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뢰야식삼종경(阿賴耶識三種境)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① 種子. 일체 有漏·無漏의 現行法이 일어나는 종자. ② 五根. 眼·耳·鼻·舌·身의 5根. ③ 器界. 초목·음식·山河·器具 등의 일체 중생의 依報. 아뢰야식은 이 3종으로 境界의 所緣을 삼는다.
참고
종자(種子) : ① 穀類의 싹이 종자로부터 나오는 것처럼 物 · 心의 모든 존재 현상을 나게 하는 因種을 가리키는 말. 또 種이라고도 하며 곡류등의 종자를 外種 또는 밖의 種子(外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唯識宗에서는 같은 이치로 우리의 마음의 종자가 아뢰야식 가운데 藏識(감추어져 있음)되어 있다고 하여 이것을 內種 또는 內種子라고 한다. 이 內種子는 生果의 功能(결과를 내는 작용)을 가리키며, 이것은 現行의 諸法(현재 나타나서 작용하는 모든 현상)에 의해서, 흡사 향을 담았던 상자에 향내가 배어서 나는 것처럼 아뢰야식 가운데 熏習되어 있는 일종의 慣習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것을 習氣라고도 한다. 이 種子說은 하나의 비유로 阿含經에 보이며, 部派佛敎 당시에는 化地部에서 窮生死蘊의 識 가운데 物心의 種子가 항상 존재한다는 說을 세운바 있으며, 經量部에서는 色法(물질)과 心法(정신)이 상호 種子로서 다른 것(相體)을 熏附(서로 영향하고 相依함)하여 보존한다고 하여 色心互熏說을 세우기도 했다.
② 唯識宗에서는 種子는 아뢰야식 가운데 藏在해 있다고 하며 그 관계를 成唯識論 卷二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뢰야식은 體, 種子는 用, 혹은 아뢰야식은 果, 種子는 因이라고도 하며 또 그 관계는 不一不異라고 하고, 또 種子는 아뢰야식의 相分[四分→相分(주관적인 心에 인식되는 객관의 형상), 見分(相分을 인식하는 주관의 心작용), 自證分(自體分이라고도 하며 見分과 다음의 證自證分과를 證知하는 인식작용), 證自證分(自證分을 다시 證知하는 인식작용)] 가운데 존재한다고 한다.(단, 이상은 有漏種子에 대한 해석임). 또 同卷二에서, 種子는 다음의 여섯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이것을 種子六義라고 했다. 곧 (1) 刹那滅. 不動不變의 無爲法이 아니라 生滅變化하는 有爲法일 것. (2) 果俱有.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 곧 果를 여의지 않고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하면 果가 발생하는 현상과 반드시 동시에 존재하며 現前에 和合하여 떨어지지 않는 것. (3) 恒隨轉. 항상 간단 없이 轉起하여 一類相續하는 것. (4) 性決定. 種子를 熏附한 現行의 善惡을 따라서 그 種子로부터 생긴 現行의 善惡을 결정하여 索亂하지 않은 것. (5) 待衆緣. 많은 緣이 和合하는 것을 기다려서 비로소 種子가 現行을 내는 것. (6) 引自果. 色 · 心이 각각의 自果를 따로 따로 引生하는 여섯. 種子가 어떻게 하여 일어났느냐 하는데 대해서는 本有說(護月의 說) · 新熏說(難陀 · 勝軍의 說) · 新舊合生說(護法의 說)의 三說이 있어서, 이것을 주장하는 學流를 각각 本有家 · 新熏家 · 新舊合生家라고 일컫는데, 法相宗에서는 第三說을 옳다고 한다. 