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도 삭발출가 비구니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맨발에 짚신을 신은 채 수행처를 찾아다니는 스님의 발걸음은 언제나 바빴다. 전국 어느 곳이나 절이 있는 산이면 순호스님의 발길이 닿지않는 데가 드물었다. 이 산 저 산 떠돌아 다니다가 이번에는 경상도 울진에 있는 불영사로 수행처를 옮기게 되었다.
세속나이 서른 일곱이 되던 해, 불영사에서 참선수행(參禪修行)을 계속하던 스님은 또다시 새로운 수행처를 찾아나섰다. 지리산으로 가던 길에 불쑥 진주 속가에 들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립문을 열자, 마당에서는 씨암탉들이 모이를 먹다가 꼬꼬댁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니 거기 웬 스님이시우?”
방안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이내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 아들 순호입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맨발로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아이구 아이구! 이게 대체 누구란 말이냐 그래, 응? 내 아들 찬호 아니냐 그래, 아이구 내 자슥아….”
“그렇습니다, 어머니. 옛날 어머니 아들 찬호입니다.”
어머니는 장삼자락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아들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불효막심한 것. 이 늙은 에미 이렇게 놔두고 넌 그래 스님이 되어서 마음이 편하냐 그래? 이 무심한 자슥아….”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동안 편안히 잘 계셨지요?”
“이 늙은 에미가 어떻게 평안하기를 바라겠느냐. 이씨 가문 망해먹은 큰 죄를 지어놓고 내가 감히 어찌 편하기를 바라겠어, 응?”
아들은 어머니의 거칠은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어머니, 이제는 제발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예?”
“자나깨나 내가 어찌 그 생각을 잊겠느냐? 기왕지사 이렇게 대가 끊길줄 알았으면 중된 아들 죄나 안 짓게 할 것을…죄는 죄대로 짓게하고 대는 대대로 끊기게 생겼으니, 에이그 지지리도 복없는 년이지, 복없는 년이야….”
“어머니, 제발 이러시지 마십시오, 제발, 어머니….”
불쑥 진주 속가에 들렀을 때, 큰딸 인자는 열네 살, 작은딸 인순이는 여섯 살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어리광을 부리며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한 가엾은 아이들이었다. 늙으신 어머니는 세상만사 이제 모두 잊고 산다고 하면서도 서러움의 눈물은 그칠줄 몰랐다. 평소에 늘 말수가 적고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던 옛아내 역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어머니, 이제는 제발 다 잊고 사셔야 합니다.”
“잊지않고 살면 이 늙은 에미가 달리 무슨 방도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구 어머니. 이제는 제발 누구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저나 어머님이나 인자에미나 저 아이들이나 모두 다 전생에 지은 업장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글쎄다…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남의집 가문을 망쳐먹은 큰 죄를 또 짓게 되었는지, 원…생각할수록 기가 막히고 앞이 캄캄하구나.”
“어머니께서는 죄를 지으신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소리 말어! 이 죄, 저 죄 크다고 하지만 남의집 가문 문닫게 한 죄보다 더 큰 죄가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아이구, 내가 박복한 년이지, 내가 박복한 탓이야.”
어머니는 또다시 통곡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쥐어박으며 큰소리로 우는 것이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어머니. 비록 제가 이씨가문의 대를 못잇는 불효를 저질렀습니다만, 이씨가문 보다도 더 큰 부처님 가문을 이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늙으신 어머니의 속마음을 어떤 말로도 편안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스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을 낳아주지 못한 남편없는 며느리를 원망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순호스님은 떠나야 했다.
정든 고향, 늙으신 어머니, 생각하면 할수록 가엾고 불쌍한 옛아내와 두 딸…그러나 이미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출가사문(出家沙門)의 육신(肉身). 구도의 길을 향해 스님은 또다시 휘적휘적 산길을 걸어서 어디론가 가야만 했다.
불쑥 생각이 나서 지리산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속가였지만, 그로부터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순호스님은 경상도 김천 직지사의 천불선원에서 마음공부를 계속하고 있었다. 참선을 통한 수행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다. 진주 속가의 먼 친척되는 사람이 직지사 천불선원에까지 찾아왔다. 그 남자는 순호스님의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내가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 지 모르겠네만….”
“무슨…말씀이신지요?”
