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잡아함경-955-191

근와(槿瓦) 2016. 12. 15. 00:07

잡아함경-955-19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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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07. 정경(淨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게 하고 번민과 고통을 없애 참다운 법[如實法]을 얻게 하는 일승(一乘)의 길[팔리어로는 ekay no-maggo라고 함. 여기서 - yano는 '도달하다'라는 뜻이고, y na는 '타다[乘]'는 뜻으로 수레를 타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문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뜻함.]이 있나니, 이른바 4념처를 말한다.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身身觀念處]와, 느낌[受] · 마음[心]과, 법(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法法觀念處]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08. 감로경(甘露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4념처를 떠나면 곧 참다운 성인의 법을 떠나게 될 것이요, 참다운 성인의 법을 떠나면 곧 성인의 도를 떠나게 되고, 성인의 도를 떠나면 곧 감로법(甘露法:不死法)을 떠나게 되고, 감로법을 떠나면 태어남 ·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니, 나는 그런 사람을 온갖 괴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했다고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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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비구가 4념처를 떠나지 않으면 성인의 참다운 법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요, 성인의 참다운 법을 떠나지 않으면 성인의 도를 떠나지 않고, 성인의 도를 떠나지 않으면 감로법을 떠나지 않고, 감로법을 떠나지 않으면 태어남 ·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에서 벗어나리니, 나는 그런 사람을 온갖 괴로움에서 해탈하였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09. 집경(集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4념처(念處)의 모임[集]과 4념처의 사라짐[沒]에 대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어떤 것을 4념처의 모임과 4념처의 사라짐이라 하는가? 자양분이 되는 음식[食][팔리어로는 h ra라고 하며, 음식물이라기 보다는 삭인(索引)·장양(長養)·지속(持續)의 뜻을 가지고 있음. 중생의 육신(肉身), 혹은 성자(聖者)의 법신(法身)을 이끌어 그 각각의 몸을 존재하게 하고, 또한 그 상태를 영원히 지속시키기 위해 양육(養育)작용을 하는 정신작용으로서의 음식·자양분을 말함.]이 모이면 몸[身]도 모이고, 자양하기 위한 조건이 사라지면 몸도 사라진다. 이와 같이 이 몸의 모임을 따라 관찰하여 머물고, 몸의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여 머무나니, 몸의 모임과 사라짐을 따라 관찰하여 머물면 곧 의지할 바 없이 머물게 되어 모든 세간에 대해 영원히 취할 바가 없어지느니라. 이와 같이 접촉[觸]이 모이면 느낌[受]이 모이고, 접촉이 사라지면 느낌도 사라진다. 이와 같이 모이는 법을 따라 느낌을 관찰하여 머물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느낌을 관찰하여 머무나니, 모이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느낌을 관찰하여 머물면, 곧 의지할 바 없이 머물게 되어 모든 세간에 대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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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할 바가 없어지느니라. 명색(名色)이 모이면 곧 마음[心]이 모이고, 명색이 사라지면 마음이 사라진다. 모이는 법을 따라 마음을 관찰하여 머물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마음을 관찰하여 머무나니, 모이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마음을 관찰하여 머물면, 곧 의지할 바 없이 머물게 되어 모든 세간에 대해 전혀 취할 바가 없어지느니라. 기억[憶念l이 모이면 법(法)이 모이고, 기억이 사라지면 법이 사라진다. 모이는 법을 따라 법을 관찰하여 머물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법을 관찰하여 머무나니, 모이고 사라지는 법을 따라 법을 관찰하여 머물면, 곧 의지할 바 없이 머물게 되어 모든 세간에 대해 취할 바가 없어진다. 이것을 4념처의 모임과 4념처의 사라짐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10. 