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長)아함경, 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2)-20쪽

근와(槿瓦) 2015. 10. 1. 01:13

중아함경(2)-20쪽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 / 10006] 쪽

른바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또한 좋으며, 이치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까지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다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기억[念]을 행하되 바른 생각[正念]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혀온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憶]하여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여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밝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앤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 하느니라. 거룩한 제자들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첫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두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貪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 기억[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을 갖추어 제 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세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네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가지 선법을 얻으면 네 가지 증상심을 체

 

                                                                                [12 / 10006] 쪽

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마왕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느니라.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집을 세우고 땅을 견고하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세워져서 끝내 다른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 마군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믿음이라는 망보는 다락집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 밖에 아주 깊고 넓은 못을 파고 잘 보수해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막아내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아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해자[池塹]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 두루 길을 내되 트이고 편편하고 넓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임을 아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란 편편한 길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 네 가지 군사의 힘, 곧 상군 마군 차군 보군을 모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정진하여 악과 불선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의욕을 내어 전일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을 위해 방편을 버리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정진이라는 군사의 힘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 병기, 곧 활 화살 창 따위를 미리 갖추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잘

 

                                                                                [13 / 10006] 쪽

지닌 채 잊지 않고 지식을 쌓아 모은다.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또한 좋으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실현한다. 이와 같은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치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로서 많은 지식이라는 군기(軍器)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하느니라.왕의 변성에 밝은 책략과 지혜로운 변재가 있고 용맹스럽고 굳세며 기특한 꾀가 있는 대장을 세워 문을 지키게 하여 착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생각을 거듭하여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힌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해 잊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기억[念]이라는 문 지키는 대장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한다. 왕의 변성에 높은 담을 아주 견고하게 쌓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발라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분명하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애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지혜라는 담을 쌓아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왕의 변성에서 물과 풀과 섶나무 같은 재료를 미리 준비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각과 관이 이미 그치고 안이 고요해지고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 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14 / 10006] 쪽

왕의 변성에서 많은 점두와 콩과 팥을 쌓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기쁨의 욕망[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 기억[念] 즐거움에 머묾[樂住] 공(空)을 갖추어 제 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소유와 꿀과 사탕수수와 엿을 저축하고 생선 소금 고기 말린 것 육고기 따위가 다 충족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 기억[念] 청정[淸淨]이 있는 제 4선(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루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과 관련된 사람[水人]에 대해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그 때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 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15 / 10006] 쪽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며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라야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그 때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대로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왔다가는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라야 그를 언덕에 머무는 범지(梵志)라고 한다. 이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내가 간략히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위에서 시설한 것과 같다. 너희들은 어떤 뜻을 알았고 어떻게 분별하였으며 어떤 인연이 있는가?" 그 때 여러 비구들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 되시며 법은 세존으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원컨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듣고 나면 자세히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리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16 / 10006] 쪽

"사람이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 어떤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에 덮이고 더러움에 물들게 되어 나쁜 법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데,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물에 빠진 채 물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은 믿음의 선법(善法)을 얻고 지계(持戒) 보시(布施) 다문(多聞) 지혜(智慧)의 선법을 닦아 익혔으나 그가 뒷날에 믿음을 잃고 견고하지 못하며,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잃고 견고하지 못하게 된 것을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졌다고 하나니,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왔으나 도로 빠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두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이미 나와 머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왔다는 것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으로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 것을 어떤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머문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와 머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이 세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으로,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물면서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苦習] 괴로움의 소멸[苦滅]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結)이 곧 다 끊어진다. 신견결(身見結) 계취결(戒取結) 의결(疑結)의 3결이 이미 다하면 수다원(須陀洹)

 

                                                                                [17 / 10006] 쪽

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국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를 받는데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苦際]을 얻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 살펴본다고 하는 것이니,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네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넌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고, 뒷날에도 믿음이 견고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이 곧 다 끊어진다. 신견결 계취결 의결의 3결이 이미 다 끊어져 없어지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천상과 인간 세계를 한 번 오가게 된다. 한 번 오간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간다고 하는 것인데,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다섯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물에서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5하분결[下分 : 욕계, 結(번뇌)]이 다 끊어진다. 탐욕(貪欲) 진에(瞋恚) 신견(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의 5하분결이 이미 다하면 그는 천상에 나서 곧 반

 

                                                                               [18 / 10006] 쪽

열반(般涅槃)에 들어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처럼 내가 저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여섯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 속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 보시 다문 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이렇게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명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성립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물 속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 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일곱 번째 물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19 / 10006] 쪽

그러하다. 내가 지난번에 말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의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한 것은 곧 이러한 것들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을 유행(遊行)하실 적에 인간 세계의 큰 비구 대중을 양쪽에 거느리고 걸어가셨다. 그 때 세존께서 길을 가시던 중에 갑자기 한 곳에 쌓아 둔 큰 나무더미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셨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보신 후, 곧 길 옆으로 내려가 다른 나무로 가셔서 니사단(尼師檀)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으셨다. 세존께서 앉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기에 있는 큰 나무더미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생각은 어떻하냐? 저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그 위에 앉거나 혹은 거기에 눕는 것과,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刹利)족 여자나 범지(梵志) 거사(居士) 공사(工師 : 공인의 우두머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화만(華鬘)과 영락

 

                                                                                [20 / 10006] 쪽

(瓔珞)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그들과 같이 앉거나 그들과 같이 눕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즐거우리라고 생각되느냐?" "세존이시여,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혹은 거기에 앉고 거기에 눕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족 여자나, 범지 거사 공사의 여자들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예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그들과 같이 앉거나 같이 눕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한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梵行)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혹은 거기에 앉고 거기에 누워야 하리라. 저들이 비록 이로 인해 괴로움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나쁜 세계나 지옥에 가서 태어나지 않으리라.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며, 또는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족 여자나 범지 거사 공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고 혹은 같이 눕는다면,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不善)과 불의(不義)로써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게 되거나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하고는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長壽)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 음식 평상 요[褥] 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장(長)아함경, 중아함경(中阿含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아함경(5)-50   (0) 2015.10.10
중아함경(4)-40  (0) 2015.10.03
중아함경(3)-30쪽   (0) 2015.10.02
중아함경(中阿含經)-(1)-10쪽까지  (0) 2015.09.30
중아함경(中阿含經)  (0) 201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