곧 種子에는 無始이래로 아뢰야식 가운데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本有種子(本性住種)와 후천적으로 現行의 諸法에 의해 熏附된 新熏種子(習所成種)가 있어서 이 2種의 種子가 합하여 現行法으로서의 모든 現象을 낸다고 한다. 다만 見道에 이르러 처음으로 無漏智를 내는 것은 本有無漏種子에 의한다고 하고, 또 五姓의 차별을 일으키는 것을 이 本有無漏種子의 種別이나 그 有無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本有說에 있어서는 本有種子만을 세워서 新熏種子를 인정하지 않고 現行의 熏習이 新熏種子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本有種子를 增長할 따름이라고 주장하는데 대해, 新熏說에서는 新熏種子만을 인정하고 本有種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반으로 菩提의 因인 無漏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어서, 有漏種子에는 또 名言種子와 業種子의 2종의 種子가 있다. 名言種子는 名言(言語的表象)에 의해서 아뢰야식 가운데 熏附된 種子로서 物 · 心 일체의 현상이 현재에 나타나서 작용하는(現行의) 직접의 因이 되는데, 여기에 또 2種이 있다. 表義名言種子는 의미를 나타내는 言語(곧 表義名言)를 第六意識이 반연하여(곧 인식하여) 그 언어에 따라 諸現象을 變現할 때 熏習되는 種子를 말하며, 顯境名言種子는 心 · 心所法인 前七識의 見分(主觀)등 (곧 顯境名言)이 對境을 반연할(곧 인식)지음에 熏習된 種子를 가리킨다. 心 · 心所法이 名言은 아니지만 名言이 각각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처럼 心 · 心所가 對境을 變現하므로 顯境名言이라 한다. 대저 名言種子는 種子와 같은 종류의 現行(現象)을 생기게 하므로 等流習氣라고도 한다. 다음에 業種子는 능히 異熟(果報)을 내는 직접적인 因인 名言種子를 도와서 善惡業에 따른 異熟을 생기게 하는 작용이 있는 種子로서 第六意識과 相應하는 善惡의 思(意志의 정신작용인 業의 體)에 의해서 熏附된다. 異熟은 無記이므로 異熟을 내는 名言種子는 無記이며 따라서 스스로 現行하는 힘은 없지만 善惡의 業種子의 힘이 강하면 그것이 增上緣이 되어 異熟을 生한다. 그러므로 業種子를 異熟習氣라고도 한다. 또 名言種子 가운데 我執에 의해서 熏習되고 그것에 의해서 自他의 차별을 감지하고 迷惑의 바탕인 我見 · 我所見을 일으키는 種子를 특히 我執習氣라 한다. 我執習氣 · 名言習氣 · 有支習氣(業種子에 해당)를 三種習氣라고 한다. 또 山河大地처럼 많은 有情에 공통한 환경을 내는 名言種子를 共相名言種子(共種子)라고 하는데 대해, 육체처럼 그 사람만이 받아 가지고 쓰는 것을 일으키는 種子를 不共相名言種子(不共種子)라고 하며, 이런 名言種子가 現行을 내기 위해서는 共業 · 不共業의 業種子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③ 種字라고도 쓰는 경우가 있다. 곧 密敎에서는 불 · 보살등의 諸尊을 表象하는 梵字를 가리킨다. 이것을 種子라고 하는 것은 一字에서 多字를 生하고 또 多字는 一字에 歸結됨을 뜻하는 말. 혹은 種字를 관하면 佛智를 깨닫고(了因), 種字로부터 三昧耶形등을 일으키며(生因), 種字는 본래의 性德이고 軌範으로서 모든 事物의 근원인 本有란 뜻이 있으며 여러 諸尊의 眞言의 一字를 사용한다. 예컨대 胎藏界의 大日如來의 種字를 अ(아)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一尊에의 種字 밖에 1類의 諸尊에 통하는 通種字도 있다. 種字만을 쓴 曼茶羅를 種字曼多羅, 種字에 의해서 觀行하는 것을 種字觀이라고 한다.
