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기역)~ㄴㄷ(디귿)

견소단(見所斷)

근와(槿瓦) 2018. 8. 13. 00:22

견소단(見所斷)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번뇌를 끊는 수행의 계위상으로 표시하는 三斷중의 하나. 見道에서 끊는 것이니 소승에서는 88使의 수면번뇌와 이 에 부수하여, 또는 이 으로부터 일어나는 有漏法이고, 대승에서는 邪師·邪敎·邪思惟로 일어나는 후천적인 煩惱障所知障을 말함. 見惑을 가리킴.

 

참고

번뇌(煩惱) : 범어 klesa의 번역. 吉隷捨로 음역하고, 이라고도 번역한다. 중생의 몸이나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고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정신작용의 총칭. 그 성질은 不善 有覆無記이다. 중생은 번뇌에 의해서 업을 일으키고, 괴로움의 를 받아 미혹의 세계(生死)에 매어 있게 된다. 이것을 惑業苦三道라 한다. 그래서 불교는 번뇌를 끊고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번뇌는 그 작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는다. 隨眠·(이치에 어둡고 現象의 세계에 대해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것··結使·····暴流····使··株杌·燒害··稠林(번뇌의 수가 많은 것을 무성한 삼림에 비유한 것塵勞·塵垢·客塵·諍根(다툼의 근본)이라고도 하고, 또 번뇌의 그것을 正使(다만 使라고도 한다), 를 멸해도 역시 남아있는 관습의 기운을 習氣라고 한다. 모든 번뇌는 因力(아직 번뇌가 끊기지 않은 것境界力(욕심 등에 순응하는 대상이 나타나는 것加行力(대상에 대해서 非理·作意를 일으키는 것)에 의해서 일어난다고 한다.俱舍論 卷二十혹은 境界力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도 있다고도 한다.入阿毘達磨論 卷上

구사종이나 유식종에서는 번뇌를 근본번뇌와 枝末번뇌의 두 번뇌로 나눈다.

근본번뇌라 함은 번뇌의 그것으로서, 모든 번뇌의 근본이 되는 번뇌로, 本惑·根本惑 혹은 다만 번뇌라고도 부르며, 有部에서는 隨眠이라고도 한다. 經部에서는 隨眠을 번뇌의 종자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서 번뇌의 現行(현재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이라 한다. 유식종에서도 隨眠이란 번뇌의 종자를 가리킨다고 말하며, 근본번뇌에 ·····(惡見)번뇌(六隨眠)가 있는데, 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五見으로 나누어 등의 다섯과 합해서 번뇌(隨眠, 十使)라고 한다. 이 가운데 등의 다섯은 推察尋求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그 작용이 느리고 둔하기 때문에 五鈍使(五惑), 五見推察尋求하는 성질이 있고 그 작용이 빠르고 날카롭기 때문에 五利使라고 한다. 六隨眠 가운데 欲界의 탐과 上二界(색계·무색계)으로 나누어 이것을 각각 欲貪·有貪이라고 하며 합하여 七隨眠(七使)이라 하고, 혹은 十隨眠 중에 을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로 나누어 欲貪·色貪·無色貪으로 하고 十二隨眠(十二使)이라고도 한다. 唯識宗에서는 십종의 근본번뇌 가운데 제七識과 상응하여 항상 일어나는 我癡(無我의 이치에 미혹하여 나의 에 어두운 번뇌로 無明을 말함我見(我執을 말하며 有身見의 일부我慢(나를 집착하고 나를 믿고 우쭐하는 거만我愛(나를 집착하여 나에 탐착하는 것)의 넷을 四煩惱(四根本煩惱, 四惑)라고 한다. 또 탐··치는 모든 악을 낳게 하는 근본()이며, 대표적인 번뇌이기 때문에, 三不善根·三毒·三垢·三縛 등이라고 한다.

지말번뇌라 함은  근본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종속적인 번뇌로, 隨惑·枝末惑·隨煩惱라고도 한다. 단 수번뇌란 말은心王에 붙어다니는 번뇌란 뜻으로 풀어 근본번뇌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지말번뇌에는, 구사종에서는 放逸·懈怠·不信·惛沈·掉擧·無慚·無愧·忿··········睡眠·惡作十九를 말하며, 유식종에서는 睡眠·惡作을 버리고 失念·散亂·不正知를 더하여 二十으로 하기도 한다.

