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 念하는 法
사람은 지혜가 있고 거부장자(財閥)일수록 마음이 약해서 인간 이상의 절대적인 힘을 가진자로부터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심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하니 가이 가소로운 일이 아닌 수 없다. 이는 많은 자신의 재산과 건강과 안녕을 기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많이 가진 자의 약한 마음 때문이리라. 그런가 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생활 그 자체의 어려운 타격으로 그날그날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많이 있는 사람은 많이 있는것 만큼 없는 사람은 없는만큼 자신의 욕구 내지는 소원을 성취코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우리는 오늘도 사찰마다 많은 신도님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면 그들이 찾아오는 목적(所願)을 과연 얼마만큼이나 성취하였을까를 생각해 보지 아니 할수가 없다. 그중에는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행이 그 정성이 간절하여 聖賢의 加被를 입고 소원을 성취하는가 하면 기대 이상의 것을 얻는 일도 우리는 보아 왔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하여 성취하였을까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간절하게 물어보고 싶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 무진의보살이 부처님께 묻기를 부처님, 관세음보살이 어떠한 인연으로 관세음보살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착한 남자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또한 어려운 고통중에 있을 때 관세음보살하고 그 이름을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기만 하면 관세음보살님이 즉시에 그 부르는 음성을 듣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신다고 하시었다.
과연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도 좋을까 아니 과연 믿어서 어려움이 해결되고 소원이 성취가 될까! 이 대답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나 소원이 있을때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불러서 그 뜻을 성취하여 보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분명 이루어 진다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현의 말씀대로 진실한 나머지 나의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관세음보살을 念하는 그 마음이 관세음보살께 이르지 못할까를 염려하지, 관세음보살님이 나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지 아니할까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신의 願을 성취하기 위해 관세음보살님을 부른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결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더욱 관세음보살님의 敎의 體는 音聲이기에 간절한 음성을 듣기만 하면 곧 그 뜻에 따라 성취시켜 주신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님의 이름만 부르기만 하면 어떠한 소원도 성취시켜 주신다는 것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 인간 욕구의 강력한 의지일 것이다.
혹자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하면 어떠한 것이라도 이루어 진다면 아무일도 할 필요가 없이 관세음보살님만 부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語不成說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려면 적어도 감나무 밑에다 삿갓이라도 거꾸로 걸고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지 감이 떨어지든 잎이 떨어지든 하지, 방안에다 삿갓을 걸어두고 만년(萬年)을 불러도 감잎하나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오로지 입만으로 부르라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이루고 싶은 일, 해결하고자 하는 일들을 보다 적극적이고 간절한 자세로 임하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그대로 行住坐臥 語默動靜이다. 일을 할 때 쉴 때 앉을 때 누웠을 때 이야기할 때 고요히 침묵할 때 고통중에 있을 때 시간적으로 지금이고 공간적으로는 여기서이다. 그러니까 二十四時間 불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 관세음보살님께만 몰두하고 있는데 다른 일은 언제하고 하고 싶은 일은 언제 할 것인가를 반문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손으로 일을 하고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고 주부는 밥을 지으면서 마음속으로 관세음을, 이야기할 때는 지금 내가 어떤 생각으로 대화를 하는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는지, 아니면 부족하게 생각한 나머지 싫증을 내고 있는지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이 감시감독(廻光延照)내지 返聞聞聲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바른 자세임을 강조하고 싶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잠들기까지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고 관세음을 부를 때 노는 입에 염불이란 옛말처럼 간절한 생각이 생활화 되기만 하면 이는(一心稱名) 어떠한 일이고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만일 주부가 신경질을 내면서 아침밥을 지었다면 그 밥을 먹는 온가족은 그야말로 소화불량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이는 실패할 것이요, 간절하면 성공할 것이다. 매사에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그 뜻이 있다고 하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신념과 자신이 있는지, 소홀히 하고 있지 않는지, 혹 실패를 하지 아니할까를 염려하고 있지 않는지 자신의 일을 관하는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을 念하는 것이고 일에 바른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꼭 소리를 내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念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될때 우리는 어떠한 일이고 성공할 것이다. 또한 대인관계에서 나는 상대방을 미워하고 있지 않는가? 남을 욕되게 하기 위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가? 관세음보살을 마음으로 진실되게 부를때 우리는 가족이나 이웃이나 사회가 화목할 것이고 화평할 것이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불려졌는데 바꾸어 말하면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남에게 베푸는 것을 가르키고 있다. 내 자신이 어려운 차제에 남에게 베풀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나는 남에게 줄것이 너무도 많음을 알아야 한다. 따뜻한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남을 기쁘게하는 마음, 칭찬하는 마음, 하심(겸양)하는 마음, 우리가 주어야 하고 바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고 따뜻한 마음일 것이다. 여기야말로 만가지가 조화(造化)를 이루어 어떤 것이고 생성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하고자 해도 우리 사람은 오랜 자신의 타성(惰性)業識 때문에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이다.
