(善慧地)에 주(住)하게 되면, 부처님의 비밀의 법장에 들어 모든 법의 차별, 마음의 차별을 알고 또 뭇 생명이 있는 것의 상(相)을 안다. 업은 전지(田地), 사랑은 물, 무명은 덮개, 식(識)은 씨앗, 몸은 싹과 같으며, 여기에 몸과 마음이 함께 생겨 떨어지지 않으며 어리석음과 사랑이 서로 잇달아 일어나며, 사는 것을 바라고 짓는 것을 바라고, 사랑을 바라되 열반을 바라는 일은 없다. 이리하여 삼계로 차별되어 잇달아 일어나는 상(相)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끝으로 第十의 법운지(法雲地)에 들어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갖고 부처의 지위에 다가가면 여러 가지 뛰어난 삼매를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삼매가 나타남과 동시에 커다란 보물인 연화가 나타난다. 주위는 이 세상의 백천배, 모든 보물로써 장엄되어 있다. 그리고 보살이 수승한 몸으로서 이 보배로 된 연화 위에 오르면 모든 세계가 진동하고 빛은 두루 비춰 모든 악도는 일시에 다 쉬게 된다. 또 이 보살은 득도에 따라 일념 사이에 부처 곁에 이르러 한없는 법을 다 받아 지닌다. 비유컨대, 대해는 여하한 큰비도 남김없이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불자들이여, 바다에는 첫째는 점점 깊어지고, 둘째는 시체를 물가에 떠밀어 받지 않으며, 세째는 다른 물은 원래의 이름을 잃고, 네째는 한 가지 맛이며, 다섯째는 보물이 많고, 여섯째는 깊어 들어가기 힘들고, 일곱째는 가이없고, 여덟째는 큰 생물을 살게 하고, 아홉째는 조수의 때를 어기지 않고, 열째는 여하한 큰비를 받아들이더라도 넘치지 않는다는 열 가지의 상이 있으며, 어떤 것도 이것을 무너뜨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도를 구하는 사람에게도 십지(十地)의 인연이 있어 어떤 자도 무너뜨릴 수가 없다. 환희지에는 굳은 원을 일으키고, 이구지에는 파계자와 함께 잠자지 않으며, 명지에는 모든 가명을 버리며, 염지에는 부처를 향하여 무너뜨릴 수 없는 청정한 일심을 얻고, 난승지에는 갖가지 방편이나 신통을 낳아 세간의 일을 수행하며, 현전지에는 깊은 인연의 법을 관하고, 원행지에는 커다란 마음으로 제법을 관하고, 부동지에는 대장엄을 나타내고, 선혜지에는 깊은 해탈을 얻고 게다가 세간사를 능히 알아 그릇된 일이 없고, 법운지에는 일체 제불의 큰 교법(敎法)의 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