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傳心法要)

의심을 떠나지 말라

근와(槿瓦) 2015. 11. 26. 19:10

의심을 떠나지 말라(전심법요)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선지식(善知識), 스님네들이 화두(話頭)의 참뜻을 몰라 그 의심이 마음 가운데 꽉 맺혀서 자나깨나 그 의심을 놓을 수가 없게 되면 이것은 참으로 생사를 해탈하고자 하는 진실한 발심인(發心人)으로서의 참으로 알고자 하는 의심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얼마 동안은 의심이 잘 나가다가 가끔 의심이 없어지곤 하는 수가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신심과 결단심과 성심이 부족한 탓이다.

 

그것은 번뇌망상에 끌리고 잠에 속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공부는 이것을 주작화두(做作話頭)의 공부라고 하여 참선이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한층 더 마음을 가다듬으며 몸을 다시 한번 더 단정하게 도사리고 앉아서 온전하고 똑똑한 정신으로 화두를 잡두리해야만 한다. 만약 잠 마군이가 와서 덮치고자 하거든 빨리 그 즉시로 자기가 잠에 쏠려 들어가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잠이 오기 시작하면 벌써 눈가죽이 무겁고 뻣뻣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때에 얼른 다시 정신을 챙겨서 몸을 다시 단정히 앉고 입속말로 조용하게 화두를 한두번 들먹거리면 잠이 달아나고 온전한 마음으로 참선이 잘 되느니라.

 

그래도 만약 잠이 완전히 물러가지 아니하며 화두가 똑똑히 의심이 되지 아니하고 희미할 때에는 일어나 마당에 내려가서 발 끝만을 디디고 수십보를 천천히 걸으면 눈이 가뿐해지고 정신이 깨끗해지느니, 다시 자리에 가 앉아서 천번 만번 화두를 챙기며 의심을 일으켜야 한다. 이와 같이 생명을 떼어 놓고 애를 써 가면 차차로 공부가 순일해져서 힘쓰지 아니하여도 공부가 저절로 굴러가며 화두의 의심이 천만배나 힘차게 나가게 되느니라. 이렇게 된 연후에는 화두를 놓을래야 놓을 수가 없게 된다. 마치 산상(山上)에서 막 내리구르는 큰 바위와 같아서 붙잡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갈수가 없이 쏜살같이 구르는 것과 같이 되느니라.

 

이렇게 되면 이 육체가 없는 것과 같으며 모든 행동도 이 몸이 행하는 것과 같지 않게 된다. 밥도 화두가 먹고 대소변도 화두가 보는 것과 같아지느니라. 전날에 이루 감당하기 어렵던 8만4천 번뇌 망상이 간 곳조차 없어지고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안락하며 분주하던 주위환경도 그대로가 원래로 한가한 태평세상인 것이다.

 

이 마음이 분주하므로 이 세상이 요란한 것이니, 이 마음이 청정하면 몸과 세계는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니라. 이 마음이 정(定)해지면 저 바깥 역순(逆順) 경계(境界)는 원래로 사람을 침범한 일이 없는 것이요, 다만 제 마음을 제가 흔들은 것 뿐이니라. 이와 같이 공부가 힘을 얻어 순숙(純熟)해지면 일체 동작할 때나 말하는 때에도 화두의 의심은 점점 커지고 환해서 총알같이 나가며 꿈에도 또한 잡된 것이 없고 생시와 같이 공부만 순일하게 되나니 이렇게 되면 크게 화두의 의심을 타파하고 대각(大覺)을 성취할 시간이 멀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어서 속히 깨닫고자 하는 망상은 내지 말 것이니라. 그저 덮어 놓고 알아야 할 화두에 대한 의심만 하여 가야 한다. 꼭 앉아서만 공부가 되는 것인 줄로 알며 일을 할 때에는 으레 공부가 아니되는 것인 줄로 아는 공기 때문에 이 공부에 틈이 생길 염려가 있는 것은 서툰 생각이다. 어묵동정(語默動靜)에 끊임없이 주야로 정진(精進)만 하여 가면 자연이 팔풍(八風)이 이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반면에 참선은 날로 점점 진경(眞境)으로 들어가서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못하고 화두의 힘이 점점 커져서 의심덩어리가 터져 깨어지고 무명(無明) 망상이 없어지며 무명이 없어지면 크게 깨달아서 묘도(妙道)를 발견하느니라.

