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룬다

근와(槿瓦) 2014. 3. 11. 01:05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룬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재주가 뛰어난 젊은이가 있었다. 크고 작은 어떤 일이라도 그의 눈을 한번 스치기만 하면 그대로 익힐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총명을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다.

'천하의 기술은 기필코 다 알고야 말겠다. 만약 한 가지라도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밝게 통달했다고 할 수 없으리라.'

그리하여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스승 밑에서 많은 일을 배워 통달할 수 있었다. 여섯 가지 기예며 천문 · 지리 · 의약, 그리고 무너지는 산과 흔들리는 땅을 누르는 법, 도박과 장기 · 바둑, 옷 마르기와 비단에 수놓기, 고기 썰기와 음식 요리법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로서는 벼라별 일을 죄다 익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뭇 자만하게 되었다. 

'사내로서 이만하면 누가 감히 당할 수 있겠는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내 기술을 한번 과시해 보리라. 나와 견줄 자가 있다면 그를 꺾어 무릎꿇게 함으로써 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쳐 보리라.'

 

그는 이웃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하루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웅성거리는 시장에 들어갔다. 어떤 사람이 각궁(角弓)을 만드는데, 소의 힘줄을 쪼개고 쇠뿔을 다듬는 등 활을 다루는 솜씨가 걸림이 없었다. 그래서 활을 사가는 사람들이 뒤를 이어 몰려들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였다.

'나는 젊은 때부터 모든 것을 두루 배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활 만드는 사람을 보고도 그것을 업신여겨 배우지 않았다. 만약 저 사람과 기술을 겨룬다면 나는 지고 말겠다. 저 사람 밑에서 배워야겠구나.'

 

그는 그 활장이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한 달 동안에 활 만드는 법을 죄다 익혀 이제는 그의 기술이 스승의 앞을 서게 되었다. 그는 돈으로 사례하고 거기를 떠났다. 또 다른 나라로 가다가 강을 건너게 되었다. 뱃사공이 배를 저어 가는데 배의 빠르기가 쏜살같았으며, 배를 돌리거나 거슬러 올라가는 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또 생각했다.

'비록 내가 익힌 기술이 많다고 하지만 아직 배 부리는 것은 익히지 못했다. 아무리 천한 기술이라도 몰라서는 안되겠다. 이 일도 배워서 기술을 갖추어야겠다.'

 

그는 뱃사공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배웠다. 한 달이 못되어 배 부리는 솜씨가 스승을 능가했다. 그는 돈으로 사례하고 그곳을 하직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로 들어갔다. 그곳 왕궁이 천하에 짝이 없을 만큼 훌륭한 것을 보고 이제는 목수의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왕궁을 지은 목수를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 달 동안에 그는 목수일을 죄다 배워 마쳤다. 그는 또 돈으로 사례하고 목수 밑에서 떠났다. 

 

이렇게 해서 열 여섯 큰 나라(부처님 생존시의 전인도를 가리킴)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기술을 마음껏 과시했지만 아무도 감히 겨룰 사람이 없었다. 그는 더욱 교만해져서, 이 천지에 누가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고 으시댔다.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은 걸식을 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발우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 젊은이는 자기 나라에서는 아직 수행승을 본 일이 없었으므로, 부처님을 보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탁발승(부처님)에게 물었다.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일찍이 본 일이 없습니다. 그 어떤 복식에도 그런 모양의 옷은 없으며 종묘(宗廟)의 이상한 그릇에서도 당신이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그릇은 없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형상과 옷이 보통 사람들과 다릅니까?"

 

탁발승은 대답했다.

"나는 내 자신을 다루는 사람이오."

 

젊은이는 의아하여 다시 물었다.

"아니 내 자신을 다루다니요? 무엇을 가리켜 자신을 다룬다고 하십니까?"

 

탁발승은 게송으로 말했다.

 

활 만드는 사람은 활을 다루고

뱃사공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다루네

 

아무리 바람이 거세게 불지라도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그 뜻이 굳어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네

 

깊은 못물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듣고

그 마음 저절로 깨끗해지네.

 

젊은이는 이 게송을 듣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그는 공손히 부처님께 절하고 나서 자신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다섯 가지 계율(戒律)과 열 가지 착한 행(十善業)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과 여섯 가지 바라밀(六波羅蜜) 등을 닦는 것이오. 활을 만들고 배를 부리고 나무를 다루는 기술은 바깥 일이기 때문에 잘못 교만하게 되기 쉬운 생사의 길이지요."

 

젊은이는 이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법구비유경 明哲品>

 

 

 

스님말씀

사람이 무슨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러나 그 기능이 한낱 자랑거리로 되어버리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무슨 일이건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 일이 인격형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모든 일이 인격화될 때 그 기능은 새로운 빛을 발한다.

 

한정된 역량밖에 없는 사람이 어떻게 만능일 수 있겠는가. 또 남이 한다고 해서 적성에 맞지 않는 나까지 따라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저마다 지닌 자기의 특성을 살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삶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두고 볼 때 건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건전한 사회란 원만하게 조화된 사회를 말한다. 자기를 다룬다는 것은 자기야말로 모든 일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는 말도 바로 이런 뜻에서 나온 가르침이다.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사는 것이지 그 무엇에 삶을 당해서는 안된다. 지고한 생이 부림을 당하면서 어떤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 

 

출전 : 因緣이야기(법정스님)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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