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경대강좌(8)-중생은 죽기 싫어한다

근와(槿瓦) 2015. 12. 31. 01:03

금강경대강좌(8)-중생은 죽기 싫어한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設義]

중생은 죽기 싫어한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뭐냐고 물으면 누구나 다 서슴치 않고 생명이라고 대답합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 우주를 다 준다 해도 자기 생명과는 바꿔 주지 않을 것은 물론이며 생명은 손톱만큼도 안 떼어 줍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 이 생명이지만 그러면 그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옵니다. 요새 무슨 가치, 가치(價値)하고 떠들지만 우리의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사람의 참다운 가치를 논합니까. 속담에「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하지만 만일 먹으면 죽인다고 총을 갖다 대면 아무리 먹고 싶은 진수성찬이 있어도 먹을 마음을 내지 못합니다.

 

먹는 것은 오직 살기 위한 수단입니다. 농사를 하든가 장사를 하든가 정치를, 철학을, 과학을 하는 것은 다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아무리 농사를 짓기 싫다 하더라도 부득이 농사를 지어야 하겠고, 부득이 장사를 해야겠고, 부득이 정치인이 되고 경제인이 되고 하는 것은 삶의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산다는 말은「누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살려고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으로 살아야 만족한 것입니다.

 

현대인은「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내가 무어냐.」제일 중요한 이 두 가지를 확실히 모르고 삽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셈입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좋지만「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이 생명을 어떻게 어디에 바쳐야 할 것인가」가 있어야 하고 확실히 내가 있는데 나는 무엇인가. 이것이 제일 큰 선결문제(先決問題)입니다. 다른 것은 다 아나마나입니다. 알아 보았자 별수 없고 철학박사 돼 보았자 별수 없습니다. 먹고 똥싸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똑같습니다. 착하다고 더 나은 것도 아니고 악하다고 더 못한 것도 아니고 미련하다고 더 못한 것도 아니고 먹고 똥싸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기는 똑같습니다. 그걸 누가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도록 되었을 따름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전(經典)입니다. 석가여래(釋迦如來)는 四九년 동안을 꼭 이 문제를 다루었고 글자 한 자도 딴 목적을 가르쳐 보이신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철학이니 과학이니 뭐니 해 보아도 깊은 내용을 파 보면 속이 비어 있습니다. 아무 내용도 없는 걸 껍데기로 싸 가지고 있는 것이 보자기로 똥싸 놓은 것과 같습니다. 파초(芭蕉)대를 까보면 꼭 그 안에 기둥이 있을 것 같은데 껍데기뿐이지 알맹이도 기둥도 없습니다. 모든 학문은 그 근원(根源)을 캐고 보면 파초 껍데기 까 놓은 거나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부처님에게서와 같이「무엇 때문에 사느냐. 누가 사느냐.」하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팔만대장경 어느 한 글자도 이 문제를 떠나서 이야기된 글자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노인이나 어린애들이나 모두 제 잘난 멋에 삽니다. 만약에 내가 못생겼다고 확실하게 확정만 되면 너도 나도 자살하는 사람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데 가서라도 제 혼자서만 저 잘난 멋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네가 무엇인데 그렇게 잘났단 말이냐.」하고 물으면 얼른 대답 못합니다.

 

 

출전 : 금강경대강좌(청담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