 

다시 말하자면 참선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첫째로 조심할 일은 너무 욕심을 부려 헛 애를 써서 상기(上氣)가 되거나 뭄에 병이 나게 하여서는 공부를 잘 못하는 것이다. 대저 좌선(坐禪)을 힘쓰는 사람은 다만 몸을 단정하게 앉아서 눈을 보통으로 뜨고 또한 몸과 마음을 구태여 돌아보지도 말며 생명조차 생각하지 말고 화두만을 하되 혹시 정신이 희미하여 곤하거나 번뇌망상이 일어나거든 다시 한번 정신을 챙겨서 정진하면 차차로 힘을 얻어서 눈이 안정하며 따라서 마음이 안정하고 마음이 안정하면 몸이 안정하느니라. 그러면 곧 선정력을 얻어서 시간이 가는 줄을 알지 못하며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한없이 안락하느니라. 그러나 기능을 삼아서는 도리어 사도에 떨어진다.

 

이러한 선정 중에서 만약 화두를 놓치면 한갓 텅 비고 고요한 데만 떨어져 있게 되어서 대각을 성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도에 큰 병이 된다. 우리 달마스님께서 중국에 오신 것은 다만 그냥 밥 먹고 옷 입는 이 마음자리를 직접 바로 가리켜서 크게 깨달음으로써 불문에 깊이 들어서게 하신 것 뿐이다. 선정이나 신통같은 지엽적인 기술을 가르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선정력을 얻고도 화두의 의심이 분명히 나가다가 깨달은 사람은 지혜가 더욱 광대하나니 천리마에 날개가 붙은 것과 같은 것이다.

 

화두의 의심이 만약 한동안은 힘차게 나가다가 또한 무력하게 되고 아무 재미도 없어지는 때가 되면 그 때부터 공부가 차차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니 이런 중대한 시기에 공부를 쉬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약간의 권태증이 나더라도 드러눕거나 방심하지 말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온전한 정신으로 공부를 힘써 가면 문득 마음이 고요해지고 이어서 선정을 얻게 된다.

 

이 선정에는 사정(邪正)이 있으니 미리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선정에서 일어났을 때에 몸과 마음이 가뿐하고 개운하며 때나 곳을 막론하고 일을 하거나 밥 먹고 옷 입을 때에도 공부가 힘들지 아니하고도 순순히 잘 되어가며 몸과 마음과 또한 온 천지가 화두 하나로 뭉쳐졌다고 하더라도, 또한 자기의 정진하는 힘이 참으로 온전한 정력을 다해서 하는지의 여부를 살펴서 점점 용맹스러이 공부를 닦아서 하되 일체 망상이 끊어지고 한없이 고요한 가운데서 생생한 산 정신으로 정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넘어서서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 첫째 단계는 고요한 것이 극도에 이르면 문득 깨닫는 것이며 생생한 산 정력이 뭉쳐서 극도에 도달하면 이 마음자리의 본래 광명을 통달하게 된다. 기운은 뭉쳐서 엄숙해지고 용맹한 정진의 힘은 맑고 고요하여서 분주하게 일을 하는 때에나 한가히 앉았을 때에나 공부 경계가 만리청천(萬里靑天)의 가을 하늘과 같이 한없이 맑고 기운차게 되는 때에 이른 것이다.

