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機)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緣을 만나서 발동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佛陀의 敎法을 받아 그 敎化를 입을 수 있는 소질 · 능력. 또는 敎의 대상이 되는 것. 法 또는 敎와 連稱해서 機法 · 機敎라 한다. 法華玄義 卷六上에는 機의 語義에 대해 (1) 微(불타의 교화를 받고서 발동하는 미세한 善을 속에 가지고 있는 것), (2) 關(불타가 중생의 소질 능력에 응해서 하시는 敎化, 즉 불타의 應과 상관 관계가 있는 것), (3) 宜(불타의 교화에 잘 들어 맞는 것)의 三義를 들었다. 機는 반드시 무엇인가의 根性(근본이 되는 性質 · 資質)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機根 혹은 根機라 하여 그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機類(機品이라고도 한다)는 여러 입장에서 분류하는데,
예컨대 (1) 善法을 닦을려고 하는 善機와 惡法을 닦을려고 하는 惡機, (2) 소질 · 능력의 高下, 利鈍에 의한 上機 · 中機 · 下機(이 三機를 다시 上 · 中 · 下로 나누어 九品三機라고도 한다.), (3) 大乘을 믿는 大機와 小乘을 믿는 小機, (4) 그 자리에서 대번에 깨닫는 頓機와, 단계적 과정을 거쳐서 점차로 깨닫는 漸機, (5) 곧 바로 眞實敎를 받는 直入의 機(直行 또는 直進의 機라고도 한다.)와 우선 方便敎와 가르침을 거친 뒤에 비로소 眞實에 드는 迂回의 機, (6) 현재의 善業 때문이 아니고 過去世에 닦은 善根의 힘으로 해서 가지고 있는 冥機와 現在世의 몸과 입으로 힘써 善을 실천하는 顯機, (7) 그 敎에 의해서 깨닫게 되는 바른 대상으로서의 正機(正所被의 機)와 겸해서 이익을 받는 傍機, (8) 불타가 敎를 설하심에 있어 그 敎를 받아야 할 상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聖者가 일부러 그 敎를 받기 위해 나타나 짐짓 상대가 되는 權機와 그 敎를 받아야 할 실재의 상대인 實機 등이 있다.
각 宗에서, 그 敎義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로 小乘의 根機중 鹿野苑의 阿含을 說法하시던 처음부터 참석하여 그 뒤의 고차원의 敎를 받아서 나가는 竪入의 機에 대해서, 고차원의 설법을 하시는 法會上에 임시로 중도에 참석한 이를 橫來의 機(竪)라고 하며, 이 橫來新受의 小機까지도 빠짐없이 敎化하기 위해, 예컨대 方等時의 설법 등을 하심으로 높은 대승의 敎 가운데 소승의 敎를 混說한다고 한다. 眞言宗에서는 顯敎를 받는 機와 密敎를 받는 機를 二大別하여, 密敎의 機중에는 結緣灌頂을 받을 뿐 아직 如法하게 修行하지 않는 사람이 곧 結緣의 傍機와 密敎를 바르게 받고 如法을 수행하는 正所被의 機로 나눈다. 다시 正所被의 機중에서도 또 小機(有相劣慧)와 大機(無相勝慧의 機)가 있어서 小乘 중에는 顯敎로부터 密敎로 들어가는 迂回의 機와 곧 바로 密敎에 들어가는 直往의 機가 있으며 大機중에도 發心수행으로부터 證得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修行分證의 機와 地前地上 共分證의 機와 卽到의 機와의 셋이 있다고 한다. 이상의 密敎의 機를 細別하면 六종인데, 여기에 總稱의 三종(正所被 · 小機 · 大機)을 더하여 이것을 비밀의 九機라고 한다. 淨土敎에서는, 觀無量壽經의 說에 의해서 定機(定善의 機)와 散機(散善의 機)를 나누어 散機에 대해서 廢立 · 助正 · 傍正의 三종을 세워 諸行을 廢하고 오로지 念佛一行을 닦는 廢立의 機를 正機로 한다. 부처님이 機類에 應해서 敎를 說하는 것을 對機說法, 敎가 機에 들어맞는 것을 逗機라고 하며, 機가 敎를 說하기 위한 緣이 되는 것을 機緣이라 한다. 敎를 機가 感受하는 機感과 佛陀가 機에 應하는 佛應과를 感應이라고 하며, 機와 應과를 倂稱해서 機應이라고 한다. 佛陀가 때에 應하고 機에 당하여 適切하게 중생을 敎化해서 이익케 하는 것을 當機益物이라고 하며, 天台宗에서는 이 말을 五時중 法華이전의 四時에 중생의 機根을 다듬어 익힘으로 圓敎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리고 禪宗에서는 機란 말의 뜻을 지도자인 師家의 마음의 쓰임새란 뜻으로 쓴다. 즉 機는 言語思慮가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그것이 밖에서 움직여서 지도를 받는 學人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師家의 機와 學人의 마음이 꼭 들어맞는 것을 投機라고 한다.
