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식(八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唯識說에서 주장하는 여덟 가지 識.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의 5識과 제6의 意識과 제7의 末那識과 제8의 阿賴耶識.
참고
유식(唯識) : 識 곧 心의 本體의 轉變을 떠나서, 어떠한 實在도 없다고 하는 說. 곧 우리들이 자기의 心外에 있다고 하는 物心의 모든 現象은, 우리들의 第八識 그 자체가 主觀(見分)과 客觀(相分)으로 變하여 나타나서, 인식의 대상과 같은 모습을 心外의 影像으로써 비쳐 떠올려 實在인 것처럼 인정하는데 불과하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건자체(本質)는 阿賴耶識중에 攝持하는 種子로부터 變하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識 이외에는 實在는 없다고 한다. 이것을 唯識無境이라 하고, 또 萬有는 識에서 變했다고 하는 의미로 唯識所變이라고 한다. 이 이론을, 成唯識論 卷二에는
(1) 因能變(因變 · 生變이라고도 하고, 온갖 것은 阿賴耶識중에 거두어 보존돼 있는 종자에서 變生한다)과, (2) 果能變(果變 · 緣變이라고도 하고, 그 결과 八識위에 主觀客觀의 구별이 있어서 對象에 向하는 작용을 한다)으로 나누며 觀心覺夢鈔 卷下에는 (1) 熏習道理(種子는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識에 심어진 것이라는 것)와, (2) 轉變道理(識이 見相二分으로 變하는 것)로 나누어 說한다. ① 法相宗의 근본적 敎義로, 同宗에서는 唯識의 相을 說하는데, 五位百法이 모두 識을 여의지 않는다고 보이는 것을 總門의 唯識, 不離門의 唯識이라고 하고, 五位중 心王은 識의 自相, 心所는 心王에 응해서 작용하는 相應, 色法은 識이 變한 所變, 不相應法은 이상의 三位에 잠정적으로 세운 것.
식(識) : 毘闍那 · 毘若南이라 音譯하며, 外境을 識別 · 了別 · 인식하는 작용. 곧 마음의 작용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며, 外境에 대해 內識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外境을 識別하고 了別하는 것은 識의 外境으로서 顯現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위치에 있는 識을 表識 · 記識이라 한다. ① 大乘 · 小乘이 한결같이 六識을 주장한다. 六識이란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6根을 따라서 色 · 聲 · 香 · 味 · 觸 · 法의 6境에 대해 見 · 聞 · 嗅 · 味 · 觸 · 知의 了別작용을 하는 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여섯가지 心識을 말한다. 이것을 六窓一猿의 비유로서 六識의 體는 하나이지만 그 작용하는 出入門이 여섯이라고 했다. 생각컨대 六識說은 원시적인 뜻을 전하고 있다고 보며, 六識중에서 제 6의 意識을 제 六識이라고도 하며, 후세에 와서 여기에 六識 · 意識 · 分別事識 · 四住識 · 攀緣識 · 巡舊識 · 波浪識 · 人我識 · 煩惱障識 · 分段死識 등 10가지 이름을 붙여 이것을 六識十名이라고 했다. (宗鏡錄) ② 法相宗에서는 6識에 末那識과 阿梨(賴)耶識을 더하여 8識을 주장한다. 8識중 眼識에서 身識까지의 5識을 일괄하여 前五識, 제 6識까지는 前六識 · 제 7末那識까지를 前7識이라 한다. 前7識은 阿賴耶識을 所依로 하고 각각 境을 緣으로 하여 轉起되었다는 뜻에서 七轉識 또는 轉識이라 한다. 또 前六識은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이 현저한 識이므로 了別境識, 제 7末那識은 思量識, 제 8阿賴耶識은 異熟識이라 한다. 護法의 唯識說에서는, 8식중 제 6意識과 제7末那識은 대상을 〈我다〉〈法이다〉라고 허망하게 집착하는 遍計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六 · 七能遍計라고 한다. 前五識과 제 8阿賴耶識은 我 · 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五 · 八無執이라 한다. 인도의 無相唯識派에서는 八식의 體性이 동일하다 하여 八識體一을 주장하지만 有相唯識派와 法相宗에서 體性이 각기 다르다고 하여서 八識體別의 說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二識 내지 八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고 동시에 轉起한다고 한다. 이것을 八識俱轉하여 小乘에서는 2識이 동시에 같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의식(意識) : 六識(眼識 · 耳識 · 鼻識 · 舌識 · 身識 · 意識)의 하나. 제6識이라고도 한다. 意根을 의지하는 곳으로 하여 法境을 認識 · 推理 · 追想하는 마음이지만, 실은 과거 · 미래 · 현재의 三世의 一切法에 대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廣緣의 識이라 한다. 唯識派에서는 이 식에 대해서 4종으로 분류한다(四種意識).
곧 (1) 明了意識. 前五識을 동반하여 일어나서 대상물을 밝게 판단할 수 있는 것. (2) 定中意識. 모든 차별 動亂에서 떨어진 定心과 相應하는 것. (3) 獨散意識. 定중의 의식은 아니고(곧 흩어짐) 특히 前五識을 동반하지 않고 일어나는 것. (4) 夢中意識. 이것도 獨散이긴 하지만, 깨어 있을 때와 구별해서 따로 세운다.