俱舍宗 등에서는 迷理·迷事二惑을 나누어, 불교의 보편적인 진리 곧 四諦의 이치에 迷惑하고 있는 思想上知的인 번뇌를 迷理이라 하고, 구체적인 개개의 事象에 미혹한 바의, 곧 인간성에 바탕한 情意的인 번뇌를 迷事이라고 한다. 自相·共相二惑을 나누어서, ·등 각자 개개의 특수한 고유의 (自相)해서 각각의 법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번뇌를 自相이라 한다. ·無我 三世의 모든 것에 공통된 (共相)함으로 많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번뇌를 共相이라 한다. 앞의 것에는 ··또는 ····이 있고 뒤의 것에는 五見··無明이 있다고 한다. 唯識宗에서는 煩惱障·所知障二障을 나누어, 我執에 의해 일어나서 중생을 미혹의 세계(生死)流轉시킴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煩惱障이라고 하며, 法執에 의해 일어나서 알아야 할 대상인 진리를 막음으로 보리를 깨닫는 길을 방해하는 所知障이라 한다. 번뇌장은 일체의 번뇌를 로 하고 반드시 所知障을 수반한다. 번뇌장은 所知障依支處로 하기 때문이다. 所知障은 함께 번뇌를 로 하지만, 반드시 번뇌장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發業(주로 다음에 말하는 分別起의 혹으로 특히 제六意識相應無明이 그것이다)이라고 하고 이에 대해서 迷界의 중생을 윤택하게 하고 삼계의 중생을 받게 하는 혹을 潤生의 혹(다음에 말하는 俱生起의 번뇌로 특히 제六意識相應로 한다)이라고 한다. 또 어떻게 해서 번뇌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서 나누면, 二障 공히 각기 분별기와 구생기가 있다. 邪師·邪敎·邪思惟 등 밖으로부터의 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을 분별기의 혹이라고 하며, 태어나면서부터 자연히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을 구생기의 혹이라고 한다. 근본번뇌중에서, 의심과 邪見見取見戒禁取見과의 는 분별기뿐이며, 다른 二十隨惑은 양쪽에 모두 공통한다.

번뇌를 끊어야 할 수행단계의 相異에 따라 번뇌를 나누면 見惑修惑(思惑)二惑이 있다. 전자는 見道에 의해서 없애야 할 번뇌(見道所斷)이며 후자는 修道에 의해서 끊어야 될 번뇌(修道所斷)이다. 俱舍宗에서는 迷理見惑, 迷事修惑이라고 하고, 唯識宗에서는 分別起見惑, 俱生起修惑이라 한다. (1) 俱舍宗에서는 三界 四諦의 각각을 대상으로 하여 일으키는 見惑에 총 八十八이 있다. 欲界苦諦에 관해서는 근본번뇌와 集諦滅諦에 관해서는 身見·邊見·戒禁取見을 뺀 근본번뇌, 道諦에 관해서는 戒禁取見을 더하여 근본번뇌가 있으므로, 합하면 欲界三十二, 色界·無色界에는 이 없기 때문에 四諦의 하나하나에 을 뺀 각 二十八, 計 八十八이 된다. 이것을 見惑八十八使라고 한다. 修惑欲界···, 色界·無色界에 각기 ··의 셋이 있어 합하면 열이 되므로 여기에 見惑八十八을 더하면 九十八隨眠 또는 九十八使라고 한다. 修惑은 성질이 遲鈍애매하여 분명히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九地의 각 위에 강약의 정도에 따라 九品(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아홉 品階)의 구별을 세워, 九地九品思惑, 修惑 八十一品 등이라고 한다. 九十八使遍行非遍行으로 나눈다. 遍行이라 함은, 三界九地 중에서 自界自地五部(見道에 있어서 四諦觀行과 이것을 거듭하여 닦는 修道)에 널리 작용하여 五部을 더럽히는 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 五部 중의 自部에만 작용하는 非遍行이라고 한다. 九十八隨眠 중에서 널리 五部의 모든 有漏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고, 널리 그것들과 隨順하고 그것들에 의해서 더욱 더 增長하고(隨增하고), 이 되어서 널리 五部染法(번뇌 등의 染汚法)을 낳게 하는 힘이 강한 遍行으로 三界의 각각에 있어서 苦諦에 헤매는 五見··無明集諦에 헤매는 邪見·見取見··無明과의 十一이 있다. 이것을 十一遍行이라 한다. 이 중 ·二見은 다만 自界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自界緣이라고 하지만 나머지 다른 아홉은 自界는 물론 또 다른 上界까지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他界緣이라고 하고, 이 아홉은 上界上地까지도 이 있다고 하는 의미로 九上緣이라고도 한다. 九十八使有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有漏緣無漏法을 대상으로 하는 無漏緣으로 나누면 滅道二諦邪見(邪見·에 상응해서 일어나는 相應無明과 및 독립으로 일어나는 不共無明)六惑無漏緣이며, 그밖의 것은 有漏緣이다. (2) 唯識宗에서는, 見惑에는 欲界四諦 각각에 근본번뇌(欲界四十), 색계·무색계에 성냄()을 뺀 근본번뇌(色界三十六·無色界三十六) 百十二번뇌를 들고, 修惑에는 欲界·邪見·見取見·戒禁取見을 뺀 근본번뇌, 색계·무색계에 각기 다시 을 뺀 각 근본번뇌, 計 十六번뇌를 들므로 見修二惑을 합하여 百二十八번뇌가 된다.