참고
연(緣) : 범어 pratyaya.
① 협의로는 결과(果)를 끌어 일으키기 위한 직접적 내적원인을 因(內因)이라 하는데 대해서, 이것을 밖에서 돕는 간접적 원인을 緣(外緣)이라고 하는데, 廣義로는 둘을 합해서 因이라고도 緣이라고도 한다. 廣義의 緣은 四緣으로 분류된다.
(1) 因緣. 因인 緣. 因卽緣의 뜻. 果를 生하는 직접적 內的인 원인. 狹義로는 因을 말함. 六因중 能作因을 除한 다른 五因을 말한다.
(2) 等無間緣. 앞의 刹那의 마음·마음의 작용(心所)이 뒤의 찰나의 마음·心所를 生하는 원인(장소를 열어서 인도해 들임. 곧 開避와 引導)이 되는 것을 말한다.
(3) 所緣緣(緣緣). 所緣 곧 外境이 마음이 생하는 緣이 되는 것을 말한다. 唯識宗에서는 이것을 疎所緣緣(所緣의 相分을 引起하는 본질이, 동시에 見分의 所緣이 되는 것을 말한다)과 親所緣緣(所緣을 緣하는 見分과 여의지 않는 相分을 말한다)으로 나눈다.
(4) 增上緣. 一切法이 果인 一法에 대해서 모두 緣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六因중의 能作因과 같다. 또 淨土敎에서는 아미타불의 本願은 凡夫가 淨土에 往生하기 위한 增上緣이 된다고 한다. 이 경우의 增上緣은 果에 대해서 작용하는 강한 힘이란 뜻.
② 心과 心所(개별적인 마음의 작용)가 對境을 향해서 작용하고, 그 모습(相)을 취하는 것을「緣한다」고 한다. 心識은 스스로 緣하는 것이기 때문에 能緣이라고 하고, 對境은 心識에 의해서 緣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所緣이라고 한다.
발동(發動) : 고동치듯이 움직이는 것.
불타(佛陀) : 범어 Buddha. 浮圖 · 浮屠 · 部陀 · 浮頭 · 勃䭾 · 母䭾 · 沒䭾라고도 음역. 意譯하면 깨달은 사람(覺者)이라 하고 줄여서 佛이라고 함.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라고 하여 왔다. 특히 불교인들의 완전한 용어로는「부처님」이다.
즉 불타께서는 B.C. 6세기경에 인도 카필라국에서 출생하시어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일체의 번뇌를 끊고 우주의 참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였던 석가세존을 존경하는 말이다. 그러나 불타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불타 즉 부처는 석존 한 분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불타는 一切法, 즉 우주 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大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대성자가 석존이시기 때문에 불타라고 한다. 이러한 부처의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어서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있다. 그러나 佛陀觀은 시대와 종파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다.