“자네 두 딸 인자 인순이, 그리고 애들 에미가 하두 보기에 딱해서 하는 말이네만….”
남자는 계속 말꼬리를 흐렸다.
“왜,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뭐 무슨 일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네 어머님 말씀이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은 순호스님은 다그쳐 물었다.
“어머니께서 무얼 어쩌셨는데요?”
“꼭 뭘 어쨌다기 보다도 나이는 드시지, 믿고 의지할 사람은 없지…그러니 자연 며느리를 원망하지 않으시겠는가….”
“…아이들 어미를 원망하신다구요?”
“말씀 한 마디를 하시더라두 며느리 속을 뒤집어놓는 말씀만 하시구, 속마음이야 안 그러시겠지만 툭툭 던지는 말투가 그러시니, 애들 어미는 허구헌날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네.”
순호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머님을 모셔오도록 하지요.”
“아니 자네가… 스님 신분인데 어떻게 어머니를 모셔오겠단 말인가?”
“하지만 저의 어머님께서 더 이상 나쁜 업을 지으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어떻게든 제가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마음속 깊이 생각한 바가 있어 진주 속가로 내려갔다. 삼년 만에 마주한 어머니는 그새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얼굴에는 푸른 반점이 하나 둘 돋아나고, 노쇠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
“왜?”
“남을 원망하는 것은 나쁜 업을 짓는 것입니다, 어머니.”
“남을 원망하면 나쁜 업을 짓는다?”
“예, 어머니,…그러니 이제 제가 모시고 갈테니 누구에게 원망 같은건 하지 마시고, 부처님께 불공이나 드리면서 편히 지내십시오, 어머니.”
“그 그럼 나를 절로 데려가겠다는 게야?”
“예, 어머니. 제가 머리도 깎아드리고, 스님이 되시도록 해드릴테니 좋은 마음 잡수시고 좋은 생각만 하도록 하십시오, 어머니.”
두 손을 꼭 잡고 말하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어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동안 내가 인자에미한테 못할 짓을 많이 했구나…내가 박복한 년이라서….”
물기에 젖은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면서 아들은 어머니를 몇 번이고 불렀다.
“어머니…어머니…어머니….”
“오냐, 오냐.”
이제는 어머니의 눈물도 많이 마른 것 같았다. 예전 같지가 않았다.
순호스님은 늙으신 홀어머니를 김천 직지사로 모시고와서 비구니 성문스님으로 하여금 사제로 삼아 삭발출가하도록 했으니, 이때 어머니가 받은 법명은 성인(性仁)이었다. 노모가 삭발출가하여 성인 사미니(沙彌尼)가 되던 날, 무심한 뻐꾸기는 구슬프게 울어댔다.
출가한 노모는 새로 입은 승복을 내려다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원 세상에, 나 같은 늙은 것이 이렇게 머리깎고 승복입고 스님행세를 하다니, 이게 정녕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못하겠구먼…그렇지 않으냐? 인자애비야.”
“어머니 이건 꿈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저를 인자애비라고 부르셔도 안 되고, 찬호라고 부르셔도 아니 됩니다.”
“아니 그럼 뭐라고 부르란 말여, 그래?”
“이제 어엿한 사미니가 되셨으니 불가의 법도에 따르셔야 합니다.”
“불가의 법도에 따라야 한다구?”
“예, 저도 이제 어머님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사오니….”
“아니 그럼, 이 에미를 뭐라고 부를 것이란 말여 그래?”
“법명을 새로 받으셨으니 이젠 성인스님이십니다.”
“내가 …성인스님이라구?”
“예, 스님.”
자신을 스님이라고 부르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어머니는 쓸쓸히 웃었다.
“…그래, 내가 성인스님이라…그리구 날더러 인제는 인자애비야, 찬호야, 이렇게 부르지 말고 순호스님, 순호스님, 하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성인스님….”
어머니는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래…그래, 아들은 순호스님, 에미는 성인스님…허지만 나같은 늙은 것이 중노릇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구먼….”
