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涅槃)이란?

열반이란 무엇인가?

근와(槿瓦) 2016. 3. 28. 00:18

열반이란 무엇인가?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겨여래)

 

 

심리학상에 남자의 경우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좋아하고 형이나 남동생보다 누이동생이나 누나를 더 좋아하는 심리를 가리켜서 <오이디퍼스 컴플랙스>라고 합니다. 바로 이 용어가 있도록 하는 모태가 된 <오이디퍼스 렉스>라는 비극을 쓴 고대 희랍의 극작가 소포크레스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아, 헛되기 짝없는 인간사여, 이 몸의 덧없음을 어이 생각지 않으리오. 환상이 아닌 행복을 얻은 이가 과연 있다는 말인가? 또한 환상이 아닌 행복을 지닌 채 죽는 이가 있단 말인가」라고 읊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 그것은 역사 이래 아직까지 풀어지지 아니한 의문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풀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인간으로 테어난 자 죽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닥치게 마련인 죽음, 이 죽음 앞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적이라고 어느 문인은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사람은 무엇인가 유언을 합니다. 죽음, 그것을 우리 불교용어로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이 열반 즉 죽음을 우리 불교성직자인 유명한 선사(禪師)들은 어떻게 맞이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불교의 열반사상(涅槃思想)을 알아보는 하나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여러 선사들의 죽음 직전의 유시(遺詩)를 중심으로 열반사상을 설명해볼까 합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불교성직자가 아닌 몇 사람의 재미있는 유언을 먼저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의 대표적 영화인이었던 분은 그 분이 연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누구나 아세아의 별이라고 칭했으며 그분의 연기는 아주 독특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제작과 연출을 하다가 실패하여 그 화려한 명성도 물거품이 되어 급기야 병이 들어 빚까지 지고 죽을 때에,

「아, 억울하다!」라는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으니「아, 억울하다!」라고 했던 진의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은「일찍 죽는 것이 억울하다」라든가, 아니면「그 어려운 고생을 겪으면서 쌓았던 지난 날의 나의 명성이 이처럼 물거품이런가」하는 안타까움에서인가는 알 길이 없지만 삶에 집착을 버리지 못한 사람의 죽음의 소리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다. 나는 그 분의 죽음에서 역사상 최초로 중원대륙을 통일한 인물이면서 죽지 않으려고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사람을 풀어 불사약을 구하게 했다는 진시황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토록 발버둥치던 그도 지방순찰 중에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당했습니다. 본부인 태생의 아들을 미워하여 국경지방의 수비대장으로 보낸 그는 후궁의 몸에서 난 아들을 사랑하여 항시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진시황의 죽음을 목격한 측근의 내시가 진시황의 죽음을 숨기고 권력에의 음모를 꾸몄습니다. 어리숙한 태자에게는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감언이설로 속이고 국경을 경비하도록 변방에 나가있던 큰태자에게는 자결하라는 진시황의 교시가 있었다고 속여 자살토록 하고, 염천에 송장 썩는 냄새가 풍기는 진시황의 가마 속에서 그 내시는 권력에 눈이 어두워 송장이 썩는 가마 속에서 진시황 대신에 때를 찾아 밥을 먹고, 그 썩는 냄새를 캄프라쥐하기 위하여 진시황의 수레-자신이 그 속에 탄-옆에 냉동시설이 안된 생선을 적재한 수레가 따르게 하였으니 살려고 발버둥치며 불사약까지 구하러 보낸 진시황은 결국 썩는 생선냄새 속에서 자신도 역시 썩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할 때, 이러한 사실을 두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은 세계적인 음악가 베토벤의 유언을 놓고 악성(樂聖)이라고 추앙받던 한 인물의 면모를 봅시다.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오는 것을 탐지한 의사가 그에게 종교적 의식을 행할 시기가 왔음을 알렸을 때 베토벤은 사제(司祭)를 불러달라고 부탁하여 사제로부터 종부성사(終傅聖事)를 받고 라틴어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벗들이여, 갈채하라. 나의 연주는 끝났다.」

