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명(無始無明)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勝鬘 · 本業 · 起信의 모든 경전에는 無始無明이라 하고 菩提心論에는 無始間隔이라 하며, 生死流轉의 근본 惑體이다. 평등한 法界의 이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평등의 理性과 격리된 것을 無明이라 하며, 또는 間隔이라 함. 이 어둠의 마음은 體에 지혜의 밝음이 없으므로 無明이라 하며, 어둠의 마음은 이성과 격리되었으므로 間隔이라 한다. 이 무명의 간격에 의하여 여러 가지 번뇌를 일으키며, 여러 가지 業을 지어서 여러 가지 果를 받는다.
無始라고 한 것은 세가지 해석이 있다.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것의 이치에 따라 해석하는 것,
惑體가 서로 의지하는 뜻에 따라 해석하는 것,
眞妄同體의 이치에 따라 해석하는 것 등이다.
즉 (1) 첫째번은 일체 有爲法의 因緣에 따라 생기는 것. 현재의 果는 전생의 因에 의해 발생하며 전생의 果는 다시 그 전생의 因에 의하여 발생한다. 이같이 추구하면 처음과 시작은 없다. 만약 처음과 시작이 있다고 하면 이는 無因에서 생기는 것으로 佛法은 아니다. 열반경의 四柱偈와 攝論의 글 등에서 說한 것이 있으며, 大乘論의 통설이다.
(2) 둘째번 것은 枝末無明이 根本無明에 의하고 근본무명은 眞如에 의하는 연기법을 말한다. 이때 무명은 번뇌(惑)의 근본이 되고 무명의 앞에는 처음이 되는 惑法이 없으므로 無始라 한다. 이 해석에 따르면 無始라는 말은 곧 根本의 다른 이름이 되어 無明無始의 뜻을 이루게 된다. 起信論에「홀연히 생각해 내는 것을 無明이라 한다」하고, 천태종에서는 元品無明이라 하며, 기신론의 해석에서 근본무명을 말하여 忽然 · 元品 · 根本이라 함은 모두 有始의 다른 이름이다. 원각경에「일체중생은 無始에서부터 無明을 일으키며 자기를 주재한다. 일체의 중생은 살아서도 지혜의 눈이 없으니 身 · 心 · 性 등이 모두 無明이다」하였고, 本業經下에는「그 四住地 앞에는 다시 법이 일어남이 없으므로 無始無明住地라 한다」하였다.
勝鬘經寶窟 중에「無始에는 2종의 해석이 있다.
1. 無明이 시초가 없으므로 중생의 無始함이 파도에 밑이 없음과 같다.
2. 無明의 이 앞에는 하나의 法도 없으므로 無始라 한다.」起信論에「일체의 중생이 覺이라고 하지 않음은 본래부터 念念相續하여 일찌기 생각을 여읜적이 없으므로 無始無明이라 한다」하였다.
(3) 眞妄同體의 뜻으로 해석한 마지막 것은, 眞如와 無明은 한 法으로 이름만 다름이다. 즉 물과 얼음 같아 얼음의 본래의 성품(自性)은 물인 것과 같이, 無明의 自性은 곧 眞如이다. 사람들은 비유컨대 얼음을 본래 얼음이라 보고, 먼저는 물이 있고 뒤에는 얼음이 되었음을 모른다. 물이라고 말함은 道를 가르치는 方便이 된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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