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280-256

근와(槿瓦) 2017. 4. 16. 00:09

대보적경-1280-25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276 / 3476]

대보적경 제45권 

대당 삼장법사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12. 보살장회


8) 찬저바라밀다품(羼底波羅蜜多品)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찬저바라밀다(羼底波羅蜜多:羼提波羅蜜多)라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은 법을 부지런히 힘써 닦아 배우며 보살행을 행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찬저바라밀다에 머무르는 까닭에 참는 힘을 온전히 갖추면서 성품이 확고부동하고 바르게 되어서 모든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이거나 독사와 전갈과 모기와 등에며 바람이나 햇빛 등의 접촉에 있어서 모두 견디고 참아낼 수 있으며, 또 추악한 말이나 비루한 말씨며 몸에 의해 일어나는 맹렬한 고통스런 느낌[]을 능히 참아내고 모진 채찍이나 가혹한 고초로 목숨을 빼앗기고 죽기에 이르는 이러한 온갖 고통스런 느낌도 능히 견디고 참아 내느니라.
사리자야, 만일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것을 능히 갖추게 되면 이를 곧 찬저바라밀다라 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나는 옛날 오랜 동안 아직 성불하지 못했을 때에 보살행을 행하면서 언제나 인욕(忍辱)을 닦았느니라.”
사리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세존은 보살이었을 적에 인욕을 닦아 쌓으시면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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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행을 행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억하건대, 과거 보살행을 행할 적에 많은 중생들이 자주자주 와서 헐뜯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법 아니게 꾸짖었으며 나의 면전에서 모든 법이 아닌 못된 나쁜 말들을 하였었느니라.
사리자야, 나는 그 때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까닭에 그 마음을 억누르면서 성을 내지도 않고 인색하거나 몹시 괴로워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생각하기를 '모든 행 가운데서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 이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적은 법에서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버리는 생각을 닦아야 하며 또 나는 그에게 마땅히 자비를 일으켜야 한다. 왜냐하면 세간의 중생들은 거의 모두가 헐뜯고 욕질을 하고 꾸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업 때문에 도로 다시 이와 같은 모양의 꾸짖고 헐뜯는 과보를 얻게 되며 태어날 때마다 항상 누추하고 나쁜 몸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누추한 일을 좋아하지 않거늘 어찌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 일을 하기 좋아한단 말인가?
 

