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140-228

근와(槿瓦) 2017. 3. 5. 00:43

대보적경-1140-22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36 / 3476]

교만하여 방일함도 없고 나타내어 보일 것도 없으며, ·여의 자성이 허망한 성질이 아니며 여여하지 않은 성질이 아니니 이렇게 한량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이렇게 크게 놓아버림을 성취하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놓아 버림의 법을 원만하게 하려고 이러한 법을 말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섯 번째 가려 선별함 없이 놓아버리는 불공법[如來第六無簡擇捨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의욕[志欲]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의욕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여래의 좋은 법에 대한 의욕을 말하느니라. 또 무슨 뜻에서 의욕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여래는 크게 사랑하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여래는 크게 불쌍히 여기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여래는 법을 설하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일어나 멀리 여의겠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보살을 가르쳐 이끌겠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3보의 종자를 이어서 끊이지 않게 하려는 의욕이 줄어들지 않는다. 일체의 여래는 욕심을 따라 다니지 않고 여래의 의욕은 지혜로 앞잡이를 삼아서 스스로 증득한 의욕이 줄어들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위없는 일체지지(一切智智)를 원만히 하려는 의욕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일곱 번째 의욕이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六志欲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정근(正勤)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정근에서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고 하는가? 말하자면 교화할 만한 중생을 버리지 않는 정근이며 법 들으려는 대중에게 물리쳐 보내기를 생각하지 않는 정근이니, 이러한 일들에 물러나거나 지치지 않으므로 여래의 정근은 줄어듦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리자야, 가령 여래를 만나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법 듣기를 좋아하고 법의 그릇의 소임을 감당할 만하여 만일 법을 듣고 능히 겁()이 지나도록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여래도 또한 따라서 겁을 지나더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먹고 마시는 일로 인하여 계속하여 설법하기를 중단하는 일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중생을 위하기 때문에 가령 긍가사(殑伽沙:항하사)보다 많은 모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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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 세계에서 오직 한 중생만이 이 부처님의 교화할 대상이 된다 할지라도 그 때 여래는 몸소 그곳에 가서 법을 설하여 그를 깨우쳐 들어오게 하되 정근하기를 싫증냄이 없느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몸으로 지치거나 싫증냄이 없고 또한 말과 마음으로도 지치거나 싫증냄이 없나니, 왜냐하면 여래의 몸과 말과 마음은 항상 조용히 쉬고 있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오랜 겁 동안을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켰고 정진을 칭찬하였으며 중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정진을 부지런히 닦게 하므로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여덟 번째 정근이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八正勤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가 모든 법·온갖 종류의 모든 생각[]에 대해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 하는가? 왜냐하면 모든 여래는 생각에서 물러남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고 끊임없이 일체 중생의 과거·미래의 온갖 마음이 잇달아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여 아나니, 여래는 그 가운데 마침내 환히 알아 잊어버림이 없느니라. 또 여실히 중생의 행하는 바를 알고는 여래가 그 가운데 다시 지혜를 부림이 없이 여래의 생각은 일찍이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또 사리자야, 여래는 세 가지 종류[三聚]의 중생을 구별하여 모든 근성과 깨달아 들어가는 것과 그 의욕과 견해·실행하는 일을 살피어 관찰하고는 다시 기억하지도 않고 거듭 생각함이 없으며, 다시 관찰하지 않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되 끊임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생각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스스로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생각을 증득하고는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서 길이 모든 생각의 물러나거나 줄어듦을 끊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아홉 번째 생각이 물러나거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九念無退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부처님의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부처님의 삼마지는 일체 법과 그 성품이 평등하여 평등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법[一切一法]과 일체종법(一切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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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평등하지 않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리자야,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의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가? 사리자야, 진여가 평등하므로 곧 삼마지가 평등하며 삼마지가 평등하므로 곧 여래가 평등하나니, 능히 이러한 평등성을 증득하여 들어갔으므로 삼마지를 등정(等定)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또 사리자야, 탐냄의 끝[貪際]이 평등하듯이 탐심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성냄의 끝[瞋際]이 평등하듯이 성냄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어리석음의 끝[癡際]이 평등하듯이 어리석음의 끝을 여읨도 평등하며 함이 있음의 끝[有爲際]이 평등하듯이 함이 없음의 끝[無爲際]도 평등하며, 나고 죽음의 끝[生死際]이 평등하듯이 열반의 끝[涅槃際]도 평등하나니, 여래가 이러한 평등성을 증득하여 들어가므로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평등의 성품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까닭이니라.


