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말씀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지옥에 가겠다

근와(槿瓦) 2015. 9. 21. 01:37

한 중생을 위해서라도 지옥에 가겠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이 사밧티의 제타숲에 있는 외로운 사람들을 돕는 동산(祇園精舍)에 계실 때였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과 왕과 백성들에게 둘러싸여 공양과 공경을 받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존께서는 어떤 인연으로 해서 처음 보리심(菩提心)을 발하여 부처를 이루었을까?’

 

이때 존자(尊者) 아난다는 이런 의문을 지니고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세존께서 예전에 어떤 인연으로 큰 보리심을 발하게 되었는가를 궁금히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시어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명심하여라. 아득한 옛날 이 세상에 대광명(大光明)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복과 덕을 닦았고 총명하고 용맹스러웠다.

 

그는 이웃 나라와 친하게 지냈으므로 이웃 나라에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왕은 언제나 그들에게 물건을 보내주었고, 그 나라에서도 진귀한 것이 있으면 왕에게 보내왔다. 이웃 나라 왕은 어느날 깊은 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코끼리 새끼 두 마리를 사로잡았다. 그 코끼리는 몸매가 단아하고 아름다웠으며, 희기가 마치 백옥과 같았다.

 

왕은 그중 한 마리를 금은으로 호화롭게 장식하여 광명왕에게 선물했다. 왕은 어린 코끼리를 보고 몹시 기뻐했다.

 

그때 코끼리를 잘 다루는 상사(象師)가 있었는데, 왕은 그에게 코끼리를 주면서 잘 보살펴 길들이라고 하였다.

 

상사는 왕명을 받고 오래지 않아 코끼리를 잘 길들이게 되었다. 그는 어느날 왕에게 나아가, ‘제가 길들인 코끼리는 이제 잘 훈련되었습니다. 왕께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라고 아뢰었다. 왕은 아주 기뻐하며 시험해 보려고 북을 쳐서 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코끼리 시험하는 광경을 보라고 하였다.

 

문무백관이 모인 자리에서 왕은 그 코끼리 등에 날쌔게 올라탔다. 해가 처음 산에서 솟아 빛나듯이 왕이 처음 코끼리 등에 앉았을 때도 그와 같았다.

 

왕은 즐거운 마음으로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시험할 장소에 이르렀다.

 

기운이 왕성한 그 코끼리는 이때 여러 코끼리들이 정답게 연못에서 연뿌리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을 본 순간 곧 음욕이 발동하여 암 코끼리의 뒤를 따라 마침내는 깊은 숲 속으로 치달렸다. 이 바람에 왕이 썼던 관은 땅에 떨어지고 옷은 나뭇가지에 걸려 갈기갈기 찢기었으며, 몸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왕은 치닫는 코끼리 위에서 두려워 떨면서, 뒤 따라오는 상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어떻게 해야 안전할 수 있겠느냐?’

 

왕의 뒤를 쫓아오던 상사는 급히 아뢰었다.

‘나뭇가지를 붙잡으십시오. 튼튼한 가지를 붙잡으시면 안전할 것입니다.’

 

왕은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코끼리는 달아나고 왕은 대롱대롱 가지에 매달렸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왕은 지칠대로 지쳐 사색이 된 얼굴로 헐떡거렸다. 시종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상사는 뒤따라와 왕이 홀로 지쳐서 헐떡이는 것을 보자 송구스러워 어쩔 바를 몰라하면서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너무 상심하지 마소서. 그 코끼리는 이제 음심이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거친 풀은 먹기 싫고 흐린 물은 맛이 없을테니 궁중의 깨끗하고 기름진 맛난 음식을 생각하고 제발로 걸어서 돌아올 것입니다.

 

왕은 상사를 흘겨보며 호령하였다. ‘나는 이제 다시는 너나 코끼리를 대하지 않겠노라. 그 코끼리 때문에 내 목숨을 잃을뻔 했도다.’

 

이때 신하들은 그 미친 코끼리 때문에 왕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숲길을 따라 사방으로 찾아나섰다. 한 곳에서 관을 발견하고 흘린 핏자국을 보았다. 그러나가 왕이 다른 코끼리를 타고 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성 안의 백성들도 왕이 그런 고통을 받은 것을 보고 다들 걱정했다.

 

암코끼리를 좇아 달아났던 그 코끼리는 늪에서 거친 풀과 흐리고 더러운 물을 마시자 음심이 저절로 가라앉았다. 왕궁의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고 며칠 후 다시 궁중으로 돌아왔다.

 

상사는 왕에게 가서 알렸다.

‘코끼리가 방금 돌아왔습니다.’

 

왕은 말했다.

‘이제는 너도 코끼리도 모두 필요없다.’

 

상사는 다시 아뢰었다.

‘만약 왕께서 저와 코끼리가 필요없으시다면 마지막으로 제가 코끼리 다루는 법이나 한번 친히 보시기 바랍니다.’