유루(有漏) : 漏는 漏泄의 의미로 번뇌를 말함. 번뇌가 있는 것을 有漏라 하고, 없는 것을 無漏라 한다. 有漏는 또 有染 · 有染汚 · 有諍이라고도 한다. 染도 染汚도 諍도 번뇌를 말함. 또 잘못된 견해를 내는 依處이기 때문에 見處라고도 한다. 有部에서는 번뇌를 隨增하는 것(곧 번뇌에 隨順하여, 번뇌를 增長한다)을 有漏法이라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無漏法이라고 한다. 곧 四諦중에서 迷의 果와 因인 苦集二諦의 諸法은 有漏法이고, 悟의 果와 因인 滅道二諦의 諸法은 無漏法이다. 有漏의 육체를 有漏身, 有漏의 境界(迷의 경계)를 有漏路라 하고, 無漏淸淨의 佛身을 無漏身, 無漏淸淨의 境界(悟의 세계)를 無漏路라고 한다. 많은 世俗의 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지혜를 有漏智라 하고, 四諦의 理를 證見하는 見道이후의 聖者의 지혜를 無漏智라 한다. 또 見道에 이르기까지의 범부가 일으키는 善을 有漏善이라 하고, 見道에 들어가서의 聖者가 일으키는 번뇌의 더러움이 없는 善을 無漏善이라 한다. 有漏智를 가지고 행하는 세속의 행위를 有漏行, 有漏智를 가지고 닦는 六行觀을 有漏道라 하고, 無漏智를 가지고 닦는 四諦의 觀行 등을 無漏行, 無漏道라 한다. 有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有漏斷, 無漏道를 가지고 번뇌를 끊는 것을 無漏斷이라고 한다. 有漏行은 人間 · 天上등의 五趣의 有漏果(有漏의 번뇌나 業을 因으로 해서 생긴 有漏의 果報. 곧 人間 · 天上 등 3界와 5趣의 몸과 국토를 말한다)를 초래하기 때문에 有漏因이라 하고, 無漏行은 열반의 깨달음인 無漏果를 얻기 때문에 無漏因이라 한다. 凡夫가 六行觀을 닦아서 住하는 四禪 · 四無色定 · 四無量心定 등의 禪定을 有漏定 · 有漏禪이라 하고, 聖者가 無漏智를 發得하는 禪定을 無漏定 · 無漏禪이라 한다. 無漏定은 無漏의 九地(未至定 · 中間定 · 四根本定 · 下三無色定)에 있어서 일어난다. 法相宗에서는 佛果의 淨識을 無漏識이라 하고, 佛果에 이르기 이전의 識을 有漏識이라고 한다. 단 第六識 · 第七識은 初地入見道에서 1分을 轉識得智하여 無漏識이 되고, 前五識과 第八識은 佛果에 이르러서 비로소 無漏識이 된다고 한다. 無漏의 깨달음의 본래 寂然한 面을 無漏無爲라 하고, 그것이 작용하여 起動하는 面을 無漏有爲라 한다.
무루(無漏) : 漏는 누설·누락의 뜻으로 모든 번뇌를 말한다. 즉 眼·耳·鼻·舌·身·意의 六根에서 허물을 항상 만들어 누출한다는 뜻이다. 이런 번뇌에서 이탈하여 그것이 없어지고 증가함이 없음을 無漏라 하며 四諦 중의 道諦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가령 7覺支·8正道 등이 그것이다. 소승에서는 번뇌를 增上하지 않음을 말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와 함께 있지 않음을 말한다. 有部에서는 18界 중 後 삼계는 유루·무루에 통하며, 前 15 단계는 유루에만 한한다고 하는데 잡아함경의 무루법설을 이어받아 대중부에서는 佛身 중에 있는 것은 18계 모두 같이 무루라 하는 등 그 구분과 해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현행법(現行法) : 유식종에서 제8아뢰야식 가운데 숨어 있는 종자로부터 개발하는 物心의 모든 법을 現行法이라 한다.
오근(五根) : 다섯의 뿌리. 根이라 함은 훌륭한 작용이 있다(이것을 增上이라고 한다)는 뜻.