초기 석존의 시대에는 불타라 하면 석존을 가리켰고, 그 제자들에게 있어서 불타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었다. 그러다가 후에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불타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德相 즉 신체적 특징인 32相 80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특수성으로서의 덕성인 十力 · 四無畏 · 三念住 · 十八不共法을 성취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타는 生身 · 法身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부처의 肉身을 生身佛이라 하고, 그 부처가 얻은 그리고 그 부처의 본성인 진리(法)를 法身佛이라 하여, 2,500여 년 전에 8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역사적 불타인 석존은 생신(肉身)불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불타라고 할 때에는 보통 법신불을 말하는데, 이 법신불은 늙지도 병들지도 죽지도 않는 상주불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佛身觀에 의하여 三身說(法身 · 報身 · 化身)이 나타났다. 실제에 있어서 불타로서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기는 오직 석존 한 분 뿐이지만, 많은 불교성전에는 석존의 이전에 이미 毘婆尸佛 · 燃燈佛 등 과거의 부처와 미륵불 등 미래의 부처와 그리고 阿閦佛 · 阿彌陀佛 등 현재의 부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으시다. 이와 같이 많은 부처님들은 모두 역사상의 불타이신 석존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서, 즉 과거의 여러 부처들은 석존이 因位에 있어서 수행을 쌓을 때 받들어 공양하고 또는 授記를 얻는 데에 관련이 되고, 또 장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비롯한 미래의 많은 부처들은 석존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나 그 실제의 몸은 오히려 온 세계에 나타나서 교화를 쉬지 않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부처가 출현하지만 이는 모두 하나의 큰 법신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교법(敎法) : 부처님이 說한 一生一代의 敎說. 곧 三藏十二部. 大小乘의 大藏經 일체를 일컫는 말.
교화(敎化) : ① 敎導化益의 뜻. 說法하여 중생을 인도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 開化 · 攝化 · 施化라는 말도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② 그릇된 이를 바른 길로 들게 하는 것.
교(敎) : 범어 agama의 번역. 聖者가 보이신 것이기 때문에 聖敎라고도 하고, 말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言敎라고도 한다. 또 理 · 行 · 證 · 觀 · 禪 등에 상대되는 말이다. 敎를 大乘敎 · 小乘敎 · 漸敎 · 頓敎 · 權敎 · 實敎 · 了義敎 · 不了義敎 · 一乘敎 · 三乘敎 · 顯敎 · 密敎 등으로 나눈다.
기법(機法) : 機와 法의 병칭. 종교는 믿는 이와 믿을 것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로소 성립된다. 이 경우에 중생의 신심과 부처님의 구원하는 법을 말한다.
기교(機敎) : 중생의 근기와 부처님의 교법을 말함.
근기(根機) : 또는 機根. 根은 물건의 근본이 되는 힘. 機는 발동한다는 뜻. 교법을 듣고 닦아 얻는 능력과, 교법을 받는 중생의 性能을 말한다.
이둔(利鈍) : 根機가 뛰어난 자와 뒤 떨어진 자.
돈기(頓機) : 頓敎. 대승의 根機. 소승에서 대승에, 또는 權敎에서 實敎에 이르는데 있어 얕고 깊은 차례에 따르지 않고, 처음부터 대승의 깊고 미묘한 교리를 곧 깨닫는 사람. 곧 頓敎를 듣고 佛道를 대번에 깨닫는 機類란 뜻.
점기(漸機) : 곧바로 正道에 들어가지 못하고, 점차로 방편에 의하여 正道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함. 鈍根者.
정소피(正所被) : 敎化의 대상자. 敎說을 통해 바르게 교화할 수 있는 상대. 곧 被敎化人의 뜻.
권기(權機) :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 그 법을 바로 알아 들을만한 對機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는, 그 가르침을 바로 받을 根機가 아닌 사람에 대하여 설법한다. 이것은 權假의 근기이므로 權機라 한다.
실기(實機) : 부처님께서 敎化하려고 목적하는 機類.
횡래기(橫來機) : 부처님의 45년 동안 설법을 처음부터 차례로 듣지 않고, 중간에 와서 듣는 사람.
횡수(橫竪) : 橫縱과 같은 말. 竪는 시간적으로 보아 전후 차례가 있고, 橫은 공간적으로 보아 동시이어서 전후차례가 없음. 수행하는 차례를 지내야 되는 自力敎를 수, 부처님의 본원력으로 왕생하는 他力敎를 횡이라 한다.
현교(顯敎) : 顯敎란 비밀이 없이 일반적으로 설한 敎. 密敎란 비밀히 설한 것으로 표면상으로는 알 수 없는 敎의 뜻. 敎의 설법 혹은 敎義에 의한 불교의 분류법으로 智顗가 化儀의 四敎를 顯露不定敎와 秘密不定敎를 들고 있는 것은 前의 例이다.