知的五利使見惑 등을 見煩惱라고 하고, 情意的五鈍使修惑 등을 번뇌라 하며, 합하여 見愛()번뇌, 見著二法, 愛見이라고 한다. 虛假(헛소리)이기 때문에, 見假·愛假라고도 한다. 勝鬘經에는 四住地번뇌의 이 있다. 번뇌는 見道에 있어서 한때에 끊겨지기 때문에 見一處住地(一切見住地)이라고 부르고 번뇌는 이것을 三界에 나누어 각기 欲愛住地, 色愛住地·有愛住地이라 부른다. 또 이 넷에 다시 모든 의 근본이 되는 無明(無明住地)을 더하여 五住地번뇌, 五住地惑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五住地번뇌 중 앞의 넷은 煩惱障의 종자이며, 뒤의 하나는 所知障의 종자라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전자를 界內見思, 후자를 界外이라고 한다. 대개 住地라 함은 다른 모든 이 일어나고 의지처가 되며() 을 일으키는 이 된다는 뜻이다. 智度論 卷七에는, 자신에 집착하는 번뇌를 內著번뇌, 外境에 집착하는 번뇌를 外著번뇌라 하며, 전자는 五見··, 후자는 ·에 속한다고 한다.

天台宗에서는 見思·塵沙·無明三惑(三障·三垢)을 말함. 곧 우선 見惑修惑(思惑)見思이라고 부르며, 다음에 티끌()이나 모래()에도 비유할 만큼의 무수한 사물의 하나하나의 事理劣慧(번뇌의 習氣不染汚無知라고도 한다)로 하고, 다른 것을 化導하는 것을 막는 塵沙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모든 의 근본으로, 中道 第一義諦의 도리를 한 가장 적은 번뇌를 無明이라 부른다. 각각 空觀·假觀·中觀에 의해서 끊긴다고 한다. 三惑을 번뇌장·소지장에 配對하면 見思는 번뇌장, 塵沙·無明은 소지장에 해당한다. 見思三乘에 공통하는 이므로 通惑·塵沙·無明은 특히 보살만이 끊는 이기 때문에 別惑이라고 부르고(通別二惑), 見思三界안에서 일으키는 이므로 界內, 無明三界를 넘은 곳에 있는 이기 때문에 界外, 塵沙는 양쪽 모두 통하므로 界內界外이라고 한다. 見思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사물의 을 집착하여 취하는 번뇌이기 때문에 따로 取相이라고 말하는데, 넓은 뜻으로는 뒤의 二惑도 또한 取相이라고 한다.

번뇌에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다. (1) 三縛. 貪縛·瞋縛·癡縛. 이상의 차례로 ··三受對境을 향해서 일어난다. (2) 三漏. 欲漏(를 뺀 欲界繫의 근본번뇌 및 十纏有漏(를 뺀 上二界繫의 근본번뇌로 이 경우의 有身의 뜻. 의 존재를 말한다. 無漏에 대한 有漏는 아니다無明漏(三界). (3) 三結. 有身見結·戒禁取結·疑結. 五見 근본번뇌가 이 중에 포함된다. 三結이 다하면 預流果에 이른다라고 한 經說에 따라 三結이 다하면 그 때 見惑의 모든 것이 끊어진다고 한다. (4) 四暴流(四流). 欲暴流·有暴流·見暴流·無明暴流. 三漏의 분류법에서 을 독립시킨 것. (5) 四軛. 四漏. ···無明의 넷으로 惑體四暴流와 같다. (6) 四取. 欲取·見取·戒禁取(戒取我語取. 俱舍宗에서는 欲界五鈍使 十纏欲取, 五利使 중 앞의 넷을 見取, 戒禁取見(), 上二界···我語取라고 한다. 이어라 함은 내신(자기의 몸)을 말한다. 내신에 의해서 나를 설하기 때문이다. 상이계의 번뇌는 대개 내신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아어취라고 부른다. (7) 四身繫(四身縛·四縛·四結이라고도 한다). 貪欲身繫(貪欲身縛·欲愛身縛瞋恚身繫(瞋恚身縛戒禁取身繫(戒禁身縛此實執取身繫(我見身縛). (8) 五蓋. 欲貪蓋·瞋恚蓋·惛眠蓋·掉悔蓋·疑蓋. 가 섞이지 않는 것을 疑蓋無雜이라고 하는 말도 여기에 연유한다. (9) ()下分結. 有身見·戒禁取見··欲貪·瞋恚. 下分이라 함은 欲界란 뜻. (10) ()上分結. 色貪·無色貪·掉擧··無明. 上分이라 함은 上二界란 뜻. (11) 五結. ····. (12) 六垢(六煩惱垢). ·····. 煩惱垢라 함은 근본번뇌에서 흘러나와 그 모습이 더러워지고 거칠다는 뜻. (13) 七流. 見諦所滅流·修道所滅流·遠離所滅流·數事所滅流·捨所滅流·護所滅流·制伏所滅流(華嚴孔目章 卷三 ) (14) 九結. 愛結·恚結·慢結·無明結·見結·取結·疑結·嫉結·慳結. (15) 十纏. 無慚·無愧···惡作·睡眠·掉擧·惛沈·忿·등의 . 忿·을 빼고 八纏이라 하는 경우가 있다. 枝末번뇌 중에 六垢는 가볍고, 十纏은 무겁다. 九十八隨眠十纏을 더해서 百八번뇌가 된다고 하고, 또 모든 번뇌를 다 말하면 八萬四千의 번뇌가 있다고도 한다.

