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원효(聖典)-宗旨

근와(槿瓦) 2016. 1. 16. 00:52

원효(聖典)-宗旨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大乘佛敎思想의 具現體이며
    民族精神文化의 創造者이신
    元曉聖師의 大道를 받들어
(2) 三界唯心의 根本眞理를 사무쳐 깨닫고
(3) 萬法寂滅의 金剛三昧에 굳건히 머물러
(4) 一道解脫의 菩薩行願을 힘차게 닦아서
(5) 萬善同歸의 地上佛國을 건설하려 한다.

 

종지의 해설
1. 대승불교사상의 구현체이며 민족정신문화의 창조자이신 元曉聖師의 大道를 받들어-----.

종조되시는 원효성사께서는 대승불교 근본 사상을 남김없이 체득하시어 이론적으로는 불교의 광대 ∙ 오묘한 진리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시고 여러 가지 교파 ∙ 종파의 시비 ∙ 쟁론을 결론지어 원융한 한 맛(圓融一味)의 바다로 돌려보내고 실천상으로는 대승불교의 근본 정신인「보살도」의「보현행원(普賢行願)」을 힘차게 밟아 가시었다. 그러므로「대승불교사상의 구현체」라고 한 것이다.

 

「민족정신문화의 창조자」라고 함은 우리 국토에 불교가 유통되기 전에는 아직 원시적인 저속한 무속신앙(巫俗信仰)의 정신계를 지배할 뿐 문화민족으로서의 체모를 갖추지 못했었다. 그리고 성사(聖師)가 출현하시기 약 백년전부터 불교를 신봉해왔지만 아직 저속한「구복신앙(求福信仰)」과「호국사상(護國思想)」으로 명맥을 이어왔고 불교인은 어떤 일부 교파의 경전을 연구하고 신행하여 왔을뿐 불교의 근본사상은 천명하지 못했다.

 

이때에 성사가 출현하시어 불교의 근본사상을 사무쳐 통달하시고 서역 ∙ 중국에서 아직 상상할 수 없는「통불교(通佛敎)」를 건립하여「대승보살행원」으로 귀결시킴으로써 우리 겨레의 최고정신문화의 지도원리를 세워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민족정신 문화의 창조자」라고 한 것이다.

 

2. 삼계유심의 근본진리를 사무쳐 깨닫고.--------
성사께서 위대한 불교론사(論師)와 보살행자가 되신 근본은 처음 중국으로 유학가시던 도중에 고통(古塚)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三界唯心」의 진리를 사무쳐 깨달음에서, 우주 ∙ 인생의 본 바탕을 남김없이 꿰뚫으시고, 그 깨침에서 걸림없는 지혜와 변재를 얻으시고「보살의 대승행원」을 발기하게 되었으므로, 본존 종도는 모름지기 성사께서 깨치신 삼계유심의 진리를 깨쳐야 비로소 참다운 종도가 될 것이다.

 

3. 만법적멸의 금강삼매에 굳건히 머물러
금강삼매는 온갖 번뇌 ∙ 업장 ∙ 사견(邪見)과 마군을 쳐 부술뿐 아니라 온갖 법과 불법이란 견해까지 남김없이 쳐부수는 가장 굳고 날카로운 삼매로서 일체의 삼매를 꿰뚫는 모든 삼매 가운데 최대의 위력을 지닌 삼매이다. 이러한 삼매의 내용과 체득하는 법을 자세히 밝혀 놓은 경이 「금강삼매경」이다.

 

이 경은 그때에 중국에서도 아직 유행되지 않았는데, 기특한 인연으로 성사께서 이 경을 처음 받아 국왕의 청으로 강론하시고 해석해 논(論)을 지으신 것이 오늘에 전하는「금강삼매경론」이다.

 

이 경은 온갖 대승경의 진리를 다 포섭하였으므로「섭대승경(攝大乘經)」이라 하고 또는「무량의종(無量義宗)」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성사는 이 경을 모든 대승 경전의 지귀(指歸)로서 가장 소중히 다루시었으며, 그 지으신 경 ∙ 소(疏)는 중국에 들어가 유통되어「역경삼장」은 논(論)이라 존칭했다.