① 진언종(東密)의 敎判. 일본 空海의 辦顯密二敎論 등에는 應身의 釋迦佛이 중생의 성질·능력에 따라 공공연하게 설한 一乘 · 三乘의 敎를 顯敎, 法身의 대일여래가 자신의 깨달음의 내용을 스스로 돌아보며 즐기기 위하여(自受法樂) 제시했다. 三密의 敎를 密敎라 하고, 그것은 오직 부처님 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의 敎라 한다. 顯敎는 이에 대하여 權假의 敎에 불과하다고 한다.
② 台密(천태종의 密敎)의 敎判. 圓仁 · 安然 등의 주장으로 三乘敎를 顯敎, 一乘敎를 密敎라 하고, 密敎 중의 화엄·법화경 등의 여러 경전은 세속과 勝義가 一體라고 하는 이론만 주장하고 印相 등 구체적 事象 등은 주장하지 않으므로 理密敎이다. 大日 · 金剛頂 등의 경전에선 그 쌍방에 걸쳐 주장한 事理俱密敎이다라고 하는, 理는 같으나 事密을 주장하고 있는 敎가 殊勝하다고 한다. 후세에 와서 法華와 大日은 同一圓敎로 우열의 차가 없다는 설도 있다. 또 법화경에서 주장하는 밀교를 雜密, 大日經 등에서 주장하는 密敎를 純密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③ 密敎로 세운 宗旨를 密宗이라고 한다. 인도에서는 大日經의 說을 중심으로 한 密敎를 眞言乘(右道密敎), 金剛頂經의 說을 중심으로 한 密敎를 金剛乘(左道密敎)이라고 한다.
밀교(密敎) : 秘密佛敎의 약칭. 일반적인 불교를 顯敎라 하는 것에 대한 말. 석가모니 부처님 혹은 報身의 아미타불 등을 교주로 하는 모든 대승 顯敎에 대하여 法身의 大日如來를 교주로 하며 우주를 이 법신 自在證의 경계로 보고 한 字 한 字의 진언다라니는 신비력이 있으며 그 三密의 秘法은 가볍게 전수할 수 없다고 하는 데서 밀교라고 한다. 보통 밀교를 미신적인 呪術의 체계이며, 性力(범어 sakti)을 숭배하는 타락된 불교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것은 힌두교의 탄트라(범어 tantra) 신앙과 결합되어 말기에 나타났던 左道密敎를 가리킬 따름이다. 정통적인 밀교사상은 개체와 전체의 신비적 合一을 목표로 하며, 그 통찰을 全身的으로 파악하는 실천과 儀禮의 체계이다. 밀교에 해당하는 인도의 호칭은 金剛乘(범어 vajrayana)으로 금강승은 후기 대승불교를 대표한다. 금강승은 實在와 현상을 자기의 한 몸에 융합하는 卽身成佛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다양한 것의 통일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그 통일원리는 空과 慈悲의 일치 즉 반야와 方便의 일치로 나타난다. 종교의식상에서 여러 가지의 비법과 火祭 등을 행하는 것은 소위 탄트리즘으로 베다(veda)의 옛적부터 인도에서 행하여졌으며, 이런 법을 불교에서도 최초에는 배척하고 있었으나 석존 멸후 얼마 안가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의식 또는 瑜伽觀行에 응용될 뿐 교리 체계에는 관계가 없다. 이것을 雜部密敎라 하며, 이는 교리체계를 명료하게 법신 大日說로 전개하여 舊敎를 일변시킨 純部밀교와는 대립된다. 즉 현세적 욕망을 처리하는 주술적인 것과 극단적인 신비주의 속에서 발달한 상징의 철학으로 구분된다. 전자인 雜密(또는 呪密)은 禁忌 · 符籍 · 呪法 등으로 표현되는 것에 반해 후자인 純密(또는 通密)은 7세기 전후에 성립된 大日 · 金剛頂의 두 大經에 의하여 그 체계를 확립하였다. 전자는 서인도에서 후자는 남인도에서 성립하였다. 그 사상계통도 다소 다르지만 모두 대일법신의 自證化他의 양 방면을 믿음과 행동의 양면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바로잡았다. 이것이 善無畏 · 金剛智 · 不空 등에 의해서 중국에 들어왔다. 회교의 침입(1027~1087) 이후 성립된 俱生乘(sahajayana)과 時輪乘(kalacakrayana), 그리고 금강승에서 갈려 나온 탄트라승(tantrayana), 吉祥乘(bhadrayana) 등은 정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인도에서 티베트 · 네팔 등으로 전파되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는 것은 구생승 계통이며 티베트에 들어가 발달된 것이 라마교이다. 중국 · 한국 · 일본은 토속신앙과 결합된 요소가 많다.