번뇌를 여의는 것을 離垢, 번뇌가 없는 것을 無垢, 번뇌가 다한 것을 漏盡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漏盡比丘, 漏盡하여 마음에 진리를 了解하는 것을 盡漏意解라고 한다.

 

수행(修行) : 敎法을 몸에 지녀 갈고 닦아 실천하는 일.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찾는 마음을 발하여(發心), 願望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하고, 그 결과로서 깨달음을 펼친다고 한다. 수행이란 특히 頭陀苦行 또는 廻國巡禮란 뜻으로 쓰고 이를 행하는 사람을 修行者, 또는 行者라 부르기도 한다. 성문 · 연각 · 보살이 각각 究極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에 대하여 성문은 三生六十劫, 연각은 四生百劫, 보살은 三祇百劫을 요한다고 한다.

(1) 三生六十劫이란, 성문이 아라한과에 이르기까지 가장 빠른 것은 세번 태어나는 기간을 지내고, 가장 늦는 것은 60(刀兵등의 1小劫)을 지낸다고 한다. 一生 또는 처음 20에는 順解脫分을 일으키고, 二生 또는 다음의 二十劫에는 未至定에 의하여 順決擇分를 일으키고, 三生 또는 마지막 20에는 根本定에 의하여 다시  順決擇分 를 일으켜 見道에 들고 마침내는 無學果를 증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제三生에서 처음으로  順決擇分 를 일으킨다고 하는 도 있다. 또한 빠른 것은 利根, 늦은 것을 鈍根이라 하나, 거꾸로 늦은 것은 오랜 鍛鍊을 참아낼 수 있는 練根으로서의 利根이라고 할 수도 있다.

(2) 四生百劫이란 연각이 辟支佛果에 이른는데 가장 빠른 것은 四生, 가장 늦은 것은 百劫을 요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俱舍論> 十二에는, 麟角喩獨覺(緣覺)은 반드시 百大劫 기간에 깨달음의 바탕을 닦는다고 설명하고, 四生을 설명하지 않는다.

(3) 三祇百劫이란, 三祇3아승지겁(三僧劫, 三祇劫이라고도 함), 百劫百大劫의 약어로서 三僧劫百大劫이라고도 하고, 보살은 3아승지겁에 걸쳐 波羅蜜을 닦고 그후의 百大劫에 있어서 부처가 갖출 수 있는 뛰어난 姿形(32 · 80種好)의 씨앗이 되는 相好業을 심는다고 하고 이들 수행을 三祇修行, 이 수행을 거쳐 성불하는 것을 三祇成佛이라 한다.

<大毘婆沙論> 百七十八에는, 보살이 아승지겁에 75, 아승지겁에 76, 아승지겁에 77이라는 수많은 부처님을 섬겨 깨달음에 이르는 근본으로 삼고, 계속하여 916을 섬겨 異熟業을 닦아 왕궁에 태어난 후, 34心斷結成道를 설하였고,

<智度論> 二十七 같은 데에도 三祇百劫이 있으며,

<攝大乘論> 에서는 三祇만을 설하고 百劫을 별도로 하지 않고 있다.

法相宗에서는 아승지겁은 五位 중의 資量 · 加行二位이며, 여기에서는 一行 속에서 一行을 닦고, 아승지겁은 通達位 修習位1, 初地에서 7까지이며, 여기에서는 一行 속에서 一切行을 닦고, 아승지겁은 修習位의 나머지 즉 8에서 10滿心까지이며, 여기에서는 一切行 속에서 一切行을 닦는다. 그리하여 10滿心에 있어서 等覺에 올라 여기에서 비로소 成佛을 위한 方便을 닦는 것이 百劫에 해당된다. 또한 三祇의 수행중에 열심히 노력하여 뛰어난 사람은 중간 단계를 뛰어 넘어 높은 修行階位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하여 이것을 超劫이라고 하는데 初地 이상에서는 超劫이 없다고 하는 도 있다.

화엄종이나 천태종에서는, 三祇百劫, 小乘 下根인 사람을 위한 方便的로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兩宗이 각각 圓敎라고 하는 최고의 차원에서 본다면, 중생은 본래적으로 부처이므로 三祇라는 시간의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眞言宗에서는 三劫妄執(三妄執)一念으로 초월할 것을 설하고, 淨土敎에서는 本願의 힘에 의해 왕생하여 成佛이 되는 것이므로 三祇修行을 설하지 않는다.

 

계위(階位) : 위치나 지위의 단계.(다음,한국어)

 

삼단(三斷) :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는데 있어 3단계의 階位. 見所斷·修所斷·非所斷이 그것.

(1) 見所斷. 見道에서 끊는 것으로, 小乘에서는 88使睡眠煩惱와 이 에 따라 또는 이 으로부터 일어나는 有漏法이고, 大乘에서는 邪師·邪敎·邪思惟로 일어나는 후천적인 煩惱障所知障을 말한다.

