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正法)

정법과 외도

근와(槿瓦) 2016. 6. 27. 00:23

정법과 외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외도(外道)’라는 말은 부처님 법 이외의 여러 가지 수행법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불교 수행을 한다고 해도 안으로 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구하는 마음을 일으켜 삿된 경계에 팔려 있으면 비록 염불을 하고 부처님 경을 읽어도 외도가 되어 앉아 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러므로 외도란 불교 이외의 수행법을 뜻하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법 가운데서도 정법(正法)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말법시대가 다가올수록 수행 풍토 역시 혼탁해져 부처님 법이라고 껍데기만 뒤집어썼을 뿐, 그 머릿속에 외도물이 잔뜩 들어 수행을 하는지, 정법을 흐려놓는 마업(魔業)을 지으며 지옥에 갈 표를 미리 예약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수행에 관한 서적이라고 나온 책들을 보아도 심각한 문제가 많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부터 어긋나게 가르쳐놓은 책도 있고, 정법을 흐리게 하는 내용, 외도법을 불법인 것처럼 착각하여 포교하는 내용 등을 담은 책도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요즘 외도들이 갈수록 창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정법까지 위태롭게할 지경입니다. 단전호흡이니 요가니 각종 명상이니 하면서 마치 혹세무민(惑世誣民)하듯이 일반 대중들을 잘못된 수행법으로 이끕니다.


이런 수행법들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절대로 바른 수행이 될 수 없습니다. 무릇 수행이란 참나를 찾고 실상의 도리를 밝혀 진리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붙여서 오히려 진리로부터 더 멀어지기만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들은 정도(正道)가 무엇이고 정법(正法)이 무엇인지, 사도(邪道)는 무엇이며 외도(外道)는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언제나 부처님의 법에 대한 정견(正見)을 먼저 확실하게 세우고 그에 의지하여 수행해야 합니다. 외도들이 도에 들지 못하는 것은 그 소견(所見)들이 비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뚤어진 견이 바른 견이 되도록 먼저 법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팔정도(八正道)에 의지하여 수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보려고 노력하고, 바른 말을 하려고 노력하며, 바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정견(正見)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정견이 없기 때문에 외도가 됩니다. 정견이 참으로 바르게 섰다면 그것은 이미 불법(佛法)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96종이나 되는 외도들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 외도 무리들을 찾아다니시며 정견을 세워주시고, 참진리가 무엇인지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도 무리들은 바른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러주면 모두 귀를 막고 도망을 가버립니다. 외도 수행을 하면 삿된 신통력(神通力)이 먼저 나오는데, 그 신통력에 집착해서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 신통력을 보고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서 아무리 바른 가르침을 들려주어도 귀를 틀어막고 못 들은 척합니다.


그러고는 참된 도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도를 안다고 하고, 도를 닦는다고 합니다. 전부 부처님 말씀을 빌려다가 그럴듯한 말을 붙여서 깨달음이니 열반이니 합니다.


이렇게 아는 체하는 식심(識心)을 모두 내려놓고 관념의 작용을 초월한 참으로 순수한 경지, 상대성을 여읜 절대성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도()입니다. 착각에서 깨어나 전도몽상과 허상을 여의고 실상(實相), 즉 이 세계의 참모습을 보는 것이 도입니다. 실상의 세계 바로 그 자리에 드는 것이 도입니다. 외도들은 자기 본심과 진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는 마음, 즉 식심을 근본적으로 여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도에 들 수 없습니다. 진리에 계합할 수 없으며 스스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외도들은 초월하는 법이 아니라 집착하는 법입니다. 헛꿈에 불과한 바깥세계에 대한 집착, 자신들이 세운 삿된 법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이중 삼중의 망상 안에서 엉뚱한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도들은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대해 사무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고행을 합네, 수행을 합네 해도 모래를 가지고 밥을 짓는 격이어서 죽을 때까지 도()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삿된 경계에 팔려 착각과 망상 속에서 괴롭게 헤맵니다.


게다가 죽어서는 그 과보로 한없이 고통받는 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 미혹하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시켰기 때문에 그 과보가 참으로 무겁습니다. 전부 인과에 걸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바른 진리를 전하기 위해 49년 동안 맨발로 다니시면서 설법을 하셨습니다. 이런 부처님의 정법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어서 독경을 할 때면 언제나 먼저 외우게 되어 있는 개경게(開經偈)의 첫머리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상심심 미묘법 백천만겁 난조우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진리를 바로 드러내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가는 법이 없는 참으로 미묘한 이 가르침은 백천만 겁을 살아도 한 번 만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대목은 이렇습니다.


아금문견 득수지 원해여래 진실의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서 보고 듣게 되었으니 부디 부처님이 가르치신 그 진실한 뜻을 깨닫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말입니다. 즉 진실도(眞實道)에 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무릇 도를 닦으려면 진실해야 합니다. 뼈에 사무치게 진실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래 진실의(如來眞實意)’를 깨닫고 진실도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삿된 견()에 미혹되지 않게 됩니다.


백천만 겁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의 법을 만났으면서도 그것의 귀중함을 모른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온 우주가 인 것을 모르고 몸뚱이만이 나라는 좁은 관념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삿된 경계에 미혹되어 외도의 무리가 되어 앉았다면 불조(佛祖)에게 부끄럽고 자기 자신에게 한없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그르치게 하고 남을 그르치며 부처님 정법의 생명을 끊어 온 우주를 캄캄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일체중생을 깨달음의 길, 진리와 참사실의 길로 안내해야 하는데 거꾸로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로 몰아넣으며 동타지옥행(同墮地獄行)을 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 과보가 태산보다 무겁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용히 앉아서 가만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받기 어렵다는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서, 세세생생 고해(苦海)를 떠도는 중생들을 건져내기 위해 부처님께서 그렇게 간절히 설해놓은 불법을 만났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죽을 사람이 다시 활발하게 살아날 약을 만난 것보다 백천 번이나 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자기 본마음을 확철히 깨달아 온 우주가 나인 것을 알고 참으로 자유자재하는 실력을 얻는 법을 만난 것입니다. 대지혜와 대자비를 구족하여 일체중생을 근기 따라 제도하여 나와 남이 함께 성불하는 위대한 법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바르게 배워서 참으로 순수해져야 할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순수해지겠는가? 어떻게 해야 진실한 경지에 들어가겠는가?’


이렇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속지 않아야 합니다. 부지런히 수행을 하고 화두를 거각(擧覺)하여 진실하고 순수한 경지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침내 그 자리에 들어 깜깜 밤중처럼 미혹된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불자들 스스로가 정법의 가치를 깨닫고 잘 지켜 수행하여 바른 도에 계합하여야 합니다. 불자들 스스로가 정도(正道)를 닦아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모범이 되어 무수한 외도들을 항복받아 함께 진리의 세계에 들어야 합니다. 갈수록 창성해지는 외도에게 참다운 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지옥에 빠져들어갈 중생들을 건져내고 잘못된 수행 풍토와 오탁악세의 온 세계를 맑게 정화(淨化)하는 것입니다. 혼탁한 말법시대일수록 부처님의 정법은 보석보다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정법을 잘 지켜서 자신의 참마음을 찾고자 하는 모든 중생들에게 바른 안내를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출전 : 正日禪師법어집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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