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디나의 음행(四分律 一)
부처님이 베살리에 계실 때 또 흉년이 들어 비구들은 걸식하기가 힘들었다. 칼란다카 마을 출신인 수디나는 그 고장에서도 재산이 많은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믿음이 굳었기 때문에 출가하여 수행승이 되었다. 수디나는 생각하였다.「요즘처럼 걸식하기 어려운 때에는 차라리 여러 스님들을 우리 고향집 가까이에 모시고 가서 지냈으면 어떨까. 그러면 의식(衣食)에 곤란도 없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친족들도 이 기회에 보시를 하여 복덕을 짓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비구들과 함께 칼란다카로 갔다. 수디나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여러 스님들과 함께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찾아가 만났다.
「수디나, 이제는 집에 돌아가 살자. 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집안에 남자라고는 없으니 많은 재산이 나라에 몰수될 형편이다. 네가 이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 어찌 되겠느냐?」
그러나 수디나는 청정한 생활을 즐기고 도 닦을 뜻이 굳어 그런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몇 번이고 간청하다가 헛수고인 줄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 어머니는 며느리를 곱게 꾸며 수디나에게 데리고 와서 애원했다.
「네가 정 그렇다면 자식이나 하나 두어 너의 대를 끊이지 않게 해다오.」
「그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하고 수디나는 승락하였다.
이때는 계율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수디나로서는 그 일이 별로 허물되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의 팔을 끼고 숲속으로 들어가 음행을 하였다. 그 후 부인은 아홉 달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아이는 얼굴이 매우 단정하였다. 이름을 종자(種子)라 했다. 자란 뒤 그도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 신통이 자재하고 위력이 한량없어 그를 종자존자(種子尊者)라 불렀다.
한편 수디나는 부정한 짓을 행한 뒤부터는 항상 마음이 언짢아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함께 수행하던 벗들은 수디나의 우울해 하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수디나, 스님은 오랫동안 청정한 수행을 쌓아 위의와 예절을 모르는 것이 없는데 요즘은 어째서 그렇게 우울해 하십니까?」
「얼마 전에 예전의 아내와 관계가 있었던 그 뒤부터는 마음이 불안하고 우울합니다.」
이때 비구들은 이 사실을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이 일로 해서 비구들을 모아 놓고 수디나를 불러 사실을 확인하려 하셨다.
「수디나, 들리는 말과 같이 너는 정말 그런 짓을 했느냐?」
「그렇습니다, 부처님. 저는 부정한 짓을 범했습니다.」
부처님은 여러 가지로 꾸짖으셨다.
「네가 한 일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위의가 아니며 사문의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청정한 행동이 아니며 수순(隨順)하는 행도 아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수디나, 청정한 법을 수행하여 애욕을 끊고 번뇌를 없애야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을 어찌하여 잊어버렸는가?」
부처님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차라리 남근(男根)을 독사의 아가리에 넣을지언정 여자의 몸에는 대지 말라. 이와 같은 인연은 악도에 떨어져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욕은 착한 법을 태워버리는 불꽃과 같아서 모든 공덕을 없애버린다. 애욕은 얽어 묶는 밧줄과 같고 시퍼런 칼날을 밟는 것과 같다. 애욕은 험한 가시덤불에 들어가는 것 같고, 성난 독사를 건드리는 것 같으며, 더러운 시궁창과 같은 것이다. 모든 부처님들은 애욕을 떠나 도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수디나가 어리석어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이제부터는 계율을 제정하여 지키게 해야겠다. 여기에는 열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교단의 질서를 잡기 위해서요,
둘째는, 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요,
세째는, 대중을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요,
네째는, 믿음이 없는 이를 믿게 하기 위해서요,
다섯째는, 이미 믿은 이를 더 굳세게 하기 위해서요,
여섯째는, 다루기 어려운 이를 잘 다루기 위해서요,
일곱째는, 부끄러운 줄 알고 뉘우치는 이를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요,
여덟째는, 현재의 실수를 없애기 위해서요,
아홉째는, 미래의 실수를 막기 위해서요,
열째는, 바른 법을 오래 가게 하기 위해서다.
계를 말하려는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하라. 어떤 비구가 부정한 행을 범하고 음행을 범하면 그는 파라지카(根本罪)이다. 함께 살지 못한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 프라티목샤(戒本)의 첫째 조문을 제정하고 널리 알렸다. 이것은 교단이 생긴 지 다섯 해만의 일이다. 이때부터 때와 곳을 따라 비구들의 잘못을 보실 때마다 널리 가려 내어 말씀하셨다. 그래서 비구는 이백 오십계, 비구니는 삼백 사십 팔계가 마련되었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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