“…다른 것은 그만두시고 이제부터 염불공덕(念佛功德)이라도 정성으로 쌓으시면 그동안 지으신 업장, 깨끗이 소멸되어 극락왕생(極樂往生)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래…그래, 이 늙은 것, 염불이라도 부지런히 올려서 그동안 지은 업장 깨끗이 씻고 가야지.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순호스님의 속가 어머니 성인스님은 사형(師兄)인 성문스님을 따라 대구 팔공산 동화사 부도암으로 옮겨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되었다. 속가의 어머니였던 성인스님이 직지사를 떠나자, 순호스님도 걸망을 챙겨메고 천불선원을 나왔다. 이제는 속가와 얽힌 업장 하나를 정리한 셈이었다.
“아니, 스님. 어쩌자고 걸망을 메고 나오십니까?”
“으음, 그동안 이 직지사 천불선원에서 잘 지냈으니 이번에는 저기 저 금강산 마하연으로 나가볼까 하네.”
“금강산으로 떠나버리시면 저희들 젊은 수좌들은 어쩌란 말씀이시옵니까, 스님?”
“그건 또 무슨 말씀이던가? 내가 떠나면 안될 일이라도 있었더란 말인가?”
걸망을 메고 선방(禪房)마루에 앉은 채, 순호스님과 한 젊은 스님과의 법담은 오래도록 그칠줄 몰랐다.
“사실인즉, 저희 젊은 수좌들은 스님께서 이곳에 더 오래 머무시며, 저희들 공부를 이끌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었사옵니다, 스님.”
“허허 그건 그대들이 생각을 잘못한 것. 나는 지금 누구를 가르치고 지도하고 할 계제가 아니네.”
“아, 아니옵니다, 스님. 저희들이 알기로 스님께선 이미 한소식 전하셨고, 덕숭산(德崇山) 큰 스님께서도 쾌히 인가를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몇 년 전, 덕숭산 정혜사(定慧寺)에서의 여름 해제(解制)날, 만공스님 앞에서 행한 법문(法文)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렇게 말하는 젊은 수좌를 향해 순호스님은 다소 격앙된 어조로 일렀다.
“쓸데없는 풍문에 귀 기울이지 말게!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스스로 아는 것, 누가 인가하고 아니하고가 문제가 아니라네.”
“하오면 스님, 기어이 이 천불선원을 떠나시렵니까?”
“이미 출가한 사문(沙門), 머물고 떠남에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하오면 스님, 어리석은 저희들을 위해 한 말씀 남겨주시고 떠나십시오.”
“허면, 그대는 대체 무엇을 찾고, 무엇을 구하려고 삭발출가하여 염의(染衣)를 입고 있는고?”
“예 스님, 도를 닦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 위해 출가했사옵니다.”
“허면, 대체 도는 어디에 있으며 부처는 또한 어디에 있다는 말이던고?”
“말씀드리기 부끄럽사오나, 저는 아직 그것을 모르옵니다, 스님.”
“일찍이 지눌(知訥), 보조국사(普照國師)께서 친히 이르셨네. 도라고 하는 것도, 깨달음이라 하는 것도, 부처라고 하는 것도 모두 다 이 마음에 있는 것. 그런데 그대들은 어찌 그 마음을 먼 데서 찾으려 하고, 밖에서 찾으려 하는가?”
“…마음이 곧 도요, 깨달음이요, 부처이니 밖에서 찾지 말라구요? 스님?”
“부처를 멀리에서 찾고 밖에서 구하려 하면 이는 마치 등에 업은 아이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아녀자와 같으니, 가부좌만 틀고 앉아서 부처를 얻고자 하면, 이는 마치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 하는 것과 같을 것이야….”
젊은 수좌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구요?”
젊은 수좌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순호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다.
“아니, 스님, 스님….”
순호스님은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젊은 수좌는 몇 번이고 스님을 불렀지만 순호스님은 걸망 하나를 짊어진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유히 언덕을 넘어 사라져 갔다.
그 길로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 들어가 구름과 안개, 기암과 폭포를 벗삼아 참선수행에 몰입한 지 삼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세속나이 사십을 넘고 보니, 이제 스님도 옛날의 순호스님이 아니었다.
한 수좌가 스님에게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늘 저희들에게 마음이 곧 도요, 마음이 곧 깨달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그렇게만 말하지 아니했느니라.”
“아니옵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사옵니다.”
“참으로 어리석구나. 너희들은 어찌하여 내 말 백 마디 가운데 한 마디 말만을 귓가에 담아두고 있느냐?”
“…백 마디 가운데 한 마디 말만을 귓가에 담아두고 있다구요?”