 

다음 둘째 단계는 이러한 시절이 되거든 문득 때를 놓치지 말고 더 한층 향상 진보하도록 노력하여서 맑고 찬 가을 호수의 물과 같으며 찬 바람 나는 옛 사당안에 오똑하게 놓여 있는 향로와 같이 앞뒤가 끊어져서 고요하고 온전하고 힘찬 정신은 오똑하여 분별심이 없으므로 이 육신이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다만 목숨을 걸고 있는 화두의 의심만이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연속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느니 이러한 지경에 도달하면 장차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의 광명이 곧 발생할 징조이니 꿈 가운데서도 온전히 참선만 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른 것이다.

 

셋째 단계에는 이러한 때에 만약 화두를 힘써 잘 들어 빈틈이 없이 연속하여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이라도 속히 알고자 하는 망상이 움직이면 이러한 틈을 타서 턱도 닿지 아니하는 사견이 튀어 나와서 무엇을 깨친 것과 같이 날뛰게 되는 망동이 생기느니 이것에 속으면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공부가 중단되어서 진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점점 퇴보가 되는 큰 손해를 보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허물이 없고 순수히 정진하여 화두의 의심이 그대로 쭉 24시간을 간단없이 연속하여 일념만년으로 박차고 뻗어나가면 공부는 일로 향상 진보하는 이때를 이른 것이다.

 

다시 앞서 말한 첫째 단계는 동정일여(動靜一如)라고 하는 공부인 것인데 일을 하는 때나 앉아 있을 때나 공부하는 아무 관계가 없이 일념으로 연속되어 진보하되 다만 꿈에서는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 딴 짓을 하며 또한 꿈이 없이 잠이 들었을 때에도 화두는 없어지고 잠만 자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단계에서는 몽각일여(夢覺一如)라 하여 생시에나 꿈에서나 공부가 여전히 잘 되어 가지마는 다만 잠이 든 때에는 화두도 없이 공부가 끊어지고 다만 잠만 자고 만다.

 

그러나 셋째 단계에서는 오매일여(寤寐一如)의 공부시절이라 하여 이러한 둘째 단계에서 잠만자고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거뜬하여 기분이 상쾌할 뿐더러 화두를 챙기지 아니하여도 잠이 깨면서 저절로 들려 있게 된다. 이것은 번뇌망상이 없으므로 잠은 짙은 잠이 아니고 얕은 잠으로서 잠 반, 화두 반으로서 잠잤기 때문에 따로 챙기지 아니하여도 화두가 점점 맹렬하게 진보됨을 따라서 다생다겁으로 저절로 오는 번뇌망상의 씨는 마음 가운데 뿌리 깊이 숨어 있는 잠재의식의 종자까지 녹아 없어짐으로써 마음에 피로의 구름이 없어지므로 따라서 잠도 또한 없어지고 시공을 초월한 이 마음자리의 본연한 정력 덩어리와 시방 삼세에 가득하며 끊어진 일이 없는 이 빛이 아닌 무궁한 광명 뭉치가 점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권태심에서 이루어지는 잠은 본래가 그 근본이 없는 것이므로,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를 통하여 삼세에 걸쳐서 쭉 뻗쳐 있는 이 무한 생명의 빛이 아닌 광명 뭉치에는 원래로 잠이 없는 것이므로 잠은 아주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맹하게 정진만 힘써 가면 강력한 화두만이 크게 굳세게 분명하고 힘차게 두드러지게 드러나서 마치 맑고 찬 저 가을 강물에 나타난 달빛과 같아서 만약 파도가 치면 칠수록 더욱 찬란해지고 두들겨도 부서지지 아니하며 불에다 집어 넣어도 타지 아니하게 된다. 강한 태풍이 불어 때려도 끄떡도 하지 아니한다.