대기설법(對機說法) : 교화를 받을 상대의 <성질이나 능력> (機)에 따라서 각각 알맞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敎를 說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佛에 국한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隨機說法·隨機散說·隨機說·應機接物이라고도 하며, 또 機에 꼭 들어맞는 것을 逗機(逗는 投合의 뜻)라고 하며, 機에 應하여 時宜에 적합한 敎化利益을 베푸는 것을 當機益物(物은 衆生의 뜻. 天台宗에서는 五時 가운데 前四時에 해당하는 방편적인 敎化利益을 當機益物이라 함)이라 한다.
두기(逗機) : ① 機와 機가 서로 投合하는 것. 크게 깨달아서 佛祖의 機에 계합하고 또 스승과 제자와의 心機가 일치하는 것. ② 여러 갈래의 가르침이 상대방의 소질에 합치하여, 응분의 이익을 주는 것.
기연(機緣) : ① 중생의 根機에 부처님의 교화를 받을만한 인연이 있는 것을 말함. 부처님의 교화에 대하여 感應性이 있으므로 機緣이라 한다. ② 機는 시기, 緣은 인연이란 숙어로, 機會란 뜻이다.
감응(感應) : 感應道交의 뜻. 중생의 感과 부처님의 感이 서로 통하여 융합하는 것. 佛心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고, 중생이 이를 느껴 서로 사귀는 것. 신앙하는 마음이 부처나 신령에 통하는 것.
기응(機應) : 부처님의 교법에 감동되는 중생의 機根과 여래의 感應.
당기익물(當機益物) : 여러 經의 설법이 같지 않은 것은 각기 다른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이익이 되는 善巧의 방편을 쓰기 때문이다.
오시(五時) : 오시팔교(五時八敎)→隋의 智顗가 說한 天台宗의 敎判. 불교의 모든 경전의 내용을 분류하고 해석함에 있어, 釋尊의 說法의 순서를 따라 華嚴·鹿苑·方等·般若·法華涅槃의 五時로 나누었는데, 이것을 다시 중생을 敎導하는 形式방법 여하에 따라 頓·漸·秘密·不定의 四種類(化儀의 四敎)로 나누고, 또 중생의 성질·능력에 응해서 가르치고 인도한 敎理내용을 따라 藏·通·別·圓의 四種類(化法의 四敎)로 나누었다. 이것을 총칭해서 五時八敎라고 한다. 그 관계를 圖示하면 다음과 같다.
① 五時.
(1) 第一華嚴時는, 부처가 成道한 최초의 三七日間 華嚴經을 說한 시기를 말한다. 그때 說한 敎의 내용은 圓敎이면서 겸하여 別敎를 說하고 있다. 이 說法의 대상은 大菩薩衆인 別敎와 圓敎의 뛰어난 능력이 있는 이로서, 불타의 교화의 의미에서 말하면 자신의 證得한 佛慧를 比擬해서 適否를 시험한 것이므로 擬宜時라 하고, 敎의 순서로 말하면 소에서 짜낸 그대로의 乳味에 해당한다. 화엄경에는 前分과 後分의 구별이 있어서, 前分은 三七日 동안의 說法으로 聲聞이 없지만, 後分은 入法界品과 같이 舍利弗등의 大聲聞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때의 說法은 정도가 너무나도 높아서 聲聞은「如聾如啞」라 하여 化益에 미치지 못했다.
