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대강좌(131)-육조스님과 應無所住 而生其心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육조 혜능(六祖慧能)스님이 나무를 팔고 돌아서다가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의 설명하는 것을 듣고 대번에 깨치셨는데, 그 구절이 바로 이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입니다. 육조스님은 팔십 노모(老母)를 혼자 모시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시장에 팔아서 어머니를 효성으로 봉양(奉養)하고 지내는 일자무식(一字無識)의 가난한 소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관 방에 나무를 팔아 가지고 돌아가려고 지나치다가 어떤 스님이 읽는 금강경 글귀를 듣게 되었습니다. 세상 이야기가 아니고 인생 일대사(人生一大事)에 대한 이야기, 생사(生死)를 초월하는 인생 문제(人生問題)의 이야기 같아서 귀를 기울이니 결론을 짓는 대문(大文)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이게「응무소주 소주하야 이생기심하라」는 대문이었습니다. 육조스님은 이 글을 여기서 한 번 듣고 대번에 마음을 깨치셨기 때문에 이 글귀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마음을 어디다 두지 말고 그 마음을 내라. 보시(布施)도 하고 지계(持戒)도 하고 육도만행(六度萬行)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승 모양으로 가만히 정적(靜寂)만 지키고 앉았으면 역시 정적에 주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고 해서 생사에 주해도 안 되고 보살은 열반에도 주하지 않고 생사에도 주하지 않는 것을 응무소주(應無所住)라 한 것입니다.
육조스님은 여기서 이 생각도 저 생각도 아닌 궁극(窮極)을 확실히 깨달아서, 알았다는 생각도 요달했다는 생각도 없이 오로지 말하는 이 마음자리만 환하게 남아 있는데, 그러면서 일체 번뇌 생사나 열반에나 아무 데도 주하지 않고 중생을 위해 마음을 내는 보리심(菩提心)을 사무쳐 깨달으셨습니다. 육조스님은 무식한 나무꾼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하라는 소리를 듣고 곧 견성(見性)하셨는데 그리고는 오조(五祖)스님을 찾아가려 했으나 늙은 어머니를 내버리고 갈 수도 없고 하여 당황하다가 경 읽던 스님이 금을 여럿 냥(兩)을 주면서 어머니를 그동안 봉양(奉養)하도록 하고 노자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십 노모(老母)를 자기 친구한테 부탁하고,「나는 천생 지금부터 오조 홍인(弘忍)대사를 찾아 뵙고 내가 바로 깨친 것인지 아닌지를 물어 봐서 인가(印可)를 얻어와야 하겠고, 그리고 내가 모자라는 게 있으니 더 배워야 하겠네. 나의 인생이 나무해서 어머니나 모시다 돌아가신 뒤 에 나도 죽고 하는 줄 알았더니 희한한 도를 한번 듣고 내가 깨침을 얻어서 꼭 스승을 찾아가야 하겠네.」하고 간청을 해서 승낙을 받고 떠났습니다. 나중에 홍인 대사한테 참배하고서 지내는 동안 여러 가지 얘기가 있습니다만 오조스님께서 마지막 날에 말씀하시기를「앞으로 네가 많은 중생을 제도할 사람이니 금강경을 한번 더 배우라」하시면서 저녁에 데리고 앉아서 일러 주셨는데 여기서「응무소주 이생기심」하라 하는 소리에 또 한번 더욱 깨달았습니다. 두 번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조께 다음과 같은 오도의 게송(悟道頌)을 지어 바쳤습니다.「어찌 자기 성품이 본래부터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기 마음이 본래 생멸하지 않는 자리임을 알았으며, 어찌 자기 성품이 본래 구족한 줄을 알았으며, 어찌 자기 성품이 본래 동요하지 않을 줄 알았으며 어찌 자기 성품이 만 가지 법을 내는 줄을 알았으리(何期自性 本目淸淨 何期自性 本不生滅 何期自性 本自具足 何期自性 本無動搖 何期自性 能生萬法)」이라 했습니다.