① 眼·耳·鼻·舌·身의 五根. 視覺·聽覺·嗅覺·味覺·觸覺의 다섯을 감각하는 五官, 또는 그 기능. 여기에 意根(心)을 더하여 六根이라고 한다. 五根은 外界의 대상을 취하고, 또 心內에 五識의 認識作用을 불러 일으킴에 있어서 뛰어난 작용이 있기 때문에 根이라고 한다. 또 이들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五色根이라 한다. 數論派에서는 五知根이라 하는데, 이 때는 身根을 皮根이라고 한다. 이들 五根을 扶塵根과 勝義根으로 나눈다. 扶塵根이라 함은 眼球·耳穴·鼻柱 등과 같이 血肉으로 되어 있는 단순한 물질적인 根이란 뜻이다. 대상을 취하는 뛰어난 힘은 없지만, 勝義根을 도와서 識을일으키게 하며 흔히 말하는 五官이 그것이다. 勝義根이라 함은 육체의 내부에 있어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對境을 취하는 주체적 작용을 하는 根이란 뜻이니, 맑고 아주 훌륭한 四大種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有部에서는 勝義根만이 五根이라고 한다. 五根중 眼根·耳根은 멀리 있는 대상(不至境)에 대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離中知라 하고, 鼻根·舌根·身根(皮膚)은 대상과 根이 직접으로 접촉하는 것(至境)에 한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合中知라 한다. 또 五根중, 鼻·舌·身의 三根은 等量의 境(根과 같은 量의 對境)을 취하는데, 眼·耳의 二根은 때로는 小, 때로는 等, 때로는 大의 境을 취한다. 더욱 意根은 無色法으로 形이 없기 때문에, 量에 대해서는 論하지 않는다.
② 信·精進(勤)·念·定·慧의 五無漏根. 三十七道品중의 一類. 이들은 번뇌를 누르고 올바른 깨달음의 道에 나가게 하는데 대해서 뛰어난 작용이 있기(增上) 때문에 根이라고 한다.
기계(器界) : 또는 器世界·器世間이라고도 한다. 일체 중생을 포용하여 살게 하는 世界. .....기세간(器世間)→3종 世間의 하나. 또는 器世界 · 器界 · 器라고도 함. 일체 중생이 살고 있는 世間(略해서 世라고도 하고 路迦라 音譯함. 깨지고 부서지게 될 것, 세상이란 뜻)이란 뜻.
중생(衆生) : 有情 · 含識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것은 心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含識을 含生 · 含情 · 含靈이라고도 하며, 또 많은 生類라는 뜻으로 群生 · 群萠 · 群類라고도 한다. 대체로 이같은 말들은 "生存하는 것"이란 뜻으로 일체의 生類를 가리킨다. 衆生이란 말은 흔히 迷惑의 세계에 있는 生類를 가리키므로 때로는 넓은 의미로 불 · 보살까지도 포함한다. 雜阿含經 卷四十三에는 眼 · 耳 · 鼻 · 舌 · 身 · 意의 六根(여섯 感官)을 犬 · 鳥 · 蛇 · 狐 · 鰐 · 猿의 6종의 동물에 비유하여 흔히 이것을 六衆生이라 하고 六獸의 喩라고 한다.
의보(依報) : 과거의 業의 갚음으로 얻은 有情의 몸을 正報라 하고,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 곧 國土(器世間)를 依報라고 한다. 이 둘은 함께 자기의 과거의 業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므로 다 함께 「報」라고 한다.
유정(有情) : 薩多婆 · 薩埵라 音譯하고, 중생이라고도 번역한다. 生存하는 자란 뜻. 有情이라 함은 마음(情識)을 갖는 살아 있는 것을 말하고, 여기에 대해서 草木 · 山川 · 大地 등은 非情(非有情 · 無情)이라고 한다. 그러나 成唯識論述記 卷一에는, 중생이라 함은 有情 · 非情을 아울러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정보(正報) : 과거세에 지은 業因에 의해 그 갚음으로 얻어진 有情(衆生)의 몸을 正報라 한다.