(2) 修所斷. 修道에서 끊는 것으로, 小乘에서는 81종의 번뇌와 이 에 따라, 또한 이 에 의하여 일어나는 有漏法이고, 大乘에서는 본능적으로 자연히 일어나는 煩惱障所知障을 말한다.

(3) 非所斷. 見道修道에서 모두 끊기지 않은 有爲無爲에 통한 無漏法을 말한다.

끊는 성질에 대하여 自性斷·緣縛斷·不生斷의 셋으로 나눈 것.

(1) 自性斷. 無漏眞知가 일어날 때에 번뇌의 自性을 끊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2) 緣縛斷.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55등 그 밖의 다른 無記法를 끊는 것이 아니고, 覺者55은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함.

(3) 不生斷. 하는 을 끊어서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라 한다. 앞의 2으로 얻는 無爲法擇滅無爲라 하고, 뒤의 一斷으로 얻는 無爲法非擇滅無爲라 한다.

 

견도(見道) : [修道] · [無學道] 修行의 한 階位. 합하여 三道라고 한다. 見道見諦道, 見諦라고도 말하고, 비로소 無漏道를 얻어 四諦(佛敎眞理)現觀하는(明了하게 본다) . 따라서 見道에 도달하기 이전은 凡夫(異生)이고, 見道에 들어간 뒤는 聖者이다. 修道見道 뒤에 다시 구체적인 事象에 대처하여 몇 번이고 되풀이 해서 修鍊 · 修習하는 . 見道修道를 합하여 有學道라고 하며, 이에 대해 無學道無學位 · 無學果 · 無學地라고도 하고, 궁극적 최고의 깨달음에 들어가서, 이미 배울 것이 없는 를 말한다. 小乘에서는 三賢 · 四善根 등의 준비적 修行(七方便)을 닦은 사람이 비로소 無漏智를 얻어 見道에 들어간다고 하며, 大乘에서는 初地 入見道라 하여 보살의 初地見道, 第二地 이상을 修道, 第十地佛果無學道라 하고, 密敎에서도 淨菩提心이 처음으로 생기는 자리를 見道라고 한다. 無漏智에서 道理를 명확히 가려내는 것(決斷簡擇한다)決擇이라 하며 見道決擇의 일부분이므로 決擇分이라 하고, 또 열반의 깨달음 혹은 그에 이르기 위한 聖道가 아니므로 正性이라고 하지만, 특히 見道正性이라 한다. 모든 聖道는 번뇌를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하지만, 특히 見道異生(凡夫)을 여의게 하므로 離生이라 한다. 따라서 見道正性離生 · 正性決定(決定이란 반드시 열반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見道에서 끊는 번뇌를 見道所斷(또는 見道斷, 見所斷)의 번뇌, 약하여 見惑이라고 하며, 修道에서 끊는 번뇌를 修道所斷(또는 修道斷, 修所斷)의 번뇌, 약하여 修惑이라 한다.

有部에서는, 見道에서 · · · 四諦現觀하는 無漏智로써 틀림없이 見惑을 끊는다고 한다. , 無間道()와 끊은 뒤에 四諦의 진리를 깨닫는 解脫道가 있고, 이것을 觀察의 대상에 따라 八忍八智十六心이라 한다. 欲界苦諦에 관한 無間道苦法智忍, 欲界苦諦에 관한 解脫道苦法智라 하고, 이와 같이 色界 · 無色界苦諦에 관한 苦類智忍 · 苦類智, 마찬가지로 欲界에 대한 集法智忍 · 集法智, 上二界에 대해서는 集類智忍 · 集類智, 欲界에 있어서의 滅法智忍 · 滅類智, 欲界道法智忍 · 道法智, 上二界道類智忍 · 道類智를 세우고 이 十六心(刹那)觀法聖諦現觀이라 한다. 이 가운데 前十五心까지가 見道이고, 十五心見道十五心이라 한다. 道類智四諦眞理를 다 안 뒤의 지혜이므로 修道에 속한다고 한다. 修道三界 九地修惑의 각각에 대하여 上上品으로부터 下下품까지의 九品을 합한 八十一品修惑을 끊는 修道과정이다.

次第證의 편에서의 見道預流向이므로 第十六心(道類智)에 있어서 初果(預流果)를 깨닫지만, 이미 異生位(凡夫位)에서 世俗智에 의해 有漏六行觀을 닦는 修惑의 일부를 끊은 超越證第十六心에서 그 정도에 따라 初果 · 第二果(一來果) · 第三果(不還果)를 깨닫는다고 했고, 修道란 그 로부터 각각 阿羅漢向까지를 말한다. 無學道阿羅漢果를 깨닫는 자리를 말하고, 여기에 능력 · 성질 등의 高下에 따라, 退法 내지 不退法七種阿羅漢獨覺 · , 또는 慧解脫 · 俱解脫을 더한 九無學이 있다고 하며, 無學人無學正見 내지 無學正定八聖道와 및 無學解脫 · 無學正智의 열가지의 無漏法(十無學支)을 완성한다고 한다. , 鈍根見道에서 隨信行, 修道에서 信解, 無學道에서 時解脫을 얻는다고 하지만 利根은 차례로 각각 隨法行 · 見至 · 不時解脫을 얻는다고 한다.