또한 관세음보살님만을 항상 부르기만 하면 아무리 큰 불구덩이에 떨어질지라도 불이 능히 태우지를 못한다고 하셨다. 이는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리라. 왜 불이 나를 태우지 못할까? 우리는 최초로 어머니 태중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불에 타는 것만을 보아 왔고 많은 사람이 화재에 희생되는 것을 보아와서 이는 今生業으로 생성이 되었기에 큰 불을 당하면 곧 포기하고 좌절하기 때문에 불에 타 죽고 말 것이다.
프로이드는 관념형성이 되는 중요한 시기를 三세~七세로 보아 왔다. 물론 우리 부처님께서는 始敎 아니 더 소급하면 前生宿業을 밝혀야겠지만 여기서는 금생업만 거론하기로 하겠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익혀진 습관, 因果經에서 말씀하신 假使百千劫所作業은 不亡 因緣會遇時果報還自受(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날지라도 내가 한번 했던 바는 없어지지 아니하고 같은 인연을 만나면 반드시 지난날과 같은 과보를 되풀이한다는 말이다.)하나니라.
이미 부처님께서는 이 條件反射에 대한 말씀을 삼천년전에 말씀하시고 금생업의 형성과정을 일러 놓았다. 불에 의한 재해의 타성(惰性)때문에 곧 좌절하고 타서 죽을 것이냐 관세음보살을 평소 불러온 공덕으로 새로운 업 새로운 관념이 생겼으므로 나를 태우지 못한다는 신념이 있기에 능히 헤어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타서 죽은 타성을 벗어나 타지 아니하는 새로운 업을 관세음보살님 공덕으로 형성된 때문이다.
다음은 물에 빠져도 관세음보살님을 부를것 같으면 곧 얕은 곳으로 올라올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물에 빠져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런 것이다. 그야말로 망망한 바다와 하늘만이 맛닿는 곳에서 일엽편주가 뒤집혀서 물에 빠졌다고 하면 인간은 필사적으로 실오라기 하나라도 붙들기 위해 발악할 것이다. 생각을 바꾸어 망망한 대해중에서 물에 빠진 그대로 관세음을 부를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이는 필연코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이 미칠것이다. 평소에 항상 불러서 오랜 단련이 되지 아니한 이상 이런 경우에 태연히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물에 빠지기만 하면 죽는다는 불문율 때문에 발버둥 칠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기만 하면 물에 빠져도 산다는 대목을 깊이 믿을 때 필연코 당황하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난 과거에 형성된 업을 바꾼 셈이 된다. 우리는 긍정적인 업보다는 부정적인 업이 더욱 많고 부정업을 긍정업으로 바꾸는 과정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인줄 알아야 한다. 이래서 금생업이 형성되는 10세 미만의 어린 시절을 잘 보살펴 주시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비록 내가 낳은 아이 일지라도 아이들의 의견(人格)을 존중하고 애정을 베풀 때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견해와 확고한 신념을 길러주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될때 우리 불자의 가문은 부처님법을 구심으로 행복과 환희의 가정이 될 것이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고(四苦)와 팔고(八苦) (0) | 2014.09.21 |
---|---|
관세음보살 십대원(十大願) (0) | 2014.01.05 |
관세음보살 보문품(普門品) (0) | 2014.01.02 |
관세음(觀世音) (0) | 2014.01.01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0) | 2013.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