경계(境界) : 境이라고도 한다. ① 感覺器官(根) 및 認識을 주관하는 마음(識)의 대상을 가리킨다. 예컨대 눈과 眼識(視覺)에 의해서 보게 되는 色(빛 · 모양)이 그것이니, 여기에 五境, 六境의 구별이 있다. 唯識宗에서는 三類境의 說이 있으며, 또 內境 · 外境, 眞境 · 妄境, 順經 · 逆經 등으로 나눈다. ② 자기의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分限. 無量壽經 卷下에는「이 뜻이 弘深하여 나의 경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경계반야(境界般若) : 五種般若의 하나. 모든 법은 반야가 對하는 객관의 경계가 되므로 일체의 모든 법을 가리켜 境界般若라고 한다.
소연(所緣) : 마음으로 인식하는 대상. 곧 六識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六境과 같은 것.
육식(六識) : 六境을 知覺하는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의 총칭. 八識에 대해 말할 경우에는 이것을 前六識이라 하고 그 體에 대해서 俱舍·唯識論에서는 體別이라 하고 成實論에서는 體一이라 한다. 欲界엔 前六識이 있지만 色界初禪에는 眼·耳·身·意의 넷, 제 2禪으로부터 有頂天까지는 意識만 있다 한다. 제 6意識의 略.
육경(六境) : 五官 또는 그 기능을 五根이라고 하고, 五根에 意根(마음, 十二處에서는 意處라고 한다)을 더하여 六根이라 하며, 六根의 對境을 六境이라고 한다. 곧 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意根의 각기 色境·聲境·香境·味境·觸境·法境의 6 이다. 六境은 六塵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티끌과 같이 마음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俱舍論 권一에 의하면,
색경(色境)에는, 靑·黃·赤·白·雲·烟·塵·霧·影·光·明·闇의 十二顯色 곧「빛」과, 長·短·方·圓·高·下·正·不正의 八形色 곧「形」이 있다.
성경(聲境)에는, 生物의 몸에서 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어, 그 각각에 事物의 理를 표시하는 의미가 있는 言語와 拍手·哭聲·管絃의 音·雷鳴 등의 言語가 아닌 소리가 있다. 이들의 각기에 快한 소리와 불쾌한 소리를 나누어서 8종으로 한다.
향경(香境)에는, 沈香과 같은 好香과 葱·韮와 같은 惡香이 있어, 그 각각에 알맞은 좋은 향기와, 지나치게 강렬한 등의 4종으로 나눈다.
미경(味境)에는, 苦·酢·鹹·辛·甘·淡의 6종이 있고,
촉경(觸境)에는, 堅·濕·煗·動의 四大에 滑·澁·重·輕·冷·饑·渴을 더하여 11종이 된다.
법경(法境)은 널리 이야기하면 일체법을 포함하고, 좁게 말하면 五境을 除한 남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곧 意根·意識은 六境의 전체에 향해 작용하는데, 특히 意根·意識만이 향하여 작용하는 대상을 法境이라 하고, 十二處중에서는 이것을 法處라고 한다. 有部에서는 無表色·心所·不相應行·無爲를 포함한다고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 : 阿賴耶는 범어 alaya의 音譯. 阿梨耶識이라고도 쓰고, 약하여 賴耶 · 賴耶識이라고도 한다. 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의 각 識)의 하나. 九識(八識에 阿摩羅識을 더함)의 하나. 無沒識 ·藏識이라 번역하고, 제8識 · 本識 · 宅識 등 가지가지의 명칭이 있다. 無沒識이라 함은 諸法을 執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며, 藏識이라 함은 諸法展開의 의지할 바탕이 되는 근본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이다. 또 八識의 최후에 두기 때문에 제8識, 諸法의 근본이기 때문에 本識이라고도 하고 따라서 諸識 중 특히 識主라고도 한다.