經部成實論에서는 八忍八智十六心이 모두 見道에 속한다고 해서 十六心見道(十六心見諦)을 취하고, 犢子部에서는 一諦에 대해 法智 · 法忍(有部과는 별도) · 類智三心이 있다고 하여 十二心見道을 취하고, 第十三心은 최후의 道類智가 앞의 刹那에 이어 다시 일어난다고 하고, 혹은 一刹那로써 四諦의 모두를 다시 한다고 하며, 第十三心부터가 修道位라고 한다. 大衆部에서는 頓現觀을 주장하여 四諦의 모두를 한 찰나에 깨닫는다고 하고, 혹은 一時頓現觀을 세워 먼저 총괄하여 하고 다음에 상세히 하므로 二刹那에 깨닫는다고도 한다. 이에 대해 有部漸現觀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見道眞見道相見道로 나눈다. 전자는 根本(無分別)를 일으켜 眞如의 이치를 깨닫고, 煩惱障 · 所知障의 분별의 隨眠을 끊는 자리이다. 이것은 一心眞見道(頓證頓斷說)이다. 相見道眞見道를 얻은 뒤에 後得智를 일으켜 다시 眞如하는 자리로, 이것은 더욱 더 三心相見道(첫째 자기의 육체를 觀察하여 我空 有情으로서의 我體가 없음을 깨닫고, 둘째로 이와 같이 法空 곧 모든 것에는 實體가 없음을 깨달으며, 셋째로 自他의 모든 有情의 온갖 것을 觀察하여 我空法空을 깨닫는 것)十六心相見道(十六心으로 四諦한다)로 분류된다. 三心相見道眞見道에 포함시켜 三心眞見道(漸證漸斷說)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見道에 있어서 見惑을 끊어서 無分別智를 얻지만, 아직 餘障이 있기 때문에 修道를 하여 더욱 無分別智를 닦고 익혀 차례로 十重障을 끊고, 第十 金剛無間道에서 煩惱障所知障의 종자를 끊어 없애고 無學果를 깨닫는다. 三道五位에 비교하면, 見道通達位, 修道修習位, 無學道究竟位에 해당한다.

 

소승(小乘) : 범어 hinayana. 은 싣고 운반하는 뜻.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가 되기에는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수레라는 뜻. 대승의 . 이 교법 중에서 ···가 모두 深遠 광대하고, 따라서 수행하는 사람도 大器利根機類를 요하는 것을 대승이라 하고, 이와는 달리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구하는 것을 소승이라 한다. 소승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이 있다.

(1) 聲聞乘. 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한다.

(2) 緣覺乘. 12인연을 하여 辟支佛果에 이르는 것을 敎體로 한다. 이것은 모두 몸을 태우고 를 멸하여 空寂 열반의 깨달음으로 돌아가는 것을 최후 목적으로 생각한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100년에 上座部大衆部로 분열하였고, 이 대중부는 또 다시 9부로, 上座11부로 나뉘어져 결국 도합 20부가 되었다. 스승이나 지역 관계가 분열의 원인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분열은 한편으로 교세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 부의 敎義는 서로 영향을 받았으며, 거기다가 이상적 질서를 부여한 것은 중국의 敎判으로, 窺基八宗判, 法藏十宗判 등이다. 이 이름은 대승이 有部煩瑣 연구를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데서 비롯한다. 대표적인 부파는 有部·經量部·正量部·大衆部 등이다. 인도의 상좌부·대중부 등의 20분파와 東土의 구사종·성실종·율종 등이다.

 

팔십팔사(八十八使) : 使驅使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欲界 苦諦 밑에 ··戒禁取·見取·5····10使가 있다. ·2밑에 身見·邊見·戒禁取見을 제한 7使가 있다. 道諦 밑에 身見·邊見을 제한 8使가 있어 합 32使이다. ·無色 兩界四諦 밑에 欲界 四諦의 각 使에서 각기 瞋使를 제한 나머지 28使가 있어 兩界合 56使가 되고 三界를 합하면 88使가 된다.

 

수면번뇌(隨眠煩惱) : 수면(隨眠)범어 anusaya의 번역. 煩惱의 별명. 번뇌는 우리를 궁지에 몰아넣어서 身心을 잠들게 한다. 그 활동하는 상태는 아주 미세하여 알기 어려우며 또 對境이나 相應心 · 心所와 서로 영향을 가지고 더욱 강하게 된다(隨增). 사람을 번뇌로 묶어 버리므로(隨縛) 隨眠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 · · 無明() · (惡見) · 의 여섯 가지가 있어 6隨眠(六根本煩惱)이라 한다. 이 중에서 欲貪有貪으로 나눠 7隨眠이라고도 한다. 五見으로 나눠 10隨眠이라 한다. 이것을 다시 세분하여 九十八隨眠이라고 한다. 唯識宗에선 번뇌를 곧 隨眠이라고 하지 않고 이것을 번뇌의 習氣 種子를 가리켜서 번뇌의 종자가 우리의 아뢰야식에 가만히 들어와서 잠재하고 있다 한다. 經部에서도 번뇌가 생겨 활동하는 자리를 이라 하고 이에 대해 번뇌가 숨어서 잠자고 있는 상태에 있는 종자를 隨眠이라고 한다.