현상계니 형이상학(形而上學)이니 형이하학(形而下學)이니 하는 온갖 법이 다 마음 가운데 일이고 마음의 장난입니다. 대자연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 조물주가 한 것도 아니며 오직 자기 마음에 만법이 구족해 있다는 것을 깨친 게송(偈頌)입니다. 이렇게 해서 육조스님은 부처님 때부터 전해 내려온 가사와 바리때와 금강경을 받아가지고 오조스님 지시하신 대로 남쪽으로 피해 가셨습니다. 그때 오조스님 문하(門下)에는 칠백 대중이 있었는데 대중 가운데 신수(神秀)대사는 제일 학덕(學德)이 높아서 그이가 오조홍인대사의 의발(衣鉢)을 전해 받고 신수 문하의 대중들이 그걸로 해서 출세하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저 남방 광동(廣東)에서 온 아주 시골뜨기 무식군처럼 생긴 자가 바리때와 부처님 가사를 가져갔다고 하니까 그럴 수 없다는 중생심으로 잡으로 가고 한 소설 같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렇게 一五년 동안이나 피해 다니다가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 우연히 지나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절에 큰 재가 있어서 울긋불긋한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을 보고 공부하는 젊은 학인(學人)들이 한 열 댓명이 토론(討論)을 하게 됐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저 기가 흔드는 것이냐. 바람이 흔드는 것이냐.」하고 문제를 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기가 흔든다」하고 또 하나는「바람이 흔든다」고 말하여 두 편으로 갈라져서 싸움이 벌어지게 됐습니다.「바람은 통과한 것뿐이고 흔들지는 않는다.」그러니까 또 반대편에서는「기는 만년을 꼽아 봐도 바람 안 불면 가만히 서 있는데 바람이 기를 흔들지 어찌 기가 혼자 흔들 수 있느냐.」이렇게 한참 시비가 벌어져 판단이 나지 않고 있는 판에 혜능(慧能)스님이 마침 옆에 앉아 있다가「그것은 기가 흔든 것도 아니고 바람이 흔든 것도 아니며 오직 그대들 마음이 흔듭니다.」그랬습니다. 기도 마음이요 바람도 마음이니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학인들이 혜능행자(慧能行者)와 몇 마디 해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그곳 주지스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때 주지 인종 화상(印宗和尙)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육신보살(肉身菩薩)이 남방에 한번 출현하실 거라고 칠백년 전부터 예언(豫言)이 있었고, 홍인대사의 의발(衣鉢)을 전해 받은 부처님 법을 다 깨달은 이가 남방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분인지 모르겠다」했습니다. 그때까지 혜능행자는 스님이 되지 못한 채 스님 견습생(見習生)인 행자였었는데 몇 마디 문답을 통해 높은 경지의 법을 통한 사람임을 안 인종 법사는「오조스님의 의발(衣鉢)이 남방으로 왔다는 말이 있는데 필시 행자가 아니십니까」하고 열반경법문(涅槃經法門)을 청하여 들었고, 또 혜능행자의 머리를 깎아주고 범부가 처음 들어와 계를 받듯이 10계를 받고 二백五십계를 낱낱이 받았습니다. 밥 먹는 것, 걸음 걷는 것, 앉는 방법, 문 출입하는 것, 팔만 가지 세행(八萬細行)과 위의(威儀)를 다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육조대사는 38년간 정법(正法)을 크게 밝히셨는데 그 밑에 법을 이은 자가 四三인이나 되고 도를 깨달아 견성(見性)한 이가 천 수백이나 되기에 이르렀고, 이들이 중국의 사백여주(四百餘州)에 흩어져 크게 교화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대사 이래 금강경은 더욱 선종의 소의경전으로 되었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구절(句節)은 달마 선종(達摩禪宗)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아무 생각없이 일을 하라.」이것이 보살행(菩薩行)이고 그것이 대승행(大乘行)입니다.
출전 : 금강경대강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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