사리자야, 이 부처님의 삼마지는 눈으로 서로 응하지 않으며 또한 귀····뜻으로 서로 응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여래의 모든 감관은 이지러짐이 없기 때문이니라. 또 여래의 삼마지는 지계(地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수계·화계·풍계에 의지하지 않으며,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 의지하지 않으며, 이 세상과 다른 세상에 의지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의지함이 없는 까닭에 물러남도 없고 줄어듦도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스스로 증득한 모든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듯이 또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모든 삼마지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 번째 삼마지에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三摩地無有退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지혜가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지혜라 하는가? 말하자면 온갖 법을 환히 알되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지혜며, 다른 중생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하는 지혜며, 다함이 없는 교묘하고 걸림이 없는 지견(知見)의 지혜며, 일체 법구의 뜻을 잘 분별하는 지혜며, 한 법구의 뜻을 깨달아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백천 대겁을 연설하여도 다함이 없는 지혜며, 그 듣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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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의혹의 그물을 끊게 하는 지혜며, 어디서나 걸림이 없는 지혜며, 성스러운 3승의 법을 연설하여 모두 제자리에 서도록 하는 지혜며, 능히 두루 84천 중생의 마음으로 하는 짓을 훤히 아는 지혜며, 그 근성에 맞도록 84천 모든 법장(法藏)을 열어 보이는 지혜니라.
사리자야, 이것이 여래의 지혜에 경계가 없고 끝이 없으며 다함이 없는 것이니라. 이 지혜가 다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지혜를 따라 설함이 다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지혜는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스스로 증득한 지혜의 줄어듦이 없듯이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다함 없는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한 번째 지혜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一智慧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해탈의 물러나거나 줄어듦이 없음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해탈이라 하는가? 사리자야, 성문승은 4제법 설하는 음성을 깨달으므로 해탈을 얻고 독각승은 12인연법을 깨달으므로 해탈을 얻었다 하지만, 부처님 박가범(薄伽梵)께서는 양 극단[二邊]의 집착을 버려 여의므로 해서 해탈을 얻었나니, 그러므로 여래의 해탈이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사리자야, 이러한 해탈은 과거에 속박됨이 없고 미래에는 따로 흘러 구를 것이 없으며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는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눈과 더불어 빛깔의 경계, 두 가지의 집착에서 해탈하였나니 이와 같이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의 두 가지 집착에서 해탈하였느니라. 집착할 것 없는 법을 섭수하고 해탈에 의지하는 까닭이니라.
또 사리자야, 마음과 더불어 지혜의 자성이 빛나고 깨끗하여 그 자체가 티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이 찰나의 마음과 서로 응하는 지혜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나니, 이 여래가 증득한 깨달음대로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법을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두 번째 해탈의 줄어듦 없는 불공법[如來第十二解脫無減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일체 신업(身業)에서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하는가? 왜냐하면 사리자야, 능히 신업(


                                                                            [1140 / 3476]

)을 성취하였으므로 모든 중생들이 만일 여래를 보기만 하면 곧 조복되고 혹은 설법을 듣기만 하여도 모두 조복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가 혹은 침묵을 보이더라도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먹고 마시는 것을 보여도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위의를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여러 가지 뛰어난 형상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미묘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볼 수 없는 정수리를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볼 수 있는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 신비한 광명을 나타내 비추어 몸에 부딪침으로 중생을 조복하며, 혹은 유행할 적에 발을 내딛는 일을 나타내어 중생을 조복하며, 혹 성··촌락에 가고 돌아오는 일을 보여 중생을 조복하느니라.
사리자야, 한마디로 말하자면 부처님 박가범은 어떤 위의(威儀)든 중생들을 조복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에 여래의 온갖 신업은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주고 지혜를 따라 구르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법을 말하여 그들에게 이러한 지혜를 증득하게 하느니라.
사리자야, 이것을 여래의 열세 번째 신업을 지혜로 이끌어주는 불공법[如來第十三身業智導不共佛法]이라 하느니라.


다시 사리자야, 어떤 것을 여래의 온갖 말로 짓는 업[語業]을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 주고 지혜를 따라 구른다고 하는가? 왜냐하면 사리자야, 부처님 박가범은 헛되이 법을 설하지 않으므로 지혜가 앞에서 이끌어 줌으로써, 어떤 기별(記莂:授記)이든지 원만하게 갖추지 않음이 없고 말씨가 미묘하게 드러나느니라.
사리자야, 여래의 말은 표현에 따라 변화됨이 불가사의하나니, 이제 대략 말하리라. 사리자야, 여래의 말은 이해하기 쉬운 말이며, 분명하게 인식하기 쉬운 말이며, 과장하지 않은 말이며, 비열하지 않은 말이며, 뛰어난 말이며, 삿되고 왜곡되지 않은 말이며, 어눌하지 않은 말이며, 번잡하지 않은 말이며, 난삽하지 않은 말이며, 거칠지 않은 말이며, 숨기지 않는 말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만한 말이며, 허약하지 않은 말이며, 경솔하지 않은 말·너무 빠르지 않은 말·되풀이하지 않는 말·갑작스럽지 않은 말·잘 끊고 맺는 말·잘 해석하는 말·매우 묘하고 아름다운 말·가장 미묘한 음성의 말·잘 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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