 

() : 깨달음을 장애하는 迷妄의 마음. 證悟와 반대되는 것. 곧 번뇌를 말한다. 번뇌는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는 것이므로, 이라 한다. 仁王經合疏 中이라 하는 것은 미망의 마음이다하였음.

 

유루법(有漏法) : 無漏法의 반대. 번뇌가 있는 법. 有爲法과 같음. 四諦에 있어 苦集 二諦의 법에 해당함.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때를 여읜 청정한 을 말함. 三乘의 성인이 얻는 戒定慧와 열반을 말함.

 

대승(大乘) : 摩訶衍那·摩訶衍이라 음역하며, 上衍, 上乘이라고도 한다. 은 타는 것이란 뜻이며, 迷惑此岸으로부터 깨달음의 彼岸에 이르는 敎法을 가리킨다.

阿含經에서는 불타의 가르침을 존중하여 大乘이라 했다.

대승·소승이란 말은 釋尊入滅 후 그 言行傳承을 중심으로 불교(原始佛敎)로부터 그 註釋的 硏究의 불교(部派불교)가 전개되는 것과 동시에 따로 보살도를 하는 불교(대승불교)가 또한 발달되었는데, 이때에 후자의 敎徒가 자신들이 받들고 있는 殊勝한 것으로 규정하여 대승이라 불렀으며, 전자를 낮추어서 小乘이라 이름하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전자의 敎徒로부터는 대승은 부처님이 말씀한 가 아니라고 非難하는 이른바 大乘非佛說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思想史的으로 보면 小乘大乘敎學의 기초 내지 前驅라고 하는 의미를 갖는다.

소승은 자신의 解脫만을 목적으로 하는 自調自度(調는 번뇌를 制伏하여 없애는 것. 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聲聞·緣覺이며, 대승은 涅槃의 적극적인 의미를 인정하여 自利·利他兩面을 다 갖춘 보살의 도라 할 수 있다.

小乘에는 반야경·四分律·五分律 등의 , 婆沙論·六足論·發智論·俱舍論· 成實論 등이 있고, 대승에는 般若經·法華經·華嚴經 등의 中論·攝大乘論· 大乘起信論 등의 이 있다.

대승이 殊勝한 이유로서, 菩薩善戒經 卷七등에서는 , 世親攝大乘論釋 卷六에서는 十一을 들고 있는데, 보살선계경에서 말하는 七大乘이란 十二部經 가운데 最上의 경인 毘佛略에 기초를 두고(法大), 菩提心을 일으켜서(心大), 그 교를 이해하고(解大), 청정한 마음으로(淨大), 보살의 복덕과 지혜가 몸에 나타나며(莊嚴大), 三大阿僧祗劫의 수행을 쌓아(時大), 마침내 相好를 갖추며 無上菩提를 얻는 것(具足大)이라고 했다.

印度의 대승에는 대략 中觀·瑜伽2系統과 밀교가 있다.

중국에서는 대승의 諸經論에 기초한 많은 敎派(三論·涅槃·地論·淨土··攝論·天台·華嚴·法相·眞言 등의 諸宗)가 있어서 각각 自宗의 우월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 대승에 관한 종종의 구별을 세웠다. 예컨대 진언종에서는 顯敎·密敎, 華嚴宗이나 천태종에서는 대승(대승 가운데 方便에 해당하는 五性各別을 세운 대승(대승 가운데 眞實敎. 모든 중생이 成佛하게 된다는 가르침)등으로 나누어진다. 有相大乘·無相大乘2종대승, 혹은 法相·破相·法性3大乘으로 나누는 이 있다.

우리 나라·중국·일본의 불교는 전통적인 대승불교이며, 서장불교, 몽고의 라마교 등도 대승의 계통에 속한다. 미얀마·태국·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대승교도로부터 고래로 小乘으로 불리워 온 계통에 속하는 불교다.

천태종에서는 小乘에는 經律論三藏이 확실히 구별되어 갖추고 있는 점에 비추어 小乘敎三藏敎(藏敎)라 일컫는다.(화엄종에서는 小乘敎라 이름한다). 또 천태종에서는 小乘 가운데 有門(發智論·六足論 )空門(成實論), 그리고 亦有亦空門(毘勒論, 이 논은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非有非空門[迦旃延經(가전연경),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음四門이 있다고 하고 이것을 小乘敎四門 또는 小乘四分이라고 했다.

智顗(지의)金光明玄義에는 理乘(모든 存在本質眞如 理性隨乘(對象隨應해서 작용하는 智慧得乘(스스로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證果)三大乘했는데 이것은 順次眞性·觀照·資成三軌에 해당시킨 분류다. 起信論에는 大乘本體衆生心이라고 記述하고 있다.