 

왕은 마침내 상사의 간청에 따르기로 했다. 이때 성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상사가 왕에게 코끼리 다루는 법을 보이려고 한다는 소문을 듣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왕은 시종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 곳에 이르렀다. 상사는 대장장이에게 철환(鐵丸)일곱 개를 만들어 시뻘겋게 불에 달구도록 부탁해 놓았었다. 그 까닭은 코끼리가 이 철환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죽을 것이고 그때 왕도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왕에게 아뢰었다.

‘백옥처럼 흰 이같은 코끼리는 오로지 전륜성왕(轉輪聖王 : 이상적인 군주)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전의 허물을 탓하여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왕은 더욱 화를 내면서 상사를 꾸짖고 나서 외면해버렸다.

 

상사는 코끼리에게 먹으라고 시뻘겋게 단 철환을 내다 놓았다. 코끼리가 머뭇거리자 상사는 재촉했다.

‘너는 어째서 이 철환을 먹지 않느냐?’

 

코끼리는 슬픈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 대중 가운데는 내 목숨을 구해줄 사람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드디어 철환을 입에 물고 삼키었다.

 

불에 단 철환은 코끼리의 뱃속에 들어가 내장을 태우면서 뚫고 나왔다. 코끼리는 이내 죽어 넘어졌고, 땅에 떨어진 철환은 아직도 연기를 뿜으면서 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었다. 왕도 이 일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이내 후회하였다.

 

왕은 상사에게 물었다.

‘네가 길들인 코끼리는 그처럼 잘 순종하는데, 그날 숲속에서는 어째서 제지시키지 못했더냐?’

 

‘저는 코끼리의 몸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요, 그 마음은 다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몸도 다루고 마음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없느냐?’

‘부처님이라면 몸도 다루고 마음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부처님’이라는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가 말하는 부처님이란 어떤 종성(種姓)에서 나왔느냐?’

 

‘부처님은 두 가지 종성에서 나왔습니다. 첫째는 지혜요, 둘째는 자비입니다. 그 분은 여섯 가지 보살의 행을 부지런히 행하여 공덕과 지혜를 온전히 갖추었으므로 부처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자기 자신을 잘 다룰 뿐 아니라, 중생들까지도 잘 다룹니다.’

 

왕은 상사로부터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곧 궁중으로 돌아가 목욕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높은 다락에 올라가 사방을 향하여 절한 뒤 모든 중생에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고 향을 사루면서 원을 세웠다.

 

‘내 모든 공덕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돌려보내(廻向)나이다. 내가 부처를 이룬 다음에는 내 마음을 다루고 또 모든 중생을 다루겠습니다. 만약 한 중생을 위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들어가 한 겁(劫)을 지냄으로써 그에게 이익이 된다면, 나는 그 지옥에 들어가더라도 끝내 보리심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이 원을 세우자 천지가 진동하면서 하늘에서는 그를 찬탄하는 노래가 은은히 메아리쳤다.

‘당신은 그 서원의 공덕으로 오래지 않아 부처가 될 것입니다. 불도를 이룬 후에는 우리들도 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궁금하리라. 그 때에 철환을 먹은 흰 코끼리는 바로 지금의 아난다요, 상사(象師)는 사리불(舍利弗)이며, 대광명왕은 지금의 이 몸이니라. 나는 그때 코끼리가 잘 길들여져 순종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도의 마음(菩提心)을 내어 마침내 부처를 이루었느니라.”

<현우경 대광명왕시발도심연품(賢愚經 大光明王始發道心緣品)>

 

이와 같은 인연설화가 불경에는 너무 많이 나온다. 설화란 물론 사실적이기보다는 허구적이다. 그럼 어째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찬한 불교 경전에 이런 허구적인 설화를 도입하였을까 가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접할 때마다 그 갈피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의 전래설화가 경전을 결집할 때 많이 도입되었을 거라는 사실은 학자들의 논증을 빌지 않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와 같은 기존의 설화에 편승, 거기에 불교적인 윤리의 옷을 입힌 것이다.

 

한 인간이 원만하게 형성되려면 무수한 세월을 두고 끝없이 착한 일을 하여 이웃에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과관계의 예를 들어 각성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불전의 인연설화를 접할 때에는 비현실적인 허구성에 질려서 물러앉을 게 아니라, 그 설화가 의도하고 있는 그 뜻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보면 좋을 것이다.

 

앞에 소개한 인연설화는 다음과 같은 글로 끝을 맺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뜻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면 조그만 인연으로서도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지만, 게으르면 아무리 큰 인연을 만나도 성취될 수 없다.’

 

무슨 일에나 청정한 원(願)을 세움으로써 거기에 맞는 행(行)을 쌓아 마침내 뜻을 이루게 된다는 것도 인연설화에 자주 나오는 기법이다.

 

 

출전 : 인연이야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