(2) 第二鹿苑時는, 화엄경을 說한 뒤의 12년간에 十六大國에서 小乘의 四阿含經을 說하신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 있어서 불타의 최초의 설법의 장소가 鹿野苑이었기 때문에 鹿苑時라 하고, 說하신 經名을 따서 阿含時라고도 한다. 그 說하신 說法은 정도가 아주 얕아서 小乘 곧 三藏敎뿐이며, 불타의 교화의 의미에서는 천박한 능력을 가진 자를 대상으로 하여 이것을 誘導한 것이기 때문에 誘引의 때로 하고, 敎의 순서로는 乳의 다음 단계인 酪味에 해당한다.
(3) 第三方等時라 함은, 鹿苑時 뒤 8년 동안에 維摩經·思益經·勝鬘經등의 大乘을 說하신 시기를 말한다. 說해진 敎法은 藏·通·別·圓의 四敎를 並說하고, 제2시에 얻은 小乘의 얕은 證知를 불타의 깊은 證知와 同一視하고 있는 偏見을 打破하셨다. 그중에는 折小歎大(小乘은 劣等한 것으로 나무라고 大乘은 좋다고 칭찬한다), 彈偏褒圓(偏敎를 헐뜯고 圓敎를 칭찬함)의 의미가 說해지고, 耻小慕大(낮은 小乘을 부끄러워 하고 높은 大乘을 사모함)의 생각을 일으킨다. 불타의 敎化의 의미에서 말하면 彈訶(小乘은 쓸모 없다고 꾸짖어댄다)의 때이고, 순서상으로는 酪의 다음 단계인 生蘇味에 비유한다.
方等이라고 하는 것은 大乘經의 通名이기 때문에, 大乘의 처음인 이 時를 方等時라고 이름한 것이다.
(4) 第四般若時라 함은, 方等時뒤의 22년간에 諸部의 般若經을 說한 時期를 말한다. 經名에 의해서 時의 이름이 지어졌다. 說해진 敎法은 通·別·圓의 三敎를 내용으로 하고 있고, 불타의 가르침의 의미로는, 大乘·小乘을 구별하는 偏執을 淘汰(씻어서 깨끗이 함)하기 위해서 諸法은 皆空이며 大乘小乘은 一味라고 融合시키기 위한 淘汰時이고, 敎의 순서로는 生蘇의 다음 단계인 熟蘇味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있어서는 須菩提등으로 하여금 般若를 說하게 하고, 大乘을 그리워하는 二乘을 거듭 大乘중에 進展시켜서 空에 들어가게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것을 般若轉敎라 하고, 法의 구별을 없애기 때문에 法開會라고도 한다. 이중 通敎의 소극적인 空을 說하는 空般若(三乘 共히 배우는 般若)와 一切皆空의 적극적 不空中道를 說하는 別圓二敎의 不共般若(보살만이 배우는 반야)등이 있다.
(5) 第五 法華涅槃時라 함은, 敎를 받는 이의 능력이 아주 진전되었기 때문에 바야흐로 진실한 佛知見에 證入(깨달아 들어감)시키는 때로서, 불타가 최후의 5년동안 說하신 법화경과 열반에 드시기 위해 一日一夜에 說한 열반경등이 이 시기에 해당한다. 說하신 敎法은 순수히 원만한 圓敎의 敎로, 거기까지의 前四時의 얕은 方便의 敎를 開會(方便을 열어서 진실과 하나로 한다)해서 진실을 나타내는 開顯圓이며, 불타의 敎化의 의미로는 理論的인 法開會뿐만 아니라, 실제로 모두 證入시키는 人開會이며 敎의 순서로는 熟酥의 다음 단계인 醍醐味에 비유된다. 법화경과 열반경과의 관계는 결국 一(佛)乘을 顯揚하는 것이지만, 법화경은 앞의 五味중 後敎後味라 하여, 華嚴時 이후 법화경까지의 二乘을 開會해서 佛知見에 들게 하는 大目的을 성취하는 것이고(大收敎), 열반경은 법화경에서 빠진 能力者에 대해서 藏·通·別·圓의 四敎를 追說追泯(쫓아가서 說하고 쫓아가서 否定하고 하여 圓敎를 나타냄)해서 佛性常住 扶律談常을 말해줌으로 敎化하고 成佛시키는 것이며, 마지막 五味중의 後敎後味, 後敎涅槃經이라고 한다(捃拾敎捃은 주어서 취한다는 뜻). 또 五時에 通別의 2종이 있다. 別의 五時라 함은 불타의 중생교화의 방법을 五期의 차례로 분류하는 것을 말하고, 通의 五時는 각 一代에 걸쳐서 敎를 받는 자의 힘에 相應해서, 適宜하게 5종 중의 각기의 이익을 받는 것을 말한다. 더욱, 이 五時의 年限에 대해서는 다소의 異說이 있고, 또 이 五時를 시간적으로 이해하느냐, 이론적인 조직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古來로 문제되어 왔다.