왜냐하면 이와 같이 꾸짖고 헐뜯는 모든 악업은 바로 상응하지 않는 업이라 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업이라 하고 어리석은 범부의 업이라 하며 또 이것은 하열한 업이요, 착한 사람의 업이 아니요, 성현의 업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업 때문에 지옥과 축생과 염마의 세계에 떨어지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나쁜 세계[惡趣]의 권속들이 되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야차[藥叉]의 몸을 받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야차의 근본과보(根本果報)를 느끼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아귀의 몸을 받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아귀의 근본과보를 느끼는 것이며, 이런 업 때문에 빈궁한 사람 세계[人趣]의 몸을 얻게 되고 또 이 업으로 말미암아 빈궁한 사람 세계의 근본과보를 느끼는 것이다.
또 이 꾸짖고 헐뜯는 업으로 말미암아 아래 세계[下趣]와 아래 세계의 근본과보를 얻고 느끼는 것이니, 나는 이제 하열한 세계를 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만일 내가 이와 같은 일을 구하고 짓는다면 모든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그리고 저 중생들은 진리를 따르지 않지만 나는 이미 진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그들과는 같지 않아야 한다'고 할 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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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로서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나를 따르면서 이 법을 닦고 배워야 하리니,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은 다른 이가 헐뜯고 욕질하고 꾸짖을 때에는 곧 이 바른 법의 뜻 지음과 생각에 의지하며 참아낼 수 있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은 인욕의 힘 때문에 다시 한량없는 모든 묘한 선근을 얻게 되나니, 가령 모든 값진 보배로 부처님의 세계인 4대주(大洲)를 가득히 차도록 보시한다 해도 앞의 공덕에 비교하면 모두 미치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인욕의 행은 극히 장한 장부라야 닦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중생들은 대부분 이 헐뜯고 욕질하고 꾸짖는 데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니, 그렇기 때문에 나고 죽는 데에 유전하면서 단절하지 못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이 모든 보살마하살로서 찬저바라밀다를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스스로 힘써 격려하고 자세히 관찰해야 하며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다른 이로부터 꾸짖음과 훼방을 당할 때에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생각할 수 있느냐? 만일 생각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장한 일이겠지만 만일 생각할 수 없다면 장한 일이라 하지 못하리라'고 하고 또 그 밖의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는 마땅히 관찰하기를 '나는 지금 일체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고 특수하게 다른 모양이 있겠느냐?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로서 나에게 성을 내고 해치는 이는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일찍이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니, 내가 만일 그들과 같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 모든 중생들과 무슨 차별이 있으며 어떻게 다르고 희기(希奇)한 모양이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다시 생각하기를 '만일 다른 사람이 성을 내고 있을 때에 그만 버리겠다는 마음을 낸다면 부처님과 보리와 법과 승가대중을 일찍이 생각함이 없는 것이니 이것은 나로서 마땅히 할 것이 아니다'고 하며, 또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그에게 성을 낸다면 곧 지혜가 없고 인욕의 힘이 없는 것이며 또한 본래의 서원[本願]을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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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성을 낸다면 이런 마음이 없기 때문이니,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섭수해야 하고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내가 만일 한 유정에게라도 성을 낸다면 보살로서 거두어 주고 교화하는 법이라 하지 못하리니, 그 누가 나에게 청하여 보살의 도를 행하겠느냐? 하물며 옛날에 서원하기를 나는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나서 널리 중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리라고 하였음이겠는가?
이런 큰 서원을 일으킨 때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다 같이 나를 증명하시며 생각하시기를 이 족성자(族姓子)는 발심하여 이와 같은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無上正等覺]에 머무른 뒤에는 장차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바른 법을 연설하겠구나라고 하셨을 것이다. 또 지금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장애 없는 지혜[無障礙智]로써 걸림 없이 보시면서 현재 나를 증명하며 아시리니, 그러므로 다른 이가 헐뜯고 욕하고 꾸짖는다 해도 성을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과 보리와 법이며 승가대중을 만일 버리겠다는 마음을 내면 기억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동방으로 긍가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긍가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여래·응공·정등각께서 현재 머물러 계시는데 그 부처님 세존께서도 모두 내가 마음으로 바른 서원을 낸 것을 증명하며 아시고 남방·서방·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계신 이들께서도 역시 그와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 바른 서원을 일으킬 때에는 모든 부처님께서 소리를 같이하여 나의 인욕의 힘을 찬탄하시리니,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사자후(獅子吼)를 한 뒤에 다시 야간(野干)의 소리는 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라 함은 '나는 마땅히 큰 인욕의 힘을 증득해야 한다'는 말이요, 야간의 소리라 함은 중생들에 대하여 성을 내고 꾸짖고 헐뜯는 등의 모양을 말하는 것이니라.
사리자야, 이 보살마하살은 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그에게서 이익을 얻게 되어야 비로소 남을 이롭게 하는데 나도 그와 같아서 중생에게서 이익을 얻고서야 그들을 이익되게 한다면 나와 세간 사람들이 무슨 차별이 있겠으며 어떤 특수함과 희기한 모양이 있겠는가?'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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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만일 그가 이 사람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게 되면 이 사람도 또 그 사람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는 일을 하는데, 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나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다 하여 나도 다시 그들에게 의로운 이익이 없는 일을 한다면 나와 중생이 무슨 희기함과 차별이 있겠으며 다른 점이 있겠는가?'라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법 속에서 마땅히 배워야 하느니라. 그리고 또 생각하기를 '세간 중생들은 서로가 원수로 대하고 있다. 만일 그에게서 이익을 얻으면 좋은 벗이라 하지만 만일 이익을 얻지 못하면 다시 서로가 죽이고 해치고 한다. 나는 이러한 깊은 허물들을 보고 있기 때문에 마땅히 일체 중생들이 나의 몸에 대하여 모든 이익과 안락을 짓고 있거나 나의 몸에 대하여 의로운 이익이 없거나 간에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생각하기를 나는 이제 반드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할 뿐이다'라고 하나니, 찬저바라밀다를 만족하게 하기 위해서이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령 그가 나에게 이익 없이
여러 백 구지 겁을 지난다 해도
그 유정이 뭇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끝내 버리려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만일 세상의 재물 이익 얻으면
서로 칭찬하며 착한 벗이라 하다가
세상의 재물 이익 얻지 못하면
피차간에 원수 되어 서로가 해친다.

가령 이 남섬부주와
혹은 또 3천의 부처님세계에
가득 찬 값진 보배 가져 와서 보시한다 해도
항상 내가 구하는 것은 착한 벗이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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