 

이 단계에 이르르면 사람으로서의 일대 의심이 타파되는 동시에 인간의 본연한 청정정안(淸淨正眼)이 미구에 열리게 되는 때인 것이다. 그렇게 나가다가 홀연히 딱 들어맞게 되어서 터지면 자기의 본래 면목을 확연히 깨달아서 불조(佛祖)가 남에게 미움받는 곳을 때려부시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마땅히 종문(宗聞)의 대종장(大宗匠)을 찾아 보고 그 지도를 받아서 더욱 더욱 단련하여 법 그릇의 자격을 이루어야 한다.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일단 이 마음자리를 깨달은 후에는 다시 전통을 이어 오는 본분대종사(本分大宗師)를 만나지 못하면 깨달은 후에 일을 전부 그르치게 되므로 그 손해가 적지 아니 하리라.

 

혹시 불조(佛祖)께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문답의 법어(法語)에 있어서나 또는 이 마음을 깨닫고서 법통(法統)을 이어오는 큰 도인(道人)을 찾아보고 서로 문답하는 기연상(機緣上)의 법어(法語)등으로 1700종류의 공안(公案) 가운데서 확연히 알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자기의 깨친 것이 얕은 것임을 발견한 것이니 이 마음자리를 남김없이 완전히 깨치지 못한 탓이다.

 

설혹 1700가지의 화두를 하나도 모를 것이 없이 모두 통달하였다 할지라도 또한 다시 한 걸음 물러서서 정말로 그 자취를 감추고 무사한인(無事閑人)이 되어서 이미 깨친 바 이 마음의 본래 면목을 그대로 잘 보호하여 그 실력을 양성하여 전 역량을 갖추게 하며 팔만대장경과 유교와 도교와 같은 모든 세속 학문들을 다 열람하여 다생다겁으로 저지르는 습성과 번뇌 망상의 업력을 녹여 없애서 이 마음자리가 무한대로 청정하여지며 뚜렷이 밝아서 일체법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시절이 오고 나야 온 천하를 내 집으로 삼아 동서남북에서 소요자재하되 성대한 광명이 법계에 두루 하면 크게 선사(先師)의 종문은 욕먹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과거의 중생 버릇이 그대로 남아서 업력을 이길 힘이 없고 허덕인다면 그것은 그럭저럭한 공부인데 불과한 것이요, 또한 설법을 할 때에도 도인 같더니 이해나 시비를 따질 때에는 속인 이상의 짓을 하며 또한 말을 주착없이 술 취한 사람처럼 하며 행동은 속인과 같으며 학자를 대할 때에는 그 기회에 감추고 드러내고 하는 법을 알지 못하며 설법을 하는 때에도 시와 정을 가리지 못하며 또한 인과를 믿지 아니 하니 이러한 무리는 말하는 자나 또한 그 말을 듣고서 시와 정을 가리지 못하고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까지 자타가 다 삼악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나 옛날의 조사스님네들이 정도와 사도를 분명하게 판가름하여 놓은 것이 있다.

 

이 마음의 본래면목을 깨달은 사람은 생사업해에서 기묘하게도 빠져 나가는 도술이 있어 큰 죄악에서 반야공문(般若空門)을 살짝 빠져 나가기도 하며 허물을 되살려서 공덕이 되게도 한다. 또한 지혜의 광명과 해탈법으로서 일체 만법의 삼매왕이 되나니 이 삼매의 법력으로서 천당과 지옥을 임의로 가서 나며 점점 도가 깊어 갈수록 모든 중생들의 근기를 맞추어서 한량없는 변화신(變化身)과 신신(信身)을 나타내니라. 이 마음자리의 도는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깊어진다.

 

그러므로 달마조사께서 경계하여 말씀하시었다.

" 이 마음자리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호리도 틀림없이 똑같이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그 언행과 깨친 지혜가 서로 일치되어서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들과 조금도 틀림이 없어야 비로소 조사라 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이 문하에 들어와서 부처님과 조사 선지식을 지나가는 언행을 함부로 범하여 죄악을 저지르지 말라."

그대들은 천만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 말을 믿고 아니 믿는 것은 시일이 지나가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출전 : 전심법요(이청담 큰스님의 "마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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