② 八敎라 함은 化儀의 四敎(불타가 중생교화에 임해서 베푼 形式·儀則으로 藥의 調製法·處方과 같은 것으로 비유된다)와 化法의 四敎(불타가 중생교화에 임해서 쓰신 敎法의 내용으로, 약의 成分과 같은 것으로 비유한다)를 말함.
① 化儀의 四敎중,
(1) 頓敎라 함은 바로 처음부터 불타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에게 가르치는 說法으로 화엄경이 여기에 해당한다.
(2) 漸敎라 함은 내용이 얕은 敎에서 깊은 敎에로 점점 나아가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말한다. 阿含(初)·方等(中)·般若(末)의 三時의 說이 이에 해당한다.
(3) 秘密敎라 함은 중생의 힘이 구구한 경우에, 이들 서로 서로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가만히 각기 다른 이익을 주는 說法을 말한다.
(4) 不定敎라 함은, 가지가지의 能力者가 각각 한 座席에 連坐해 있을 때 각자의 힘에 응해서 나름대로 체득하는 바의 敎法이 일정하지 않는 등의 說法을 말한다. 秘密敎와 不定敎는 同聽異聞(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듣는 방법이 다르다)의 점은 공통인데, 앞의 것은 상호간 이익이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人法俱不知)이고, 뒤의 것은 상호간에 이익이 다른 것을 알고 있는 경우(人知法不知)이다. 다함께 체득하는 敎法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不定敎이며, 정확히 말하면 앞의 것은 秘密不正敎, 뒤의 것은 顯露不定敎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頓漸二敎는 公開된 敎法인 점에서 顯露定敎라고도 한다.
② 化法의 四敎중,
(1) 三藏敎는 또 略해서 藏敎라고도 하고 小乘敎를 말한다. 三乘人을 위하여 四阿含經에 의해서 但空(空의 一面만을 알고 동시에 不空의 反面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의 道理가 밝혀지고, 析空觀(分析的으로 空을 관한다. 拙度觀이라고도 한다)에 의해서 無餘涅槃에 들어가게 하는 敎이다. 이 敎의 보살은 見思의 惑을 制伏하여, 번뇌를 다 끊지 않고, 중생교화를 위해서 三阿僧祗劫의 긴 기간에 걸쳐서 깨달음에 이르는 因行을 실천하기 때문에, 이것을 伏惑行因이라고 한다.
(2) 通敎의 通이라 함은 通同과 通入과 共通등의 의미. 聲聞·緣覺·보살의 三乘이 通하여 함께 받는 大乘初門의 敎를 말한다(共通). 곧 如幻卽空(모든 것은 因緣에 의해서 成立되어 있고 幻과 같은 空이다)의 道理에 의해서 體空觀(전체 그대로가 本來空이라고 觀한다. 巧度觀이라고도 한다)을 觀하여 가는 敎이다. 이 敎의 보살 가운데 劣等한 보살은 이 敎理를 얕게 이해해서 앞의 藏敎의 二乘과 같은 果를 깨닫고(通同), 수승한 보살은 이 敎에서 그 속(奧)에 포함되어 있는 中道의 妙理를 깨달아서 別·圓 二敎에 들어간다(通入). 이와 같이 通敎人이 別敎에 轉進하는 것을 別接通(別入通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通敎人이 圓敎에 轉進하는 것을 圓接通(圓入通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通敎의 보살이 別敎의 敎를 익히기 위해서 別敎의 修行名目을 가지고 通敎의 位次를 나타내는 것을, 名別義通이라 한다.