 

그런데 이 경논에서는 금강삼매를 체득하는 법으로써 일체법은 식심(識心)분별의 망상의 인연으로 나(我)와 경계의 대립이 있게 되었으나, 식(識)은 본래 공적(空寂)하고 만법은 본래 적멸한 모습(寂滅相)이니, 이 식(識)은 항상 적멸하고 적멸 그 자체도 적멸하다. 온갖 분별(名 ∙ 相 ∙ 分別)이 적멸한 자리를 얻고 보면 그것은 최상의 깨달음이다 라는 법문을 널리 밝혔다.

 

[備考] 如來藏品第七偈云

「法從分別生 ∙ 還從分別滅 ∙ 滅諸分別法 ∙ 是法非生滅 . 諸法本寂滅 ∙ 寂滅亦不生 ∙ 是諸生滅法 ∙ 是法非無生. 此卽離於二(生滅) ∙ 亦不在住一 ∙ 若說法有一 ∙ 是相如毛輪.」또는 「知法寂滅者 ∙ 心常寂滅 ∙ 得寂滅者 ∙ 心常眞觀 ∙ 知諸名色 ∙ 唯是痴心 ∙ 痴心分別 ∙ 分別諸法 ∙ 知法如是 ∙ 不隨文語 ∙ 心心於我 ∙ 不分別我 ∙ 知我假名 ∙ 卽得寂滅 ∙ 若得寂滅 ∙ 卽得阿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

 

이와 같이 온갖 법이 본래 적멸하건만 식심의 분별로 차별 경계를 나타내고 그 분별로 인하여 온갖 소견 ∙ 번뇌 ∙ 업장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 경에서는 첫째 무상관(無相觀)으로 일체법 자성의 본래 공적한 이치를 관하게 하였다. 그리고 법과 나(我)가 있다고 집착하는 이에게는 먼저 십이인연관을 닦게 하며, 마음에 나고 사라짐이 있는 이에게는 본래 나고 사라짐이 없는 이치를 관하게 하였다.

 

이렇게 온갖 상(相)이 없고 남이 없는 진리의 바탕으로 사무쳐 들어가「본래 깨달음」을 증득하게 하였다.
그 경의 입실제품(入實際品)에는 三有도 空이요 六道의 그림자도 空이며 법상(法相)도 명상(名相)도 공이며, 심식(心識)도 공이라는---이러한 다섯가지의 공한 이치를 관하고, 다시 공한 모습도 공하고(空相亦空) 그 공의 모습이 공했다는 것도 공하고(空空亦空), 공한 모습이 공했다는 생각도 또한 공(所空亦空)한 三空에 들어간다. 이렇게 세가지 공에 머물지 않으면 진실 아님이 없이 문자와 말이 끊어진 불가사의한 경계이다.

 

이렇게 진여의 본바닥에 들어가면 三界가 딴 경계가 아니다. 한 마음 청정하면온갖 경계가 본래 난(生)것이 없다. 마음이 경계를 낸 것도 아니요 경계가 마음를 낸 것도 아니다. 경계를 보는 것은 제 마음을 보는 것이니 마음에 환화(幻化)가 없으면 곧 보는 것이 없다 라고 하였다. 이곳에 불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둘이 아닌 금강심지(金剛心地)에 굳게 머물러, 고요히「함이 없는 것」을「이치로 들어감(理入=行入에 대한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자성이 본래 적멸하고 모든 법이 일여(一如)한 참 모습에 들어가면 그것을 온갖 법의 참모습을 여실히 보는 여래선(如來禪)이라 한다.(후세에 소위 조사선(祖師禪)이란 상대칭이 아님)
이 만법이 일여한 여래선의 선정으로 세가지 해탈을 얻게 되니「허공해탈 ∙ 금강해탈 ∙ 반야해탈」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만법적멸의 금강삼매」이다.