젊은 수좌는 곰곰이 씹어보고 있었다. 순호스님의 대답은 계속됐다.
“나는 분명히 마음이 곧 도요, 마음이 곧 깨달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라고 너희들에게 일렀느니라.”
“예 그렇사옵니다, 스님.”
“그리구 또 분명히 일렀으되, 마음이 곧 늑대요, 마음이 곧 호랑이요, 마음이 곧 도적이요, 마음이 곧 선녀요, 마음이 곧 관세음보살이요, 마음이 곧 부처라고 일렀느니라.”
“예 스님,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마음이 곧 도요, 깨달음이요, 부처라면서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곧 늑대요, 마음이 곧 도적이라 하는가, 앞뒤가 맞지 아니한다 그런 말이렷다?”
“…그, 그러하옵니다, 스님.”
“저 산아래 장터에 가면 장사치가 앉아 있느니라.”
“…예, 스님.”
순호스님은 기침을 한 번 하고나서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 장사치가 물건을 사러온 사람을 앞에 놓고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갖되, 어떻게 하면 손님의 눈을 속여 돈을 더 많이 벌어볼까, 이런 궁리를 하면 바로 그 장사치의 마음은 도적이요, 늑대요, 호랑이와 같은 것! 또 어떤 사람이 저자거리를 지나다가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보았다고 하자, 이때 쓰러진 사람의 옷을 뒤져 돈을 훔치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도적이요, 늑대요, 호랑이와 같은 것. 그렇지 아니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쓰러진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고 도움을 베풀겠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바로 선녀요, 관세음보살이요, 자비로운 어머니와 같은 것! 마음은 하나로되, 도둑도 되고, 늑대도 되고, 선녀도 되고, 관세음보살도 되는 것이니, 그래서 이 마음을 바로 보고, 마음을 바로 알고, 마음을 바로 닦아, 마음을 바로 다스리면 이것이 바로 도요, 깨달음이요, 부처라고 하느니라.”
순호스님의 법문은 지루하지가 않았다. 젊은 수좌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절을 올렸다.
“알겠사옵니다, 스님. 감로법문(甘露法文)들려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때로는 참선으로, 때로는 여러 수좌들과의 법담을 통해서 순호스님의 수행은 계속되었다. 바로 이무렵 금강산 마하연에 머물고 있던 스님에게 한 장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온 것이었다.
“무엇이라구? 성인 비구니 열반이라? 아니, 그러면….”
속가의 어머니였던 성인비구니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비보(悲報)였다. 순호스님은 부랴부랴 행장을 꾸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부도암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속가의 옛아내 차씨부인이 와 있었다.
산천초목도 숨을 죽여 애도하는 가운데, 옛 속가의 어머니 성인비구니의 다비를 마친뒤 스님은 차씨 부인과 마주서게 되었다.
“이 절에 와서 스님들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소. 편찮으시다는 기별을 했더니 곧바로 올라 오셨다면서요? 병구완을 마지막까지 정성들여 해주고, 임종까지 지켜주셨다니 정말 고맙소이다.”
옛아내는 다비식 때까지도 흘린 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은 듯했다. 또다시 복받쳐 나오는 울음을 삼키는 것 같았다. 그런 차씨부인을 바라보면서 스님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행여 서운한 점이 있었더라도 이제는 다 잊도록 하시오.”
“…아, 아닙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전에…모든걸 용서하라 하시고…제 앙금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제 손목을 꼬옥 쥐어주셨습니다.”
“잘하셨소. 정말 잘하셨어요. 자 그럼, 난 또 그만 가봐야겠으니 부디 잘 가시오.”
“…대체 또 어디로 가십니까요?”
순호스님은 쓸쓸하게 웃으며 하늘만 쳐다보았다.
“삭발출가한 중, 가는 데가 어디라고 정해져 있겠소?”
“하지만 스님, 아이들 일은 궁금하시지도 아니하십니까?”
“그 아이들이 지금쯤 몇 살이던가요?”
“큰 아이가 열아홉, 둘째는 열한 살입니다.”
“고생 참 많으셨소이다. 자 그럼, 잘 가시오!”
스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긴 장삼자락이 바람결에 유난히도 펄럭거렸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차씨부인은 울음을 삼키고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스님, 잘 살펴가세요. 부디….”
출전 : 고승열전(청담큰스님편,BBS)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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