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없는 법문이 그대 마음 속에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질문) 부처님의 뛰어난 도는 깊고 넓어 생각하기 어려운데, 지금 말세 중생들에게 자기 마음을 살피어 불도를 바라게 하니 뛰어난 기질(上根)이 아니고는 의심하고 비방할 것입니다. (대답) 나는 웃으며 말하였다. 앞에서 물을 때는 호기를 부리더니 지금은 어째서 스스로 낮추는가. 경솔히 듣지 말라. 마명(馬鳴)보살은 1백부의 대승경전을 간추려 <기신론(起信論)>을 짓고 그 첫머리에 말하였다.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포용하고 있으므로, 이 마음에 의해 마하연(大乘)의 뜻을 나타내 보인다.' 이것은 중생들이 자신의 마음이 신령하고 오묘해서 자재(自在)함을 알지 못하고 외부를 향해 도를 구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또 원각경(圓覺經)에서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중생들의 갖가지 허망한 것들(幻化)이 모두 여래의 원만히 깨달은 마음(圓覺妙心)에서 생긴 것인데, 그것은 마치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배휴(裵休)는 또 이렇게 말했다. '혈기가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앎이 있다. 앎이 있는 것은 그 본체가 같다. 이른바 진실하고 깨끗하며 밝고 오묘하며 텅 비고 훤출하게 트였으며 신령스럽고 통달해 있어 우뚝 홀로 높은 것이다. 이것을 등지면 범부이고, 이것을 따르면 성인이다.'
운개 지(雲蓋智)선사는 항상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기 마음만 속이지 않는다면 마음은 저절로 신령하고 성스럽다.'
위에서 인용한 글들은 여러 경론(經論)과 선지식들이 남긴 말씀 중에서 오묘한 뜻을 지닌 것들이다. 그러데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속여 그렇게 살면서 믿지도 않고 닦지도 않는다. 간혹 믿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판단 결정하지 못하고, 생각을 따라 찬성하고 반대하여 단상(斷常)을 면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만을 고집하니, 어떻게 그들과 함께 도를 이야기하겠는가.
(질문) 경전 가운데서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오묘한 법문을 말씀하신 것이 그물처럼 펼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덮고 땅을 둘러 싸 모든 보살이 그 가르침대로 받들어 행해서 끊고 증득하는 지위에 삼현(三賢) 십지(十地)와 등각(等覺) 묘각(妙覺)이 있습니다. 지금 성성하고 적적한 두 가지 문에 의해 혼침과 인연에 얽힌 생각(緣慮)을 다스림으로써 마침내 최후의 경지를 기약하는 것은, 마치 한 작은 물거품을 보고 큰 바다를 보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것은 잘못된 소견이 아니겠습니까. (대답) 요즘 마음 닦는 사람들은 부처의 종자를 갖추어, 돈종(頓宗)의 바로 가리키는 문에 의지해 결정적인 믿음과 앎(信鮮)을 지닌 이는 자기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또렷또렷함을 바로 안다. 그리고 이것에 의지해 수행하기 때문에 온갖 행(萬行)을 갖추어 닦더라도, 오직 생각 없음(無念)으로 종(宗)을 삼고 지음 없음(無作)으로 근본을 삼는다. 생각이 없고 지음이 없기 때문에 시간과 지위에 있어 점차의 수행이 필요 없고, 법이니 뜻이니 하는 차별의 상(相)도 없다. 갖추어 닦기 때문에 티끌수 같은 법문과 모든 지위의 공덕이 여의주(如意珠)처럼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 그 가운데 있는 성성하고 적적한 이치는 바로 생각을 떠난 마음의 바탕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혹은 공부를 해나가는 법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수행과 본성이 함께 원만하고 이치와 행이 다 통해지니, 수행의 지름길로는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다. 마음을 잘 닦아 생사의 병에서 벗어나는 것이 긴요한 일인데, 어찌 명목과 뜻의 논쟁으로 견해의 장애(見障)을 일으키고 있는가. 이제 만약 생각에서 벗어난 마음의 바탕(心體)을 얻으면 부처님의 지혜와 서로 부합할텐데 어찌 삼현 십지 등 점차의 법문을 들추어 말하겠는가.
<원각수증의(圓覺修證儀)>에서 말하였다. '돈문(頓門)에는 일정한 지위가 없어 마음이 청정한 그것이 바로 참(眞)이다.'
<기신론(起信論)>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깨달음이란 마음 자체가 생각을 떠난 것이니 생각을 떠난 모양은 허공계와 같아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법계(法界)가 한 모양이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평등한 법신(法身) 아닌가.' '만약 어떤 사람이 무념(無念)을 관할 수 있다면 그는 곧 부처님의 지혜로 향한다.'
사조(四祖)께서 융(融) 선사에게 말씀하셨다. '백천 삼매와 한량없는 법문이 다 그대 마음 속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자기 마음이 모든 법을 두루 싸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경전의 천 가지 각기 다른 말이 근기를 따라 자기 마음의 법계를 가리켜 돌아가게 한 것임을 알지 못하며, 도리어 문자의 차별문에 집착하고 또 스스로 겁약하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의 수행 절차가 차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은 성종(性宗)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런 병이 있으면 당장 고치라.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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