 

4. 一道解脫의 大乘行願을 힘차게 닦아서-------
일도해탈은「한길로 벗어난다」는 뜻인데, 성사는 일찍이「일체에 걸림없는 사람이 한길로 생사에 벗어난다(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라는 화엄경 게송의 뜻을 빌려 무애의 노래와 무애의 춤(無㝵歌 ∙ 舞)으로 일도해탈의 길을 밟아 나가셨다.

 

일도해탈은 어떤 것인가, 금강삼매경의 종지를 밝히시면서「한마음 속의 한 생각이 움직일 때 하나의 참된 이치(一實)에 따라 일행(一行)을 닦아 일승(一乘)에 들어가 일도에 머물러 일각(一覺)으로써 한 맛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그것이 一道의 요지이리라. 그리고 그 경 第五 「입실제품」에「셋을 두고 하나를 지키라(存三守一)」고 한 바「셋을 둔다」함은 위에서 말한「세가지 해탈」이 그것이요「하나를 지킨다」함은「한 마음의 참 모습을 지키어 만법이 일여한 여래선에 들어간 이는 언제나 일심과 만법이 둘이 아닌「여여」한 모습을 알아서 안 마음과 바깥 사물이 둘이 아니요 나고 드는 것이 둘이 아니면서 하나라는 모습에도 머물지 않으면 마음에 얻고 잃은 것이 없다.

 

이러한 사람은 두가지 모양에 머물지 않으므로 비록 집을 나서지 않았어도 세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며 비록 법복(法服)을 입지 않고 구족계를 지니지 않고 계를 설하는 법회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능히 마음에 함이 없는 자재로운 성과(聖果)를 얻으며, 二乘에 머물지 않고「보살도」에 들어가서 장차「불보리」를 성취하리니, 이런 사람은 비록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출가 아니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열반」의 집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보리좌」에 앉았나니 이 사람은 마음으로 이승을 뛰어났거니 사문(沙門)도 마땅히 공경해야 하느니라.」한 대문을 성사는 해설하시기를,

 

「세가지 해탈문」으로 삼계가 공한데 들어갔으므로「열반」의 집이라고 하였으니 마음 편히 깃들 곳이기 때문이며, 삼계의 공한 데 들어갔지만 그곳에「열반」을 취하지 않고, 삼계를 교화하려고 세속에 들어가지만 세속에 물들거나 걸리지 않나니 그것은 도의 작용이다. 중생을 교화할 때 욕됨을 참는 옷을 입고 지침이 없으며 도리어 법 공한 자리에 들어가 일심의 참모습을 지키나니 법화경에「부드럽고 화한 인욕의 옷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도 ∙ 속(道俗)의 복밭이 된다」고 하였다.

 

요는 일도해탈은 세가지 해탈로 삼계가 본래 공하고 만법이 적멸한 일여의 참모습을 사무쳐 보고 그곳에 늘 머물면서도 그「삼매」의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중생 세계에 들어가 대비행원을 힘차게 닦는 보살도를 가리킴이다. 그것을 이 경에서는「본각이행(本覺利行)」이라고 하였다.「본래 깨달음」에서 다함 없는 대비원력으로 중생에게 이익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備考]
本覺利品云「汝本不從來 ∙ 今亦不至所 ∙ 汝得本利(本覺利行) ∙不可思議 ∙ 是大菩薩摩訶薩」而說偈言「大哉菩薩 ∙ 智慧滿足 ∙ 常以本利 ∙ 利益衆生 ∙ 於四威儀 ∙ 常住本利 ∙ 導諸群庶 ∙ 不去不來」入實際品偈云 ∙「具足般若海 ∙ 不住涅槃城 ∙ 如彼妙蓮華 ∙ 高原非所出 ∙ 諸佛無量劫 ∙ 不捨諸煩惱 ∙ 度世然後得 ∙ 如泥華所出 ∙ 如彼六行地 ∙ 菩薩之所修 ∙ 如彼三空聚 ∙ 菩提之直道 ∙ 我今住不住 ∙ 如佛之所說 ∙ 來所還復來 ∙ 具足然後出 ∙ 復令諸衆生 ∙ 如我一無二 ∙ 前來後來者 ∙ 悉令登正覺」

 

이런 것이 모두「본래 깨달음」을 여의지 않고 보살만행을 닦는 본각이행(本覺利行)으로서 「일도해탈의 보살행원」인 것이다.