① 成唯識論 卷二에 의하면, 藏識의「藏」에 能藏 · 所藏 · 執藏의 三義가 있다. 이것을 賴耶三藏이라고도 藏三義라고도 한다. 能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展開生起하는 種子(能力·原因)를 攝持하고 감춘다는 의미이며, 所藏이라 함은 이 識이 諸法을 生起하는 種子를 諸法으로 훈습하여 감춘다(藏)는 의미이며, 執藏이라 함은 이 識이 末那 곧「思量의 뜻」을 가지고 스스로를 愛著한다는 의미이다. 增一阿含經에 의거해서, 阿賴耶에 愛 · 樂 · 欣 · 憙의 四義가 있다고 說하는(이것을 四阿賴耶라고 한다)것도 , 여기서 말하는 執藏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다.
② 能藏과 所藏의 관계는, 阿賴耶識이 그 種子의 작용에 의해서 諸法 곧 우리들의 현실세계를 만들어 가매(이런 경우, 阿賴耶識의 相分 곧 對境으로서의 객관적 境界는 종자와, 眼·耳·鼻·舌·身의 五根에 의해서 드러나는 육체와, 山河大地 등의 器界이며, 이것을 種根器라고 한다), 만드(作)는 것에 의해서 逆으로 諸法에서, 다시 새로이 諸法을 창조하고자 하는 종자를 自己 중에 轉變 · 變異 · 成熟시켜, 감추어(藏) 간다고 하는 相依相待 · 展轉 · 緣起의 관계이고, 執藏은 이와 같은 아뢰야식의 轉變이, 諸法에 있어서 자기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아뢰야식 스스로의 愛著 작용을 原動力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執藏은 확실히 아뢰야식의 自相이다. 또 아뢰야식은 과거에 있어서의 善·不善의 業의 결과(곧 異熟·果報)에 의해 끌리므로 이 점은 아뢰야식의 果相이며, 그래서 아뢰야식을 異熟識(곧 果報識)이라 한다. 또 아뢰야식이, 모든 法을 生起하는 種子를 감춘(藏)다는 점에서, 그 因相으로서의 의미에 의해 아뢰야식은 一切種識(또는 種子識)이라 불리워진다. 이를 自相 · 果相 · 因相을 賴耶의 三相이라고 한다. 唯識敎學은 이상과 같은 구조아래 일체를 아뢰야식의 變現으로서 唯心論을 樹立한다. 이것은 일체를 아뢰야식에서 緣起한 것이라고 說하기 때문에, 이것을 賴耶緣起라고 한다.
③ 아뢰야식의 自相은 凡夫로부터 보살의 제7地까지, 二乘이면 有學의 聖者位에 있는 자가 갖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我愛執藏現行位라 한다. 보살의 八地이후 또는 二乘의 無學은 我執이 없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그 自相을 버리는데, 다만 異熟識인 果相이 남는다고 하며, 이 자리를 善惡業果位라고 한다. 佛果에 이르면 異熟識의 果相도 떨어지는데, 有情利益을 행하기 위해 일부러 諸法의 종자 및 五根을 執持하여 버리지 않고 相續케 한다고 하며, 따라서 種子識인 因相만이 남는다. 이 자리를 相續執持位라고 하다. 이상을 賴耶의 三位라 한다. 그러므로 아뢰야식은 범부로부터 부처가 되는 轉迷開悟의 道가 되는 것으로서, 如實히 그 相을 알아야 할 것이고, 그 의지해야 할 곳이기 때문에, 아뢰야식을 所知依라고 한다.
④ 특히 아뢰야식을 轉迷開悟의 要道로 論究함에 있어 아뢰야식은 번뇌에 의해 더럽혀진 妄識인가, 自性으로서 淸淨한 眞識인가가 중국불교 敎學에서 문제가 되어, 唯識宗은 妄識의 입장을 취하고, 華嚴宗은 起信論에 의해서 眞妄和合識의 입장을 취했으며, 地論宗은 眞識의 입장을 취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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