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타(奢摩他)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사마타(奢摩他)는 능히 없앤다 이름 하나니 온갖 번뇌를 없애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조복한다 이름하나니 모든 근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조복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고요하다 이름하나니 三업을 고요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멀리 여읜다 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다섯가지 욕락을 멀리 여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맑힌다 이름하나니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의 흐린 법을 맑히는 연고니라. 이런 뜻으로 선정의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비바사나(毘婆舍那)는 바르게 본다(正見) 이름하며, 또 분명히 본다(了見) 이름하며, 또 능히 본다(能見) 이름하며, 두루 본다(遍見), 차례로 본다(次第見), 딴 모양으로 본다(別相見) 이름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우필차(憂畢叉)는 평등이라 이름하며, 다투지 않는다(不諍) 이름하며, 관찰하지 않는다(不觀) 이름하며, 행하지 않는다(不行) 이름하나니 이것을 사(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마타는 두가지가 있으니 세간과 출세간이요, 또 두가지가 있으니 성취와 성취하지 못함이니라. 성취는 부처님과 보살이요, 성취하지 못함은 성문과 벽지불 등이니라.
또 세가지가 있으니 하와 중과 상이니라. 하는 범부들이요, 중은 성문과 연각이요, 상은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네가지가 있으니 물러가는 것과 머무는 것과 나아가는 것과 크게 이익하는 것이니라.
또 다섯가지가 있으니 五지(智)삼매라.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먹지 않는(無食) 삼매요, 둘은 허물없는 삼매요, 셋은 몸과 뜻이 청정한 일심(一心) 삼매요, 넷은 인과 과가 모두 즐거운(因果俱樂) 삼매요, 다섯은 항상 생각하는(常念) 삼매니라.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백골을 관하는(觀骨) 삼매요, 둘은 인자한(慈) 삼매요, 셋은 십이인연을 관하는 삼매요, 넷은 아나파나(數息觀) 삼매요, 다섯은 염각관(念覺觀) 삼매요, 여섯은 생멸을 관하는(觀生滅) 삼매니라.
또 일곱가지가 있으니, 곧 七각분(覺分)이니라. 하나는 염각분(念覺分)이요, 둘은 택법(擇法)각분이요, 셋은 정진(精進)각분이요, 넷은 희(喜)각분이요, 다섯은 제(除)각분이요, 여섯은 정(定)각분이요, 일곱은 사(捨)각분이니라.
다시 일곱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다원 삼매요, 둘은 사다함 삼매요, 셋은 아나함 삼매요, 넷은 아라한 삼매요, 다섯은 벽지불 삼매요, 여섯은 보살 삼매요, 일곱은 여래각지(覺知) 삼매니라.
또 여덟가지가 있으니, 곧 八해탈 삼매라. 하나는 안에는 빛 모양이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 해탈하는(內有色相外 觀色解脫) 삼매요, 둘은 안에는 빛모양이 없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內無色相 外觀色) 해탈하는 삼매요, 셋은 깨끗하게 해탈하여 몸으로 증하는(淨解脫身證) 삼매요, 넷은 공처(空處) 해탈 삼매요, 다섯은 식처(識處) 해탈 삼매요, 여섯은 무소유처(無所有處) 해탈 삼매요, 일곱은 비유상비무상처(非有相非無相處) 해탈 삼매요, 여덟은 멸진정(滅盡定) 해탈 삼매니라.
또 아홉가지가 있으니, 곧 九차제정(次第定)이니라. 四선(禪)과 四공(空)과 멸진정 삼매니라.
또 열가지가 있으니 십일체처 삼매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지 일체처(地一體處) 삼매요, 둘은 수(水) 일체처 삼매요, 셋은 풍(風) 일체처 삼매요, 넷은 청(靑) 일체처 삼매요, 다섯은 황(黃) 일체처 삼매요, 여섯은 적(赤) 일체처 삼매요, 일곱은 백(白) 일체처 삼매요, 여덟은 공(空) 일체처 삼매요, 아홉은 식(識) 일체처 삼매요, 열은 무소유(無所有) 일체처 삼매니라. 또 수없는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삼매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에 두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이요, 둘은 출세간이니라. 또 세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반야요, 둘은 비파사나요, 셋은 사나니라. 반야는 온갖 중생이라 이름 하고, 비파사나는 온갖 성인이요, 사나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반야는 별상(別相)이라 하고, 비파사나는 총상(總相)이라 하고, 사나는 파상(破相)이라 하느니라. 또 네가지가 있으니, 四진제(眞諦)를 관찰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가지 일을 위하여서 사마타를 닦나니, 무엇이 세가지인가. 하나는 방일하지 않기 위함이요, 둘은 큰 지혜를 장엄하기 위함이요, 셋은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니라. 또 세가지 일을 위하여 비파사나를 닦나니, 무엇이 세가지인가. 하나는 나고 죽는 나쁜 과보를 관찰하려 함이요, 둘은 모든 선근을 증장하려 함이요, 셋은 모든 번뇌를 깨뜨리려 함이니라.」
참고
사마타 : 止·止息·寂靜·能滅이라 번역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妄念을 쉬고,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는 것.
止 : 사마타라 음역. 觀(毘婆舍那)과 幷記하여 止觀이라 한다. 모든 想念을 멈추고 慮를 끊어서 마음이 寂靜된 상태. 천태종에서는 이 止를 空·假·中의 三觀에 배당하여 三止로 분류한다.
비파사나 : 毘鉢舍那라고도 함. 能見·正見·觀察·觀이라 번역. 자세히 관찰하여 잘못됨이 없게 하는 것.
觀 : 毘婆舍那·毘鉢舍那로 음역하며, 觀察이라고도 한다. 또, 지혜로 객관의 對境을 照見한다는 뜻인데, 觀念과 同義로 쓰일 때도 있다. 천태종에서 말하는 觀은 一念三千 一心三觀처럼 자기의 心의 本性을 觀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觀心이라고 한다. 觀은 悟境에 통하는 道이므로 법상종·화엄종에서는 이것을 觀道라고 한다. 觀의 對境을 觀境, 觀하는 지혜를 觀智, 觀하는 방법을 觀門· 觀法이라 한다.
또 觀은 止에 상대되는 말이다. 그러나 중도관 등의 觀은 止와 觀이 잘 조화된 상태의 의미와 부합한다. 또 觀에는 禪定의 의미도 있으므로 선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出觀·出定이라고 한다.
우필차 : 受를 三受·五受로 나누는데 그중에서 捨受·不苦不樂受·不苦不樂覺으로 苦도 아니고 樂도 아닌 無關心的인 印象감각을 일컫는다. 또 천태종에서는 空과 有의 양쪽에 치우치지 아니한 中道觀의 명칭이다.
출전 : 대반열반경 二十八卷二三(사자후보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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