 

5. 萬善同歸의 地上佛國을 건설하려 한다.
만선동귀란 말은 온갖 착한 짓 곧 작으나 크나의 모든 착한 짓을 한데 묶어 하나의 목적지에 돌아간다는 뜻이다.[(만선동귀)란 말은 송대(宋代)의 영명연수선사(永明延壽禪師)가 정토사상을 고취한「만선동귀집」에 연유함]

 

그런데 종조 원효성사는 마침내 우리 인간으로서 작으나 크나의 모든 착한 씨앗을 마음 밭에 심어 그 인연으로 다 같이 영원한 이상세계인 불국토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일생동안「대 ∙ 소승 경전」을 풀이하고 강론한 것을 비롯하여「무애」의 노래와 춤으로 천촌만락을 돌면서「나무불 ∙ 나무법 ∙ 나무승」을 부르고 또는「아미타불」의 명호를 외운 것도 그것을 위하여서이며 특히「무량수경 ∙ 아미타경」의 소(疏) ∙ 종요(宗要) ∙ 통찬(通贊)과「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등을 지어서,「아미타불」의 극락세계를 동경하고 그곳에 태어나기를 발원케 한 것은 온 인류로 하여금 나쁜 마음을 버리고 선의 씨앗을 심어서, 불법에 인연을 맺음으로써 마침내 영원한 이상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성사의 경지에서는 정토와 예토(穢土)가 둘이 아니요 이 세계와 저 세계의 멀고 가까움의 차별이 없건만, 끝없는 고해에 헤매는 중생을 건져내기 위하여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신앙대상으로서「아미타불」이나「관세음보살 ∙ 보현보살」과 같은「대비원력(大悲願力)」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유심안락도」에는 극락세계 구품 왕생(往生)의 인연을 풀이하였으니「관무량수경」을 이끌어 다음과 같은 요지를 밝혔다.
「오탁악세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태어나는데 一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이지 않고 계행을 갖추며 二 대승경전을 읽어 외우며 三 부지런히 염불하고 발원하여 저 나라에 나기를 원할지니, 그 공덕을 갖추면 그는 이 세상에서 숨진 뒤에 저 세계의 상상품(上上品)에 태어난다는 것을 비롯하여, 대승경전을 읽어 외우고 인과를 믿으며 보리심을 발하여 왕생을 발원하면 저 세계의 상지중이나 상지하품에 태어나고 오계 ∙ 팔재계 ∙ 구족계를 지니며 왕생을 발원하거나 부모에 효순하며 인자한 덕을 닦고 왕생을 발원하면 저 세계의 중지상 ∙ 중지중 ∙ 중지하품에 태어나며, 여러 가지 악업을 지었더라도 숨질 무렵에 선지식을 만나 십이부경의 제목을 외우고 찬탄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미타불의 위력과 공덕을 믿고 염불하고 참회 ∙ 발원하면 하지상 ∙ 중품에 나게 되며, 오계 ∙ 팔재계 ∙ 구족계를 다 범하고 온갖 나쁜 짓을 했더라도 숨질 적에 선지식이 아미타불의 위신력을 말하여 참회하고 아미타불의 명호를 듣고 발원하면 하지하품에 나게 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극악 중생에게도 부처 될 씨앗이 있으니 숨질 무렵이라도 한 생각 돌리어 참회하고 발원하면 다 부처님 나라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 중생을 무슨 방편으로서나 다 건져내야만 될 보현의 행원이기에 끝없는 대비 바다에 행원의 파도가 용솟음칠 뿐이니, 이 땅 위에 꼭 이룩되어야 할 이상 세계건만 이 몸으로 다 이룩하지 못할 숙명의 비원(悲願)을 아미타불의 원력에 호소함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이상세계가 십만억 국토 밖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만선동귀로 지상불국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출전 : 聖典(大韓佛敎元曉宗)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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