정념경(正念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4념처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어떤 것을 4념처를 수행하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안의 몸[內身]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지혜[正智]와 바른 기억[正念]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그리고 바깥의 몸[外身]과 안팎의 몸[內外身]을 관찰하여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기억과 바른 앎[正知]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느낌[受]과  마음[心]도 마찬가지며, 법(法)에 있어서도 안의 법[內法] · 바깥의 법[外法] · 안팎의 법[內外法]을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부지런히 노력하여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앎[正知]으로 세간의 근심과 슬픔을 항복 받는 것이니라. 이것을 비구가 4념처를 수행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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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과거와 미래에 있어 4념처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611. 선취경(善聚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착한 법의 무더기[善法聚]와 착하지 않은 법의 무더기[不善法聚]가 있다. 어떤 것을 착한 법의 무더기라 하는가? 이른바 4념처를 말하나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正說]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원만 청정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4념처에서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身身觀念處]와 느낌[受] · 마음[心]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法法觀念處]이니라. 어떤 것을 착하지 않은 무더기라 하는가? 착하지 않은 무더기란 이른바 다섯 가지 덮개[五蓋][팔리어로는 pa can vara a라고 함. 개(蓋)는 장애(n vara a)를 뜻하는 말로서 마음을 덮는 다섯 종류의 번뇌 즉, 탐욕개(貪欲蓋:탐냄)·진에개(瞋恚蓋:화냄)·수면개(睡眠蓋:무지몽매함)·도회개(掉悔蓋:불안심리)·의개(疑蓋:의심)이다.]이니,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순전히 원만하지 못한 것이 착하지 않은 무더기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다섯 가지 덮개란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 · 진에개(瞋恚蓋) · 수면개(睡眠蓋) · 도회개(掉悔蓋) · 의개(疑蓋)를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612. 궁경(弓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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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어떤 사람이 네 종류의 탄탄한 활을 가지고 센 힘으로 기술을 부려[고려대장경에는 '네 개의 탄탄한 활'로 표현되어 있으나, 팔리본(S. 20. 6. Dhanuggaho 弓術師)에는 '훌륭한 궁술을 가진 잘 배우고 숙련되고 훈련된 네 명의 궁술사'로 표현되어 있다.] 다라(多羅) 나무 그림자를 쏘면 걸림 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래의 네 성문(聲門)[즉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를 말함.]은 뛰어난 방편과 날카로운 근기와 지혜로써 백 년 동안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여래에게서 백 년 동안 설법과 가르침을 받을 때, 다만 밥 먹고 글 쓰고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말하고, 항상 들으며, 날카롭고 밝은 지혜로  여래의 말씀을 끝까지 받아 지녀 아무런 장애나 막힘이 없어 여래께 두 번 묻지 않아도 된다. 여래의 설법은 끝이 없는 것이라, 백 세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법을 들어 목숨이 다하더라도 여래의 설법은 다할 수 없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래 설법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으며, 그 설법의 단어[名]와 구절[句]과 음절[味]의 몸[명구문신(名句文身)과 동일한 말로서 인도 일반의 문법학에서는 명(名, n man)은 명사를, 구(句, pada)는 단어를, 문(文, vya jana)은 자음을 의미함.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좀더 자세히 하여 명은 사물의 이름으로 단어를 가리키며, 구는 '제행무상(諸行無常)'등의 성구(成句) 혹은 문장을 가리키고, 문은 명(名)과 구(句)가 근거로 하는 음성의 굴곡, 문자(文字) 즉 개개의 음절을 말함. 이것들이 각각 두 개 이상 집합 할 때를 신(身)이라 하는데, 여기서 '신'은 집합의 뜻으로 복수를 나타내며 두 개 이상의 것은 다문신(多文身)·다명신(多名身)·다구신(多句身)이라 함.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명구문 자체가 실재하는 것으로 본 반면, 경량부(經量部)나 유식파(唯識派)에서는 이를 가유(假有)의 것으로 봄.]도 또한 한량이 없고 끝이 없다. 이른바 4념처에서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을 관찰하는 염처[身念處]와 느낌[受] · 마음[心] · 법(法)을 관찰하는 염처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모든 사념처경(四念處經)은 모두 '그러므로 비구여, 4념처를 충분히 닦...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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