 

1770년 12월. 본의 가난한 궁중의 성악가요 술주정뱅이의 아들로 태어나 맹목적으로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 음악가로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키작은 추남, 그러한 신체적 조건 때문에 가정도 이뤄보지 못한 그는 음악가로는 치명적인 귓병까지 앓게 되어 드디어 귀머거리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이쯤되자 자살의 유혹까지 받았던 그는,

 

「목동의 노래가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고 나에게는 들리지 않을 때, 나는 절망으로 자살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예술이 나를 돌이키게 하였다. 인내! 그것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하였다. 사랑하는 동생 카를, 그리고 요한아, 나의 사후에 내 이름으로 적고 있는 이 종이에 병력서(病歷書)를 붙여달라. 그러면 내가 죽은 뒤부터라도 나는 세상에서 이해될 것이다. 죽을 때가 가까워진 것 같구나. 기쁨을 가지고 죽음을 향하여 서두르자. 예술이 열릴 기회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불운일 지라도 누구나 결코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기쁨으로 죽는다. 죽음은 그지없는 고뇌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자살까지 기도했던 그는 오히려 환영(幻影)을 통하여 예술창조의 세계로 자신을 옮겨갔던 것입니다.

 

그의 귀머거리 증세는 그의 나이 28세부터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57세인 1827년 3월 28일에 죽기까지 그는 병과 싸우며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의 무덤 앞에는 우는 아내도 없고 아들도 딸도 없었지만 그러나 온세계가 그의 죽엄을 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유명한 시인은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흐르는 물 위에 자신의 이름자를 쓴 사람, 여기에 잠들다(Here lies the man, who wrote his name in the water)」

 

바로 예츠라는 시인의 묘비명이라고 합니다. 시인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 죽은 시인의 삶의 자세에 대한 자신감이 나비치는 그러한 묘비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속인(俗人)들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어느 다른 종파의 성직자는 죽음에 임박하여,

「오라, 누가 나를 이 사막의 골짜기에서 구해주리오.」하고 절규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사막의 골짜기라고 표현하는 생사관(生死觀)을 엿볼 수 있는 절규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다른 종파의 일이니 이쯤 해두기로 하고 석가모님과 직계제자 그리고 직접 우리에게 선불교(禪佛敎)를 전해준 중국의 선사와 우리나라 선사의 마지막 말을 통하여 불교의 죽음관 즉 열반관(涅槃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석가모님과 직계제자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모든 행함은 무상하며(諸行無常)

이것이 곧 낳고 멸하는 법이나(是生滅法)

낳고 멸함이 멸한 후에는(生滅滅己)

적멸이 곧 즐거움이니라(寂滅爲樂)

 

라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구시나성에서 이미 열반에 들 때임을 알아차리신 후 부처님께서는 니련하(尼連河) 곁에 있는 사라쌍수(沙羅雙樹) 밑으로 가셔서 조용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1. 아란존자

 

인도의 왕사성(王舍城)출신으로 곡반왕(斛飯王)의 아들이며 성씨는 찰제리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날에 이 세상에 태어나신 존자께서는 유난히 슬기롭고 명석하여 부처님의 여러 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알려진 부처님 10대 제자의 한 사람입니다. 그의 열반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 분 왕이시여 안녕히 계시오(二王善嚴住)

슬픔에 괴로워 하지 마시오(勿爲苦悲戀)

열반은 곧 <나>이며 청정함이니(涅槃堂我淨)

모든 유는 무이기 때문이요(而無諸有故)

 

존자께서 열반에 들려고 할 때 아사세왕(阿闍世王)과 비사리왕이 서로 마지막 공양을 올리려 할 때 이런 열반송을 읊으시고,

「내가 한 나라에서만 열반에 들면 여러나라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므로 평등한 법으로 유정을 제도하리라.」라고 말하며 항하의 중류에서 열반하셨습니다. 존자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발생할지도 모를 비극을 죽음의 순간까지도 미리 막으려는 자상함을 엿볼 수 있겠습니다.

 

 

출전 : 무심유심(서경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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