 

번뇌장(煩惱障) : 번뇌장은 惑障이라고도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 聖道를 방해해서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번뇌를 말함.

俱舍論 卷十七, 卷二十五에서는 자주 일어나는(數行의 것으로) 無漏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여, 慧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煩惱煩惱障이라고 하고, 煩惱障을 여의어 慧解脫을 얻어도 滅盡定을 얻는 것을 방해하여 俱解脫을 얻지 못하게 하는 장애를 解脫障(定障)이라고 한다. 前者染汚無知, 後者不染汚無知로 한다고 볼 수 있다. 大毘婆沙論 卷百四十一에서는, 煩惱障染汚無知, 所知障不染汚無知라고 하는 것처럼 각각 四正斷前二 · 後二로 끊어진다고 한다.

成唯識論 卷九에서는, 중생의 身心을 교란시켜 열반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煩惱煩惱障, 을 일으키어 三界(의 세계)에 나게 하는 작용이 없지만, 알아야 할 대상을 덮어서 正智가 생기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所知障(智障)이라고 한다. 二障은 어떤 것이나 薩迦耶見을 비롯해서 百二十八의 근본번뇌 및 二十隨煩惱로 한다. 그 가운데서실체의 사람, 실체의 중생이 있다고 하며 나를 집착하는 [我執] 면을 煩惱障이라고 하며,사물에는 실체가 있다고 하여 을 집착하는 [法執]면을 所知障이라 한 것으로서, 동일한 번뇌의 二面이다. 그러므로 煩惱障我執을 근본으로 하고, 所知障法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그 작용의 특징에서 말하면 煩惱障은 열반을, 所知障菩提를 장애한다. 煩惱障은 열반을 장애하는 正障이며 所知障은 이 正障에 힘을 주어 장애시키는 兼障이기 때문에 所知障만으로는 열반을 장애하는 능력이 없다. 煩惱障肋緣으로 하여 分段生死를 받고, 所知障肋緣으로 하여 變易生死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二乘煩惱障만을 끊은 자리()理想果位로 하지만 보살은 二障을 다 같이 끊어서 佛果를 얻는 것을 理想으로 한다. 그것은 보살에 있어서는, 所知障三界果報를 이끄는 일은 없지만 곧잘 無漏業을 도와서 變易生死를 받게 하기 때문이다.

大乘義章卷五에서는 五住地에 대해서 前四煩惱障, 최후의 無明住地智障이라 한다 등의 세 주장을 들고 있다.

世親金剛般若波羅蜜經論卷上에는 見思煩惱障이라 하고, 이를 끊고 얻는 無諍三昧에 집착하는 것을 三昧障이라 했다.

 

소지장(所知障) : 唯識宗에서 세운 二障의 하나. 智障이라고도 함. · · 등의 번뇌가 객관(所知)의 진상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되므로  所知障이라 한다.

 

견혹(見惑) : 은 마음의 迷惑, 곧 번뇌의 별명이며, 또한 見惑이란 것은 見道에 의해 消滅되는 이란 뜻이고, 修惑(思惑이라고도 한다)修道에 의해 消滅해 없어지는 이다. 俱舍宗에서는 四諦의 진리(, 佛敎의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眞理를 모르는 見惑, 現象的인 사물에 집착하고 迷事修惑이라 했으며, 唯識宗에서는 邪道의 이단자가 邪敎 등의 誘導에 의해, 또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함을 따라 일으키는 후천적인 번뇌(分別起)見惑, 태어남과 동시에 저절로 생기는 선천적인 번뇌(俱生起)修惑이라 한다고 했다. 또한 天台宗에서는 · 二惑空觀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이므로 塵沙惑 · 無明惑과 구별했으며 합해서 三惑이라 했다. 그 가운데 · 은 모두 三界안의 사물에 의해 상대적으로 일어나고, 三界生死(, 迷的 生存)를 초래하는 것이므로 界內이라 했고, 三乘이 공통으로 끊지 않으면 안되는 이므로 通惑이라 한다.

俱舍宗에서는 見惑八十八이 있다고 하여 見惑 八十八使(使 : 번뇌의 다른 이름)라 한다. , 見道함으로 없어지는 근본번뇌는, 五利使(身見 · 邊見 · 邪見 · 見取見 · 戒禁取見)五鈍使(· · · · )이지만, 이것을 각각 四諦에 맞춰, 三界에 해당시킬 때 欲界三十二, 色界 · 無色界各 二十八이 되므로 합하여 八十八이 된다. 또한 修惑八十一이 있다고 하여, 修惑 八十一品이라 했으니, 修道에 의해 없어질 근본번뇌로, 欲界에서는 · · · , 色界 · 無色界에서는 각각 · · 十種이지만 이것들을 각각 일괄하여, 九地配對하고, 다시 각각 번뇌의 강약에 따라 上上品에서 下下品까지의 九種으로 나누어 八十一品으로 한 것이다. 見惑八十八使修惑十種을 합하여 九十八隨眠이라 한다.

唯識宗에서는 見惑百十二, 修惑十六으로 나누고 합하여 百二十八의 근본번뇌를 세운다.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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