(3) 別敎의 別이라 함은 不共과 歷別의 의미. 곧 二乘과 共通하지 않고, 다만 보살만을 위한 敎란 뜻으로(不共), 그점이 前後의 三敎와 다른데, 또 모든 것을 差別의 面에서 본다는 歷別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空假中의 三諦를 차례로 觀하여 中道의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데, 그 中道는 空이나 假와 다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것을 但中(空·假와는 독립한 中)의 理라 하고, 그 觀法은 次第의 三觀이며, 또 隔歷의 三觀이라고도 한다. 別敎의 보살도 初地에 이른 뒤에는 中道의 理를 깨달은 圓敎人과 같게 되는데, 初地 이전에, 但中의 理로부터 그 가운데 포함돼있는 不但中(空·假를 여의지 않는 中)의 理를 깨달아 十住에서 十廻向사이에서 別敎로부터 圓敎로 轉進하는 이가 있다. 이것을 圓接別(圓入別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앞의 別接通·圓接通 및 지금의 圓接別을 합해서 三被接이라고 한다.
被接이라 함은 요컨대, 理를 觀하고 있는 사이에 그 가운데 포함된 깊은 의미를 깨달아서, 보다 高次元의 敎에 接續되어 轉進하는 것을 말한다. 이상의 三敎는, 이론상으로는 각기 佛果에 이르는 경계가 있지만, 실제상은 因中被接되어 三藏敎의 斷惑의 位, 通敎의 八地이상, 別敎의 初地이상에는 이르는 자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有敎無人(敎만이 있고 證得한 사람이 없다) 또는 果頭無人(佛果에 이르는 자가 없다)이라 한다.
(4) 圓敎의 圓이라 함은 편벽되지 않고 모든 것이 서로 融合하여 完備해 있다는 뜻이다. 곧 迷도 悟도 본질적으로는 구별이 없다는 것이 참다운 道理이며, 그것이 불타의 깨달음이기 때문에, 이 圓敎는 불타의 깨달음대로를 說한 敎라는 것이다. 空·假·中의 三諦의 理는 一中에 서로 다른 二를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에, 이 中道의 理를 不但中의 理라 하고, 圓敎의 보살은 空假中의 三觀을 一心으로 觀하기 때문에, 이 三觀을 一心三觀이라고 하며, 또 不次第의 三觀, 圓融三觀등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四敎중, 藏通의 二敎는 敎證俱權(敎도 證도 方便이고 진실은 아니다), 別敎는 敎權證實(敎는 方便인데 證은 진실), 圓敎는 敎證俱實(敎도 證도 함께 진실)이다. 또 이것을 五時에 對配하면, 第一華嚴時는 圓敎에 겸해서 別敎를 說하기 때문에 兼, 第二時 鹿苑時는 다만 三藏敎만을 說하기 때문에 但, 第三時 方等時는 四敎를 對說하고 있기 때문에 對, 第四時 般若時는 通別二敎를 겸하고 圓敎를 說하기 때문에 帶, 第五時 法華涅槃時는 法華는 純圓敎, 涅槃은 追說에서는 四敎를 아울러 說하고 追泯에서는 圓敎로 된다고 한다. 또 法華의 圓(今圓)은, 爾前(法華經이 說해지기 이전)의 四時의 圓(昔圓)과 敎 그 자체는 同一하더라도, 그 작용에 優劣이 있기 때문에 今圓은 純圓獨妙의 開顯圓이어서 前 四時의 昔圓에 超勝하다고 한다. 이로써 法華經은 四敎의 밖에 있는 超八醍醐의 最勝한 敎(化儀·化法의 八敎에 뛰어나게 훌륭한 醍醐味와 같은 最上의 敎)라고 불리워진다.
투기(投機) : 機와 機가 서로 맞는다는 뜻. ① 끝까지 크게 깨달아서 佛祖의 心機에 합함. ② 스승의 심기와 제자의 심기가 서로 꼭 맞는 것.
범소유상(凡所有相) : 대저 온갖 모양은,
개시허망(皆是虛妄) : 모두 허망한 것이니,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 만약 모든 모양이 모양 아닌 줄을 본다면,
즉견여래(卽見如來) : 바로 여래를 보리라.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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