이상 4종중 처음의 (1)은 前五識을 동반해서 일어난다는 의미로 五俱의 意識이라 부르고, 뒤의 (2)(3)(4)는 前五識을 동반하지 않고 일어난다는 의미로 獨頭의 의식이라 부른다. 따라서 뒤의 3은 차례와 같이 定中獨頭의 의식 · 散位獨頭의 의식 · 夢中獨頭의 의식이라고도 불리운다. 특히 이 의식은 現象界의 가지가지 事物을 인식하는 작용이기 때문에 分別事識이라고 하며, 또 前五識을 分別事識이라고 하는 수도 있다.
독두의식(獨頭意識) : 法相宗에서 의식을 네가지로 나누는데, 前五識을 수반하지 않고 단독으로 작용하는 定中 · 獨散 · 夢中의 각 의식을 일컫는 말.
(1) 定中독두의식 : 八定 가운데에 작용하는 의식으로 제六識을 말함. 팔정 가운데 전오식은 그 작용을 보이는 것이 온전치 않지만 오직 제6식만은 그 작용을 하기 때문에 獨頭라고 함. (2) 獨散독두의식 : 제6識이 散位에서 제5識을 攀緣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니, 五塵의 境界를 반연함이 없이 諸法과 空華 水月과 같은 형체를 홀로 보는 것을 말한다. 곧 정신이 어지럽고 복잡하여 꿈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경우에 전5식의 감각기관과 관계없이 홀로 작용하는 제6의식이다.
말나식(末那識) : 法相宗에서 우리의 心識을 8종으로 나눈 가운데 제八識을 제외한 제七末那識 · 제六意識 ·前五識을 가리킴. 제七 末那識만을 가리킬 때도 있다.
末那識 → 末那는 意라 번역하고, 思量의 뜻을 말한다. 末那識은 八識의 하나로, 제七識이라고 하며 思量을 본질로 하는 識이다. 제六意識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도 범어를 음역해서 末那識이라 한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 識은 我癡 · 我見 · 我慢 · 我愛의 4煩惱와 相應하여, 제八阿賴耶識의 見分을 항상 審思하여 「我 ·我所」라 하고 집착하는 恒心思量을 성격으로 하고, 我執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染汚意라고 하며, 思量識 · 思量能變識이라고도 하는데 舊譯에서는 執著識이란 뜻으로 阿陀那識이라고도 한다.
無始이래로 미세하게 相續하여, 힘들이지 않고 자연히 일어나며 그 성질은 有覆無記라고 했다. 法相宗에서는 修行의 단계에 應해서 末那識에 다음과 같은 3位를 세워 이것을 末那의 三位라고 한다.
(1) 補特伽羅(또는 人)我見相應位. 末那識이 阿賴耶識을 緣으로 하여 人我의 見을 일으키는 단계이고, 凡夫 ·二乘의 有學 · 七地이전의 보살과 같은 有漏心의 단계를 말한다. (2) 法我見相應位. 末那識이 제八異熟識에 法我의 見을 일으키는 단계(곧 어느 정도 청정하여지기는 했지만 아직 法執과 我執을 버리지 못한 地位), 곧 凡夫 · 二乘 및 法空智果를 얻지 못한 보살의 단계를 가리킨다. (3) 平等性智相應位. 無漏의 平等性智를 일으켜 얻는 지위, 곧 菩薩이 法空觀을 가지고 見道에 들어가는 경우와 修道位에서 法空智果를 일으켜 얻는 경우, 또는 佛果의 경우를 말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阿賴耶는 범어 alaya의 音譯. 阿梨耶識이라고도 쓰고, 약하여 賴耶 · 賴耶識이라고도 한다. 八識(眼 · 耳 · 鼻 · 舌 · 身 · 意 · 末那 · 阿賴耶의 각 識)의 하나. 九識(八識에 阿摩羅識을 더함)의 하나. 無沒識 · 藏識이라 번역하고, 제8識 · 本識 · 宅識 등 가지가지의 명칭이 있다. 無沒識이라 함은 諸法을 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藏識이라 함은 諸法展開의 의지할 바탕이 되는 근본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또 八識의 최후에 두기 때문에 제8識, 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에 本識이라고도 하고 따라서 諸識 중 특히 識主라고도 한다.
① 成唯識論 卷二에 의하면, 藏識의「藏」에 能藏 · 所藏 · 執藏의 三義가 있다. 이것을 賴耶三藏이라고도 藏三義라고도 한다. 能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展開生起하는 種子(能力 · 原因)를 攝持하고 감춘다는 의미이며, 所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生起하는 種子를 諸法으로 훈습하여 감춘다(藏)는 의미이며, 執藏이라 함은 이 識이 末那 곧「思量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를 愛著한다는 의미이다. 增一阿含經에 의거해서, 阿賴耶에 愛 · 樂 · 欣 · 憙의 四義가 있다고 說하는(이것을 四阿賴耶라고 한다)것도, 여기서 말하는 執藏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아리야식(阿梨耶識) : 玄奘系의 新譯 유식설이 제 8식을 阿賴耶識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眞諦系의 舊譯 유식설에서는 阿梨耶識이라고 한다. 攝論 · 地論 · 華嚴宗 등에서 사용된다. 신구 양 유식설의 학설상의 차이 때문에, 阿賴耶識과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즉 阿賴耶識이 眞如와 다른 有爲生滅의 法임에 대하여, 阿梨耶識은 眞如와 화합한 生滅의 法, 즉 眞如의 현상면을 가리킨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